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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화가 홍다연
작가 : 은비랑
작품등록일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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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자저하와 그림전시회 - 1
작성일 : 17-12-02     조회 : 487     추천 : 1     분량 : 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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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세자저하와 그림전시회

 

 

 1.

 

 

 늦은 밤까지 경매장의 열기는 뜨거웠었다. 이미 경매는 끝이 났지만 세 남자는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청월을 바라보는 문우의 시선에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개 기생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안채로 모시겠습니다.”

 “고맙네, 청월.”

 

 세 남자를 청월이 안채로 모셨다. 세자저하인지 뻔히 아는 청월은 상석을 권했다.

 

 “크흠,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시는가?”

 “알다마다요, 세자저하시지 않습니까. 미천한 천것이 저하를 뵈오니 광영입니다.”

 

 크게 절을 올리자 세자 이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알아보니 말은 쉽게 통하겠네. 경매장의 주인을 소개시켜주게나.”

 

 청월은 문우를 한번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송구하오나, 무슨 연유로 그러시는지 여쭤도 되옵니까?”

 “수완이 궁금하기에 그렇네,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은 자니 내 얼굴 한번 봐도 좋지 않겠나? 그리고 이렇게 경매장이 앞으로 성행하게 되면 제도적 기반도 필요할 것이네.”

 “후우……. 지금 시각이 늦어서 바로 뵐 수는 없을 겁니다. 아니, 훤한 대낮이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청월의 말에 문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 빤히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청월. 다른 이도 아니고 저하께서 보자 하시는데!”

 “세자저하라도 어려운건 어렵지요. 경매장 주인은 다름 아닌, 송상의 거두 한홍윤의 따님 한채경 아가씨니까요.”

 

 여인이라는 말에 셋은 그 어떤 대답도 쉽게 하지 못했다.

 

 “하하하하하! 대단하군, 조선에 그런 여인이 있었단 말이지.”

 “저하!”

 “큭큭큭, 어떤 재원(才媛)인지 더욱 보고 싶군. 자네 말대로 지금은 시각이 너무 늦었으니, 다음 날을 잡아보지. 내 연통을 주겠네.”

 

 

 세자 훤은 호탕하게 웃으며 명월관을 나섰다. 곱게 예를 올린 청월은 지끈지끈 머리가 울렸다.

 

 “큰일 났네.”

 

 청월은 서둘러 안채로 돌아갔다. 지필묵을 들어 재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경매장을 처음 운영하면서 이렇게 일이 커질 줄 상상조차 한적 없었다. 그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연은 날이 밝자 채경이 준비해준 재료를 둘러보았다.

 

 “뭐 그릴거야?”

 “음……. 채색화를 그리고 싶은데.”

 

 위작공장만큼이나 다양한 종이와 붓, 먹 등이 즐비했다. 비싼 안료들도 없는 것 없이 갖춰있었다.

 

 “화조화 같은 거?”

 “흐음…….”

 

 다연은 뭔가 딱 꽂히지 않는지 계속 이 종이 저 종이 만지고만 있었다.

 

 “나, 다시 서역 그림 좀 봐도 될까?”

 “응? 응, 얼마든지 보세요. 화공님!”

 

 채경의 말에 벌떡 일어난 다연은 물빛 치맛단을 흩날리며 안채로 건너갔다. 안채 깊은 곳 방안에 언제 보아도 가슴 떨리게 하는 그림들이 가득 있었다.

 

 안료냄새, 종이냄새가 코끝을 간질었다. 다연은 우두커니 단 하나 뿐인 유화 앞에 섰다. 그렇게 한동안을 묵묵히 서있었다. 보고 있던 채경 조차 선뜻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가 방안에 가득 찼다.

 

 “아가씨.”

 “응? 왜, 율,”

 

 율은 청월에게서 받아온 연통을 내밀었다. 채경은 연통을 받아 읽어 내려갔다. 읽을수록 황망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하아……. 한채경 대형사고 쳤구나.”

 

 내용은 간단했다. 경매장에 온 세자가 채경이 보고 싶다는 것. 하루 속히 답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산 넘어 산이야! 강세훈 그자를 해결했다고 하니, 더 큰 산이라니……. 내가 무슨 힘이 있어! 그쪽에서 좋은 시간에 알아서 찾아오라고 해!”

 

 세자마저 저잣거리 사내마냥 쉽게 부른 채경은 뒤돌아 다연을 보더니 안채를 나갔다.

 

 

 

 다연은 채경이 뭐라 하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는 것인지 혼이 나가듯 했다.

 

 “신기해요?”

 

 홍연이 슬쩍 다가와 다연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 온지도 몰라서 화들짝 놀랐다.

 

 “네? 네. 어떻게 이렇게 실제처럼 옮겨놓을 수 있는지.”

 “조선 그림과 다른 건, 빛을 그리는 거죠.”

 “빛을 그려요?”

 “조선에선 모를라나? 영국에 한 100년 전부터 연구하던 거예요. 색은 어디서 나올까? 빛이 있어야 색이 있죠. 빛을 그려야 진정한 색이죠.”

 

 홍연은 신이 나서 유화를 보며 설명했다.

 

 “여기 여기서 빛이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그린 거예요 이 그림은. 근데 조선에선 그렇게 안 그린다고, 시간마다 변하는 빛은 잘못됐다고…….”

 

 다연은 홍연이 말한 대로 빛을 생각해보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자 이걸 봐봐요. 이 연적을 여기 이렇게 두면…….”

 

 연적을 들고 햇살 가득 들어오는 문턱에 두었다. 햇살을 받고 연적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기서 빛이 오니까 제일 밝고, 여긴 없으니까 그림자가 있고. 근데 조선은 이렇게 안 그려요. 굉장히 Flat해요.”

 “푸, 푸 푸래?”

 

 다연이 영국말에 당황하자 대청마루에 앉아있던 채경이 입을 열었다.

 

 “평평하다고.”

 “아아!”

 

 그렇게 생각하면 조선의 그림은 평평했다. 원근법이란 것도 조선의 것이 아니었다. 다연의 머릿속을 영감이 스쳐지나갔다.

 

 씩 웃으며 다연은 별채로 내달렸다. 빛. 빛이다. 빛을 그릴 것이다. 조선의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빛을 그릴 것이다. 조선의 빛을.

 

 

 

 임시로 채경의 집 별채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매일같이 채경이 구경하러 오며 감탄을 하고 갔다. 이른 시간 민찬이 찾아왔다.

 

 “이게 무슨 그림이냐?”

 

 다연이 머무는 별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민찬은 난생 처음 보는 그림에 놀랐다. 오늘도 해사한 치마를 입은 다연의 모습에 심장이 요동쳤지만, 그림이 더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의 빛을 그릴거야. 조선만의 빛.”

 

 화폭 속에 펼쳐지고 있는 그림은 여태껏 조선에 시도된 적조차 없던 그림이었다.

 

 “자, 이거 짐.”

 

 그림에 시선을 뺏겼던 민찬은 왜 온 건지 떠올리고 봇짐과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다연은 붓을 내려놓고 짐을 확인했다. 뭐 하나 흠집난거 없이 잘 챙겨왔다. 특히 어머니의 유품인 해금마저 챙겨온 섬세함에 다연은 괜히 설레었다.

 

 “고마워.”

 

 다연의 물기어린 눈을 보니 민찬의 심장이 요동쳤다.

 

 “으흠……. 그, 그 해금 꽤 오래된 것 같더라.”

 “……어머니가 쓰셨던 해금이야. 유품이라곤 이것 밖에 남지 않았어.”

 

 늘 밝고 활발했던 다연이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민찬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답답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는데?”

 “……잘 몰라. 그래서 오늘 어머니 시종이었던 막금이를 만나보려고.”

 “……같이 가줄까?”

 

 뜻밖에 민찬이 동행을 제안하자 다연이 머뭇거렸다.

 

 “그렇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묻고 싶은 거나 제대로 물어볼 수 있겠어? 엉?”

 “……그래주면 고맙지.”

 “언제 가는데?”

 “지금.”

 

 들고 있던 해금을 방 한 켠에 놔두고 장옷을 챙겨 다연은 방을 나섰다. 붉은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민찬은 다연을 따라 강돌이라고 하는 노비가 도성 밖으로 안내하는 곳으로 가기 바빴다. 장옷을 푹 쓴 채 걷는 다연을 자꾸 보게만 되었다.

 

 작은 몸짓에 작은 걸음에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생겼다.

 

 “크흠, 그날. 우리 처음 만났던 그날 사찰엔 왜 온 거야?”

 

 다연이 집에서 도망쳤던 그 밤의 일을 묻자 다연은 걸음을 멈추고 민찬을 바라봤다.

 

 “도망쳤어. 마님이 날 어느 늙은 양반의 첩으로 보내버리려고 했거든.”

 

 첩이란 말에 민찬은 화가 치밀었다. 앞으로는 자신이 다연을 지킬 것이다. 결코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초조한 막금이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자 다연은 빠르게 달려갔다. 다연의 등장에 막금은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아, 아가씨.”

 “……왜 이렇게 놀래? 어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보네.”

 “아, 아가씨. 저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막금의 말을 듣고 있던 민찬은 기가 막혀 소리를 질렀다.

 

 “묻기도 전에 벌써부터 할 말이 없다니, 뭘 물어볼지 다 알고 있다는 눈치네.”

 “쇤, 쇤네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가씨. 살려주세요.”

 “막금.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다연의 질문에 막금은 그저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것 밖에 못했다.

 

 “아주머니! 아가씨께서 묻지 않아요! 나한테 말한 만큼 말씀드려요!”

 

 강돌이 소리치자 막금은 한참 눈치를 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건 없습니다. 아가씨. 정말이에요. 그때 작은 마님을 살폈던 의원도 잘 모르겠다고 했었습니다.”

 “후우……. 어머니랑 제일 가까웠던 자네가 모르면 어떡하란 말이야. 어머니 평소에 건강은 어땠는데? 응? 불편하신 데는 없었어?”

 

 막금은 강돌과 다연의 눈치를 계속 보다 겨우 털어놓았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큰 마님이 보내시는 약을 먹기는 했습니다.”

 “그게 무슨 약인데?”

 “……뒤늦게 안 건데 그게, 피임약이었습니다.”

 

 피임약이란 말에 듣던 민찬마저 표정이 얼그러졌다.

 

 “뭐? 피임약? 아주 대단하신 마님이시네!”

 

 피임약이란 말에 다연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피임약 처방전은 지금 없어?”

 “……송구합니다요. 쇤네, 쇤네 그것 까지는.”

 “후우……. 막금아, 분명 알고 있잖아. 그렇지 않고선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고 지금껏 안 나타날 수 있어? 작은 도련님 피접 가는데 따라간다는 핑계로 지금껏 연락도 없었지! 한 번도 안방마님 심부름 한 적 없는 막금이 니가 순식간에 돌변하는 게 말이 돼?”

 

 다연의 다그침에 막금은 바닥에 꿇어 싹싹 빌기 바빴다.

 

 “쇤네는 정말 모르옵니다요. 정말 입니다요. 약은, 그 몹쓸놈의 약은…… 갑분이가 갖다 줬습니다. 늘 그랬다니까요!”

 

 막금은 그저 빌며 소리치기 바빴다. 부들부들 떠는 다연을 민찬이 살며시 품에 안았다. 다연은 거칠게 소리쳤다.

 

 “피임약! 그게 어떤 건지 반드시 알아낼 거야! 강돌아, 갑분이 주변을 알아봐줘. 분명 처방전이 나올 거야!”

 “네, 아가씨.”

 “아가씨 쇤네가 말했다고는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이에요. 아가씨.”

 

 다연의 발목을 붙잡고 매달리는 막금을 보며 다연은 눈물을 삼켰다.

 

 “어렸을 때 키워줬던 정으로 넘어가 줄게.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야.”

 “감사합니다요. 아가씨.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요.”

 “……가자.”

 

 민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다연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은 채 돌아갔다.

 

 “……울어도 돼.”

 “……아니, 안 울 거야.”

 

 독하게 내뱉었다. 민찬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울어도 안 볼 거니까 울고 싶으면 울어.”

 “…….”

 

 민찬의 따뜻한 목소리에 다연의 코끝이 찡해졌다.

작가의 말
 

 공모전 분량기준은 맞췄네용 10만자!!! 하지만.. -0- 완결날람 멀었어 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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