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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류화가 홍다연
작가 : 은비랑
작품등록일 :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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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랑은 위작단속처럼 들이닥친다 - 1
작성일 : 18-01-06     조회 : 549     추천 : 2     분량 : 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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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사랑은 위작단속처럼 들이닥친다.

 

 1.

 

 나가사키항구에는 짙은 소금냄새와 함께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가 날아다녔다. 신나게 어물전이며 일본여자에게 들이대던 데이비드는 여기가 천국이라며 근처 당고집(경단가게)에 앉았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곧 울 것 같은 헨리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점원은 불러다 손짓 발짓으로 옆자리 손님과 같은 것을 주문했다.

 

 “며칠만 쉬자는 것도 안 돼? 겨우 밟아본 육지다! 선윈들도 생각 해. 신의 사도시여.”

 

 데이비드가 일갈하자 헨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린 점원이 뜨끈한 녹차를 두 사람 앞에 놔주었다.

 

 

 

 조선 한양거리에는 어디든 다연의 전시회 얘기로 떠들썩했다. 이름난 양반네부터 중인들까지 전시회를 가보지 않으면 바보취급당하기 일쑤였다.

 

 여느 때처럼 공문서에 도장을 쾅쾅 내리찍던 문우는 요즘 잦은 외근으로 눈에 그늘이 무릎까지 내려올 지경이었다. 세자의 명으로 사헌부집의로써 할 것은 다하면서 위작단속까지 겸직을 하려하니 도저히 쉴 틈이 없었다.

 

 “그 전시회라는 건 정말 대단하더군. 화공의 아호가 처음 들어보던 건데 도대체 누굴까.”

 “전시회가 송상 것이니 안동 김씨에서 후원하는 화공중 하나가 아닌가 싶지.”

 “정말 그림들이 대단하더군.”

 

 저자거리처럼 떠들어대는 관리를 보던 문우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할일이 없어서 노닥거리나 보지? 그래서 이걸 보고서라고 썼는가?”

 

 문우는 책상 한구석에 놔두었던 두루마리 뭉치들을 한데 모아 떠들던 관리들에게 던져버렸다. 찬물을 뒤집어쓴 듯 얼어버린 관리들은 허겁지겁 두루마리를 주웠다.

 

 “자네들에게 주는 녹봉이 아깝네.”

 

 차갑게 내지르고 그는 밖으로 나왔다. 잔뜩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자 때마침 나타난 주윤이 씩 웃었다.

 

 “요즘 집의어르신의 얼굴이 말이 아니시군요.”

 “비아냥거릴 심사라면 다른 사람 찾아가게.”

 “설마 제가 집의어르신께 그러겠습니까? 단속 나갈 시간이라 찾아온 것일 뿐입니다.”

 

 조금씩 능글맞아지는 홍주윤이 마냥 싫은 건 아닌지 문우는 콧방귀를 꼈다. 주윤 뒤로 채경이 보내준 감식안들이 서있었다.

 

 “오늘은 도성 어디를 가기로 했었지?”

 “오늘은 도성 내가 아니라 밖의 화방들을 중점적으로 살필 예정입니다.”

 

 주윤이 문우 옆에서 찰싹 붙어서 일정을 설명했다. 사실상 주윤은 전혀 그림 보는 눈이 없어서 일정 파악과 위작이라 판별된 작품 수거 등 잡일이 주 업무였다. 그림을 보고 최종 판단을 내려야하는 것은 오직 문우 몫이라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아, 도성 내 화방은 거의 수거했었지. 얼른 가세. 홍헌납.”

 

 문우를 선두로 모두 말에 올랐다. 도성 밖으로 나와 한참을 더 달리던 주윤이 해맑게 물었다.

 

 “도성 내에는 위작이 거의 안보이던데 도성 밖 화방과 경매장 단속만 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아마, 단속한다고 얼마 안돼서 몸을 사리는 것일 뿐이야. 얼마 후면 다시 비온 뒤 죽순처럼 미친 듯이 보일걸.”

 “그러면 지금은 이렇게 돌아만 다녀야 합니까?”

 

 주윤이 융통성 없는 질문을 하자 문우는 골치가 아팠다.

 

 “지금은 먼저 정보수집 단계라고 생각하게. 홍헌납. 한 번만 더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면 녹봉삭감 할 것이야.”

 

 문우의 일갈에 주윤은 꿀 먹을 벙어리처럼 조용히 달리기만 했다.

 

 

 

 무사히 전시회가 진행되자 다연은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리자 다연은 조용히 강돌이 전해준 연향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마치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때 마당에서 시끄럽게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다연이 밖으로 나오자 강돌과 대치중인 경식이 보였다.

 

 “아, 아가씨!”

 

 강돌이 소리치자 경식이 인상을 쓰며 다연을 돌아보았다.

 

 “아, 아는 사람이에요.”

 

 다연의 말에 경식은 짧게 목례하고 강돌을 풀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그 의원에게서 얻어낸 처방전입니다.”

 

 다연은 강돌의 손에서 뺏듯이 처방전을 낚아챘다. 내용을 살펴보던 다연은 어려운 약재명에 인상만 더 찌푸렸다.

 

 “제가 다른 의원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냥 불임약이네 하고 맙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여인도 아닌데 캐묻고 다니기도 어렵구요.”

 “다른 건 없고?”

 “아버지께서 아가씨 걱정하십니다. 유기전 장부 한번 검토하러 오시라고 하십니다.”

 “칠복에겐 정말 고맙다고 전해줘. 너도 수고했어.”

 

 강돌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 혹시 몰라서 갑분이 쪽에 사람을 심어뒀는데, 새로 알게 되는 게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 아, 내가 곧 거처를 옮길지도 몰라. 그러게 되면 칠복을 통해 다시 연락해.”

 “네, 아가씨.”

 

 꾸벅 인사하고 강돌이 빠르게 돌아갔다. 다연은 처방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다연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여인은 직접적으로 의원을 만나기도 힘들었고, 남장을 한다면 제대로 약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하아…….”

 

 그때 대문 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민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너네 아가씨에게 확실히 안하다고 말하라니까.”

 “저희 아가씨께서 도련님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잰척 그만하시고 밑에서 일하시죠.”

 “그건 너나 많이 하세요.”

 

 율에게 일갈하며 민찬은 대문을 벌컥 열었다.

 

 마당에 서있던 경식을 비롯한 호위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아, 김민찬.”

 “넌 왜 밖에 나와 있냐?”

 

 다연의 손에 들린 처방전을 휙 하니 빼서 살펴보던 민찬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냐 이게? 너가 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내놔! 그걸 내가 왜 먹어.”

 

 다시 낚아챈 다연은 심각하게 처방전을 내려다 봤다.

 

 “파두(巴豆), 대극(大戟), 감수(甘遂)…… 비구니 될 생각 아니면 관심 꺼라.”

 “너 이게 뭔지 알고 있어?”

 “……얼핏 돌팔이 흉내 낼 정도만큼은. 근데 왜 그런 걸 갖고 있는 거야?”

 “강돌이가 갖다 줬어.”

 

 강돌이란 말에 민찬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앞뒤 상황을 전혀 모르는 율은 경식에게서 자초지정을 듣고 있었다.

 

 “대단하신 마님이셨네. 그렇지만 저거 갖고 죽진 않을텐데…….”

 “이 약재들 정확히 뭔데!”

 

 무서운 눈빛으로 돌변한 다연이 민찬을 붙잡고 소리지차 민찬이 당황했다.

 

 “지, 진정해.”

 “너 같으면 진정하게 생겼어?”

 “나도 잘 모른다니까! 감수 같은 애는 복수(腹水)빼는 데 좋아 하지만 워낙 독한 놈이라 조금만 써야한다고 그 이상은 나도 잘 몰라. 큰스님이면 아시겠지.”

 

 큰스님이란 말에 율의 눈빛이 바뀌었다.

 

 “봉원사(奉元寺) 큰스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봉원사라는 말에 다연은 처음 민찬을 만난 곳을 떠올렸다.

 

 “큰 스님이 어떻게?”

 “약초 공부하시는 게 취미시다. 나도 어깨너머로 배운 거고.”

 “지금 당장 가야겠어. 스님이라면 우리 어머니에 대해서도 잘 아시고.”

 

 당장이라도 떠나려고 대문 밖으로 나서려는 것을 민찬이 붙잡았다.

 

 “정말 가면 갈수록 겁이 없네. 지금 몇신 줄 알고 떠드는 거야?”

 

 다연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어느새 시린 만월이 하늘에 걸려있었다. 애꿎은 달만 흘겨보았다.

 

 “후우……. 날 밝으면 바로 가자.”

 “너는 왜 가는데?”

 “……좋아하는 여자를 혼자 봉원사까지 가게 내버려 둘 정도로 얼뜨기가 아니라서 그렇다!”

 

 민찬은 속이 뒤틀렸는지 버럭 내지르고 저벅저벅 사랑채로 들어가 버렸다. 놀라 멍한 다연을 두고 율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경식에게 다연과 민찬을 잘 봉원사까지 모시고 갔다 오라고 명하고 돌아갔다. 경식과 다른 호위들도 재빨리 흩어져서 마당에는 오롯이 다연이만 있었다.

 

 “지, 진짜 날 좋아한다고?”

 

 다연은 귀까지 빨개져 어쩔 줄 몰라 했다.

 

 

 

 율에게 다연에게 있었던 일을 들은 채경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렇단 말이지.”

 “그 갑분이란 여종을 캐볼까요?”

 “아니, 괜히 나섰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어. 경식이한테 잘 모시라고 했지?”

 “네, 아가씨.”

 

 채경은 문우 밑으로 보낸 감식안들에게서 받은 보고를 보는데 집중했다. 위작은 이제 도성내에 거의 안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경호가 고생하고 있네…….”

 

 홍연이 야식을 들고 들어왔다. 보고서를 훑던 채경은 잠깐 쉬면서 홍연이 들고 온 냉면을 한 젓가락 집었다. 귀한 얼음을 써서 차갑게 만든 냉면이 들어가니 온몸이 시원했다.

 

 홍연은 육전을 집어먹으며 채경을 살폈다.

 

 “다연이 슬슬 다시 오라고 하면 안돼요? 아가씨는 일만 하고 저는 벽창호같은 율 말고 말할 사람도 없고.”

 “아마도 그래야하겠지. 경식이가 있지만 도성 밖에서 혼자 지내는 건 위험할거야.”

 

 채경은 그렇게 말하고 마저 냉면을 호로록 먹기 바빴다.

 

 

 

 

 다음날 동이 터오기도 전에 민찬은 사랑채에서 나왔다. 다연도 일어나 채비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왔다.

 

 “두 분 준비 되셨습니까?”

 

 경식이 확인하자 다연과 민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마당 한 켠에 불편한 듯 임시로 메어둔 말이 3마리 있었다. 민찬은 익숙하게 말을 골라 탔다.

 

 “서두르자. 콩알 뭐해? 빨리 와.”

 

 다연도 말을 타고 아직 추운 새벽바람을 가르며 달려 나갔다. 세 사람은 봉원사를 향해 힘껏 나아갔다.

 

 

 한편, 궁에서는 임금은 세자와 단둘이 밀실에서 독대하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을 복원할 화원이 없사옵니까? 전하?”

 

 임금은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전 청으로 가서 유학한 화원이 그린 걸작중의 걸작이었다. 이 그림으로 영국대사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가지려고 했지만, 정작 그림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그린 화공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에 새로 그리려 해도 그릴 수 없었다.

 

 “영국대사는 곧 오는데 방도가 없겠는가? 세자.”

 

 임금의 질문에 세자또한 선뜻 생각나는 방도가 없었다.

 

 “소자, 불민하여 떠오르는 방도가 없사옵니다. 소자가 더 생각해보겠사옵니다.”

 

 임금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는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린후 동궁전으로 바삐 돌아갔다.

 

 세자는 오자마자 붓을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도 없이 일필지휘로 서찰을 적었다. 쓴 내용을 몇 번이고 확인한 후에야 만족한 듯 붓을 내려놓았다.

 

 “게 있느냐.”

 “네, 저하.”

 “당장 조집의를 데려오라!”

 

 내관은 바로 사헌부로 달려갔다.

 

 

 

 세자가 찾는 문우는 신경질적으로 사헌부 문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낮에는 사헌부 밤에는 위작단속으로 좀처럼 쉴 틈이 없는 문우는 나날이 예민해져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번에도 이딴 보고서 올릴 거면 녹봉 반납하는 게 빠르겠다고 했을 텐데?”

 

 팩하니 두루마리를 들어 밑에 관리에게 집어던졌다. 그때 내관이 불쑥 들어왔다. 우당탕 두루마리가 바닥에 굴렀고 혼쭐이 난 관리들을 허겁지겁 줍기 바빴다.

 

 “세자저하께서 찾으십니다.”

 “일하느라 바쁜 게 아니 보이십니까?”

 “저하께서도 일하시느라 부르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관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자 문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후우……. 어차피 가야만 한다면 위작단속에 관한 보고서를 챙겨서 가겠습니다. 기다려주시지요.”

 “네, 그러지요. 다만, 서둘러주십시오.”

 

 문우는 내관을 차갑게 흘기며 보고서를 찾아 정리했다.

작가의 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살 더 먹었어 ㅠㅠ 싫어.. 저리가 ㅠㅠ 흐규..// 이제 본격 로맨스인가 싶어지는.. 하아.. 한글로 150쪽이 넘어서 여기면.. 난 단행본 몇권 분량을 써야하는거지 ㅠㅠㅠ

꽁냥이 18-04-09 17:38
 
작가님 . 힘내세요. 재밌게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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