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위작단속
1.
점심상을 물리려 할 때 율이 안채로 들어왔다. 채경과 겸상하던 홍연을 보며 서찰을 내밀었다. 봉투의 봉인이며 모양새가 서역의 것이었다.
“그게 뭐야?”
“개성에서 온 연통입니다.”
“개성?”
홍연은 익숙하게 편지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날렵한 필기체로 홍연의 아버지가 적은 것이었다.
“아, 아가씨. 저는 개성으로 가봐야겠어요.”
“왜?”
“곧 영국공사가 온다고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찾으시네요.”
새로 오는 영국공사를 채경은 보고싶어했다. 하지만 그 영광은 눈앞에 난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홍연의 몫이었다.
“그래. 가봐야지.”
“아가씨.”
채경의 입술은 기이하게 뒤틀려 억지로 웃으며 괜찮다고 습관처럼 내뱉었다.
“정말, 괜찮아요?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좋겠다. 부럽네. 일개 아녀자가 함부로 밖에 나가는 것도 안 되는데 내가 무슨 수로 영국공사를 보겠니. 언제 갈 거야?”
“지금이요.”
지금이란 말에 채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홍연을 바라봤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답답했는지 안채에서 나가버렸다.
한편, 사헌부 조집의는 홍헌납과 독대 중이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전에 세자저하에게 명받은 ‘도유’ 찾기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저는 그 전시회도 안 가봤는데 무슨 수로 찾습니까?”
“휴우…….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내가 지금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자네뿐인 것을. 개탄스럽지. 암, 참으로 개탄스럽네.”
개탄스럽다는 말에 주윤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내 그렇다고 자네 대신 송상에서 보낸 감식안들에게 찾으라고 하면 퍽도 잘 찾아오겠다. 송상의 보옥도 말을 안 하고 있는데.”
“그건 그렇겠죠. 그렇지만 제가 무슨 그림 보는 눈이 있다고 저에게 일임하십니까?”
“저하께서 하라고 하시니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뭘.”
문우는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어서 더는 의욕도 나질 않았다. 주윤이 난처한 표정으로 인상 쓰고 있을 때 밖에서 한 사내가 들어왔다.
“자네는 또 무슨 일인가?”
불법속신자 단속을 주도하고 있는 문우의 후배관리인 사헌부의 송유운 지평이었다. 사실상 문우는 송지평의 단속 보고만 보고 최종결정만 내리고 있었다.
“보고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다른 건?”
“아직 별다른 건 없습니다.”
문우는 머리가 지끈지끈 울려서 피곤했기에 송지평이 올린 보고서를 슬쩍 훑어봤다.
“그럼 나가봐. 필요하면 다시 부를 테니까.”
송지평이 나갔는데도 주윤이 멀뚱히 서있자 문우는 짜증이 치솟았다.
“주윤군. 자네도 이만 나가보시게. ‘도유’ 찾는 건 사서삼경에 없었습니다. 라는 표정 그만 짓고!”
주윤은 울상을 하고 쫓겨났다.
민찬과 다연이 채경의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안채엔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이, 율. 쟤 왜 저래?”
“아가씨 심기 어지러우십니다.”
“그니까 왜 어지럽냐고?”
다연은 채경이 걱정되는 듯 바라보았다.
“아아아악! 나도 가고 싶어! 가고 싶다고!”
“이게 미쳤냐?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하아, 잘나신 누이님 도대체 어딜 가고 싶은데?”
“흥! 오라버니가 그걸 알아서 뭐하시게요? 휴우……. 개성으로 영국공사가 온다잖습니까! 명색이 송상의 행수로써 조선의 상권이 바뀔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일인데 이렇게 집구석에만 박혀 있어야 한다니 얼마나 답답한지 아십니까?”
서안을 쾅쾅 내리치며 짜증을 있는 대로 내는 채경이었다.
“영국공사 도착했데?”
“홍연이가 맞이한다고 방금 짐 싸서 갔습니다. 으으 열 받아! 율, 술상 들여와!”
“아주 대단하십니다. 누이님, 낮부터 과년한 처자가 술을 찾다니.”
“맨 정신으론 도저히 못 있습니다!”
시월이 술상을 차릴 동안 채경은 다연의 손을 딱 붙잡더니 마주보았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저번에 오라버니에게 흘려들은 게 다라서, 어머니 사인을 밝혀내고 난 다음 일본에 가겠다는 게 무슨 말이야?”
대뜸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다연은 눈만 깜빡였다.
“전에 율이 무슨 갑분이였나 누가 불임약인가 뭔가 처방해서 니가 봉원사 간다고 했던 걸 들었거든. 의자매를 맺어놓고 어떻게 나에겐 아무 말도 안 해 줄 수가 있어?”
체경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다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연은 난처하게 웃으며 어머니의 일을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듣던 채경은 자기 일처럼 화를 냈다.
“하아, 참 기가 막혀서!”
“진정해.”
“이게 진정할 일이야? 난 그런 약이 있는 줄도 몰랐네.”
“나도.”
그때 때마침 시월이 술상을 봐 안채로 들어왔다. 술상이 앞에 놓이기 무섭게 채경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다연은 걱정스럽게 채경을 바라봤다. 민찬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나갔다.
다연은 자기보다 더 흥분하고 우울해하는 채경을 달래고 지친 얼굴로 안채를 나왔다. 밖에 민찬이 기다렸는지 서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방아를 찧었다. 쿵쿵쿵.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갔다.
“들어가. 비 오는 데 고생했잖아. 곧 또 올게.”
헤어짐이 아쉬운 다연을 입술만 달싹였다. 민찬은 성글하게 웃으며 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있어. 걱정하지 마.”
“응.”
민찬은 손을 흔들며 채경의 집에서 나갔다. 다연은 한참 민찬을 배웅하다 민찬이 사라지자 별채로 돌아왔다.
주윤은 낮에 ‘도유’ 찾느라 진땀을 빼고 밤에는 도성 밖 불법 경매장 단속차 문우를 모시고 다니느라 혼이 났다. 급습해야 일망타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윤과 문우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도포에 갓을 쓰고 돈 좀 있는 중인 흉내를 냈다. 불법 경매장이라고 알려진 곳에 도착하자 주윤이 입을 열었다.
“이곳이라고 합니다.”
“이런 곳까지 뻗어 있을 줄이야. 너희들은 신호가 보이면 급습한다.”
“네, 나리!”
포졸들을 경매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대기시켜두고 문우를 시작으로 경매장에 향했다. 문밖에는 건장한 사내둘이 떡 버티고 서있었다. 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 뵙는 분들인 듯한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 친구가! 이 옷차림과 준수한 얼굴. 딱 봐도 모르겠느냐?”
주윤도 단속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게 이골이 났는지 연기를 곧잘 했다.
“그니까 이분이 누구십니까?”
“크흠!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도성 육의전을 꽉 쥐고 계시는 경상의 막내도련님이시다!”
경상의 막내아들은 강세훈과 달리 한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단속하다 문제가 생기면, 멋대로 빌려 쓰고 있었다.
사내는 한참을 바라보다 문우가 쥐고 있는 각궁을 보며 미간을 험악하게 구겼다.
“그것은 뭡니까?”
“이 놈이! 오늘 사구(射毬)-말을 타고 달리며 공을 화살로 맞추는 놀이-를 하셨네. 자고로 사내가 논다면 그런 거 아니겠느냐!”
문우를 샅샅이 훑어봤지만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이놈이 몰라 뵙습니다요. 들어가시지요.”
사내가 문을 열어주자 모두 경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정말 별천지도 이런 별천지가 없었다.
“경호, 자네는 위작이 보이면 잘 기억해 두게.”
“네, 나리.”
문우를 향해 사환 같은 아이가 꾸벅 인사를 하며 밝게 맞이했다.
“어르신들 처음이십니까?”
“그렇다만?”
“어이쿠! 그럼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 이 한양 땅에서 제일가는 그림 경매장은 이곳이죠. 자리 안내해드리겠습니다요. 요즘 단속이다 뭐다해서 오늘까지만 저희도 제한 없이 받고 있습니다. 내일 부터는 절대 안 된다고 방침이 내려와서 오늘 오신 건 행운이세요.”
제한이 없다는 말에 문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제한이 없어? 그럼 저 밖에 서있던 저 놈들은 다 뭔가? 감히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신분을 묻고.”
“아! 밖에 저 형님도 단속이 돈다 하니까 걱정 되서 그러시는 겁니다. 내일 부터는 저희도 출입패가 있어야합니다. 나리께서도 하나 사시렵니까?”
쉴 새 없이 떠들며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나무로 된 출입패를 꺼내 흔들어보였다.
“그 출입패면 다른 경매장들도 다 갈 수 있나?”
“저희 쪽에서 관리하는 곳이라면 가실 수 있습니다. 근데 요즘 경매장도 겁나 많이 생겨버려서 다른 쪽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 여기 자리. 편히 그림 즐기시다 좋은 놈으로 건져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필요하시면 간단한 요깃거리도 파니까 불러만 주세요.”
목도 안 아픈지 내내 떠들던 아이는 2층에 자리를 안내해주고 내려갔다. 문우는 비릿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먼저 앉아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놈은 없어보였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다음 선보일 작품은 바로 이것입니다. 눈이 높으신 분들만 있으시니 자세한 설명은 안 해도 되겠지요. 바로 안견의 작품입니다.”
안견의 작품이라고 한 그림을 보자 문우는 헛웃음이 나왔다. 졸렬해도 이렇게 졸렬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비슷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감식인 경호 또한 놀라 문우에게 말하려 했지만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젓자 입을 다물었다. 더 놀라 자빠질 것 같은 건 딱 봐도 위작인 저 그림을 사려고 집 한 채는 더될 액수를 마구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