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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레시아 : 이계의 방문자
작가 : 지나다가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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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른 세상
작성일 : 17-11-02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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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햇살이 삼나무 숲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안개를 비추고 있었다. 안개 밑으로 우거진 녹음들이 고개를 들어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청설모는 아침부터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분주하게 나무들을 뛰어다녔다.

 

 준석은 여전히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는 옛날 중세유럽에서나 볼 법한 복색을 하고 자신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이 여자도 그렇고 울창하게 들어선 삼나무들이 가득한 이 장소도 그러했다.

 

 준석은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았다. 평소처럼 토요일 오전 늦잠을 자고 있던 준석을 깨운 것은 준석의 친구인 동훈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동훈이 한 달 전부터 연락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동훈의 어머니는 준석에게 경기도 고양시의 한 주소를 불러주며 그 주소에 동훈이 혹시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휴일근무가 없는 오래간만의 토요일이었지만 친구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준석은 택시를 잡아타고 고양시에 있는 그 주소지로 향했다. 준석은 그 주소지에 있던 다 쓰러져가는 건물 지하에서 리커브보우나 컴파운드보우 따위의 활들을 발견했고 동훈이 거기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준석과 동훈은 예전 양궁동아리에서 만나서 친구가 되었고, 동훈은 그 이후에도 계속 취미로 활을 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지하실에는 이상하게 생긴 문이 있었는데, 마치 유럽의 어느 성에서나 볼 수 있는 모양의 큰 나무문이었다. 준석은 별 생각이 없이 그 문을 열어봤는데 그 문을 열고나서부터는 기억이 없었다. 그 이후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자신을 깨운 것이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메이라고 소개했고, 빨리 이 숲을 벗어나야 한다고 준석을 재촉하고 있었다. 준석 또한 여기가 다른 세상이라는 메이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일단 숲을 벗어나야 도시를 찾던 마을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에 메이를 따라나섰다. 준석은 지하실에서 준석과 함께 따라온 리커브보우 한 자루와 브로드헤드가 달린 사냥용 화살 한 다발을 챙겨서 메이와 함께 길을 떠났다.

 

 둘은 어슴푸레한 숲속의 아침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계곡을 따라 계속 걸었다. 메이는 혹시라도 악령기사들이 나타날지 몰라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바짝 붙어서 준석을 따라갔다.

 

 준석은 길을 가며 메이에게 왜 자신이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물었다. 메이는 이 숲은 옛날부터 다른 세상에서 오는 방문자들이 처음 이 세상으로 넘어오는 장소라고 말해주었다. 또한 아벤트로숲의 악령기사들은 방문자들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준석이 그들에게 공격받지 않은 것 또한 준석이 다른 세상에서 왔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석이 이 세상에 대한 이것저것을 계속 물었지만, 물어볼수록 자신이 살던 세상과 여기는 확실히 다른 곳 이라는 사실만 확연해졌다.

 

 준석은 또한 자기 이외에 다른 세상 사람이 이곳으로 넘어온 경우가 있었는지도 물었다. 메이가 알고 있는 방문자는 수백 년 전 네트레시아로 왔다고 전해지는 메디브와 네르메스가 있었다. 그리고 윈드리스라는 방문자는 5년 전 즈음에 이 세상으로 넘어와 지금 플로나에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방문자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다른 방문자가 와 있는 지금 또다시 새로운 방문자가 온 것에 대해서 메이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 이상하네요. 방문자가 두 명이나 동시에 있었던 경우는 듣지 못했거든요.

 

 -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방법은 모르니?

 

 - 저는 모르지만 방문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 그래? 그 사람들이 누구야?

 

 은빛그림자회라는 수도회 사람들이에요. 제가 듣기로는 그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서 온 방문자에 대하여 이 땅의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해요. 준석은 자신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메이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메이 또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준석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준석은 한 달 전에 사라진 동훈도 여기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마 그놈도 이곳으로 왔다면, 나처럼 나가는 방법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한나절을 넘게 걸어가니 계곡이 끊기고 산등성이가 시작됐다. 산꼭대기는 아래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았다. 산등성이가 시작되는 곳에서 메이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쉬는 동안 메이가 먹으라고 던져주는 빵은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어느 듯 해가 삼나무 숲 뒤로 넘어가고 밤이 찾아왔다. 울창했던 삼나무들은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했고, 어둠속에서는 샛노랑한 반딧불들이 나무사이로 아른거렸다. 달이 거의 중천에 떴을 무렵에야 둘은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눈앞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포도밭이 달빛에 물결치고 있었다.

 

 - 롤스이스트의 포도밭이네요. 이렇게 일찍 도착하다니.

 

 준석은 원래 살던 세상에서도 이렇게 넓은 포도밭은 본적이 없었다. 한줄기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서 준석의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준석은 아직도 절뚝거리는 메이를 부축해서 산비탈을 내려갔다. 비탈 밑으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에서 한 무리의 병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병사들도 분명 메이의 일행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메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곱게 보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곧, 가죽갑옷과 투구를 쓴 열댓 명의 병사들이 준석과 메이 곁으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급히 횃불에 불을 붙여 주위를 밝혔고 몇몇은 준석과 메이에게 활을 겨누었다.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준석과 메이에게 다가왔다.

 

 - 그 숲을 어떻게 빠져 나온 거지?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냐?

 

 메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 저는 마르테스의 에르윈 백작의 명을 받고 북쪽으로 가는 길이에요.

 

 메이는 앞의 병사들이 작은 영지의 사병들이라 생각하고, 백작가를 들먹이면 그냥 보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실제 정체를 바로 이야기해버렸다. 메이의 말에 대장은 놀라 다시 물었다.

 

 - 그럼 아스트리드에서 왔다는 말인가? 마르테스의 전령이 지나갈 수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떻게 저 숲을 가로질렀단 말이지?

 

 에이는 이 병사들이 자신이 지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당황해서 말했다.

 

 -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감히 왕국의 공무를 방해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대장은 기분 나쁘게 낄낄거리며 말했다.

 

 - 왕국의 공무인지 아닌지는 우리 주인께서 판단하실 게다.

 

 - 당신들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 그건 가보면 알겠지.

 

 메이는 준석과 함께 여기서 탈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저 자들을 따라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대장은 준석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 이놈은 뭐지? 한 명이라고 들었는데?

 

 - 그 사람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에요.

 

 메이가 다급하게 이야기 했지만, 대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며 말했다.

 

 - 남자는 필요 없으니 죽여라.

 

 험상궂게 생긴 병사하나가 칼을 뽑아서 준석을 내리쳤다. 메이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정작 준석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칼이 지나간 자리가 불에 덴 듯이 뜨거웠다. 병사는 칼을 맞은 준석이 쓰러지지 않고 계속 서 있자 이상하다는 듯이 준석을 쳐다보았다. 준석도 칼 맞은 자리를 봤지만 옷만 베어져 있을 뿐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병사는 한 번 멈칫하더니 이제는 칼을 뉘어서 준석의 배를 찔렀다. 칼은 준석의 배를 뚫고 들어와서 등 뒤쪽으로 나왔다. 놀란 준석이 자신을 찔러 들어온 칼을 두 손으로 잡았다. 준석은 시야가 희미해지고 정신이 점점 아득해짐을 느꼈다. 옆에서 메이가 뭐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칼을 잡은 두 손은 아궁이에 넣은 것처럼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칼이 관통이 되어도 준석이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자 병사는 당황하였다. 그 순간 준석을 찔러 들어온 칼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꽃은 곧바로 병사에게 옮겨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다른 병사가 도끼로 준석의 어깨를 찍었다. 어깨에서 불똥이 튀었고 삽시간에 도끼를 든 병사도 불에 타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궁병들이 활을 쏘았다. 화살은 준석의 가슴에 박히자마자 불타서 사그라졌다. 준석은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병사들의 대장이 칼을 뽑아 준석의 목을 내리쳤다. 불똥이 튀었고 준석의 눈빛이 핏빛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칼이 목에 박혔지만 베어지지는 않았다. 준석은 배를 꿰뚫고 있던 칼을 뽑아서 대장을 찔렀다. 칼은 계속 불타고 있었고, 칼에 찔린 대장 또한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 악마다!

 

 누군가 이렇게 외치자, 병사들이 하나둘씩 달아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병사들이 달아나자 메이가 준석에게 다가가 목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냈다. 준석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 이게 꿈인가?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정신 차리라는 메이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려왔다. 몸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다. 준석은 힘없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옛날 어릴 적 풀밭에서 자주 맡았던 시큼한 풀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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