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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레시아 : 이계의 방문자
작가 : 지나다가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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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리스 평원
작성일 : 17-11-08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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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스이스트 서쪽의 네트로커스 산맥은 북동쪽으로 에리스 평원을 따라 뻗어가다가 네트키아 봉우리를 경계로 점차 낮아진다. 에리스 평원은 그 뒤로도 북으로 펼쳐져서 네트레시아의 북쪽 경계인 나디브 산맥에 이른다. 에리스 평원의 북쪽은 사실상 사막에 가까운 건조한 땅으로 풀이나 나무가 자라지 않았고, 따라서 농사를 짓거나 소나 양 같은 가축을 키울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평원 남쪽 초원에서 니르족이라는 유목민들이 양을 키우며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지만, 롤스이스트에 포도밭이 넓어지면서 이들은 대부분 포도밭의 농노로 흡수되었다. 지금도 얼마 남지 않은 니르족들은 도적단에 붙잡혀 롤스이스트 포도밭의 노예로 팔려오거나 자청해서 농노가 되고 있어, 에리스 평원은 이젠 거의 빈 땅이나 다름없었다.

 

 실버포트는 에리스 평원의 북쪽 끝인 나디브 산맥의 기슭에 있었다. 수백 년 전 쿠르즈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 나디브 산맥의 기슭을 따라 여러 개의 성채가 건설되었지만, 쿠르즈족이 거의 멸망한 지금은 북쪽의 위협이 없어 성채들은 거의 버려졌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실버포트는 은빛그림자회라는 수도회가 사용하고 있었다. 은빛그림자회는 지식의 보관에 매우 집착하고 있는 집단으로, 네트레시아에서 수천 년 동안 생성된 대부분의 기록물과 책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초원보다는 사막이 넓어졌다. 가끔 불어 닥치는 모래바람 때문에 방향을 가늠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롤스이스트에서 가지고 온 물과 식량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 알고 가는 거 맞아?

 

 눈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다 짜증이 난 준석이 투덜거렸다.

 

 - 가본적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보다는 잘 찾아갈 수 있어요.

 

 - 산기슭에 있다고 했지만, 아직 산은 보이지도 않잖아.

 

 - 지금 모래바람 때문에 안 보이는 거잖아요. 그쪽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참을성이 없나요?

 

 메이의 핀잔에 준석은 입을 닫았다. 둘은 아예 모래바람이 불 때는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방향도 모르고 가다가 이상한 방향으로 접어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둘은 바닥에 주저앉아 모래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모래먼지가 입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준석은 먼지 속에 메이와 나란히 앉아있는 것이 야릇하게 느껴졌다. 자꾸 힐긋힐긋 메이를 쳐다보고 있는 자신이 멋쩍어 아예 코와 입에 두른 천으로 눈까지 가렸다.

 

 어느 정도 바람이 잦아들고 둘은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 나디브 산맥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두어 시간을 걷다보니 또다시 멀리서 자그마한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메이가 한참을 말없이 모래바람을 지켜보더니 몸을 낮추며 말했다.

 

 - 엎드려요. 저건 모래바람이 아니에요. 말들이 일으키는 먼지 같아요.

 

 - 뭐하는 사람들이지?

 

 - 이 사막에 말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여기 사는 도적들이 분명해요. 제발 우리를 보지 못했으면 좋겠네요.

 

 메이의 바람과는 달리 먼지는 정확히 메이와 준석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니 말을 탄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른 명이 넘어 보였다. 검은 천을 온몸에 두른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메이와 준석을 둘러쌌다. 그 중 한명이 말에서 내려 다가와서 말했다.

 

 - 어디서 온 누구냐?

 

 메이는 쉽사리 대답 할 수 없었다. 백작 가문에서 왔다고 한다면 도적떼는 분명 자신을 사로잡아 백작에게 몸값을 요구할 것이다.

 

 - 우리는 아스트리드에서 온 사람들로 실버포트로 가는 길이에요.

 

 그 남자는 두목으로 보이는 사람과 뭐라고 이야기 하더니 다시 다가와서 말했다.

 

 - 이곳은 우리 대공의 땅이므로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어야 한다. 너희는 두 명이니 총 100골드의 통행료를 내어야 하지.

 

 터무니없는 액수에 메이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 당신의 대공에게 우리는 그만한 돈이 없다고 전하세요.

 

 - 통행료를 내지 않는다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준석이 활을 꺼내려고 하자 메이가 제지했다.

 

 - 가만히 계세요. 여기도 불바다로 만들려고요?

 

 메이의 말에 준석은 꺼내던 활을 다시 집어넣었다. 메이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았다.

 

 - 과연 그 대공이 우리를 만날 자격이 되는지 봐야 하겠어요.

 

 남자는 칼날이 초승달처럼 휘어 있는 곡도를 뽑았다. 남자가 칼을 꺼내들자 마자 메이가 바람처럼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도적떼들은 그 남자를 거들지 않고 말에 탄 채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승부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바람처럼 달려드는 메이를 향해 도적이 칼을 휘둘렀으나, 메이는 자세를 낮춰서 칼과 도적의 몸을 스쳐 지났고, 단검을 역수로 쥔 메이의 손이 도적의 정강이를 훑고 지났다. 도적은 다리를 감싸며 바닥에 쓰려졌다.

 

 말에 타고 있던 도적 두목이 흥미롭다는 듯이 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천으로 감쌌지만 두목의 긴 금발머리가 천사이로 삐져나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두목이 다른 도적에게 눈짓을 하자 그 도적이 말에서 내려 길쭉한 워해머를 들고 메이에게 달려왔다. 도적이 워해머를 내리쳤지만, 메이는 가볍게 피하고 워해머를 밟고 도적을 훌쩍 뛰어 넘어가서 단검으로 도적의 뒤꿈치를 끊었다.

 

 - 기가 막힌 솜씨인걸.

 

 도적두목이 말에 탄 채로 메이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메이는 도적두목의 박수갈채에 가볍게 목례로 답했다. 메이는 도적들을 죽이면 일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냥 자신의 실력을 보고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도적떼들이 굳이 몇몇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들을 잡아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명의 도적이 바닥에 쓰러지자 도적두목이 말에서 내렸다.

 

 도적두목은 천천히 얼굴을 싸고 있던 검은 천을 풀었다. 가을 밀밭을 연상시키는 금발머리에 도적두목에는 어울리지 않은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두목은 레이피어를 빼내 하늘로 들었다가 검의 손 막이를 입에 가져다 대고 정식으로 인사를 하였다.

 

 - 나도 자격이 되는지 한번 시험 해봐도 되겠소?

 

 - 원하신다면…….

 

 메이도 단검을 뒤로 빼며 가볍게 답례를 하였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메이가 먼저 공격했다. 단검으로는 빠른 승부를 내야 했다. 상대와 붙어서 싸워야 하는 단검의 특성상 체력소모나 정신적 부담이 매우 심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도적두목은 느긋했다.

 

 메이가 다가올수록 도적두목은 레이피어로 단검의 경로를 방해하며 한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도적두목은 단검이 가는 길목에 레이피어의 끝을 정확히 갖다 댔다. 단검을 그대로 휘두른다면 손목이 꿰뚫리는 위치였다.

 

 메이는 경악했다. 레이피어 때문에 검세를 끝까지 펼치지도 못했다. 오합지졸 도적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검술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공격을 훤하게 다 알고 있는 듯 했다.

 

 - 검술은 가르시아에서 온 듯한데, 단검은 마르테스 영지의 것이군.

 

 두목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시간동안 메이의 내력까지 다 파악했다. 메이는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이 두려워 대답할 수도 없었다. 승부는 이미 났지만 메이는 검을 던질 수 없었다. 자신뿐이었더라면 벌써 검을 던졌을 것이다. 상대의 검에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메이가 지쳐가는 기색을 보이자 두목의 검세가 변하였다. 레이피어의 끝이 단검의 흐름을 막지 않았고 메이는 본능적으로 검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두목은 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레이피어를 단검에 그대로 붙여갔다. 단검이 레이피어의 검신을 타고 올라가다가 손 막이에 부딪히는 순간, 두목은 레이피어를 틀어버렸다. 메이는 단검을 계속 쥘 수 없을 정도의 통증에 손을 놓아 버렸고, 단검은 메이의 손을 떠나 하늘 높이 솟구쳤다. 메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메이가 걱정됐던 준석이 메이에게 달려왔다.

 

 도적두목은 다시 격식을 갖춰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말했다.

 

 - 두 분이 다행히도 우리 성채에 들러 신다니 어셔 모셔라.

 

 준석이 메이를 쳐다보았다 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적들은 메이와 준석의 얼굴에 두건을 씌우고 말에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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