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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레시아 : 이계의 방문자
작가 : 지나다가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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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블랙포트
작성일 : 17-11-09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3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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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설에 덥혀있는 나디브 산맥의 북쪽은 쿠르즈족의 땅이다. 쿠르즈족들은 네트레시아 사람들에 비해서 머리하나는 더 컸다. 추위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은 육체나 정신은 일반인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인했다. 그들은 애당초 산맥너머 남쪽 땅에는 관심이 없었고 머리 아픈 정치도 부자를 살찌우는 경제도 없었다.

 

 그러나 수백 년 전부터 그들이 살던 땅이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겨울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추워졌고, 나디브 산맥 북쪽 땅은 겨울에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내려갔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쿠르즈족들은 산맥을 넘어 남쪽의 네트레시아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소유의 개념이 없던 야만인들은 무력을 앞세워 닥치는 대로 영지를 약탈했고, 참다못한 롤스이스트의 영주들이 기사들을 조직해서 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밀듯이 내려오는 쿠르즈족들을 롤스이스트에서만 상대할 수는 없었다. 네트레시아의 전 영토에 동원령이 내려졌고, 당시 국왕이던 위슬리 1세가 군대를 통솔했다.

 

 거기에 방문자인 네르메스의 협력까지 더해져 네트레시아는 간신히 쿠르즈족을 격퇴할 수 있었다. 네트레시아에서 격퇴당한 쿠르즈족들은 방향을 틀어 가르시아 땅으로 옮겨갔고, 네트레시아는 쿠르즈족이 다시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나디브 산맥 남쪽에 성채들을 지었다.

 

 블랙포트도 그 당시 지었던 성채들 중 하나였다. 도적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을 검은 형제단이라 칭하며 지나가는 행인을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하거나 롤스이스트에 노예로 팔아넘겼다. 준석과 메이는 소지품을 다 빼앗긴 채로 성채지하의 감옥에 갇혔다. 메이는 소지품 속에 숨겨둔 공작의 편지가 제발 발견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감옥 안에는 이미 잡혀온 회색의 곱슬머리 수도사 하나가 회색 로브를 입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준석 일행이 감옥으로 들어오자마자 그 늙은이는 벌떡 일어나서 도적들을 붙잡고 말했다.

 

 - 이봐요! 난 실버포트 사람이란 말이요!

 

 실버포트라는 소리에 준석과 메이의 시선이 그 늙은 수도사에게 쏠렸다. 수도사는 한참동안을 자기의 소속을 외치며 풀어달라고 외쳤지만, 도적들은 시큰둥하게 수도사를 떼어놓고 나가버렸다. 병사들이 가고나자 수도사는 그는 준석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 젠장. 여기는 평원의 합의도 지키지 않는구먼.

 

 - 도적떼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죠.

 

 계속 수도사를 지켜보던 메이가 말했다.

 

 - 급히 수석 서기관님에게 알려야 할 전언이 있단 말이오. 한시가 급한 일인데. 벌서 이틀째 여기에 붙잡혀 있단 말이지.

 

 수도사는 안절부절못했다. 메이가 준석에게 수도사에게 물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준석이 옆에 있는 수도사에게 말을 꺼냈다.

 

 - 실버포트에서 오신분이라면 뭐 좀 여쭤볼게 있는데요.

 

 - 물어보시오.

 

 수도사가 준석을 돌아보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준석은 자신이 다른 세상에 있다가 아벤트로숲으로 떨어졌는데,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당신이 그럼 새로 온 그 방문자란 말이오?

 

 -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을 방문자라고 한다면 맞는 것 같네요. 도대체 다시 돌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되죠?

 

 수도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 그런데, 당신이 방문자라는 증거가 있소?

 

 준석은 난감해졌다. 딱히 자신이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걸 증명할 만한 것들은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메이가 준석을 거들고 나섰다.

 

 - 그건 내가 보장하죠. 숲의 악령기사들이 저 사람을 쳐다보기만 하고 건들지도 않았어요. 그 덕에 나도 살았지만 말이에요.

 

 수도사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준석을 관찰하고 있었다.

 

 - 저 사람은 죽지도 상처입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포도밭에서 병사 몇 명을 마법으로 태워 죽이는 것도 내가 분명히 보았어요.

 

 수도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믿을 수 없소. 모든 방문자는 문을 지날 때 달의 여신 루나로 부터 권능을 받게 되지.

 

 - 안타깝게도 전 그런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준석은 아직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없었다. 수도사는 준석에게 방문자의 권능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준석은 수도사의 말의 열에 아홉은 이해하지 못했다. 준석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답답해진 수도사가 말했다.

 

 - 잠깐 손을 좀 줘보시오.

 

 준석은 아무 생각 없이 수도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수도사가 손톱으로 준석의 팔뚝 안쪽을 할퀴었다. 준석이 비명을 지르고 깜짝 놀란 메이가 벌떡 일어났다.

 

 - 뭐야!

 

 수도사는 이들의 반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준석의 팔뚝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 방문자는 상처를 입지 않지. 죽지도 않고. 소환령의 보호 때문이지. 증거가 없다면 확인하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요.

 

 수도사가 할퀸 자리에 파르스름한 불꽃이 일더니 팔뚝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수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방문자가 맞았군. 방문자가 맞았어.

 

 수도사는 잠시 동안 넋을 놓고 준석의 얼굴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 난 실버포트의 서기관 베르나르요. 롤스이스트에서 새로운 방문자가 온 정황이 발견되어 급히 성채로 향하던 중이었지.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준석도 팔뚝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무는 것에 깜짝 놀랐다. 메이는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는 듯 준석의 팔뚝을 붙잡고 아문 상처를 만져보고 있었다. 준석은 다시 베르나르에게 물었다.

 

 - 이젠 내가 돌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죠?

 

 베르나르는 이번에도 준석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어.

 

 - 역시. 우리 예상대로였어. 그 여자가 그랬으리라고, 진작 더 준비했어야 하는 건데.

 

 계속 지켜보던 메이가 답답했던지 큰 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깐. 돌아갈 방법이 있냐고요!

 

 베르나르는 메이가 소리치자 그제야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 방문자가 온전히 왔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소환령의 숙원을 이루어야 해

 

 - 그 소환령의 숙원이란 게 뭐죠?

 

 - 그건 아무도 모르오. 찾아내야 하지.

 

 준석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목적이 뭔지도 모른다는 것은 결국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 그럼 그 숙원을 알아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데요?

 

 - 아이린 메링거. 그가 당신을 이 세상으로 불러온 사람이오.

 

 베르나르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메이는 그 사람이 메링거 가문의 세바스찬 백작의 외동딸임을 알았다.

 

 - 그녀는 일 년 전에 죽었잖아요.

 

 - 그렇지. 방문자를 부르기 위해서는 소환하는 사람의 생명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오.

 

 죽은 사람에게 자신을 불러온 이유를 어떻게 물어볼 것인가. 준석은 점점 더 막막해졌다.

 

 - 우리 예측대로라면 자네를 부른 것은 메링거 가문의 아이린이네. 따라서 자네가 돌아가려면 아이린이 자네를 소환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거지.

 

 그때였다. 갑자기 감옥 문이 덜컥 열리며, 낮에 보았던 도적두목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앉아있던 베르나르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 뭐라고 이야기 했냐? 메링거의 아이린이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는 말이냐?

 

 베르나르가 머뭇거리자, 도적두목이 레이피어를 뽑아서 베르나르의 목에 갖다 대며 다시 말했다.

 

 - 다시 한 번 묻겠다. 아이린이 병으로 죽은 게 아니냐?

 

 베르나르는 대답했다.

 

 -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아이린 메링거는 실버포트에서 가니메데스를 훔쳤고, 그녀는 방문자를 소환하기 위해서 가니메데스로 자살했소.

 

 - 왜! 그녀가 무엇 때문에!

 

 도적두목은 말하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날카로운 칼끝에 베르나르의 목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 그건 우리도 알 수 없소.

 

 보다 못한 메이가 소리쳤다.

 

 - 그러다가 사람 잡겠어요!

 

 도적두목은 메이의 외침에 베르나르를 풀어줬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왜? 왜 그랬지?

 

 갑자기 메이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 다……. 당신이 바로……. 프린 공작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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