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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레시아 : 이계의 방문자
작가 : 지나다가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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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임스 경
작성일 : 17-11-21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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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걸만의 물결은 항상 잔잔했다. 리베르 강이 실어온 토사는 잉걸만으로 접어드는 강 하구에 부채처럼 쌓였다. 쌓여진 퇴적물들은 새들의 서식처였다. 새들은 낮에 만으로 날아와 먹이를 잡았고, 밤이 되면 다시 숲이 있는 육지로 돌아갔다.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해변을 따라 바다가 육지를 파고 들어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민가들이 있었다. 대개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농노들의 집이거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자유민의 집이었다.

 

 농노들의 집은 드문드문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자유민의 집은 외딴 곳에 따로 떨어져 있었다.

 

 잉걸만에서는 많은 해산물을 얻을 수 있었지만 롤스이스트의 영주들은 농노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바다 속의 물고기들은 네트레시아건 유렌시아건 어디든 헤엄쳐 다녔는데 유독 롤스이스트의 앞바다를 지나가는 물고기들은 모두 임자가 정해져 있었다.

 

 배를 타고 나가는 낚시는 영주들에게 허가를 받은 자유민들만 가능했고, 이들이 잡은 물고기는 영주들이 모두 헐값에 사갔다. 특히 연어가 몰려드는 늦가을에는 연어잡이를 하려는 자유민들이 리베르강 하구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영주들에게 돈을 바치고 어업권을 샀다.

 

 하지만 물이 빠지는 날 밤에는 농노건 자유민이건 애 어른 모두 갯벌로 나와 조개며 꽃게며 곰치를 잡았다. 그들은 잡아온 해산물을 그대로 바닷물에 삶아서 올리브유를 곁들여 주린 배를 채웠다.

 

 롤스이스트에서는 그렇게 나마 사지가 멀쩡한 자들이 배를 곯는 일은 드물었다.

 

 프린은 롤스이스트의 동쪽해변을 따라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이린의 호위를 맡았던 기사 제임스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제임스 경의 영지는 에우더로프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가르넷이었다. 제임스는 본래 유렌시아에서 프린과 함께 검술을 배운 평민이었는데 프린이 네트레시아로 돌아올 때 그와 함께 왔다.

 

 그는 눈썰미가 좋고 요령이 있어 짧은 시간에 많이 배웠고 배운 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세드릭 영지에서 프린과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프린의 추천으로 아이린의 호위기사로 작위와 영지를 받았다.

 

 아이린의 아버지인 세바스찬 백작은 메링거 영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제대로 관리 되지 않던 북쪽의 가르넷 마을을 국왕의 승인을 얻어 그에게 봉토했다.

 

 땅은 척박했고 머무는 사람은 적었지만 타고난 인내심과 자애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해가 갈수록 영지의 사정은 나아졌다.

 

 아이린이 죽은 이후 그는 아마도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프린이 제임스를 만나고자 한 것은 아이린의 죽기 직전의 행적을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제임스의 저택은 소박한 단층 주택이었다. 애초에 평민이었던 그는 사치하지 않았고, 그래서 영지의 일꾼들을 쥐어짜는 일도 없었다.

 

 유채꽃이 마당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고, 아이들이 나무칼을 들고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프린은 주택의 문을 두드렸다. 1년이 넘도록 보지 못한 옛 부하를 만나는 느낌은 생소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문을 연 것은 저택의 여주인인 듯 했다. 프린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제임스를 만나로 왔음을 알렸다. 여인은 프린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여인은 말수가 적었고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그 여인의 어두운 낯빛에 프린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여인은 프린을 침실로 데려갔다. 침실의 큰 침대에 제임스가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는 프린의 기억 속에 있던 그 사내가 아니었다.

 

 얼굴의 살이 움푹 패여 해골이 드러나 보였고, 근육으로 단단히 뭉쳐져 있던 그의 몸은 흡사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제임스는 초점 없는 눈으로 천정만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프린이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프린은 제임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여인은 울먹이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제임스는 작년 늦은 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수레에 실려 왔다고 했다. 수레를 끌고 온 자에 따르면 아스트리드에서 갑자기 실종되고 이틀 후에 발견되었는데 그때도 이미 정신이 나간 상황이었다고 했다.

 

 아스트리드의 메링거 저택에서 며칠을 치료했지만 호전이 없자 영지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제임스의 부인이 에우더로프와 멀리 유렌시아의 의사까지 불러왔지만 병명조차도 알아낼 수 없었다고 했다.

 

 프린은 제임스를 수레에 실고 온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여인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아스트리드의 메링거 백작 공관 하인인 듯 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아이린이 자살하기 한 달 전인 듯 했다.

 

 … 괴이한 일이다.

 

 한명은 자살했고, 한명은 정신을 잃어버려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 했다. 여인이 밖으로 나가고 난 이후에도 프린은 누워있는 제임스를 말없이 한참을 지켜보았다.

 

 - 내가 너무 늦게 온 것 같구나.

 

 프린은 듣지도 못하는 제임스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었다. 제임스는 듣고도 들었다는 표시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듣지도 못하는 것이지 초점 없는 눈만 껌뻑였다.

 

 - 내 일이 끝나면 네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을 나왔다.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라 제임스의 부인이 밖으로 나와 프린을 불렀다.

 

 -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언가 말하려다 망설이는 여인에게 프린이 물었다.

 

 - 무엇이든 괜찮으니 말해보아라.

 

 - 다름이 아니옵고, 간혹 경께서 발작을 일으키는데, 그때 꼭 누군가의 이름을 여러 번 불렀습니다.

 

 - 그게 누구이냐?

 

 - 발더그린이라고 들었습니다.

 

 … 또 발더그린인가.

 

 최근 며칠 동안 프린은 발더그린의 이름을 세 번 들었다. 방문자의 뒤를 쫓고 있다고 했고, 아이린의 장례를 집전했으며, 제임스와도 관련이 있는 듯 했다.

 

 정확히는 집어낼 수 없으나 아이린의 자살에 발더그린이 어떻게든 관련이 있다는 정황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 결국 모든 것을 알아내려면 아스트리드로 갈 수 밖에 없는가.

 

 자신이 아스트리드로 간다면, 그 곳의 귀족들이 동요할 것이었다. 특히 왕위의 교체를 바라는 에르윈 같은 자들은 결코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을 파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린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내기 위한 정답이 아스트리드에 있음은 이제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프린은 말머리를 아스트리드 쪽으로 돌렸다. 붉은 태양이 로도나 산 뒤로 노을을 뿌리며 저물고 있었고, 멀리 로도나 산의 능선이 노을 속에서 검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프린은 말에 박차를 가했다. 말은 길게 울음을 내뿜고는 검붉게 빛나는 하늘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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