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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 굶주린 이의 사랑
작가 : 쇠별꽃
작품등록일 : 20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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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죽음의 끝에서
작성일 : 16-08-08     조회 : 453     추천 : 0     분량 : 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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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죽음의 끝에서

 

  가장 사랑했던 언니는 이따금씩 화장실에 처박혀 울곤 했다. 애써 틀어막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던 끅끅거리는 그녀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내게 악몽으로 남아있다. 순간 방심하여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벽을 치기라도 하면, 신경질적인 고함소리가 집 안을 뒤흔들었고, 곧이어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 그곳을 휩쓸었다.

 

  나를 무척이나 아꼈던 언니는 차가운 가죽벨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릴라치면 어둠도 공포도 다 잊은 채 뛰쳐나왔다. 가녀린 몸으로 나를 감싸고, 앙상한 팔로 매달리며 애원했다. 그녀도 나도 자존심 같은 것을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비를 구걸했으며, 그녀는 눈물로 호소하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항상 분노의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언니가 어딘가로 끌려가고-주로 머리채를 잡혔다- 아침이 밝았다.

 

  조용한 날에 언니는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나 그녀가 자주 말했던 단어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이었다. 그녀나 나나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녀는 곧잘 행복을 논하곤 했던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곤 했는데, 지겹게도 항상 똑같은 내용이었다.

 

  부디 평화와 행복을.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한 마디였다.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기도하는 버릇은 없다. 예전에는 가끔 따라 하기도 했었지만, -기도하는 그녀에게서는 일종의 신비감이 느껴졌기 때문 이었다- 언제부턴가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내게 그것은 하잘 것 없는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나는 믿어.

 

  절로 비웃음이 났다. 그토록 평화와 행복을 갈구하던 언니는 화가 날 정도로 비참하고 모욕적인 방식으로 생의 끝을 맺었다. 샤워기에 목을 매단 채 싸늘하게 식어있던 그녀의 주검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날은 내 생애 가장 끔찍하고 지독했던 날이었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내 옆에 남아있었다.

 

  잊고 싶은 기억이다. 떠올라 버린 이상 오늘 밤도 역시나 뜬 눈으로 지샐 것 같다. 귀를 찌르는 매미소리에 한숨만 절로 나온다. 팔을 뻗어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켰다. 새벽 세 시, 얼마 후면 일을 나가야 했으므로 자기엔 불안한 시각이었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불을 켰다. 숨 막힌 고요에 적당한 인터넷으로 적당한 동영상 한 편을 틀었다. 적막 속 웃음소리는 오히려 쓸쓸하다.

 

  카랑카랑하던 웃음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규칙적인 시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멀었던 것이 가까워지고, 가까웠던 것이 멀어졌다. 모든 것이 일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어두운 침묵이 실체가 되어 꼭 온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들고 있던 핸드폰은 어느새 방바닥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 쉴 새 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뜬금없이 생겨난 이 감정은 분명 죽음의 공포가 틀림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상황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한 번도 경험한 적은 없었지만 살해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음에도 닿는 것은 싸늘한 허공뿐이었다. 숨이 조여 올수록 의식은 점점 침수되어 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주위가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몰린 순간, 나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여기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내가 죽은 후 6개월 뒤에서야 비로소 내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죽음보다도 더 슬픈 이야기이다.

 

  갑작스러웠던, 마땅한 이유도 맥락도 없었건 어쨌든 간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최 원하는 대로 흘러간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제대로 된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한 채 끝나버린 내 인생이 이토록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이상 나아질 길도 없어보였던 밑바닥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홀가분하기도 했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지킬 것 하나 없이, 악착같은 태도로 오로지 제 목숨의 보존만을 위해 살아왔다. 세상은 마치 내가 쓸모없는 인간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양, 내게 아무것도 맡겨주지 않은 것이다.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았기에, 다행이도 남겨둔 걱정이나 미련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텅 빈 자신이 조금 허무해서, 비참하게 여겨질 뿐.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대로 영원한 어둠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와서 나를 심판하고 산산조각 낼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답 없는 생각의 연속에 피곤해진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차라리 깊은 잠에 빠지고 싶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갑자기 목이 먹먹해졌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데, 마땅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도 없었는데도,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두 순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두덩을 꽉 눌러 눈물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예전부터 이런 어둠이 싫었다. 어두울 때면, 항상 안좋은 일이 일어났으니까.

 

  “정말 다 싫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등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나는 이곳에 바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안 나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주변은 어두웠다. 나는 팔을 뻗어 바닥을 만져보았다. 차갑고 단단한 것이, 꼭 대리석 같았는데, 그다지 좋은 감촉은 아니었다.

 

  난 제대로 살펴본 적 없는 그곳을 꼼꼼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위로부터 아래 끝까지. 그리고 문득, 시야에 흰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희미하게 빛나는, 허상과도 같은 의심스러운 그것은 꼭 메시아의 별 같았다. 어둠이 두려웠던 나는 빛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내가 그 존재를 알아챈 순간 그 빛은 순식간에 내 쪽으로 달려와 주위를 밝혔다. 태양처럼, 그것은 온기도 주었다. 차가웠던 땅과 공기가 점점 따뜻해졌는데, 그 빛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나는 폭신하고 간지러운 풀밭위에 서 있었다. 하늘도, 구름도, 태양도 없는 시리도록 하얀 그곳에는 향긋한 봄 내음이 풍겼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일종의 희망감을 느껴버린 나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지금까지 봐왔던 것 중에 가장 아름답고 따스한 것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아름답다고 생각한 내가 우스웠다. 현실감이 너무도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기묘했기 때문이었다.

 

  길의 끝에는 작은 나무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무 곳에도 연결되지 않은 그것에서 어떤 위화감을 직감한 나는 그것의 표면을 한 번 쓸어보고는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 문을 열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났다. 미지의 것을 탐하는 인간의 본능이랄까- 어쩌면 반 쯤 미쳐있었는지도 모른다. - 곧이어 가만히 있어도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나는 꽤나 비장하게 그것을 향해 걸어갔고, 떨림을 숨기지 못한 채 그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정말로 이상하게도, 그것은 ‘어느 장소’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안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굵은, 그러나 경쾌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들어와.”

 

  그것은 명령과도 같아 거역할 수 없었다. 나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그곳은 꽤나 평범한 방이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낯선 분위기와 향취가 풍겼다. 남자는 정말 날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유리잔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는 그 중 하나를 내게 건네며 미소 지었는데,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들고 있었다.

 

  그의 머리칼은 어린잎의 맑은 초록빛이었으며, 피부는 창백해 핏줄이 퍼렇게 비칠 정도였다. 코는 우뚝했지만 눈을 날카롭게 치켜 올라가 있었는데, 마치 새로운 인종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벅지를 덮는 긴 흰색 상의와 흐물흐물한 갈색 바지를 입은 그는 거적때기같은 헐렁한 검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한 청년이었는데, 젊음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은 기이한 사내였다.

 

  꼭 죽어있는 것 같은 그에게서, 나는 왠지 모르게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그런 무언가가 있었다. 노골적인 내 시선에 그가 장난스럽게 킥킥거리다 몸을 돌려 한 쪽 귀퉁이로 갔다. 그 곳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는데, 그가 의자 한 개를 빼내며 말했다.

 

  “덩그러니 서서 뭐해? 이리와 앉아. 나랑 얘기하자.”

 

  “아.......”

 

  “궁금한 것이 많잖아? 나도 그렇거든.”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곳으로 갔다. 능숙해 보이지만 어딘가 어색한 기계적인 그의 말과 행동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불행한 자는 불행한 자를 알아본다고 하더니,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우습지만 나는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동정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에게 가까워질수록 그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에 나는 풀이 죽고 말았다. 그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두려웠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그가 내게 준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 또한 처음 느끼는 맛이었지만 목을 적시는 느낌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나는 위축된 마음을 숨기며 애써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는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으므로 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안녕.”

 

  그렇게 그와 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때가 내 삶의 또 다른 시작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icdi 16-08-09 20:40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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