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의 방문에 제이는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였다.
'……이정혁? 이 사람은 누구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얼굴이 알려진 제이는 거리를 걷다 보면 자신을 '마술소녀'라고 부르며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럽고 낯부끄러웠지만, 이제 제이는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데 공연장까지 찾아와서 꽃다발을 들고 자신을 기다리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그가 아마 자신의 팬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오래된 팬들의 얼굴은 다 기억하고 있던 제이는 처음 보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수상한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노란 수국도 그다지 달갑진 않았지만, 제이는 공연장까지 찾아온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정혁은 십 년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제이를 보고, 자신의 걱정과는 달리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간 정혁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당했고, 서툰 영어 실력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욕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등교를 거부하며 한참 방황하던 시기에 정혁은 우연히 가족들과 함께 뉴욕에서 하는 백룡의 마술공연을 관람했다.
백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마술 공연을 펼치는 백룡을 보고 중학생이었던 정혁은 목이 멨다.
처음으로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자랑스러웠다.
"윤백룡 씨 딸 윤제이 씨 맞으시죠?"
십 년 전, 꼬마 아가씨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제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에서 마술 공연을 처음 본 이후, 백룡의 열렬한 팬이 된 정혁은 그가 하는 마술 공연을 보기 위해 자주 한국을 찾았다.
어느 날, 정혁은 소극장에서 하는 백룡의 공연에서 당시 10살이었던 제이와 마주쳤다.
백룡과 함께 무대에 오른 제이는 관객들에게 멋진 마술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조카와 똑같은 나이의 소녀가 능숙하게 마술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던 정혁은 제이가 언젠가 실력 있는 마술사가 되어 백룡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마술사가 되길 바랐다.
"저는 그룹 '신세상' 대표이사 이정혁이라고 합니다."
정혁은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제이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안쪽 주머니에서 꺼낸 명함을 내밀었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이는 미남자 정혁은 한국형 마트 '플러스'를 소유하고 있는 그룹 '신세상'에서 최연소로 대표이사가 된 유능한 인재였다.
정혁은 말끔한 인상과 예의 있는 행동으로 매년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서 몰래 이뤄지고 있는 인기투표 부동의 1위였고, 정혁이 일등석 좌석을 타면 스튜어디스들이 서로 음료를 가져다주겠다고 싸우다가, 결국 제일 연차가 높은 스튜어디스가 정혁에게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네, 반가워요."
명함에는 '그룹 신세상 대표이사 이정혁'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어쩌다 보니 공연장 앞에서 록스타를 기다리는 어린 10대 팬이 된 정혁은 지금 이 상황이 머쓱해서 괜히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만졌다.
"……개인적으로 제이 씨를 응원해주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제이가 잔신을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정혁은 벅벅 목덜미를 긁었다.
……내가 이상한 놈은 아닌데.
쓴웃음을 지은 정혁이 계속해서 말을 덧붙였다.
"제가 사실 윤백룡 씨의 팬이었습니다."
언뜻 제이의 눈동자에 물기가 비치는 것을 보고 정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정혁은 한동안 제이에 대해서 잊고 살았다.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최연소로 '신세상' 대표이사에 발탁되어, 8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정혁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백룡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백룡의 부고 기사를 보고 정혁은 바로 10년 전에 무대에 만났던 제이를 떠올렸다.
백룡의 아내이자 제이의 어머니인 미선은 병으로 일찍 사망했다고 들었었는데, 아버지인 백룡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소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뒤늦게 부고를 전하는 정혁을 보고 제이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제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 것을 보고 정혁은 속으로 안도했다.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들었습니다."
정혁은 품에 안고 있는 노란 수국을 제이에게 건넸다.
이정혁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짓이었다.
제이가 '마술사학교'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것을 알게 된 정혁은 TV 프로그램은 뉴스만 보다가 생애 최초로 '마술사학교'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처음에는 소극장에서 만났던 소녀가 백룡을 뛰어넘는 훌륭한 마술사로 성장했을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ㅡ 아, 안녕하세요, 마술사 윤제이입니다.
처음에 제이는 주변 참가자들 사이에서 잔뜩 기가 눌린 모습이었다. 불을 이용한 마술을 하다가 머리카락을 태운 제이을 보고, 정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ㅡ 제가 이번에 보여드릴 마술은 '환상의 마술'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마술 실력이 나날이 성장하는 제이에게 정혁은 눈을 뗄 수 없었던 정혁은 밤을 새워서 '마술사학교' 전편을 감상하고 제이를 직접 만나고 싶었다.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다.
'마술사 윤백룡의 딸'이었던 제이는 어느새 정혁의 마음속에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노란 수국이네요. 혹시 저번에 제 대기실에 있던 수국도……."
"네, 맞습니다."
정혁은 멋쩍은 듯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TV에 나오는 여자에게 반해서 공연장까지 그녀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된다면, 정혁을 미친놈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여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꽃을 선물하는 정혁은 지금 이 상황이 조금…… 아니, 많이 어색했다.
제이는 손에 들린 노란 수국과 정혁을 번갈아 바라봤다.
몰래 대기실에 꽃다발을 놓고 가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자신을 찾는 정혁이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처음에는 잔뜩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조금 대화를 나눠보니 제이는 그가 꽤 매너 있고 신사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혁은 지금 이 상황을 자신보다 더 어색해하고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만약 정혁이 자신에게 당당하게 꽃다발을 내밀면서 팬이라고 얘기했다면, 제이는 그가 부담스러웠을 것이지만, 자신보다 지금 상황을 더 부끄러워하는 정혁의 모습에, 제이는 그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어머, 제이야!"
연주의 목소리가 공연장 홀을 크게 울렸다.
"……어? 연주야."
연주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챈 제이는 공연장 홀 안으로 걸어오는 연주를 보고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제이야, 오늘 마지막 공연이지. 오늘도 잘해야지. 너무 축하해."
형식적인 인사말을 마친 연주는 핸드폰을 들어서 자신과 쉴새 없이 셀카를 찍었다.
시사회나 패션쇼장에서 만난 연예인들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이 유일한 삶의 즐거움인 연주의 직업은 '마술사'가 아니라 '유명인'인 것 같았다.
오늘 공연의 주인공인 제이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연주는 분명히 저번처럼 셀카만 찍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조금 씁쓸해진 제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머, 근데 이분은 누구셔?"
사람들의 관심, 특히 잘생긴 남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온 힘을 쏟아붓는 연주는 정혁에게 흥미를 보였다.
"아, 그게……."
"제이."
저벅저벅.
철수가 발소리를 내며 제이에게 다가왔다.
“철수 씨? 여기 웬일이에요?”
“왜요, 내가 여기 오면 안 됩니까?”
“그건 아니지만…….”
제이는 슬쩍 자신의 주변에 정혁과 철수, 연주가 다 함께 공연장 홀에 모여 있는 것을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모여도 이렇게 모였을까.
다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제이는 네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불편한 공기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실례지만 이 분은 누구신가요?”
“……아, 철수 씨라고. 예전에 우리 아빠랑 아시던 분이셨어요.”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정혁이 먼저 철수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철수는 정혁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봤다.
철수가 악수를 받지 않자 무안해진 정혁이 손을 밑으로 내렸다.
“제 손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정혁의 손을 덥석 잡은 철수는 악수하면서 스치듯 눈이 마주친 남자가 현재 한국 시장에서 마트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플러스’의 실질적 경영자 이정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후발주자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말디'의 회장 철수에게 신세상 대표이사 정혁은 반드시 따라잡아야 하는 라이벌이었다.
“죄송하지만 어디서 많이 뵌 것 같군요. 혹시 ‘말디’에 강철수 회장님 아닙니까?”
바로 철수가 글로벌 할인점 ‘말디’의 창업주라는 것을 알아본 정혁도 정중하게 철수에게 인사했다.
독일과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말디’와는 달리 ‘한국에서만 영업하는 플러스는 한국에서는 ‘말디’보다 더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독일 국민 마트‘말디’에 비하면 크게 봤을 때, 그룹 '신세상'은 영세한 그룹이었다.
“네, 맞습니다. ‘말디’의 회장 강철수입니다.”
얼마 전에 ‘말디’의 창업주가 한국 시장진출을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문을 들었하지만, 이곳에서 '말디' 회장과 마주치리라 예상 못 했던 정혁은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말디'의 경영자는 제이와 아주 친밀한 관계인 것 같았다.
“근데 제이 씨는 왜 찾아오신 겁니까.”
“그냥 뭐.”
정혁은 제이를 찾아온 이유를 굳이 당신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는 의미로 어깨를 위로 으쓱였다.
연주는 정혁과 철수 사이에서 흐르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옆에 있던 제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연주는 지금 정혁과 철수가 제이를 사이에 두고 '남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인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연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보다 월등히 공부도 잘하고 마술도 잘하는 제이가 눈에 가시처럼 느껴졌다.
연주는 초등학교 때 제이와 친하게 지냈지만, 마음속으론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제이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연주가 본격적으로 연예인을 꿈꿨던 이유는 '제이보다 유명해지고 싶어서'였다.
제이보다 유명해지는 것이 연주의 삶의 목표이자 지향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PD인 아빠를 따라 방송국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연주는 유명세가 곧 힘이자 권력이 된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우쳤다.
종석 덕분에 TV에 몇 번 출연한 연주는 유명세를 이용해서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던 아이들을 인터넷 조리돌림(인터넷에서 한 사람의 인격을 모욕하는 신상 털기) 하기도 했다.
더욱더 큰 유명세를 얻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결정적으로 연주는 연예인으로서 끼와 재능이 없었다.
"두 분 다 제이를 보러 오셨나 봐요. 하긴 제이는 남자가 보기에 예쁜 얼굴이긴 하죠."
연주가 결정적으로 제이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제이가 자신을 제치고,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진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에서 우승했기 때문이었다.
아빠와 친한 PD였던 나한석 PD가 만든 야심작 '마술사학교'에서 연주는 자신이 우승자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정말로 '마술사학교' 1화가 방송되고 모든 사람이 연주를 주목했다.
하루종일 '하연주'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었지만, 제이가 조금씩 숨겨놨던 마술 실력을 발휘하면서 대중들은 연주를 외면하고 제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제이 때문에 자신이 꿈꿨던 핑크빛 미래가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한 연주는 뛰어난 마술 실력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제이를 진심으로 싫어하고 미워했다.
너만 없었다면 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마술사였을 거야.
너만 없었으면, 너라는 존재만 없었으면.
'마술사학교'에서 우승하고 나서 줄줄이 CF를 찍는 제이를 보면서 연주는 배가 아파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윤제이가 찍은 CF를 내가 찍었어야 하는 건데.
연주는 광고주에게 어필하기 위해 제이가 광고했던 제품을 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지만, 광고주에겐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더 화가 나는 건, 제이는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유명세를 손쉽게 얻어놓고, 제대로 누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제이는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불편하다며 모든 활동을 접고 잠적했다.
……복에 겨운 계집애.
“전 제이가 제 친구라서 너무 자랑스럽다니까요.”
억지로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연주에겐 어쨌든 지금 제이와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
연주는 제이와 라이벌 관계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서 가끔 TV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방송국도 '윤제이의 라이벌 마술사'라는 타이틀로 각종 방송에서 불러주었다.
입으로는 친한 척하면서 제이를 질투하고 있는 연주의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정혁은 친한 척 제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연주를 보고 조소를 머금었다.
연주의 미소가 가짜라는 것을 눈치챈 건 철수도 마찬가지였다.
철수가 눈이 마주친 정혁에게 슬쩍 고갯짓했다.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은……."
"아! 저기 리허설 시간 됐네요. 저는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요."
급하게 철수의 말허리를 자른 자신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철수에게 제이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제이의 눈빛을 읽은 철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들어가 봐요."
"……네."
보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피부로 느껴졌던 싸움이 종결되자 제이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대기실에 있는 운성을 발견한 제이는 양팔을 뻗어 그녀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짧은 머리에 깔끔하게 웨이브를 넣은 운성은 인자하지만 엄할 땐 엄하게 혼을 내셨던 마술 선생님이었다.
운성의 품에 쏙 안긴 제이는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운성은 뒤늦게 마술을 배워서 인천에 마술 학원을 설립했고, 제이의 마술 학원으로 유명해진 '매직Q'는 수원에 분점을 낼 정도로 번성했다.
"여기 어쩐 일이세요?"
"오늘이 네 마지막 공연인데 안올 수 있겠니? 종환 씨랑 마지막 수조 탈출 마술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었어. 정말 할 수 있겠니? 수조 탈출 마술은 마술사들 사이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마술이라고 하던데.“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마지막 수조 탈출 마술을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 수영장에서 한 달 동안 잠수 연습을 했던 제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 멋있는 분들은 누구시니?"
제이는 자신의 양쪽을 지키고 서 있는 정혁과 철수를 번갈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분은 제 팬이고, 이분은……."
"윤제이 씨 보호자입니다."
"어머, 정말요?"
제이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아니에요. 철수 씨!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철수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뭐야, 오늘따라 철수 씨가 왜 이러지? 평소 그 답지 않은 모습에 제이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 선생님!"
운성을 발견한 기범이 대기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운성 선생님, 완전 오랜만에요."
"기범이도 정말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 만이야."
"운성 양, 나는 안 보여요?"
동글동글한 얼굴에 배가 블록 튀어나온 재윤이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재윤 삼촌도 오셨네요."
"그럼 내가 네 마지막 공연 오려고 예정된 행사도 취소했다."
백룡의 제자이자 제이에게 삼촌 같은 존재인 재윤은 들어서자마자 제이 걱정부터 했다.
"제이야, 너 정말 수조 탈출 마술할 수 있겠어? 그거 정말 어려운 건데."
"그럼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요."
"그래도 그거 진짜……."
"재윤 삼촌! 걱정 마세요. 진짜 할 수 있다니까요."
"아이고, 제이 고집을 누가 꺾겠어요."
운성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데 다들 절 응원해 주시려고 오신 거에요?"
"그럼, 당연하지."
"정말 잘 할 수 있겠어?"
"그럼요."
제이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라? 지금 뭐지?
제이는 폐부를 찌르는 송곳 같은 시선을 느꼈지만, 그 시선이 어디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모든 게 잘 될 거에요."
제이는 자신의 좌우명을 되내며 불안한 느낌을 떨쳐냈다.
***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온 그는 아무도 없는 건물 뒤편으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하종석 씨, 접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종석과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이었기에, 그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 그래요, 일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 그럼요.
하지만 아까까지 대기실에서 제이와 대화를 나눴던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듯 아무 말이 없었다.
- 뭐, 우리가 진짜로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살짝 겁만 주자는 건데. 그게 무슨 문제겠어요, 안 그래요?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종석이 회유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 이봐요, 당신 돈 필요하다며.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내가 원하는 만큼 돈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는 자신을 믿고 있는 제이에게 미안했지만.
“약속은 꼭 지켜요.”
……어쩔 수 없었다.
종석과 통화를 마친 그는 조용히 마술 기구들을 모아놓은 소품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