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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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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나서 뭐했습니까?
작성일 : 17-11-06     조회 : 60     추천 : 0     분량 : 8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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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여기 딸기 스무디가 되게 맛있거든요. 그래서 자주 오는 곳이에요. ……어? 철수 씨."

 

 마침 근처에 있다고 연락을 한 정혁과 함께 카페 늘봄을 찾았던 제이는 우연히 마주친 철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늘봄에 있는 철수를 보고 뭔가 께름칙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콕 짚어 말할 순 없었지만, 정혁과 철수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라이벌 관계인 회사의 경영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공연장 홀에서 느꼈던 불편했던 공기를 떠올린 제이는 티가 나지 않게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창가에 앉아있던 철수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저벅저벅 자신과 정혁을 향해 걸어왔다.

 

 좀 웃으면서 사람을 반기면 좀 좋아?

 

 제이는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다가오는 철수를 보고 입술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강철수 대표님. 반갑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서 예의 바르게 악수를 청한 것은 역시나 정혁이었다.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삐딱하게 서 있던 철수는 제이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꽉 힘주어 정혁의 손을 잡았다.

 

  "……윽."

 

 오른손을 매만지는 정혁을 보고 제이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혁 씨, 괜찮으세요? 철수 씨, 그렇게 세게 잡으시면 어떡해요."

 

 제이가 철수를 타박하자 그는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또다시 한쪽 눈썹을 한껏 위로 추켜세웠다.

 

  "괜찮습니다, 제이 씨. 철수 씨, 손아귀 힘이 아주 강하시군요."

 

  "……."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정혁이 너스레를 떠는데도, 표정을 풀지않는 철수를 보고,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제이는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정혁 씨, 여긴 딸기 스무디가 맛있어요."

 

 제이는 카운터에 있는 종업원에게 딸기 스무디를 시켰다.

 

  "잠깐만요, 제이 씨. 이건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저번에 저녁도 사주셨잖아요. 이번에는 제가 살게요."

 

  "아닙니다."

 

 정혁은 재빨리 품 안에 있던 지갑을 꺼내서 종업원에게 신용카드를 건넸다.

 

  "고마워요, 정혁 씨."

 

 팬과 마술사로 만난 정혁은 이후로 팬으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친오빠처럼 살들 하게 제이를 보살폈다.

 

 정혁과 함께 있으면 나이 차이 나는 사촌 오빠가 막내 여동생을 챙겨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거웠다.

 

 외동딸이라서 느껴보지 못했던 남매의 기분을 느낀다고 해야할까.

 

 종업원이 트레이 위에 딸기가 가득 담긴 딸기 스무디를 올려놓았다.

 

  "와, 벌써 나왔네."

 

  "아니요, 손님. 이 딸기 스무디는 저기 저 뒤에 계시는 남자분이 주문하신 겁니다."

 

 항상 커피만 즐겨 마시는 철수가 딸기 스무디를 시켰다는 게 의외다 싶었다.

 

  "철수 씨, 이거 정말로 철수 씨가 시킨 거예요?"

 

  "……네."

 

 철수는 딸기 스무디를 창가 테이블로 가지고 가서 자리에 앉았다.

 

 카운터 족에 자리를 잡은 제이는 정혁과 저번에 함께 봤던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자꾸만 철수가 의식되었다.

 

  "저기, 정혁 씨. 저도 인제 그만 가볼게요."

 

 철수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그래도 같이 사는 데 괜히 감정싸움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서, 제이도 급하게 정혁에게 인사를 하고 얼른 그를 따라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던 철수는 뒤에서 따라오는 자신을 보고 조금 발걸음 속도를 늦췄다.

 

 

 

 ***

 

 

 

 제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앞서가는 철수를 따라잡기 위해 잰걸음을 걸었다.

 

  '왠지 철수 씨가 나한테 엄청나게 화가 난 것 같은데. ……왜 화를 내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철수는 말없이 계기판만 바라봤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제이는 철수를 따라서 올라탔다.

 

  "……."

 

  "……."

 

 단둘이 있는 엘리베이터 안은 숨 막히듯이 고요하고 조용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물어보세요."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을 깨는 철수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제이는 이제 올 것이 왔다라고 생각했다.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앞만 바라보는 철수의 옆모습에 기가 죽기는 했지만, 차라리 그가 왜 화가 났는지 빨리 이유를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정혁 씨랑은 계속 연락을 하고 있던 겁니까?"

 

  "……네?"

 

 살짝 눈꺼풀을 깜박인 제이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는 철수를 쳐다보았다.

 

  "그, 글쎄요."

 

  "'글쎄요'라니요.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육하원칙으로 말하세요."

 

 육하원칙이 뭐였더라.

 

 배웠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 제이는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을 더듬었다.

 

  "육하원칙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입니다. 그럼 먼저 '언제'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제이는 저도 모르게 차렷 자세로 철수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오늘 말고 마지막으로 이정혁 씨를 만난 날은 언제입니까?"

 

  "……음, 잘 기억은 안 나는 데, 한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아요."

 

  "만나서 뭐했습니까?"

 

 제이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서 그때 정혁과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 떠올렸다.

 

  "그때 같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던 것 같은데……."

 

  "영화요? 아니, 집에 대형 스크린이 있는데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왜 봅니까.“

 

  “……그게 영화가 입소문이 좋아서…….”

 

  “어디서 봤습니까?”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서 봤어요. 그런데…….”

 

 면접관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하는 취준생에게 빙의했던 제이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둘러봤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면접장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인데, 자신이 왜 그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워졌다.

 

 제이는 아무 말 없이 살포시 눈살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철수는 재촉하듯이 다시 한번 그녀에게 물었다.

 

  "왜 만난 겁니까."

 

  "그냥 정혁 씨가 먼저 영화를 보자고 하셔서……."

 

  "허, 참. 신세상도 이제 곧 망하려는 모양이군요. 경영자라는 사람이 여자랑 영화나 보고 다니고 말입니다."

 

 끝까지 참으려고 인내심을 발휘했지만,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투에 기분이 나빠진 제이는 엘리베이터 버튼 맨 위에 있는 노란색 긴급 정지 버튼을 눌렀다.

 

 불이 깜박깜박하면서 삐, 삐, 하는 긴급 정지 신호음이 울리고, 엘리베이터 계기판은 14에서 멈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이의 돌발행동에 놀란 철수는 더욱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잠깐 철수 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 세웠어요."

 

 삐, 삐, 삐. 긴급 신호음은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제이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대치하듯이 철수를 바라봤다.

 

  "……할 말이 뭡니까. 해봐요."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면 두고 보자는 듯이 철수는 강렬한 눈빛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하지만 제이도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황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도 육하원칙으로 붇고 싶네요. 왜 철수 씨가 제 사생활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시는 거죠?"

 

  "……뭐라고요?"

 

 철수는 되레 황당하다는 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지금 황당한 건 철수 씨가 아니라 저라고요."

 

 아까 정혁과 카페 '늘봄'에서 마주쳤을 때도 이상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다짜고짜 자신에게 화를 내는 철수를 보니 정말 황당할 따름이었다.

 

  "앞으로 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지, 철수 씨는 신경 안 쓰셨으면 좋겠어요."

 

 차가운 말을 내뱉은 후, 제이가 긴급 정지 버튼을 누르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

 

 

 

 철수도 머리로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ㅡ 저도 육하원칙으로 묻고 싶네요. 왜 철수 씨가 제 사생활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시는 거죠?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질문에 철수는 사실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ㅡ 앞으로 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지, 철수 씨는 신경 안 쓰셨으면 좋겠어요.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제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고, 철수는 닫힌 문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내가 궁금해할 이유는 없지."

 

 제이와 자신은 단순한 룸메이트 관계였다.

 

 그녀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던 그건 그녀의 사생활이었기 때문에 철수가 신경 쓸 권리 따윈 요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어떤 남자를 만나는 건지, 괜히 신경 쓰이고 궁금증이 폭발했다.

 

  "……제이가 많이 화가 난 건가."

 

 그녀답지 않게 크게 화를 내던 제이의 모습을 떠올린 철수는 자리에 앉지 못하고 일어서서 창가 주변을 서성였다.

 

  "분명히 내가 이러려고 제이와 같이 살자고 한 건 절대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선생님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환상의 마술'을 노리는 자들에게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시작한 홈 셰어 생활이었지만, 오히려 철수는 그녀 덕분에 PTSD 증세가 많이 완화되고 있었다.

 

  ㅡ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제이 씨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대표님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군요.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철수는 자신이 제이에게 크나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지, 주치의인 닥터 리도 언급했던 부분이었는데, 그걸 철수가 깜빡 잊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중요한 걸 잊으면 어떡해. 강철수, 이 바보 같은 놈."

 

 하지만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철수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1인용 소파에 힘없이 몸을 기대었다.

 

 제이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바보같은 철수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했다.

 

 그리고 사실 아직 마음 한구석에는 정혁에게 환한 미소를 짓던 제이를 보고 치밀어 올랐던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래도 약을 바꿔야 하나."

 

 분명히 이건 최근에 먹기 시작한 공황 장애 약의 부작용임이 틀림없다.

 

 제이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마에 화르륵 불이 타오르는 이유는 약물 부작용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울적한 기분으로 창밖에 비친 한강만 바라보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경쾌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철수 씨, 나와서 저녁 먹어요."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각은 저녁 7시가 되어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긴장을 풀기 위해 한 번 후욱 한숨을 쉰 철수가 거실로 나가보니, 식탁에는 갖가지 밑반찬들과 계란말이, 된장찌개 등이 올려져 있었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이는 자신을 위해서 손수 저녁 식사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철수는 흠흠,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제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은 된장찌개로군요. 맛있게 먹도록 하겠습니다."

 

  "……."

 

 제이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 화면만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묵묵히 밥을 먹던 철수가 슬쩍 제이에게 물었다.

 

  "정혁 씨는 잘 들어갔다고 합니까?"

 

  "……네?"

 

  "아니, ……뭐, 정혁 씨랑 메시지 보내고 있는 것 같길래요."

 

 철수는 괜스레 웃음을 터트렸지만, 여전히 제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글쎄요. 아마 잘 들어가셨겠죠."

 

 아마 잘 들어가셨겠죠?

 

 그럼 지금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이정혁이 아니란 말인가.

 

 그녀와 연락을 하는 사람이 정혁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철수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가듯이 물었다.

 

  "지금 메시지 보내고 있는 사람 이정혁 씨 아닙니까."

 

 제이가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철수는 그녀의 시선에 움찔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젓가락질을 했다.

 

  "……아뇨, 아뇨.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겁니다. 제이가 밥은 안 먹고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길래……."

 

  "정혁 씨랑 메시지 보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제이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밥을 먹는 데 집중했다.

 

 이제야 입가에 웃음을 띤 철수가 다시 한번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럼 누구한테 보내는 건데요?"

 

  "앤디랑요."

 

 제이의 입에서 또 다른 남자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철수는 저도 모르게 제이의 경고를 잊고 말았다.

 

  "앤디는 또 누구예요?"

 

 제이가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냐는 식으로 눈을 흘기자, 철수는 얼른 소시지를 입안에 넣으면서 딴청을 피웠다.

 

  "제가 다니고 있는 영어 회화 수업에 선생님이에요. 내일 수업에 오는 거냐고 물어보길래 갈 거라고 메시지 보내고 있었어요."

 

  "영어 학원 강사가 학생들 출결도 신경 씁니까?"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아는 법이라고, 분명히 앤디가 제이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철수가 삐딱한 음성을 물었다.

 

 그러자 제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서늘한 시선을 자신에게 보내며, 싸늘한 음성으로 힘주어 말했다.

 

  "철수 씨, 제가 아까 뭐라고 말씀드렸죠?"

 

 철수는 아차,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 같았다.

 

  "……앞으로 제이가 누굴 만나서 무엇을 하든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죠."

 

  "네, 맞아요. 그랬죠. 잘 기억하시고 계시네요."

 

  "……,"

 

  "철수 씨, 자꾸 제 개인 생활에 간섭하시면 너무 곤란해요. 우리가 쓴 룸메이트 계약서에는 서로의 생활에 간섭해도 된다는 조항은 없었잖아요."

 

  "……그랬죠."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제이는 쾅, 소리 나게 문을 닫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캣 타워에 누워있던 노랑이가 무슨 일인가 싶은 것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수를 바라봤다.

 

 왠지 노랑이가 자신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보 같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또 한 번 제이와 말싸움을 하게 된 철수는 침울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 앞에서 그녀를 화나게 했다는 게, 시간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철수는 아직도 왜 자신이 제이가 다른 남자들과 연락하는 모습에 화가 나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

 

 

 

 버스에서 내린 제이는 우연히 정류장 근처에서 린다를 만났다.

 

 흔치 않은 우연에 즐거워하면서, 제이는 린다와 함께 사이좋게 영어 학원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린다가 개성 강한 말투로 말했다.

 

  "근데 말이다, 우리 영어 강사 좀 잘생긴 편 아니가?"

 

 옅은 미소를 띠고 있던 제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어 강사라면 앤디?"

 

  "응, 그래, 앤디 말이다. 앤디. 잘생깄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던데."

 

  "그래? 그 정도면 진짜 잘생긴 기다. 진짜로 대학 가보면 남자들 다 별로다. 제이야, 니도 방송국 다니다 보면 지하철에 앉아있는 남자들이 다 오징어로 보이지 않나?"

 

 난처한 웃음을 지은 제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빠아앙-!!!

 

 갑자기 클랙슨을 세게 울리는 버스 때문에 제이는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엄마야, 무슨 클랙슨을 저리 세게 누르노, 귀청 떨어질 뻔했네. 제이야, 괜찮나?"

 

 제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린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앤디는 한국말 못하는 것 같다."

 

  "그래?"

 

 유창하게 본토 영어 발음을 자랑하긴 했지만 앤디는 어딜 봐도 한국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 3세의 모습이었다.

 

  "응, 내가 앤디 지나갈 때, '우와, 진짜 잘생겼다' 이랬거든. 그런데 한국말을 모르는 건지 그냥 휙 하고 지나가더라."

 

 제이는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앤디가 가르치는 영어 회화 수업은 미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듣는 고급 수준의 클래스였는데, 학생들이 하는 콩글리시나 가끔 불쑥 내뱉는 한국말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앤디를 보고, 제이도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아, 목마르다. 여기 자판기 같은 거 없나?"

 

  "저기 휴게실에 있어. 내가 음료수 뽑아올게."

 

 강의실에서 나온 제이는 손 위에 올려져 있는 동전으로 짤랑짤랑 장난을 치며 휴게실로 걸어갔다.

 

  '음, 일단 린다는 이온음료가 먹고 싶다고 했으니까…….'

 

 제이가 버튼을 누르자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음료수 캔이 튀어나왔다.

 

 먼저 린다가 먹고 싶다고 했던 파란색 이온음료를 사고, 제이는 천천히 무엇을 먹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손이 투입구로 오백원짜리 동전을 밀어 넣었다.

 

  "어……어?"

 

 어리둥절한 제이가 몸을 돌리니 뒤에는 앤디가 서 있었다.

 

  "음, 저기, 그게……."

 

 영어로 지금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당황한 제이가 평소에 능숙하게 말하던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고 있는데, 앤디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사줄게요. 골라봐요."

 

 ……어라? 한국말을 할 수 있었나?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한국인처럼 능숙하게 한국말을 하는 앤디를 보고 제이는 머릿 속이 혼란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앤디가 한국말을 못 한다는 소리는 안 했던 것 같다.

 

 제이의 손에 하나 들려있는 음료수 캔을 보고 앤디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두 개나 먹는 거예요?"

  "아, 아뇨. 이건 린다 것이에요."

  "아아, 그분."

 

 린다를 '그분'이라고 칭하는 어조가 왠지 긍정적인 것 같지 않아서 제이는 얼른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골라요. 사줄 테니까."

 

 얻어먹어도 되는 걸까, 잠시 망설이던 제이는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앤디의 재촉에 얼른 초코 음료 버튼을 눌렀다.

 

  "그럼 맛있게 먹어요."

 

 제이는 양손에 음료수 캔을 들고 멍하니 사라지는 앤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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