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첫회보기
 
30.왜 남자 놈들밖에 없는 거야.
작성일 : 17-11-06     조회 : 56     추천 : 0     분량 : 8103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전 세계 마술사들이 모이는 FISM(세계 마술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하얀 리무진에 앉아있는 철수는 안절부절 못하며 초조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이는 주최 측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레드 카펜에 올라 몰래든 팬들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제이, 많이 떨립니까?"

 

  "네? ……네."

 

 생에 처음으로 레드카펫에 서야했던 제이는 초조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드 카펫에서 걷다가 넘어지면 어떡하죠?"

 

  "그럴 일 없는 거예요."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면 어떡하죠?"

 

  "가이드라인 다 쳐져있습니다."

 

 제이는 살짝 울상을 지으면서 입술을 앞으로 삐죽 내밀었다.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는 제이가 퍽 귀여웠던 철수는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을 터트렸다.

 

  "뭐예요, 철수 씨. 지금 남의 일이라고 웃는 거예요?"

 

  "……아니요, 아닙니다."

 

 철수는 얼른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혹시 드레스를 밟지는 않겠죠? 드레스 자락을 밟아서 옷이 찢어지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요."

 

  "옷이 찢어진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달려가서 보호해줄 테니까."

 

  "……네?"

 

 철수의 말에 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철수 씨가 왜 저를 보호해줘요?"

 이상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의 눈빛을 보고 머슥해진 철수가 고개를 돌렸다.

 

  "……."

 

  "……."

 

 두 사람 사이에서 오랜만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떨고 있는 그녀에게 손을 잡아주려고 했던 철수는 머슥하게 손을 아래로 내렸다.

 

  - 시간 됐습니다. 윤 제이 씨 레드 카펫으로 앞으로 걸어 나오세요.

 

 철수의 손에 들려있던 무전기에서 안내 요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레드 카펫 앞에 서 있는 경호원이 리무진 문을 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당황한 제이는 허둥지둥하며 드레스를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으로 옷자락을 붙잡고 레드 카펫 위에 올라섰다.

 

 탁.

 

 문이 닫히고 홀로 리무진 안에 남겨진 철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ㅡ 철수 씨가 왜 저를 보호해줘요?

 조금은 서늘했던 그녀의 눈동자가 철수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

 

 

 FISM(세계 마술 대회) 전야제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도 제이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영어가 능통했던 제이는 멀리서 한국으로 찾아온 외국인 마술사들과 함께 능숙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윤 제이 씨를 만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실제로 보니까 더 아름다우시군요.」

 

  「아, 류이치님. 평소에 제가 류이치님 팬이었는데 제가 더 영광이에요.」

 

  「저는 사실 윤 제이 씨를 만나기 위해서 1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어머, 18시간이나. 많이 힘드셨겠어요. 멀리 한국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미모에 출중한 마술 실력까지 정말 대단하시군요. 」

 

  「과찬의 말씀이세요. 이번에 제이크 님이 개발한 마술 정말 신기하게 잘 봤습니다. 진짜 멋있더라고요.」

 

  「오늘 윤제이 씨가 FISM(세계 마술 대회)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더 멋있는 옷으로 차려입고 나오는 건데 아쉽군요.」

 

  「네에? ……하하. 농담이시죠?」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 제이는 조금 당황했지만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걸며 하나하나 친절하게 대답했다.

 

 제이가 출연한 '마술사학교'가 해외에서도 방영이 된 건지, 외국에서 온 마술사들도 제이를 알아보며 앞다투어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려고 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는 머나먼 한국까지 날아온 마술사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그들을 환대했다.

 

 한국에서 열린 대회니 만큼 그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철수는 파티장 한쪽 벽에 기대어서 사람들에게 파묻힌 제이를 바라봤다.

 

  "……."

 

 오늘 제이는 마치 지금 열린 파티의 주인인 것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다 좋았다. 자신이 골라준 흰색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우아하게 걷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에 파티장에 들어설 때 자신의 팔에 팔짱을 낀 그녀에게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의 제이가 자신의 팔짱을 끼고 있다는 사실도 전부 다 좋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다 좋고 만족스러웠는데…….

 

  '그런데 왜 남자 놈들밖에 없는 거야.'

 

 마술계에 여자 마술사가 흔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철수는 제이를 둘러싸고 있는 남자 마술사들을 보면서 한껏 눈썹을 위로 추어 올렸다.

 

 여자 귀에 듣기 좋은 달콤한 소리만 골라서 하는 놈들이 제대로 된 놈들 일리가 없었다.

 

 분명히 그들의 마술 실력도 형편없을 것이다.

 

  ㅡ 철수 씨가 왜 저를 보호해줘요?

 

 하지만 철수는 리무진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차마 제이의 곁에 다가가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였다.

 

  "제이, 정말 예쁘지 않나?"

 

 불쑥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가 누군가 봤더니 제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굴었던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마재윤 씨."

 

 철수는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진심을 그에게 들킨것만 같아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딱딱한 목소리로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원래 아름답고 향기가 좋은 꽃 주변에는 벌과 나비들이 모여드는 것이 당연한 거야."

 

  "……."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르네."

 

 재윤은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철수에게 보내고 이내 자리에서 사라졌다.

 

  "……."

 

 완전히 재윤에게 속마음을 들켜버린 철수는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눈썹을 추켜세웠다.

 

 모든 남자가 반할 만큼 제이가 아름답고 품격이 있는 여자라는 것을 철수도 분명히 잘 알고 있었다.

 

 철수도 그녀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가 제이에게 조금 더 다가가면 당장이라고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철수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면 갑자기 몰려오는 공황 발작 증세 때문에 다시 뒤로 한걸음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강 대표님, 윤백룡 씨와 갈등이 있었던 사람을 안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몰래 파티장에 심어두었던 경호원이 철수의 귓가에 속삭이자 그의 눈빛이 다시 날카롭게 변했다.

 

  "……그렇습니까? 일단 제가 직접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FISM(세계 마술 대회)에 참석한 것은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전모를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혼자 파티장에 두고 간다는 것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철수는 FISM(세계 마술 대회)에 찾아온 본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쉽지만, 발걸음을 옮겼다.

 

 

 *

 

 

  「여러분, 머나먼 한국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최초로 FISM(세계 마술 대회)이 한국에서 열리는 날이니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일일 외교관 역을 자처하며 마술사들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는 제이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진짜 열 받아. 윤 제이 저까짓게 뭐라고.'

 

 연주는 오늘을 위해서 일주일 전부터 여러 샵을 돌아다니면서 드레스를 골랐다.

 

 하지만 연주는 또 사람들의 관심이 제이에게 쏠리는 것을 보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래, 항상 이런 식이었어."

 

 뭐든지 똑같이 해도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윤 제이였다.

 

  ㅡ 우와, 제이가 이거 정말 네가 한 거야? 진짜 잘했다.

 

  ㅡ 제이야, 고마워. 네가 우리 반에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ㅡ 우리 반에는 제이가 있으니까 뭐든지 다 될 거예요.

 

 똑같이 노력해도 언제나 칭찬받고 주목받는 건 제이 라는 사실에 한때는 너무 속상해서 방안에서 펑펑 운 적도 있었다.

 

  ㅡ 왜 윤 제이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이었지만 연주는 한 번도 제이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연주는 뭐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제이를 이겨서 자신의 발밑에 무릎을 꿇리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ㅡ 연주야, 왜 마술을 하려고 하는 거야?

 

  ㅡ ……그냥 마술에 재미있어 보여서.

 

 사실 연주가 마술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열심히 마술을 연습해서 마술로 제이를 이기고 싶었다.

 

 유명 방송국 PD인 아버지 덕분에 연주는 제이보다 훨씬 더 일찍 유명해져서 '소녀마술사'로 각종 미디어에 주목을 받았다.

 

  ㅡ 와, 하연주다. 하연주가 우리 학교였어?

 

  ㅡ 쟤 TV에서 마술 진짜 잘하던데.

 

  ㅡ 소녀마술사다, 소녀마술사!

 

 연주가 방송에 출연하고 나서부터 제이와 같이 길을 걷다 보면, 그녀보다 자신을 더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이보다 뒤늦게 시작한 마술이었지만 그녀를 훨씬 앞섰다는 생각에 연주는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그런데 연주의 인생에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다.

 

  ㅡ 연주야, 어떡하니. 너희 아빠가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난 것 같아.

 

 갑작스러운 아빠의 불륜에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방송 활동을 도왔던 선희가 우울증에 걸렸다면서 연주의 매니저 역할을 포기했다.

 

  ㅡ 뭐야, 대체 우울증이 뭔데 나보고 방송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때마침 제이도 아빠인 백룡과 함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자 연주는 더욱더 초조해졌다.

 

 연주가 바라는 것은 오직 단 하나였다. 제이보다 더욱더 유명해져서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것.

 

 제이가 점점 더 마술사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할수록 연주와 선희의 갈등의 골은 심각해졌다.

 

  ㅡ 우울증이라는 게 아주 슬픈 기분이 드는, 그런 증상인 거야?

  ㅡ …….

 

  ㅡ 노래 부르는 게 우울증에 좋다던데, 주부 노래 교실 신청해봤어?

 

  ㅡ …….

 

  ㅡ 그냥 기분전환을 같은 것 좀 하면 나아질 거야. 다 엄마 마음에 달린 거라니까.

 

  ㅡ …….

 

  ㅡ 상담하고 약 먹고 하면 되는 거라잖아. 근데 정말 그 정신과 의사 믿을 만한 거야?

 

 연주는 선희가 약을 먹고 있다기에 정말로 괜찮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반항기 넘쳤던 사춘기 소녀 연주는 자신이 했던 모든 말들이 엄마의 우울증 증세를 악화시키는 게 큰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ㅡ 누나, 엄마가, 엄마가……!

 

 울먹거리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현수를 보고 연주는 답답해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ㅡ 괜찮아. 계속 놀아도 돼. 별일 아닐 거야.

 

 그런데 그게 엄마의 자살 사실을 알리는 전화일 줄이야.

 

 엄마가 자살한 이후로 연주는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남자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ㅡ 난 절대로 엄마같이 남자한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되지는 않을 거야.

 

 아직 많이 어렸고 어리석었던 연주는 이 비극에 모든 원인을 엄마의 잘못으로 돌렸다.

 

  ㅡ 엄마가 잘못하니까 아빠가 바람피운 거지. 난 남자한테 사랑받지 못하는 병신 같은 여자가 되지는 않을 거야.

 

 그날부터 연주는 더욱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발버둥 치는 관심병자가 되었다.

 

 연주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으며 SNS에 성적인 의미가 담긴 사진도 수십장 올렸다.

 

  ㅡ 난 윤 제이보다 더 유명해질 거야.

 

 연주는 모르고 있었지만 제이애 대한 열등감은 그녀를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진짜 열 받아."

 

 한 손에 칵테일 잔을 쥐고있던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제이에게 다가갔다.

 

 *

  "……후우."

 

 제이는 간신히 사람들 사이에 빠져나온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외국에서 온 마술사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아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

 

 간단하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스낵바 앞에 선 제이는 참치 카나페를 먹기 위해 작기 입을 벌렸다.

 

  "제이야."

 

 뒤를 돌아보니 살짝 볼이 붉어진 연주가 풀린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연주야. 너도 여기 왔었구나."

 

 파티장에서 만난 연주를 보고 제이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응, 나도 여기 있었어. 물론 사람들은 내가 여기 온 지도 모르고 너만 여기 온 줄 알겠지만."

 

 살짝 혀가 꼬부라진 말을 내뱉는 연주를 보고 제이는 저절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평소와는 달리 흐트러진 모습의 연주에게서 진한 술냄새가 풍겨왔다.

 

  "연주야, 너 술 마셨어?"

 

 제이가 조심스럽게 연주의 귓가에 속삭였지만, 연주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나 술 마셨어. 왜 그게 뭐 어때서? 많이 마신 것도 아니야. 되게 조금 마셨어."

 

 많이 취한 것 같은 연주에 모습이 제이는 그녀의 팔을 끌어당기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술사학교'에 출연한 이후로 연주도 사람들에게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런 추태를 부리면 연주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져나갈 것 같았다.

 

  "연주야, 많이 취한 것 같아. 이리와. 같이 휴게실에서 잠깐 쉬자."

 

  "아니야. 나 안 취했다니까."

 

 연주는 그녀의 팔뚝을 잡은 제이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술에 취한 연주는 힘이 보통이 아니어서 제이는 순식간에 옆으로 튕겨 나갔다.

 

  "제이야. 내가 마술 보여줄까?"

 

  "……응? 마, 마술?"

 

 뭔가 불길한 낌새를 눈치챈 제이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연주의 주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마술 보여줄게. 엄청 신기한 마술이야."

 

  "아니야, 괜찮아. 됐으니까 마술을 나중에 보여주고 일단 술부터 깰 때까지 휴게실에 들어가 있자."

 

  "오늘이 한국에서 최초로 FISM(세계 마술 대회)이 열리는 날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안 그래?"

 

  "연주야, 제발. 너 그러다간 다음날 포털 사이트 메인 기사에 크게 날 수도 있어."

 

 주변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내며 주정을 부리는 연주를 보고 소곤거리며 다가오자, 제이는 발을 동동 굴렸다.

 

  "……신문에 나? 아니, 내가 메인 기사에 오르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마술사학교' 우승자 윤 제이 씨가 여기 있는데, 기자들이 나 같은 거 신경 쓰겠어?"

 

  "……연주야."

 

 아직도 '마술사학교'에서 2등 한 것을 마음에 품고 있는 연주를 보면서 제이는 양쪽 눈썹을 아래로 내렸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난 마술로 사람들에게 실력을 보여줘야 해."

 

  "연주야, 그래 알았어. 그런데 마술을 일단 술 깨고 나서……."

 

  "저리 가!"

 

 연주가 거칠게 밀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던 제이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연주는 풀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걱정해주는 척 하지 마."

 

  "……."

 

 할 말이 없어진 제이는 입을 꾹 다물고 뒤돌아섰다.

 

 이제 완벽하게 연주와의 사이는 끝이 난 것 같았다.

 

 연주와 계속 같이 있다간 그녀와의 좋은 추억도 더럽혀질 것 같아서 제이는 힘없이 뒤돌아섰다.

 

  "여러분! 한국에서 최초로 FISM(세계 마술 대회)이 열린 것을 기념해서 제가 새로운 마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Rrrrr.

 

 술이 취한 연주를 뒤로하고 제이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 제이, 나예요. 지금 어디예요?

 

  "네? ……아, 저 지금 스낵바 있는 곳에 있어요."

 

 연주가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철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제이는 한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 이제 집으로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 네, 이제 볼일은 다 끝났으니싸요.

 

  "……네, 저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쉬고 싶어요."

 

 연주는 스낵바 한쪽에 올려져 있는 칵테일 잔을 집어 들었다.

 

 등을 돌리며 전화를 받는 제이에게 비틀거리면서 다가가는 연주의 눈빛은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섬뜩하고 섬뜩했다.

 

  - 어디에요? 내가 데리러 가겠습니다.

 

  "네,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냐면……."

 

 촤악.

 

 제이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칵테일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 맡아야 했다.

 

  "어머, 미안해. 제이야. 분명히 가득 차 있는 칵테일 잔이 텅 비는 마술을 했는데, 그만 실수하고 말았네. 미안해. 이해해 줄 거지?"

 

 실수라고 말하는 연주의 입가에는 제이를 사악한 미소가 비릿하게 걸려있었다.

 

 연주의 소란 때문에 주변을 가득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칵테일을 맞은 제이는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더욱더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해해줘. 난 너만큼 훌륭한 마술사가 아니거든."

 

 조금의 미안한 기색이 없는 연주의 표정을 보면서 제이의 얼굴이 점점 붉게 타올랐다.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 이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잖아. 친구 사이끼리."

 

 허울 좋은 친구일 뿐이면서 필요할 때만 친구라고 말하는 연주를 보면서 제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차가운 칵테일을 맞은 제이의 입술을 새파랗게 질렸다.

 

  "어머, 어떡해. 완전히 다 젖었네. 이거 새로 산 옷 같은 데 이제 다 망가졌네."

 

 제이는 빨간 칵테일에 의해서 핏빛처럼 붉게 물든 드레스를 보면서 암담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토록 모멸감을 느낀 순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올랐지만, 분노보다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이 더 커서 제이의 왼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양복 재킷을 벗은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익숙한 향기에 안심한 제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서는 화가 잔뜩 난 듯 강렬한 눈빛으로 연주를 노려보고 있는 철수가 있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66 66.나랑 결혼해 줄래? (完) 12/30 406 0
65 65.제이야, 생일 축하해 12/30 418 0
64 64.진짜 죽여버리고 싶어 12/29 476 0
63 63.알았어, 오늘은 키스만 할게. 12/29 421 0
62 62.너 없으면 못 살아. 12/28 398 0
61 61.윤제이 납치 계획 12/28 435 0
60 60.키스 좀 해줘라. 12/25 412 0
59 59.침대로 갈까? 12/23 434 0
58 58.급발진 사고를 내가 낸 거라니까. 12/22 417 0
57 57.오빠, 미안한데 저 수건 좀 가져다주실래요 12/21 499 0
56 56.그럼 둘이 언제 잤어요? 12/20 425 0
55 55.정말로 미치도록 귀엽다 12/11 407 0
54 54.절대 내 품에서 안 놔줄 거야 12/9 395 0
53 53.나도 철수 씨를 좋아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12/7 404 0
52 52.원래 독일에서는 인사 대신 목에 키스하는 … 12/5 391 0
51 51. 개미지옥에 빠진 불쌍한 개미 12/4 433 0
50 50.당신들한테 제안할 게 있어요. 12/3 391 0
49 49.영원히 그와 함께 하고 싶어. 12/2 405 0
48 48.철수 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12/1 397 0
47 47.무릎과 무릎 사이에 11/29 812 0
46 46.제이는 철수를 좋아해? 11/27 442 0
45 45.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요 11/26 415 0
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11/24 404 0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11/24 401 0
42 42.미래의 남편이요? 11/22 401 0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11/20 410 0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11/17 393 0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11/16 379 0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11/15 432 0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11/14 381 0
 
 1  2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