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웩.. 아빠 너무 쓰잖아. 사약 먹는 것 같아.”
“.... 그러니까 원액이지.”
아빠는 무심하게 말했다.
아빠는 에스프레소와 함께 듣는 클래식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집엔 언제나 LP판이 많았다.
요즘은 구하기 힘든 커다란 CD말야.
지금은 버려진 채 먼지가 쌓여 한 구석에서 자신들을 다시 틀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LP판들.
아빠 보고 싶어요.
“지수씨?”
“..아..네.”
“공연 보러 와주실거죠?”
“시간 맞으면 갈께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
빨리 오십만원 받고 학원 등록하러 가야하는데.
“저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여기”
그는 봉투를 건냈다.
하얀 봉투에 때가 탔다.
“세어 보세요.”
“됐어요. 다 들어있겠죠~ 그럼 다음에 봐요~ 한 장이라도 덜 들어있으면 공연 망칠 각오하세요. 다 때려 부 술수도 있어요!”
내가 사납게 말했다.
“아..네..”
학원까지 가려면 신촌으로 나가야 한다.
마침 돈도 들어왔으니 오늘부터 등록해버려야지.
집에서도 학원 다닌다고 하면 밖에 나가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
그보다도 내가 취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야해.
더 이상 높은 곳에 집착해서 결국 절벽에서 떨어지는 꼴이 되긴 싫거든.
272번을 타면 신촌에 갈 수 있는데, 7612번에 비하면 한가한 버스다.
나는 버스 가장 뒷 쪽 구석에 앉아 봉투에 들어있는 돈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둘, 넷, 여섯, 여덟, 열.
둘, 넷, 여섯, 여덟, 열.
둘, 넷, 여섯, 여덟, 열.
둘, 넷, 여섯, 여덟, 열.
둘, 넷, 여섯, 여덟, 열.
딱 맞다.
버스에서 내려 ‘웹스타’학원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세연대 앞에서 차없는 거리 쪽으로 내려가서 한 대백화점 맞은편 골목
‘웹스타 학원’
발견
가까이 가보니
‘국비지원 교육센터 취업100%보장반’
이라는 현수막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나이 또래 쯤 되보이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앉아있었다.
젊긴 한데 뭔가 삶에 찌든 느낌이다.
나도 그럴려나?
“학원 등록하러 왔어요. 국비지원반요.”
“아 그러면 우선 상담부터 받아야 해요~”
그 김미현 언니인지 또 다른 언니인지 모를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기 상담실 보이시죠? 앞 쪽에 줄서서 기다려주세요~.”
뜨악-
상담실 바로 옆쪽에는 의자 5개가 놓여있었고 그 뒤에 줄은 거의 학원 입구 정문까지 닿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