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회상
노량진
6월
“네 왜요?”
“저기 이 수업 들으시나 봐요?”
“네.”
당연히 이 수업 들으니까 앉아있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다음 할 말을 잃어버렸다는 듯 혹은 무슨 말을 할까 고민 하는 듯하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곳엔 말하는 방법을 까먹은 사람들보다 이곳에 와서 대화스킬이 더욱 좋아진 사람도 많아보였는데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벙어리파’와 달리 이들은 ‘놀자파’이다.
3개월 동안 죽어라 책만 파다보니 주변에 아예 무신경해진걸까?
뿐만 아니라 ‘신선’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모두의 학습계획을 지도하며, 선생님보다 더욱 우리를 이해해주고 보살펴주지만 수년간 합격하지 못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벙어리파’와 ‘놀자파’ 그리고 ‘신선’들은 공시계의 생태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벙어리파’들은 항상 열심히 책상에 앉아 있기는 하나 나처럼 잡생각이 많은 경우 앉아 있는 시간이 합격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놀자파’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습실’이 아닌 당구장, pc방 혹은 모텔을 전전하는데 가장 영앙상태가 좋아 보인다.
‘신선’들은 누가봐도 ‘신선’이다.
항상 어머니의 자애로운 미소로 모든 학생들을 편견 없이 대하여
학원선생보다 우리들을 걱정해준다.
‘학습방법상담’ 뿐 아니라 ‘인생상담’, ‘연애상담’ 그들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으며 이 세계의 가장 훌륭한 카운슬러이다.
그들은 결코 뛰는 법이 없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이 세상에 허례허식 따위는 잊은지 오래인 듯한 단호하면서도 자유로운 손짓
무심한 듯 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눈빛
수염이 있건 없건 그들은 신선이며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하다.
한번은 나도 ‘신선’ 및 ‘놀자파’들 그리고 나처럼 ‘벙어리 상태의 일탈을 꿈꾸는 벙어리파’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진적이 있다.
‘놀자파’들은 무엇이든 잘한다. 그 안에서 연애도 섹스도 그중에는 드물지만 공부까지 잘하는 연놈들도 있다.
‘벙어리들’은 여기서도 아웃사이더이다.
쭈볏쭈볏대며 마치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중인 죄인처럼 술자리를 지키고 있고
주로 말을 잊은 지 오래이기 때문에 술과 안주만 응시한다.
‘신선’들은 이런 우리 모두를 보듬어 주며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주도한다.
이들의 스토리텔링은 없어 모르는게 없다.
‘인기강좌’부터 시작해서 ‘주변식당’, ‘성공하는 음식점의 비결’ 까지 모두 알고 있으며 이야기의 마무리는 주로 ‘정치비판’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술자리에 앉아있는걸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여기 앉아있다니
정말 외로웠나보다.
한 여름이 되기 조금 전
집 근처 연희중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다.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