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회상편-계속
틀렸어요 할머니.
지웅이 꼬추는 무사해요.
남자가 부엌에 간다고 꼬추가 떨어지진 않는다구요.
하지만 할머니는 지웅이에게 그 이후로도 아무일도 시키지 않았다.
맨날 맛있는 것이 있으면 자신은 드시지 않고 지웅이부터 먹으라한다.
언젠가 한번은 할머니댁에서 피자를 시켜먹는데 나는 할머니부터 드시라고 피자를 건내자
“난 됬다~ 지웅이 줘라.”라며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너무 서글펐다.
‘할머니 나도 먹을줄 안다구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곧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 장례식 때 ‘꼬추’만 생각났다.
엄마는 할머니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르다.
가령 학창시절
엄마는 언제나
“지웅이 밥챙겨줘라~”라는 문자를 보냈다.
또 주말에 내가 일어나 밖에 나가려 하면 그대로 꼼작도 안한 채 누워 잔다.
어쩌다 지웅이가 일찍 일어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지웅아 밥 먹어야지’ 하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그런데 지금도 별로 변한 건 없다.
고삼이고 나발이고 일 좀 시키라구요!
“엄마 나 자소서 써야 된다니까 내가 나중에 지웅이 시킬게.”
내가 말했다.
“에휴 누나가 되가지고 동생이 좋은 대학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놈의 집구석
빨리 나가든지 해야지
더욱 자소서를 열심히 써야겠다.
수없이 많은 곳에 지원했다.
자소서만 100개
내 인생의 변주곡을 100개나 썼다.
난 작곡가다.
다작을 하는
주로 전공인 ‘영어’에 집중해 대외활동 경험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해외 주문과 발주 그리고 영업과 고객응대’에 관련하여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자소서를 반쯤은 소설이지만 써내려갔다.
하지만 모든 기업의 특성에 맞추어 다르게 썼다.
공기업의 경우는 보다 얌전히 썼고 지원직무에 따라 다른 곡을 만들었다.
비록 ‘지방대’이지만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다는 점도 물론 썼다.
‘비록 지방대’라고는 쓰지 않았지만
며칠 후-
지원한 기업 여러 곳에서 ‘합격자 조회’하라는 문자가 날라 왔고
공기업 한군데, 대기업 두 군데, 중견기업 일곱 곳에서 ‘1차합격’을 축하한다는 페이지로 나를 축하해주었다.
승률10%의 타자이지만 홈런을 칠거야.
단순히 서류통과인데 왜 이렇게 기쁘지?
아직 갈 길은 먼데 희미하게 계단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