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팬, 레터
「붉은 살점을 도려냈다― 그녀의 목이 깊게 패었다. 그 틈으로 구멍이 생겼으면 좋겠다. 차가운 맨땅이 훤히 보일 만큼의―」
「부러 목젖을 노린 것은 그녀가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좋았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을 기어코 막는 것. 그녀가 철저히 원하는 것을 완벽히 차단하고 마는 것―」
「머리끝까지 피가 차오른 그녀가 온 구멍으로 물을 쏟아냈다. 완전히 돌아간 눈알 사이로 새빨간 액이 흘렀다― 그 수류를 막기 위해 전신의 뼈가 꺾이도록 저항하던 그녀의 발버둥이 비로소 멈췄다.」
「환멸이라 여겼던 그녀에 대한 감정이, 환희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알도 없는 안경을 추켜 올리며 모니터를 쳐다보던 유정은 금세 무료한 감정을 드러냈다. 방바닥이 울릴 정도로 쿵쿵대며 걸어간 유정이 노트북과 연결된 코드를 뜯어버릴 듯 잡아 뽑았다.
글을 쓰는 건 언제나 따분하고 지루한 일이라고 유정은 생각해왔다. 유정이 원하는 것은 마침표를 찍은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자신의 문장에 벅찬 감동을 받은 이들이 자신을 향한 경의를 표하는 것. 단순한 존경을 넘어, 결국 글이 아닌 자기 자신을 갈구하게 되는 것.
유정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이들을 죽이는 이유는 오직 그뿐이었다. 유정이, 끊임없이 애정을 갈망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과정은 몹시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미완의 글에도 온 마음을 뺏길 만큼 단순하진 않으니까. 그들의 까다로운 심리를 알고 있던 유정이기에 유정은 그동안 꿋꿋이 참고 인내하며 결말을 맺어왔다. 하지만 유정은 참을성이 그리 길지 않았다. 싫증 또한 빨랐다. 마치 자신의 소설 속에 나오는, 눈앞에 둔 먹잇감을 앞당겨 죽이고 마는 살인자와 흡사했다.
코끝에 걸쳐진 기분 나쁜 안경을 집어던진 유정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 며칠 전부터 계속 신경 쓰고 있었던 편지 하나를 뜯었다. 하루에도 몇 십 통씩 ―일종의 팬 레터와 같은― 우편과 편지를 받는 유정이었지만, 기묘한 봉투의 생김새에 유정은 완전히 마음이 매료됐었다. 마치 초대장과 같은 그 봉투 안엔….
「시호. 당신의 글에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해요.」
「시호 머리 안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요.」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전부. 반드시 알게 할 거야.」
번역기를 돌린 건지,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찬찬히 글을 읽어 내려가던 유정은 그저 다른 이들이 보낸 평범한 팬 레터라고 생각하며 슬슬 따분해지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곧 유정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문장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피가 튀길 때마다, 내 감정은 또한 격앙돼요.」
「날 떨리게 하는 시호가 좋아요. 글뿐이 아니에요.」
「날 보러 와줘요. 난 시호가…」
그것은, 그동안 유정이 맹목적으로 글을 써왔던 이유에 근접할 만한 문장들이었다.
「너무 사랑해요.」
기력을 전부 뺏길 만큼의…황홀한 고백.
「때론,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편지가 끝났다. 일본 오사카 지역의 주소만을 남긴 채였다. 그 끝자락에, 유정은 단숨에 기묘한 흥분을 느끼고 말았다.
절대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