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으 꿈은 확실히 아니야. 이곳이 진짜 사후세계 라면... 난 무교인데 누굴 만나는 거지? 하느님? 부처님? 으윽!...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이건... 설마?!”
“푸후훗...”
‘엇... 방금, 어디서 웃음소리가? 여자 웃음소리 같은데.’
“우후훗! 난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니야.”
여태 패닉에 빠져있던 터라 왼쪽과 오른쪽을 보기만 할 뿐, 미처 위를 보지 못했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위 쪽 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 곳에는 수녀복은 본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마치 수녀복 같다는 느낌을 주는 옷을 입은 존재가 공중에 떠 있었다. ‘소환’ 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생성’ 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그 존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에 미소를 띄며 공중에서 내려와 백색 유럽풍 느낌의 의자를 소환 하여 앉았다. 내가 자신을 멍 하게 쳐다본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그 존재는 의자에 앉은 후 말을 이어갔다.
“넌 무교라고 했지? 가끔은 하느님이나 부처님 같은 일반적인 신 말고 만화에 나오는 그런 여신 같은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고.”
‘거... 거짓말! 말도 안 돼!’
“아... 맞긴 맞는데...”
“응? 맞는데...?”
“그러니까...저기...남신....이세요?”
“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존재의 생김새는 영락없는 남자였다.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남자보단 여자에 가깝긴 하지만. 너무 궁금한 나머지 내가 조심스럽게 남신이냐고 묻자, 그 존재는 굉장히 당황해하며 화를 냈다.
“잠깐, 내 얼굴을 똑바로 봐!! 이렇게 예쁜 얼굴이 어딜 봐서 남신이니?”
‘예쁜 얼굴이라니...’
그 존재는 확실히 수녀복 같은 느낌을 주는 옷을 입고 있었고, 목소리와 웃음소리도 여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머리 모양과 함께 얼굴을 보면, 전혀 여자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얼굴이랑 머리가 아무리 봐도 남자처럼...”
“이... 이건, 그저 심심해서 기분 전환 겸 해본거야! 으으... 잘 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밝은 빛이 그 존재의 전신을 감쌌다.
“우웃! 눈 아파!”
아주 잠시 동안 강렬한 빛이 그 존재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빛이 점점 약해지자 그 존재의 뚜렷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순간 말을 잠시 잃었다.
“......”
이전 이미지와 상반 돼서 그런 것 인지는 모르겠다. 감히 외모를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굳이 외모를 설명 하자면, 진짜 여신 같은 외모라고 할까.
“헤~ 봤지? 이게 바로 내 진정한 모습이야!”
“마... 말도 안 돼! 애니메이션에서 밖에 보지 못한 여신을!! 그래... 이건 꿈이야! 난 분명 야자를 하다가 졸아서 꾸는 꿈 일거야. 말도 안 되잖아... 하하, 여신이라니. 나도 참,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봤...”
내가 항상 생각해 오던, 부처와 예수 말고 여신은 왜 없는 것일까 라는 의문. 그것은 내가 패닉에 빠진 나머지, 내 논리 회로가 자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단정 지으려 했다.
“이봐! 그거 상당히 실례라고? 고고한 여신을 앞에 두고 꿈이니 애니메이션이니 운운하다니! 흠흠... 아무튼, 어쩌다 보니 내 소개가 늦었네? 내 이름은 루시엘. 그래, 맞아. 네가 가끔 있었으면 했던 그 존재. 사후세계의 관리자이자, 여신이지!”
여신... 그래, 그 존재는 진정한 ‘여신’ 이었다! 하지만, 왜? 아직도 내 머릿속 논리 회로가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여신... 이라니...”
“히히~ 어때? 맨날 상상만 하던 여신을 직접 눈앞에서 본 느낌이?”
“잘 모르겠어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좋기는 한데... 어째서...”
진짜 여신을 눈으로 보니, 뭔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그 여신을, 실제로 여신을 만났으면 했던 바람이 실현 되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후세계의 관리자이자 여신이지!’ 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서 금방 진정이 됐다. 당장 이 상황에 대해 물어봐야지.
“좋긴 한데요... 일단은 저, 죽은 거...맞죠?”
“응 맞아. 너 죽었어. 그러니까 날 만났지.”
“그래서...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음... 원래대로라면 너희가 이상하게 부르는 지옥인지 천국인지 하는 곳에 가는 게 맞지. 정확히는...‘천상계’ 로 가는 것! 지옥이니 천국이니 그런 이상한 건 존재하지 않아.”
지옥과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천상계라고 하는 곳이 존재 할 뿐이라고 한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뻔질나게 들어오던 그놈의 천국인지 지옥 인지는 애초에 없던 거라고!’
“아 참, 그거 알아? 천상계의 시간은 현세의 시간보다 대략 세 배 정도 빨리 흐른다?”
“네? 진짜요?
천상계에서의 시간은 현세에서의 시간보다 약 세 배 정도 빨리 흐른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하루는 8시간, 1년은 대략 121일정도 되는 것 일까.
“응. 근데 말이야... 천상계의 시간이 현세 시간보다 세 배 빨리 흐른다고 해도 다음 생을 네가 태어난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태어나려면, 현세의 시간으로 500년. 천상계의 시간으로 약 167년을 보내야 한단 말이지...”
언젠가 TV에 나오는 드라마를 볼 때 봤었던 이야기다. 이능의 존재가 1500년대에 사랑하는 연인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정확히 500년이 흐른 2000년대에 그 연인을 다시 만나게 되며 끝나는 드라마였다. 현세의 시간으로 500년 이라는 공백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새로운 것들 뿐 이었다. 아마 절실한 기독교나 불교의 신자가 이렇게 여신을 만나게 된다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67년이요?!”
“응응! 굉장히 지루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사실 다른 방법도 있어!! 네가 최근 들어서 자주 생각하던 방법인데, 한번 들어볼래?”
다른 방법이라니. 거기에 내가 생각하던 방법? 무슨 방법을 말하는 걸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니겠지...? 일단 한번 떠봐야겠다.
“네... 167년을 천상계에서 보낼 자신도 없고... 제가 살던 세계는 지긋지긋해요”
“하하~ ‘제가 살던 세계는’ 이라... 역시 뭔지는 알고 있구나?”
“네? 아, 네. ‘그것’ 이라면...”
“맞아! 네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 이 세 계!”
이세계. 내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떠한 세계다. 지긋지긋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생각하던 이세계에서의 삶. 어쩌면 지금 그 상상이, 그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이세계는 말 그대로 네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세계야. 그래서 환생을 하는 데에 있어선 전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거지! 무려 약 170년을 천상계에서 보내면서 말이야. 네가 원하던 삶을 살 수 있다면, 이세계라도 괜찮잖아?”
맙소사. 내 앞에 있는 여신 루시엘은, 진심으로 나에게 이세계에서 태어나는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