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세계에 왔을 때의 계절은 가을 쯤 됐었다. 이세계에 떨어지고, 루시엘을 만나서 파티원이 되고, 퓨리피어인 미르를 만나서, 파티원으로 받아들이고... 아 참. 꽤 비중 있는 몬스터도 해치웠었지. 그 후에 크루세이더인 아그네스를 만나 파티원으로 받아들이고 덤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저택까지 얻었다. 참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계절은 벌써 겨울로 넘어갔다.
‘하아~ 좋다... 저녁도 먹었겠다, 다시 편하게 쉬어볼까.’
“에... 엣취!”
“음? 왜 그래, 미르. 감기 걸렸어?”
“으흐... 퓨리피어가 감기에 걸리다니 그건 말도 안... 엣취!”
“말도 안 되긴, 벌써 감기 걸렸구만.”
“아... 아니에요!...”
“내가 따듯한 차라도 내오겠다.”
“아, 아그네스. 고마워요..”
“오오?”
아그네스가 차를 내온다니, 직업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시만. 이건 내 편견일 뿐이다. 이런 편견을 가져선 안 되지!
잠시 후, 아그네스가 부엌에서 차 네 잔을 들고 왔다.
“차를 내왔다. 홍차야.”
“아. 고마워.”
“아아~ 따듯해... 고마워요~ 에... 엣취!”
“그런데, 엘리아는 어디 있지?”
“아마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거야. 어이, 엘리아~ 아그네스가 따듯한 차를 타 왔어! 나와서 마셔~!”
“에에~ 귀찮아~!... 라이넬이 내 것 까지 다 마셔~”
“얼른 안 나와?! 아그네스의 호의를 무시하는 거냐! 이 늙다리!”
“하~!?”
(쿵 쿵 쿵 쿵)
엘리아를 늙다리라고 놀리자, 엘리아가 마치 굉장히 열이 받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듯, 발을 세게 구르며 나왔다.
“늙다리라니! 마나 한계치 측정 할 때 550이 나온 주제에!”
“뭐... 야! 그게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
“그게 정말인가 라이넬? 아직도 마나 한계치가 550이면,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직도 550인 게 말이 돼? 스텟을 찍어서 나도 이제 마나 한계치가 1700이 다 되어간다고!”
“음... 그렇다면 안심이다. 내가 찍은 남자니까, 그 정도로 약하면 곤란하지...”
아그네스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렸다.
“에?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에... 에? 아 아니... 아, 아무 말도 안했다!”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호오! 아그네스! 이 차 되게 맛있다~ 무슨 차야?”
“엘리아 너는 귀찮다더니 언제부터 갑자기 활발해 진거냐.”
“아, 이 차는 홍차. 부친께서 최고급으로 보내주신 거다.”
“아으으...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것 같아요...”
“미르. 거기서 그러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좀 쉬어. 그러다 감기 도지겠다.”
“퓨리피어는 감기 따위 걸리지 않... 에... 에! 엣취!”
“됐으니까 빨리 가서 쉬라고.”
“네...”
“미르, 내가 부축해주겠다.”
“고마워요 아그네스...”
‘나 참... 빨리 들어가서 쉬지..’
아그네스가 미르를 방으로 갈 수 있게 부축해 줬다.
“하아암... 그나저나 라이넬, 요즘 우리 너무 늘어지는 거 아니야?”
“네가 그런 소리 하지 마.”
“헤에~... 내가 뭘 어쨌다구~”
“일단은, 우리 공백기도 이번이 유달리 길었어. 우선은 미르 감기가 낫는 대로 퀘스트 좀 찾아보자. 슬슬 루시도 불안불안 하니까.”
미르를 부축해주고 와서 조용히 차를 마시던 아그네스가, 퀘스트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말을 꺼냈다.
“퀘스트라면... 날 믿어줘. 어느 정도 어려운 퀘스트도 충분하다.”
“어려운...? 뭐... 확실히, 그런 퀘스트면 보상도 많으려나.”
“아!”
차를 마시며 조용히 있던 엘리아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불현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라이넬! 우리에게 얘기 해 준다고 했잖아!”
“에? 무슨 소리야 또.”
“모르는 척 하긴~. 라이넬 이름이 강현....”
“어이어이 잠깐, 잠깐!!!”
“음? 왜 그래, 라이넬. 갑자기 굉장히 당황스러워 하는군.”
“아아... 그러니까 이건... 하아... 어쩔 수 없지...”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빨리 말해봐~!”
“으으... 나는 사실, 원래 이세계 사람이 아니야. 이세계와는 전혀 다른, 지구라는 세상에서 강현호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 칼에 찔려 살해당하고, 루시엘 이라는 사후세계관리 여신을 만나서 이세계로 넘어 온 거야.”
“호오... 나도 언니 편지를 읽었을 땐 그런 건 적혀있지 않았는데. 그랬구나?”
“아니 적어도... 네 녀석 언니가 나를 너한테 보낸 건데, 암흑 뭐시기인 존재를 너한테 보내겠냐?! 생각 좀 해, 이 거들먹 마법사야!”
“누... 누가 거들먹 마법사야!”
나와 엘리아가 티격태격 대고 있을 때, 아그네스는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렇군. 이해한다.”
“에? 뭘 이해해.”
아그네스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사실이긴 하지만 거의 대충 둘러댄 것 뿐 인데, 도대체 뭘 이해한다고 하는 걸까? 설마...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은... 내가 이 마을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라이넬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여성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밤중에 산책 겸 강가를 따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그 여성이 떨어져 강에 빠졌었지. 처음엔 하늘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이상한 소리를 하나보다 하고 그냥 넘겼었다. 그런데... 라이넬도 그랬다니, 아무래도 사실이었나 보군.”
‘아, 아니었구나. 그런데 그 망할 여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환생 자 들도 그런 식 으로 떨어뜨렸다는 거야?!’
“아... 응.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응? 왜 그러지?”
처음부터 느낀 것이지만, 아그네스의 말투는 굉장히 귀족스러웠다.
“아그네스는 말투도 그렇고, 이 저택에서 살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꼭 귀족 느낌이란 말이지.”
“귀... 귀족 이라니! 난 귀족이 아니다. 그저... 기... 기사여서 말투가 이런 것 뿐 이고, 이 저택은, 그게... 그러니까...”
“흠?”
“그, 그래! 운 좋게 얻게 된 거다!”
“헤에~ 그건 그렇다 치고, 점술집 에서는 왜 라이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거야?”
“그, 그건...”
“음... 그건 이제 됐어. 우리 파티에 오고 싶어서 물어본 걸 수도 있잖아? 내가 파티장이기도 하고.”
“마, 맞아! 난 그저 라이넬의 파티에 들어가기 위해 너희들의 위치를 물어본 것 뿐 이다!”
“으음... 그럼 왜 라이넬이 점술집에 들어갔을 때 갑자기 도망갔어?”
“에... 에?! 그건... 아! 나는 피곤하니, 먼저 자도록 하지. 내일 보자!”
엘리아의 질문에 아그네스가 당황하여 말을 얼버무리며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나...?
“하음... 아쉽다. 되게 궁금했는데.”
“아그네스가 많이 당황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 건 내버려둬 주자. 무슨 사정 같은 게 있나보지. 그럼, 나도 이만 들어가서 자야겠다. 잘 자라.”
“응, 잘 자~”
-다음날 아침-
“하아암... 오늘은 조금 돌아다녀 볼까나.”
“와하하하!”
‘에... 이건 미르 목소리인데. 그 녀석, 감기가 다 나은 건가?’
미르의 기운찬 목소리가 들리는 거실로 걸어갔더니, 완전히 쌩쌩해진 미르가 식탁에 앉아 있는 엘리아와 아그네스에게 말하고 있었다.
“역시, 퓨리피어에게 감기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여~ 먼저들 일어나 있었구나? 그나저나, 미르는 감기가 다 나았나보네?”
“아, 라이넬. 일어났구나.”
“후훗... 감기 따위, 퓨리피어에게 걸리면 순식간 이죠!”
“그거 다행이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 치유마법으로 치료 가능하지 않아? 그거 자기 자신한테는 못 쓰는 거야?”
“커헉! 그... 그런 방법이...”
‘되는데도 몰랐던 거냐...’
“뭐 아무튼.. 오늘은 퀘스트를 하러 갈 거니까, 준비들 해.”
저택을 나설 채비를 다 한 후, 파티원들과 함께 아침 일찍 연합회에 들어섰다. 역시 게시판에는 수많은 퀘스트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흐음... 뭔가 할 만한 게...”
“저기, 라이넬! 이거 어때?”
“응?”
엘리아가 오른쪽 구석 위에 있는 퀘스트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음... ‘북서쪽 숲에서 알 수 없는 빛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조사를 하고 와 주세요.’ 라...”
“어라? 라이넬, 이거 보수가 꽤 높은데요?”
“그래? 어디... 에?! 30만 루시? 조사하는 것 뿐 인데도?”
“음... 북서쪽 숲의 빛이라면...”
“뭔가 아는 게 있어, 아그네스?”
아그네스가 마치 뭔가 아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괜찮아~ 나랑 미르에게 걸리면 그 무엇도 무사하지 못한다구~!”
“그래요! 엘리아의 화력과 저의 지원이라면, 두려울 게 하나도 없어요! 더군다나 이거, 조사일 뿐이잖아요?”
“음... 그럼, 갔다와보자.”
“예에!!”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라이넬.”
아리아씨에게 조사 의뢰를 받은 후, 지도에 표시된 북서쪽 숲으로 출발했다. 거리가 꽤 돼서 그런지 2시간 정도는 걸은 것 같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여기인건가. 아참, 여긴 숲 속 한복판 이니까, 엘리아 넌 그때처럼 갑자기 폭렬마법 시전하면 절대로 안 된다?”
“으으... 알았어...”
지도에 표시된 숲에 도착했지만, 의뢰 내용처럼 밝게 빛나는 의문의 빛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빛이 났다는 거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그때, 갑자기 아그네스가 소리쳤다.
“나왔다!”
“에? 어디?”
우리 셋은, 아그네스가 소리치는 곳으로 시선을 일제히 돌렸고, 그 곳 에는 빛나는 물체 6개가 둥둥 떠 있었다.
“저건 뭐지...?”
“라이넬... 왠진 모르지만, 저거 굉장히 기분 나빠요! 아그네스, 저게 도대체 뭐에요?”
“저건... 근위대장 오리아의 정령이다.”
“에... 에엑?! 근위대장이면... 그 암흑 뭐시기의 부하 아니야?!”
‘난데없이 중간보스 라니!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에이~ 라이넬, 뭘 그렇게 두려워 해~ 생긴 것 도 되게 단순하게 생겼잖아? 저게 갑자기 뾰족뾰족 해 진다면 모를까,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
“엘리아 그만둬! 왠지 진짜로 그렇게 변할 것 같잖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정령들은 성게마냥 가시가 돋히기 시작했다.
“모두 내 뒤로 물러서! 내가 앞장서겠다!”
아그네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뾰족해진 정령들 중 하나가 아그네스를 향해 돌진했다.
“아그네스! 위험해!”
“베리어!”
(카앙)
다행히, 아그네스의 순간적인 베리어 스킬 발동으로 피해는 입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막 생성 했을 터인 베리어가 산산조각 나 버렸다.
“에에엑!! 저거 도대체 공격력이 얼마나 높은 거야?! 아그네스! 괜찮아?”
“나는 괜찮다!”
“아그네스! 저것들 내 폭렬마법으로 날려줄까? 언제든지 말만해!!”
“그러니까 쓰지 말라고 바보야! 여긴 숲이잖아! 제발, 할 거면 빙결 마법을 쓰던가!”
“저도 언제든지 지원마법을 걸어드릴게요!”
“엘리아! 저 정령들은 마법 대미지에 절대적인 면역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투에서는 도움이 되질 못할 테니, 미르와 함께 몸을 피해!”
마법 대미지에 절대적인 면역이라니, 그거 초 위험하잖아?!
“이번엔 내 차례다! 하아앗!”
아그네스가 돌격하여 정령들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정령들은 아그네스를 피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정령 하나가 아그네스의 검에 베였다.
그런데 아그네스에게 한번 베였을 뿐인 정령 하나가 마치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면서 소멸해 버렸다.
(쨍그랑)
‘저거... 의외로 약할지도 모르겠는데? 디텍션!’
디텍션 스킬로 정령들의 약점을 찾아봤다. 마법 방어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높지만, 물리 방어력은 0에 가까움을 간신히 파악 할 수 있었는데, 레벨차이가 나는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아그네스! 그 정령들은 물리 방어력이 엄청 낮아!”
“알았다! 하아아앗!!”
내 얘기를 들은 아그네스가 다시 돌격해 순식간에 정령 둘을 해치워 버렸다. 그러자 남은 정령들이 마치 굉장히 화라도 난 듯이, 흰 빛과 함께 빨간 빛도 내뿜기 시작했다.
“라이넬! 가서 아그네스를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그래야지. 미르, 내 블레이드는 아직 저 정령들을 한번 에 없앨 정도의 공격력이 안 돼. 그때 걸었던 증강 마법을 걸어줘!”
“네! 테이어!”
미르의 지원 마법인 테이어는 3번의 횟수 제한이 있다. 마침 남은 정령들도 3마리. 딱 맞는다!
“아그네스! 나도 도와줄게!”
“앗! 라이넬, 위험하다!!”
아그네스를 돕기 위해 아그네스 쪽으로 뛰쳐나간 그 순간, 정령중 하나가 피하지도 못 할 정도의 속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우아아앗!”
“베리어!!”
(콰앙)
“크윽!...”
다행히 아그네스의 엄청난 순발력덕분에 방어 스킬을 받아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충격이 워낙 컸던 것인지, 그 충격으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라, 라이넬! 괜찮아요?!”
“아... 응! 아그네스 덕분에 다친 덴 없어.”
“조심해라. 일단 너에게 다시 베리어 스킬을 걸어 줄 테니, 신중하게 싸워야 돼.”
“어! 방금은 방심했지만, 이번엔 순순히 당하지 않아!”
“라이넬, 아그네스! 힘내!”
“아그네스! 가자!”
다시 아그네스와 함께 정령들에게 돌격했다. 이 정령들은 돌진 타입 같기에 일루션 스킬 하나면 충분히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일루션!! 아그네스, 지금이야!”
내 환영에 달려든 정령 하나가 속도를 못 이기고 땅에 박혀버렸고, 내 신호에 맞춰 아그네스가 검으로 그 정령을 베어버렸다.
“하아압!”
(쨍그랑)
“앞으로 둘! 엇, 아그네스! 조심해!”
(쨍그랑)
어느 새 아그네스의 뒤쪽으로 날아가 기습적으로 달려든 정령을 간신히 블레이드로 내리쳤다. 미르의 증강 마법 덕분에 단칼에 처치할 수 있었다.
“라이넬, 덕분에 살았다. 고마워.”
“아직 감사인사 하긴 일러! 하나 남았다!”
“응!”
“간다아아!! 디-플렉트!!!”
(쨍그랑)
디-플렉트 스킬은 주먹으로 타격하는 스킬 이지만, 돌진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만히 멈춰있는 정령에게 순간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끝 인건가... 수... 수고했다, 라이넬...”
전투가 끝나자, 아그네스는 전투 할 때의 진지한 모습은 온대간대 없이 사라지고, 다시 수줍은 듯한 미소녀의 얼굴로 돌아가서 오른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두근)
‘뭐...뭐지? 아그네스의 손을 잡으니까 갑자기 심장이... 겨우 악수하는 건데 왜 이러지? 나 어디 아픈가...?’
“아! 수... 수고했어, 아그네스. 엘리아~ 미르~! 이제 돌아가자~”
전투가 모두 끝나자, 숨죽이고 지켜보던 엘리아와 미르가 풀숲에서 뛰어 나왔다.
“오오! 라이넬! 디-플렉트 스킬을 그런 대에 응용하다니! 완전 멋있었어!”
“아그네스의 순발력도, 방어형 기사라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엄청났어요!”
“그... 그만둬. 그런 칭찬은... 부끄럽다...”
아그네스는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듯, 얼굴이 또 빨개졌다.
“하하하. 얼른 연합회에 가서 보상받고, 연회장에서 실컷 먹자고!”
“예! 레일주 마시러가자!”
“엘리아는 술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부친께 부탁하면 고급 술 몇 병 정도는 구해다 줄 수 있을 거다.”
“하하. 그러다가 엘리아가 술주정뱅이 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걸?”
“확실히... 엘리아 정도의 애착 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위험했던 정령들과의 전투로 생긴 전장의 흔적을 뒤로하고,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합회로 돌아갔다.
“아! 수고하셨어요! 조사하시던 도중, 타천사의 빛과의 전투가 있으셨죠?”
“아 아리아씨. 그런데... 저희가 전투한건 어떻게 아셨어요? 타천사의 빛은 또 뭐죠?”
“타천사의 빛이라면... 아까 라이넬이랑 아그네스가 싸웠던 그 정령들을 말하는 거 아닐까요?”
“네 맞아요. 저희의 정찰매가 정찰을 위해 날아다니던 도중, 라이넬씨 파티가 마왕의 근위대장인 오리아의 정령, 타천사의 빛 과 싸우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거든요.”
“아... 그걸 타천사의 빛이라고 하는군요?”
“네. 그럼, 이리로 오셔서 퀘스트 완료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라이넬! 우린 먼저 연합회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을게~”
“아, 응 엘리아. 먼저 가있어. 금방 갈게.”
“퀘스트 보상은 조사 완료 30만 루시와 타천사의 빛 6마리 토벌 특별보수로, 한 마리당 40만 루시, 총 240만 루시가 추가 지급됩니다. 합해서 총 270만 루시 수령해주세요!”
그 정령 한 마리당 40만 루시라니... 가장 처음 수행했던 위험도 별 반개짜리 넝쿨 몬스터는 한 마리당 8000루시로, 무려 50배 차이다. 도대체 위험도가 얼마나 높은 거야?!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봬요~”
“네~ 편히 쉬시길!”
연합장 아리아씨를 뒤로하고, 연합회에 들어서자, 갑작스러운 모험자들의 열렬한 환호성에, 나는 깜짝 놀랐다.
“와아아아아! 라이넬!! 이번엔 마왕 근위대장의 하수인을 여섯이나 해치웠다면서! 최고다!! 우후!”
“어이~! 라이넬! 한턱 쏴라!!”
“그래! 한턱 쏴! 한턱 쏴! 한턱 쏴!”
“아하하하하! 좋아! 오늘은 모두, 화끈하게 놀아 보자구! 우리 파티가 한턱 쏜다!”
“오오오오!! 라이넬! 라이넬! 라이넬! 라이넬!”
오랜만에 이렇게 큰 대박을 건졌는데, 가끔은 한턱 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자~ 자~ 라이넬! 빨리 와서 마셔~”
엘리아는 벌써 레일주 반병은 마신 듯 보였다. 이 녀석... 괜찮겠지?
“자, 아그네스, 미르, 엘리아! 건배하자!”
“네? 건배가 뭔가요?”
“라이넬. 건배는 어떻게 하는 건가?”
미르와 아그네스가 굉장히 궁금한 얼굴로 건배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아 참, 이세계에는 건배라는 개념이 없으려나?
“아. 건배는 건배! 라고 소리치며, 술잔을 다 같이 한번 에 살짝 부딪히는 거야.”
“오오! 그거 좋군! 건배하자!”
“네! 우리 건배해요!”
“좋아!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우리 파티의 승승장구를 위해! 건배!”
“건배!”
(챙)
“예에에!”
그때 우린 몰랐다. 이 성대한 축제 분위기와 환호성은, 또 다른 위협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 음 이었다는 것을.
-한 편 마왕의 성, 올데브-
“부르셨습니까, 주군.”
“어어. 암흑운장. 널 부르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났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무 일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근위대장 오리아도 함께 불렀는데... 왜 안 오는 거지?”
“마왕씨~ 미안! 미안! 쪼끔 늦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