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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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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5     조회 : 299     추천 : 2     분량 : 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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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사들을 더 이끌고 헐레벌떡 달려온 키리는 너울을 쓴 미로를 보고는 그녀의 뒤로 마녀만물상까지 확인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다가온 키리가 소리쳤다.

 

 "당장 그자를 붙잡아!!"

 

 저택에 침입했던 마녀가 마녀만물상의 마녀일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녀 이외에 또 다른 마녀가 에스타스에 머물고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기에.

 게다가 있다고 해도, 마녀들이 보기 드문 이유는 그들이 대부분 숨어 살기 때문인데 노블의 저택에 침입할 리 없었다.

 

 그것 외에도 대도적이라 불리던 그를 붙잡은 것을 아는 것도 그녀였다.

 그러니 침입했던 마녀가 그녀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미로를 붙잡았다.

 달려온 키리가 숨을 고르는 사이, 평정심을 가장한 미로가 덤덤히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당신이 한 짓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블께서 오고 계시니, 얌전히 따라오시지요."

 

 노블을 언급하자, 미로가 입술을 물었다.

 

 

 '역시.. 백발을 본 것인가..'

 

 고작 이름없는 마녀가 저택에 침입했던 일로 노블이 직접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도적질 하는 마범죄자때문에 움직였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호위를 맡은 병사들이 우르르 그의 손에 떨어져 나갔으면 몰라도, 직접 수도에서 에스타스까지 올 일은 아닐 테다.

 

 

 '어쩐지 찜찜하더라니..'

 

 하지만 아직 괜ㅊ낳았다. 노블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떠나면 그만이다.

 

 

 "제가 무슨 짓을 했다는 말씀이시죠."

 

 버티고 선 미로가 묻자, 키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감히 시치미를 떼는 것이 그는 더욱 화가 났다.

 

 "아가씨께 무슨 짓을 하였는지는 가서 듣지요! 허나, 감히 노블의 저택에 침입하여 조사중이던 용의자를 빼돌리다니요! 이는 국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키리가 국법을 언급하자 미로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무엇이 국법인지는 정말 알고 떠드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노블 쪽 사람들이 말하는 국법은 왜 모두 자신들이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의문이다.

 혹시 국법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만."

 "저희가 그 자를 쫓고 있던 것도, 손에 넣었던 것도, 당신 이외엔 모릅니다!"

 

 너울 너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그가 보였다.

 미로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그 자.. 가 누굽니까?"

 

 마치 약올리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키리는 이를 악물었다.

 얼굴을 찌푸리던 그는 문득 미로의 등뒤로 보이는 수레에 시선이 닿았다.

 

 

 "당장 저 안을 조사해라! 사람이 있다면 끌어내!!"

 

 키리의 손끝이 수레를 향하자, 병사 몇이 그쪽으로 향했다.

 병사에게 붙잡혀 움직일 수 없는 몸인 미로는 덤덤히 고개만 돌려 병사들을 바라봤다.

 의기양양하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키리는 저곳에 그자를 숨겨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따.

 

 

 "잠겨 있습니다."

 

 문이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한 병사가 키리 쪽으로 돌아섰다.

 키리가 미로를 힐끔 바라보고는 입을 비틀었다. 그 얼굴이 꽤나 비열해 보여서 미로를 붙잡고 있던 사병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부수고 들어가도 상관없다!"

 

 수레의 주인은 이쪽인데. 누가 상관없다고 허락하는 건지..

 

 뚱한 얼굴을 한 미로가 힐끔 수레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부숴지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마물도 감히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결계이니.

 

 미로의 예상대로 검을 들고 문을 부숴보려 했던 병사는 멋쩍은 얼굴로 뒤돌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자 다시 입술을 깨무는 키리를 향해 미로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게 쉽게 열릴 리가 없죠. 마녀의 공간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법이니까요."

 

 의기양양한 미로의 태도에 키리는 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대로 계속 저항해도 소용없습니다. 곧 노블께서 도착하시니, 가지 않으시겠다면 노블께서 이리로 오실 테지요."

 "굳이 노블이 올만큼 그 용의자가 대단한 사람이던가요?"

 

 미로가 묻자 키리가 주변 병사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용의자 때문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녀님 때문에 오시는 것이지요."

 

 

 미로의 입이 비틀어졌다.

 

 "저를 만나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키리는 다시 병사들을 훑어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희귀한 머리색은.. 그냥 넘어갈 수 없지요. 평소에는 이리 너울로 가려서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노블께서는 그 머리색을 꽤나 신경 쓰고 계셔서요."

 

 미로는 역시 그때 이 자에게 자신의 머리색을 들켰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프리나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색도 아니다.

 다만.. 그 색을 가진 마녀라는 것이 노블을 움직이는 것일 테다.

 그들이 그냥 넘겨 들을 리 없으니.

 

 미로는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턱 언저리에 고정되어 있는 천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미로의 손을 따라 쭉 당겨져 천이 풀어지자, 그녀는 천천히 들어올린 손으로 너울을 잡고 내렸다.

 그 움직임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던 키리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 머리색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비단 머리색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입매를 시작으로 귀까지 이어진 화상자국. 피부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붉은 기가 돌았다.

 그들이 그녀의 화상자국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미로가 다시 너울을 들어 눈 아래를 모조리 가리며 바람에 자유롭게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을 내보였다.

 

 

 "이런 것을 써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숙녀의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들추시다니, 몰인정하시군요."

 

 

 보기 드문 색일 리가 없다. 희귀한 색일 리가 없지.

 

 여유로운 미소를 띄운 미로가 똑바로 키리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머리칼이 희귀할 리가 없다. 주변 병사들도 동의하는지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러며 얼굴에 흉측한 화상자국이 있는 미로에게 연민이라도 느끼는지 그녀를 붙잡았던 손을 스르륵 풀었다.

 

 

 역시.

 키리를 기다리는 동안 아인에게 분장을 부탁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시간이 짧아 제대로 얼굴을 가리지 못하는 대신, 시선이 한번에 그쪽으로 쏠리도록 흉측한 상처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화상자국이 진하게 인상에 남아 얼굴은 기억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심한 수준의 화상이 얼굴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할 것이다.

 

 

 "찾으시는 마녀가 희귀한 색을 가진 마녀라면, 저는 아닌 것을 확인하셨으니 이만 가봐도 되겠지요?"

 

 키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적어도 노블께서 당도하실 때까지 만이라도 붙잡아 둬야 했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붙잡아 둘 구실을 찾던 키리의 눈에 미로의 수레가 보였다.

 만물상을 노려보는 키리의 시선을 눈치 챈 미로가 수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인! 이리 나와봐."

 

 무슨 속셈인지 몰라 눈썹을 꿈틀대는 키리를 바라보며 미로가 다시 너울을 썼다.

 

 

 "제 일행이 궁금하다면 불러 드릴까 하고요."

 

 오래 지나지 않아, 아인이 만물상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인은 다갈샌 머리칼 대신, 밝은 노랑색 가발을 쓰고 어두운 피부색에 눈 바로 아래에서 일자로 떨어지는 칼로 그은 듯한 상처를 달고 밖으로 나왔다.

 

 미로는 너울의 천에 얼굴을 가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뭐야, 밖에 나오고 싶지 않은데."

 

 아직 덜 자란 키가 아이의 나이를 가늠케 했다.

 아인의 얼굴을 확인한 병사들의 수군거림은 더욱 커졌고 키리의 얼굴도 더욱 일그러졌다.

 

 얼굴에 흉측한 화상자국이 있어, 얼굴을 가린 마녀. 그리고 만물상 안에는 얼굴에 긴 칼자국이 있는 아이.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될 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병사들 사이엔 금세 그들을 향한 동정론이 퍼졌다.

 

 

 "그럴 리가 없어. 저 수레에 불을 질러라!!"

 

 미로는 이제 꼴사나워 보이기까지 하는 키리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병사들도 쉬이 움직이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그들의 눈엔 이 둘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키리가 혼자 날뛰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노블 타마린드 저택의 수행인이라도, 이건 좀 너무 한 듯싶었다.

 

 얼굴에 흉이 있는 사람을, 이 많은 사람들 앞에 내던져 놓고 이젠 그들의 보금자리마저 불태우라니.

 결국 병사들 중 하나가 미간을 구겼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병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키리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다시 입을 다무는 병사를 보며, 다른 병사 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횃불을 들고 수레로 다가갔다.

 

 "널 대신할 병사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키리의 싸늘한 말에도, 한마디 내뱉었던 병사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횃불을 들고 수레로 다가간 병사를 향해 홱 고개를 돌린 키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짓을 했다.

 그러자 병사의 손에 들려 있던 횃불에서 불길이 수레에 엉겨 붙는 것을 미로는 눈썹을 치켜 뜨고 지켜봤다.

 

 

 늘 불이 문제다. 미로의 힘과 상극을 이루는 불이.

 

 한숨을 내쉰 미로가 수레를 향해 다가서려는데, 미로보다 아인이 한발 더 빨랐다.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더니 갑자기 안으로 뛰어든 아인을 다급히 부른 미로가 서둘러 그를 따라 만물상 안으로 들어섰다.

 

 

 "아인!"

 

 미로가 곧장 따라 들어가자, 넋이 나간 듯한 눈을 한 아인이 상처로 움직이기 불편해 보이는 렌을 향해 달려가 그를 붙잡고 덜덜 떨고 있었다.

 

 

 "왜, 왜 그래?"

 

 당황하여 걱정스레 묻는 렌의 목소리도.

 

 

 "아인!"

 

 자신을 붙잡는 미로의 목소리도.

 

 

 아인은 그 목소리들이 전부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했다.

 

 만물상 안까지 불이 번지지 않았음에도 아인의 눈엔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온몸에 그 열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나가야해. 어서 나가야해."

 

 렌의 옷자락을 움켜쥔 아인이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뜨겁고, 뜨겁고, 뜨겁다.

 그 무서운 불길이 당장이라도 렌을 삼킬 듯 하여 아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새빨간 불길이 모두를 삼켜버렸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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