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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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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8     조회 : 281     추천 : 3     분량 : 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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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왁!!"

 

 짤막한 비명과 함께 병사들의 움직임이 봉해졌다.

 갑작스레 자신에게서 손을 떼고 바닥을 구르는 병사들을 개의치 않고 달려나간 미로가 불에 그을린 주머니를 맨손으로 덥석 집어 들었다.

 

 불이 붙었던지 얼마 되지 않아 손을 데이면서도 미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불이 붙은 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찌만 그 짧은 순간도 약초들은 타격을 입는다.

 못쓰게 된 그것들을 보고는 이마를 짚으려는 미로의 손을 재빨리 낚아챈 아인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그녀의 손과 팔을 내려다보았다.

 만물상을 나서며 화상을 입은 팔과, 방금 주머니를 집어 들며 데인 손이 엉망이었다.

 

 다시 주머니의 입구를 닫은 미로는 울화가 치밀어 홱 고개를 돌려 갑자기 자신을 놓쳤던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전부 어디서 난 건지 모를, 땅에서 솟아난 수갑에 손이 묶여 한데 엉켜 있었고, 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데 뒤엉킨 병사들과, 따로 떨어져 바닥에서 솟아난 수갑에 붙잡힌 키리.

 

 영문을 알 수 없는 미로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렌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싱긋 미소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렌을 미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이제껏 전국을 떠돌면서 만난 수많은 마범죄자와 마법사들. 하지만 단 한번도 본적 없는 능력이었다.

 물론 미로가 가진 힘도 마찬가지이지만.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이내 정신을 잃을 듯이 풀썩 주저앉는 렌 때문에 미로는 다급히 그에게 다가가야 했다.

 성치 못한 몸이라 마력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풀지 못해?!!"

 

 걱정스런 얼굴로 렌을 살피던 것도 잠시, 그녀의 눈동자가 이내 한데 묶인 병사들과 따로 떨어진 키리에게로 향했다.

 

 지금은 우선 에스타스를 빠져나가야 한다.

 노블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병사들에게 다가간 미로가 병사 중 하나에게서 검을 빼앗아 들었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노블의 명에 불복종이라니! 이 왕국에서 그만 살고 싶어?!!"

 

 풀어지지 않는 수갑 때문에 몸부림치는 키리에게 다가간 미로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되는대로 내뱉던 입을 그제야 다무는 키리를 향해 미로의 싸늘한 시선이 떨어졌다.

 

 아주 잠시 정말로 이자의 숨통을 끊어 놓을까, 고민하던 미로는 이내 마음을 고쳐 먹고는 허리춤에 남아있던 다른 주머니에서 향초 두개를 꺼내 병사들과 키리 앞에 놓았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싸늘한 표정으로 들어올린 미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키리의 다리 사이에 검을 꽂았다.

 

 

 "히익.."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살갗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땅에 꽂힌 검을 바라보았다.

 손잡이 끝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려놓은 미로가 낮게 속삭였다.

 

 

 "거인의 손길이 닿은 검이니, 인간의 힘으론 움직이지 않으니."

 

 그녀의 손끝에서 마력이 검으로 흘러 들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미로는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불이 붙은 만물상으로 다가가 그 끝에 불을 옮겼다.

 

 

 "염력계 마녀라고 생각했겠지?"

 

 그리고는 병사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수면초와 망각초로 만든 향초를 피웠다.

 숙였던 상체를 일으킨 미로는 다시 키리가 묶여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난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데."

 

 그녀는 너울 속에서 머리를 하얗게 물들이고는 손을 뻗었다.

 땅속에서 나무뿌리가 솟구치더니 이내 병사들과 키리를 단단히 감쌌다.

 바람 한점 통과할 수 없도록.

 

 

 "내가 다른 마녀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저택에 침입했을 때부터 알았겠지? 생물을 다루는 마녀는 없으니까."

 

 키리는 나무뿌리가 그들을 뒤덮어 어두워진 공간에 두려움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가 손에 든 작은 나뭇가지에 붙은 불은 금세 그 뿌리를 태우고 자신들마저 태울 것만 같았다.

 

 

 "이, 이러지 말고 우리 대화를.."

 "대화?"

 

 더듬더듬 겨우 꺼내 놓은 키리의 말을 미로가 비웃었다.

 

 

 "너희는 렌을 잡아갔을 때,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나?"

 

 벌어진 입술까지 덜덜 떨렸다.

 

 

 "마녀의 공간에 불을 붙이고, 마녀의 물건을 불에 태웠어."

 

 키리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미로가 그의 얼굴을 불로 비췄다.

 

 

 "노블이 이 왕국의 국법은 아니야. 노블의 수행인이라고 네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는 불을 그의 앞에 놓아둔 향초에 붙였다.

 코를 가린 미로가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나무뿌리가 열렸다.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큼만.

 

 

 "나를 잡으려 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해. 당신은 노블 타마린드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거야."

 

 미로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흡사 무덤처럼 보이는 겹겹이 뒤엉킨 나무뿌리 덩어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그을린 주머니에서 못쓰게 되어버린 그린의 약초를 꺼냈다.

 

 

 "네 주인에게 잘 전해. 나를 쫓지 말라고.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

 

 그것을 향초 위로 뿌린 미로가 한걸음 더 물러나자, 나무뿌리가 다시 서서히 닫혔다.

 

 

 "으아아악!!! 열어!! 열라고!!!"

 

 공포에 잠식된 병사들과 키리가 발버둥치며 소리쳤지만 두개의 나무뿌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데 뒤섞인 약초들이 향초 위로 떨어져 함께 타들어가며 이상한 연기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안에서 들려오던 비명소리는 멎었다.

 어쩐지 숨이 막히는 분위기 속에 아인이 미로에게 다가갔다.

 

 

 "..뭐였어?"

 

 조심스레 묻자, 미로가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몰라. 죽진 않겠지."

 

 그녀가 다시 손을 뻗으니 두개의 무덤처럼 보이는 나무뿌리의 윗부분이 조금 열렸다.

 그러자 속안에 고여 있던 향초의 연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다른 병사들이 있는 곳과는 달리 키리가 있는 쪽에서는 이상한 색의 연기가 새어 나왔다.

 

 

 "없애 줄 수 있나?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기는 싫은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미로를 아인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귀찮게 하는 군. 알겠다.]

 

 아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울리자, 미로는 두개의 나무뿌리 덩어리에서 등을 돌렸다.

 나무무덤에서 피어 오른 이상한 색의 연기는 허공에 흩어지기 전에 마치 누군가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사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렌은 눈을 크게 떴다.

 

 '과연..'

 

 듣던 대로 정말 말도 안되는 힘을 가진 것이 네이핀이라는 생각에 렌은 조금은 당황스런 시선으로 아인과 함께 있는 미로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아인에게 미로는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가자."

 

 싸늘한 미로의 태도에 당혹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무뿌리 덩어리를 돌아보던 아인이 이내 그녀를 따라 나섰다.

 

 

 

 

 ***

 

 

 

 "여깁니다!"

 

 병사 하나가 외치자, 멀끔한 중년 남자가 서둘러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스타스의 동쪽 게이트 앞.

 그 길 한복판에 나무뿌리가 서로 엉켜 만들어진 무덤 두개를 발견한 그가 미간을 구겼다.

 

 어쩐지 섬뜩한 광경이었다.

 

 

 "치워라."

 

 그가 나지막이 명령하자, 주변을 살피던 병사들이 모두 달려들어 두꺼운 나무뿌리를 베어냈다.

 서서히 나무뿌리가 벌어지고, 병사들이 그것을 모두 잘라내 한쪽에 치우자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이 훤히 드러났다.

 

 그를 본 남자는 더욱 짙은 주름을 만들어냈다.

 

 

 한곳에 묶여 있던 병사들은 하나같이 다 깊이 잠들어 있었다. 다행이도 그저 잠들어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떨어진 곳에 따로 묶여 있던 키리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넋이 나간 얼굴로 눈 밑은 검었으며 온몸엔 서리가 끼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왕국을 둘러싼 결계의 영향으로 늘 따뜻한 날씨를 자랑하는 에스타스.

 눈, 얼음, 서리 등은 프리나 지역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건만 이 무더운 날씨에도 키리는 입김을 뿜어내며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미간을 좁힌 채 키리를 바라보던 노블, 카이로스 타마린드가 주변을 살폈다.

 

 무언가 불에 탄 흔적이 있었고 병사들과 키리를 덮쳤던 나무뿌리.

 그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백발의 마녀.

 

 그가 수도에서 에스타스까지 단숨에 달려오게 만든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변을 살피며 그녀의 흔적이라도 찾아내려던 그의 시선은 이내 들려온 목소리를 향해 돌아갔다.

 

 

 "..쫓지 말라.. 그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

 

 완전히 넋이 나간 키리는 같은 말만 계속해서 반복했고, 그런 그를 바랍며 카이로스는 이것이 일종의 경고라고 느꼈다.

 

 

 자신을 쫓지 말라. 그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

 

 기억도 나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자신들이 그녀에게 한 말도 함께 떠올랐다.

 

 어린아이에게 하기엔 잔인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이 왕국에, 아니 왕궁에 해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끊임없이 왕위를 위협할 테니.

 

 뿐만 아니라 그녀가 보인 힘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러니 두려움에 휩싸여 그렇게도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키리와 병사들을 뒤덮고 있던, 잘려 나간 나무뿌리들을 힐끔 바라본 카이로스는 이 지경까지 온 상황을 통탄했다.

 

 그는 입안의 쓴맛을 삼키며 병사들에게 명했다.

 

 

 "..의사를 데려와야겠구나."

 

 키리에게 손댈 수가 없어 의사를 데리러 간 몇 병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카이로스가 고개를 돌려 남아있는 병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듣자 하니, 멜리사의 어리광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더구나. 어리석은 길로 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키리를 붙인 것인데.. 키리는 내 뜻을 잘못 이해한 듯싶고.. 소수만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저택으로 가자. 수도로 돌아가기 전에 그 아이 단속 좀 해야겠어."

 

 

 

 

 ***

 

 

 

 에스타스의 게이트를 지나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세사람.

 불이 붙었던 수레는 아예 흔적을 없애 버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얼마나 걸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슬슬 숲이 보였다.

 

 걷는 것이 힘들텐데도 두사람에게 부축을 받으며 아무 말 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렌을 힐끔 바라본 미로가 자신들이 온 길을 다시 돌아보았다.

 

 

 아무런 추적도 없었다.

 그리고 아마 아무런 추적도 없을 것이다.

 

 

 

 세사람이 숲길에 이르렀을 즈음, 미로가 갑작스레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기다려."

 

 그리고는 사람이 걷는 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의아한 얼굴로 미로의 등을 바라보던 아인과 렌은 게이트 앞에서 키리를 상대하며 어쩐지 심상치 않았던 그녀의 분위기를 기억해내고는 조심스레 뒤따라 나무 뒤에 숨었다.

 

 

 숲 깊은 곳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온 미로가 이내 너울을 벗었다.

 그녀는 정말 일말의 오차도 없이 고개를 홱 돌려 뒤쪽에 있는 나무를 향해 중얼거렸다.

 

 

 "기다리라니까.. 하여튼 말도 안 들어요."

 

 곧장 자신들을 향하는 미로의 시선에 아인과 렌이 어색하게 웃어버리자, 미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숲의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천천히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

 숲 속의 공기와 대화를 나누 듯.

 

 마치 숲과 하나가 된 듯한 그 모습에 렌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서있는 곳만, 하늘을 가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한줌 햇살이 비추는 듯 했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다시 눈을 뜬 미로가 근처에 있넌 나무 한 그루로 다가섰다.

 천천히 나무를 쓰다듬는 손길과 함께 다시 눈을 감았다.

 

 

 [이 숲의 가장 오래된 나무. 네가 이곳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내가 잊지 않을 테니, 나와 함께 가자.]

 

 

 마치 고개라도 끄덕이듯 살랑이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렸다.

 다시 눈을 뜬 미로의 머리칼이 서서히 하얗게 물들어 갔다.

 

 숲과 어우러져 나무를 쓰다듬는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워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가느다란 손끝 움직임을 따라 그 손길이 닿은 나무는 서서히 그 모습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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