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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살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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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2     조회 : 291     추천 : 3     분량 : 5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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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숲을 헤치며 수레를 미는 미로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길이 아닌 풀숲으로 수레를 미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춰 서서 쉴 수도, 멀쩡한 길로 갈 수도 없었다.

 멀쩡한 길로 가려면 너무나 오래 걸리는 데다가, 그렇게 여유 부릴 시간도 없었다.

 

 이 숲을 가로질러 가면 금세 헤르바 지역에 도착할 것이다.

 

 

 "끙.."

 

 이를 악물고 수레를 끌며 미로가 힐끔 만물상을 바라봤다.

 

 

 "아인, 좀 어때?"

 

 미로의 목소리에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아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열이 안 내려. 미로, 정말 가지고 있는 약초 아무것도 없어?"

 

 되돌아온 아인의 말에 미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면초나 망각초가 전부야. 치료에 쓸 만한 건 없어."

 

 그리고는 더욱 힘주어 수레를 밀었다.

 힘들게 수레를 미는 미로를 보며 아인도 밖에서 함께 수레를 밀고 싶었지만 렌의 상태를 계속 지켜보라는 미로의 말에 만물상에 남았다.

 

 상처가 덧나며 열이 나는 렌은 정신을 못 차리고 줄곧 잠들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열을 내리기 위해 아인이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렌의 간병을 하고 있었지만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한숨을 내쉰 아인이 다시 차가운 물에 담갔던 수건을 꼭 짜서 렌의 이마에 올려 놓았다.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괜스레 심술을 부린 것도.

 

 미로와 둘만의 공간에 왠지 외부인이 들어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렌을 처음 만났을 적엔 손에 상처를 달고 돌아왔고, 그를 구하러 갔을 적엔 혼자만 저택에서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들 전부 렌의 잘못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그런 그에게 심술을 부리는 자신이 더욱 못마땅했다.

 거기에 렌이 아프기까지 하자, 심술을 부린 것마저 미안해서 아인은 줄곧 풀이 죽어 있었다.

 

 

 "..짐 덩어리."

 

 나지막이 중얼거린 그 말이 렌을 가리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 스스로에게 한 말.

 스스로가 한심했다. 도망치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기로 에밀리와 약속 했는데..

 미로가 딱히 자신만을 위한 사람도, 가족인 것도 아닌데..

 

 렌이 동행하면서 왠지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혼자 괜스레 심술을 부린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탓했다. 왜 자신은 아직도 심술밖에 부릴 줄 모르는 어린애인 건지.

 

 

 "..미안, 하네.. 짐이 되면 안되는데.."

 

 고개를 숙였던 아인은 띄엄띄엄 들려오는 쉰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신이 들어?!"

 

 힘겹게 눈꺼풀을 올린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은 헐레벌떡 달려 물을 떠와서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렌에게 마시게 했다.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미로! 렌이-"

 

 하지만 창문을 연 그곳엔 어째서인지 멈춰 선 미로가 보였고, 미로의 등 너머로 앞을 막아 선 것을 발견한 아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며 경계를 드러내는 짐승. 아니, 짐승이라고 해도 되는지 의심이 들 만큼 몸집이 거대했다.

 미로의 세네 배는 되어 보이는 늑대.

 미로는 그 짐승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아인, 창문 닫아."

 "하지만.."

 "괜찮으니까 닫아."

 

 아인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닫았지만 창가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

 

 

 

 거대한 날개. 거대한 그 몸을 둘러싸고 있는 피부는 닿으면 미끄러질 듯이 매끈했다.

 길게 찌그러진 공 같은 머리 모양. 길게 찢어진 눈과 머리 중앙에 솟아난 뿔.

 새의 부리를 연상케 하는 튀어나온 주둥이와 뼈까지 씹을 수 있을 듯이 예리한 이빨.

 

 그 거대한 몸집이 하늘을 날면, 마을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헤르바 지역. 로단테 왕국 밖에도 많은 양의 약초를 수출해내는 지역이다.

 왕국의 모든 약초의 6할은 이곳에서 나온다.

 

 이 지역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절벽 위의 약초밭을 절벽 아래의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함께 키우며 살아간다.

 마을이 통째로 하나의 상단으로서 온 왕국과 약초 거래를 하고, 외부의 다른 나라나 제국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

 

 절벽의 반대쪽엔 산길이 있어, 그 산길의 꼭대기에 마치 누군가 잘라 놓은 듯이 평평한 땅에 한가득 약초가 피어난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들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신비한 지형과 약초가 자라나기에 최적의 환경.

 

 헤르바의 약초밭은 그 지역 사람들의 자랑거리이며,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약초 관리법과 약초밭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헤르바 지역에 거대 마물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끼이이이익!!!

 

 그 울음소리는 기괴하고 소름 끼쳤으며, 날카로운 눈은 그 누구도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약초밭을 차지하고는 마을을 벗어나려는 사람이 있으면 모조리 죽였다.

 그리하여 헤르바 지역 사람들은 꼼짝 없이 그곳에 갇혀,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히익.."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

 

 

 

 "차라리 다행인가.."

 

 나지막이 중얼거린 그 목소리에 늑대는 더욱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미로는 수레를 내려놓고 한걸음 수레에서 벗어났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저 짐승이었다면 조금 더 곤란한 상황이었을 테니.

 마주선 늑대와 미로의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너울의 천을 흔들었다.

 

 마물은 아니었다. 피어 오르는 악의가 보이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평범한 짐승도 아니었다.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미로가 손가락을 튕기며 늑대에게 물었다.

 

 "도깨비?"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던 늑대는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흥미롭다는 그녀의 목소리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칫."

 

 그러더니 혀를 차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뱉고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뛰어올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길게 땋아 내린 초록빛 머리카락. 어두운 피부색에 작은 몸집.

 거기에 머리에 난 뿔까지. 도깨비의 모습이었다.

 

 도깨비는 마력에 오랜 시간 노출된 생물, 혹은 무생물이 마력으로 자아를 갖고 생명체로 변화한 것을 일컫는다.

 그들은 대체로 아주 작은 몸집과 머리에 난 뿔이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미로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책에 나와있던 대로 마력의 기운이 진하게 풍기며, 마물과는 다른, 생명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마력이 느껴졌다.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

 

 

 "어떻게 안 거야? 동물로 둔갑은 자신 있었는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미로가 슬쩍 천을 걷어 얼굴을 드러냈다.

 

 

 "짐승이 아닌 냄새가 나서."

 

 말을 그렇게 했지만 실은 누가 봐도 평범한 짐승의 크기가 아니었다.

 정말 그걸로 동물로 둔갑했다고 말해도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뾰루퉁한 얼굴로 미로를 노려보는 도깨비는 정체가 드러났다고 해서 딱히 길을 비킬 생각은 없는듯 버티고 섰다.

 

 

 "상관없어. 어차피 여길 무사히 지나가지는 못할 테니까. 뭐, 지나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난 도깨비라고 봐주지는 않는데."

 "시끄러워. 먹을 걸 내놔!!"

 

 빽 소리치며 달려드는 녹빛 도깨비의 말에 미로는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버렸다.

 작은 몸집을 하고서는 자신만만하기에 무엇을 노리나 했더니 먹을 것을 내놓으라니.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달려들던 도깨비는 미로가 손을 뻗자, 그대로 허공에 머물러 허우적거렸다.

 

 

 "익.. 이게 뭐야!!"

 

 허공에서 발버둥치며 빽 소리치는 것이 딱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귀여운 그 모습에 미로는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냐고!!"

 "염력계 마녀가 염력을 다루는게 이상해?"

 

 마녀라는 말에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흐, 흥! 너 같은 건 내가 배만 안 고팠어도 한방이면 끝나!"

 

 오기를 부리는 듯한 도깨비의 마지막 말에 미로는 웃음을 터트렸다.

 허공에 둥둥 떠서 황당하다는 얼굴로 미로를 바라보는 도깨비.

 그리고 미로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등뒤에서 다시 창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미로..?"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아인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전까지 분명 미로의 몸집의 족히 세네 배는 되어 보이는 늑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세네 배는커녕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을 듯한 작은 꼬마 같은 것이 허공에 떠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웃지 마! 그것보다, 내려줘! 인마!!"

 

 호탕하게 웃던 미로가 '인마' 소리에 웃음을 뚝 그치고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휘휘 젓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공에 떠있던 도깨비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끄아악!! 하지 마! 내려 달라고!!"

 "좀 더 놀아주고 싶지만 지금 좀 서두르고 있어서 말이야."

 

 높은 나무의 가지 위에 도깨비를 걸쳐 놓은 미로가 다시 수레를 끌었다.

 걸음을 내디디던 미로는 '아,' 하고 깜빡했다는 듯 다시 도깨비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홱 집어 던졌다.

 

 

 "배고프면 그거라도 먹어."

 

 자신의 몸집만한 빵을 받아 들고는 뾰루퉁한 얼굴로 수레가 향하는 그 앞을 힐끔 바라본 도깨비.

 그러더니 부러 퉁명스러운 척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듯 계속해서 미로가 향하는 방향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짧은 한숨과 함께 미로를 붙잡았다.

 

 

 "그쪽으로는 가지 않는게 좋아."

 

 수레를 끌고 걸음을 옮기던 미로가 멈춰 서서 도깨비를 다시 돌아봤다.

 단숨에 빵을 먹어 치운 도깨비는 괜스레 미로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그 앞은 지금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야."

 "이 앞은 헤르바 지역일 텐데?"

 "응. 그러니까. 거기가 지금 위험하다고."

 

 헤르바 지역이 위험한 곳이라니. 지금껏 왕국을 떠돌며 그곳은 미로가 본 제일 활기차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군림하고 있는 노블도 없고, 귀족도 없으며 마을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 약초를 기르고 상단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미로는 다시 수레를 끌며 손가락을 까딱여 도깨비를 나뭇가지에서 내려 가까이로 데려왔다.

 

 

 "끄악!"

 "헤르바가 위험하다는게 무슨 말이야?"

 

 도망가지 못하게 허공에 계속 띄워 놓고는 수레를 끌며 묻는 미로.

 다시 허우저거리며 발버둥치던 도깨비는 이내 포기한 듯 허공에 둥둥 떠서 미로에게 끌려 헤르바로 향하며 말했다.

 

 

 "작은 동물로 둔갑하는 건 쉽고.. 그런 모습이면 사람들이 먹을 것도 잘 줬으니까 난 헤르바 지역세어 사람이랑 어울려 살았는데.. 얼마전에 헤르바 지역이 마물에게 습격 당했어."

 "습격?"

 

 고개를 끄덕이는 도깨비를 보며 미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티폰산맥을 점령했다는 마물들이 헤르바까지 내려온 것인가..

 아무래도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작은 도깨비는 금세 잡아 먹히니까.. 바로 이 숲으로 도망쳐 온 거야. 그래서 지금 헤르바가 어떤 상태인지는 몰라. 근데.."

 

 말끝을 흐린 도깨비는 걱정스런 얼굴로 앞을 바라봤다.

 그래도 지금껏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다. 혼자 도망쳐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습격 받은 이후에.. 헤르바에서 나온 사람도, 헤르바로 들어간 사람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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