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은 이 일대에서 꽤 유명한 한량으로 통했다. 말이 좋아 한량이지 나쁜 말로 하자면 끝도 없었다. 그 많고 많은 나쁜 말 중 그가 가장 많이들은 말은 바로······.
“야 이 개새끼야!”
그래. 바로 이말. 이름 이후 가장 많이 불린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여자들이 이별을 하면서 외쳤던 말이었다.
아니, 근데 그렇다고 내가 지금 진짜 개새끼가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낑낑”(꿈인가? 꿈이겠지?)
암만 이게 현실일 리가 없지.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어났더니 개새끼가 되어있습니다. 라니. 만화나 영화 혹은 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눈과 같이 새하얀 털에 겁에 질린 작은 눈망울에 기분에 따라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앙증맞은 꼬리! 게다가 결정적으로 낮아진 시야.
재원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자 거울 속의 강아지가 마치 뭐 마려워하는 모습처럼 네 발을 굴리는 모습이 보였다.
개는 네발짐승이라 사람처럼 손이 있어서 볼을 꼬집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끼잉”(휴우!)
영락없는 개새끼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재원이 한숨을 쉬자 그의 작은 두 귀가 처량하게 접혔다.
물론 재원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재원은 슬쩍 고개를 올려 시계를 쳐다봤다.
예전에는 그냥 살짝 고개만 올려도 보였을 시계가 목이 꺾일 듯이 올려다봐야 시계가 간신히 보였다.
1시. 해가 중천을 떠도 한참을 떴을 시간이었다. 그나마 현재 학기방학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행은 무슨 다행!
“아우우우~!”(나 돌아갈래!)
한낮 조용한 한 주택가에 서글픈 개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우으응.”(흐음.)
넓은 방안. 강아지가 되어버린 재원은 한순간에 시야가 바뀌어 낯설게 느껴지는 자신의 방안을 네발로 돌아다녔다.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졌던 사족보행도 본능에 따르니 쉽게 느껴졌다.
대체 정말 뭐가 문젤까? 나는 죽지도 않았는데. 어제 먹었던 탕수육이 문제였던 걸까? 아니, 근데 그건 개고기가 아니지 않나?
그것도 아님, 저녁에 먹었던 술이 문제일까? 술을 너무 마셔서 진짜 개가 되었다던가? 아니, 근데 난 정말 멀쩡한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우우우!”(미치겠다!)
당최 자신이 하루아침에 개가 되어버린 이유를 모르겠다. 태어나서 이토록 오랜 시간 깊이 고민하는 것도 태어나 처음인 재원은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까부터 제 의지가 상관없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킁킁!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있자니 이 본능에 충실한 개의 몸이 영역표시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강아지에게 있어 영역표시란 곧 오줌을 싸는 것이었다.
비록 그가 강아지를 키우진 않았지만, 길가의 전봇대에다가 오줌을 싸며 영역표시를 하는 강아지를 몇 번 보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 된다. 안 돼. 이곳은 방이라고. 것도 내방. 내방에서 노상방뇨를 하게 내버려둘 것 같으냐.
“끼이잉, 끼이잉.”(오줌 마려워.)
다짐도 잠시 영역표시의 본능과 상관없이 신체적인 본능에 발을 동동 굴렸다. 어쩌지?
제법 잘 사는 축에 속한 재원의 집에는 재원의 방에도 따로 욕실과 화장실이 있었지만, 작은 강아지의 몸인 상태로는 욕실 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계에 다다를 쯤 재원은 욕실의 문을 긁어댔다. 열려, 열리라고!
“끄으응! 끄응!”(제발 좀 열려라!)
재원의 바람과 달리 꽉 닫힌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던 문에 작은 자국들이 생겨났다.
재원이 화장실문과 싸움을 하는 동안. 재원을 깨우기 위해 재원의 엄마인 홍여사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쿵쿵쿵!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누구지? 재원이 귀를 쫑긋하며 문 쪽을 쳐다봤다.
“아들. 재원아. 그만 일어나야지. 언제까지······ 꺄악!! 여보!!”
방문을 연 홍여사는 찾고 있던 아들 대신 화장실 문 앞에서 낑낑대고 있는 하얀 털뭉치를 보고서 놀라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마찬가지로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등장해 자신을 보고서 큰 소리를 지르는 홍여사의 외침에 놀란 재원도 크게 소리를 질렀다.
“깨갱 깽깽!”(엄마야!)
놀라 자지러지는 작은 강아지의 모습에 퍽이나 가여워보였지만, 홍여사에게는 움직이는 그 작은 털뭉치는 끔찍함 그 자체였다. 벌써부터 몸이 가렵고 코가 근질거렸다.
주말이여서 집에 있던 재원의 아빠이자 홍여사의 남편인 석현이 아내가 지르는 고함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여보오!”
계단을 뛰어 올라가자 아내인 문영이 석현의 가슴팍에 안겼다. 바들바들 떠는 모습은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혹시 아들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나? 그것도 아니면 도둑이라도?
덜덜 떠는 문영을 품에 안은 석현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선 석현은 바들바들 떠는 문영을 자신의 뒤에 감춘 다음 심호흡을 내쉬고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별안간 사고를 당한 아들의 모습도 그리고, 혹시나 있을 줄 모른다고 상상했던 도둑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내와 마찬가지로 방 한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하얀 털을 가지고 있는 작디작은 강아지의 모습만 보일뿐이었다.
“웬 개새끼?”
바들바들 떨다 못해 놀란 나머지 오줌까지 지린 강아지의 모습이 처연하게 보였으나 원래 짐승에 대해서는 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석현에겐 바들바들 떠는 강아지의 모습에 살짝 당황할 뿐이었다.
그러다 뒤에서 왜 아내가 저토록 떨고 있는지 이해한 석현은 보기 드물게 화를 냈다.
“서재원. 이놈의 자식 들어오기만 해봐라.”
석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서 아들인 재원을 씹어댔다. 재원의 엄마이자, 석현의 아내인 홍문영은 지독한 강아지 털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재채기는 물론이요. 계속 털에 노출되면 심하게 피부가 울긋불긋 올라와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편 저도 모르게 놀라 오줌을 지리고만 재원은 서럽게 울며 아빠를 불렀다.
“끼이잉.”(아빠아.)
아빠를 부르며 석현의 근처까지 기어온 재원은 석현의 바짓가랑이에 얼굴을 비벼댔다.
“끄으응! 끄응!”(아빠, 아빠!)
반면 제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몸을 비벼대는 강아지의 행동이 거슬린 석현은 살짝 힘을 줘 강아지가 된 재원을 밀쳐냈다.
졸지에 아빠에게 내쳐진 재원은 깨갱하고 놀라며 꼬리를 바짝 붙이고서 석현을 올려다봤다.
제법 불쌍해 보이며 애처롭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석현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핸드폰 벨소리가 침대 가에서 들려왔다.
“이놈의 자식이 핸드폰도 내버려두고 어디를 싸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거칠게 전화를 끊은 석현의 시선이 아직도 제 눈치를 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강아지에게로 향했다.
새하얀 털에 축 처진 귀, 그리고 물기를 머금어 더 빛나는 까만 눈동자가 제법 사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강아지였지만, 영락없는 똥개의 모습이었다.
“어디서 이런 똥개를 주워 와서는.”
씨근덕거리던 석현은 바들바들 떠는 강아지에게 다가가 강아지의 목덜미를 잡아서 올렸다.
“끼잉, 낑낑!”(아빠? 왜 그래요?)
낑낑, 목덜미를 잡아 올리자 강아지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목덜미가 붙잡힌 재원은 불안한 표정으로 석현을 올려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덜미를 잡은 손은 무자비하기만 했다. 무자비하게 잡아 올린 목덜미를 잡고서 석현은 그대로 덜덜 떨고 있는 문영을 지나쳐 성큼성큼 1층으로 내려갔다. 설마, 설마······!
재원은 불안한 마음에 발버둥을 쳐봤지만, 이미 목덜미가 잡힌 시점에서 그의 작은 반항은 소용이 없었다.
1층으로 내려온 석현은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집 밖을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어린 강아지인 재원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불안한 느낌은 이리도 빗나가지를 않는 지.
쓰윽, 주변을 둘러본 석현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대로 아직 새끼인 강아지를 인정사정없이 바닥에 내팽개쳤다.
“깨갱! 깽!!”(악!!)
갑작스러운 충격에 재원은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강아지의 언어였다.
“서재원. 이놈의 자식 들어오기만 해봐라. 아주 그냥.”
그러거나 말거나 쓰윽,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본 석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마냥 그렇게 집안으로 사라졌다.
차가운 눈이 덮인 바닥에 내팽개쳐진 재원은 갑자기 느껴진 추락의 느낌과 추락으로 인해 생긴 아픔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애처로운 강아지의 울음소리만 작게 울렸다.
“끼이잉, 끼잉.”(아파, 아프다고.)
절뚝, 절뚝. 뒷다리를 절며 일어선 재원은 냉정하게 닫힌 자신의 집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이었을 땐 몇 걸음 되지 않았던 거리가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절뚝거리며 문 앞에 도착한 재원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울어댔다.
“아우우우! 아우!”(엄마!, 아빠! 나 재원이야! 엄마 아빠 아들 재원이라고!)
재원의 애처로운 외침에도 냉정하게 닫힌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추워. 몸을 덜덜 떨면서도 재원은 멈추지 않고 울부짖었다.
“어? 강아지다!”
“똥개야 똥개!”
작은 강아지의 울부짖음에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몇 몇 사내아이들이 재원의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다가오는 발자국소리에 귀를 쫑긋 새우던 재원은 개구진 표정을 하고서 다가오는 거대한 초등학생의 무리를 보고 흠칫 몸을 굳혔다.
“으르르!”(오지마!)
“어? 경계한다.”
털을 세우고 아직 제대로 나지 않은 이빨을 내세우며 으르렁거리는 작은 강아지의 모습은 제법 덩치가 있는 초등학생들에겐 크게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나 물릴까봐 걱정은 됐는지 더 이상 근처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길가에 있던 돌멩이를 줍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재원은 사내아이들을 경계를 하며 슬금슬금 뒷걸음 쳤다. 그러나 그가 미처 피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돌멩이가 날아 왔다. 돌멩이 하나가 재원의 앞발에 명중했다.
“깨갱, 깽!”(악! 이 초딩새끼들이!)
“아싸! 명중!”
“에잇! 이거나 맞아라!”
재원의 앞발에 돌멩이를 맞춘 사내아이는 기뻐서 폴짝 뛰었고, 반면 맞추지 못한 아이들은 더 독기가 올라 근처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 재원에게 던져댔다.
돌멩이뿐만 아니라 차가운 눈뭉치도 던져댔다. 쉬지 않고 날아오는 돌멩이 세례에 재원은 뒷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전력질주를 했다.
“엇! 도망간다! 게 서거라!”
“똥개~! 거기서 이 똥개야!”
상대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그리고 재원은 아직 어리지만 네발이 달린 짐승이었다. 게다가 눈이 녹아 미끄러워진 바닥 탓에 재원을 쫒아오는 아이들이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재원은 계속 자신을 쫒아오는 아이들을 피해 어두운 골목길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한 낮이어도 어두운 골목길은 무서운지 아이들은 더 이상 재원을 따라오지 않았다.
안심이 된 재원은 더러운 길목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털썩, 길바닥에 주저앉은 재원은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끼우웅! 끼잉, 끼이잉.”(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야!)
더러운 길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눈물을 흘리던 재원은 멀리서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뭐지?
“사아악!”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어두운 골목길 구석에서 번뜩이는 눈동자들과 눈이 마주친 재원은 흠칫 놀라 딸꾹질을 했다.
“끼윽! 끼윽!”
“사아아아악!”
재원이 놀라거나 말거나 제 구역이 침범당한 길고양이 무리들은 재원을 무섭게 위협했다.
결국 재원은 길고양이들의 기세에 눌려 조용히 그러나 재빠르게 그 골목길을 벗어났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했던가? 그 말 그대로 재원은 스물여섯 살 인생 처음으로 개가 되어 집을 떠나서, 느끼게 된다는 그 개고생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