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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이 너무해!
작가 : 패티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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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작성일 : 17-11-01     조회 : 278     추천 : 4     분량 : 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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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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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크라젠 공작 성을 두 눈에 담았을 때,

 

 

 로지가 느낀 감정은 하나였다.

 

 

 “우와아아. 크다.”

 

 

 황궁보다 더 큰 거 아냐?

 

 

 제국법상 그럴 리는 없겠지만, 황궁을 제외하면 제국에서 가장 큰 성이 분명할 거라고 그녀가 생각했다.

 

 

 로지는 머릿속으로 눈앞에 놓인 끝도 없이 펼쳐진 정원에 그녀가 세 들어 사는 월셋방이 도대체 몇 개쯤 들어갈지 가늠해봤다.

 

 

 ‘아니. 이쯤이면 내 방이 아니라 건물 단위로 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제도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만큼 세가 비싸서 코딱지보다 조금 더 클 뿐인 방 하나를 얻는데도 많은 돈이 들었다. 후원하는 귀족이 없었다면 그녀는 아마 학창시절 내내 노동으로 흘린 땀에 파묻혀 살았을 것이다.

 

 

 그러한 방은 물론이고 그녀가 살던 건물이 통째로 몇 십 채는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너른 공간을 보니 눈이 저절로 팽팽 돌았다. 추천장만 달랑 들고 당당하게 크라젠 령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을 때만 해도 충만했던 자신감은 성의 정문을 지나는 순간, 그녀의 할머니 손등마냥 쪼그라들었다.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습니까?”

 

 

 로지가 괜스레 제 손등을 주무르며 긴장해있자 앞서 걷던 알렉스가 기색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과장스럽게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걸음을 멈춘 그가 로지의 표정을 한 번 살폈다. 로지가 거울을 보며 수백 번 연습했던 면접용 미소를 지어보이자 그가 다시 몸을 돌렸다. 집사 양성 학교가 있다면 살아있는 교본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은 그는 따로 염색하지 않아 희끗한 머리카락마저도 기품 있어 보였다.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가 단정한 것이 공작저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그녀가 올 때에 맞춰 미리 마중을 나와 있던 그는 자신을 공작가의 총괄 집사라 소개했다. 취직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취업준비생 한 명을 위해 총괄 집사가 직접 마중을 나오다니.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대우에 의아함도 잠시,

 

 

 로지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젠 공작이 재능 있는 인재를 아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녀의 마법 실력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대단했으니 저와 같은 인재를 탐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로지는 생각했다.

 

 

 그 자신감은 몇 분 뒤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성을 마주하고 사라져버렸지만.

 

 

 공작은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이미 면접이 시작된 기분에 그녀가 부러 허리를 더욱 꼿꼿하게 펴며 집사의 뒤를 따랐다.

 

 

 

 성 안은 바깥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기둥의 밑단까지 세심하게 마감한 티가 나는 내부는 정갈하고 깔끔했던 외관과는 사뭇 다른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리석에 그녀의 구두 모양으로 흙 자국이 생기는 것을 본 로지가 속으로 작게 비명을 질렀다.

 

 

 “로지 양께서 이곳에서 같이 일하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공작님은 깐깐하시지만 그만큼 그 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이에게는 많은 지원을 해주시죠.”

 

 

 관광을 하듯이 천천히 성 내부를 돌아보며 설명해주던 알렉스가 문득 말을 덧붙였다. 목소리에 공작에 대한 신뢰가 실린 것이 느껴졌다. 자상한 목소리에 로지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속마음에 로지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총괄 집사라면 공작님 다음 가는 이 성의 실세나 마찬가지인데 벌써부터 방정맞은 성격을 다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알렉스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로지 양이 가져온 짐은 일단 숙소에 놓아두겠습니다.”

 

 “네에? 음, 아직 결정이 난 것도 아닌데 벌써 짐을 숙소에 두기엔 좀 빠르지…않을까요?”

 

 

 물론 취직이 안 될 거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차란 게 있는데 알렉스는 아까부터 이미 그녀가 공작성에서 일하는 게 확정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가 당황한 것이 느껴졌는지 알렉스가 말을 이었다. 어쩐지 말투가 좀 빨라진 것 같다.

 

 

 ‘에이. 집사의 표본이라 해도 될 분이신데 말이 빨라지시겠어?’

 

 

 “큼. 먼 길을 오셨으니 대접하는 의미에서 공작님께서 지시하신 일입니다. 로지 양도 곧 만나 뵈면 알겠지만 공작님께서는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 박하지 않답니다.”

 

 

 그러니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여독이 풀릴 때까지 묵고 가도록 그 짐도 숙소에 넣어둔 것이라는 둥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따뜻한 갈색이 고풍스러운 문이었다.

 

 

 크라젠 공작가를 상징하는 검을 문 사자가 커다랗게 양각된 문은 그녀의 키보다 훨씬 높았다. 누가 보아도 공작의 집무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문의 위용에 로지가 새삼 숨을 가다듬었다.

 

 

 알렉스가 금속성의 손잡이를 잡고 두드렸다.

 

 

 “전하. 로지 카펜샤 양이 왔습니다.”

 

 

 그가 크게 외치자 안에서 갑자기 우당탕탕, 무언가 뒤집어 엎는 소리가 났다. 어찌나 큰 소리였는지 딱 봐도 방음 엄청 잘 될 것 같은 두꺼운 문을 뚫고 그녀의 귀에까지 소란이 닿았다.

 

 

 ‘뭐지? 무슨 일이지?’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인지 로지가 고민했다. 그녀의 고운 양 눈썹 사이로 주름이 질 무렵 문 너머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로지는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법을 배우고 마력을 몸에 받아들이는 마법사들은 비마법사보다 주변의 기를 읽는 데에 민감했다. 혹자는 육감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심안이라고도 하는-주로 15세의 아이들이- 감각은 마법을 잘 다룰수록 발달했다. 거의 길가에 돗자리 깔아도 될 정도인 로지의 예감이 무언가 불길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시지요.”

 

 

 하지만 등을 떠미는 알렉스에 의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야만 했다.

 

 

 

 그녀가 들어가자마자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로지가 자세를 바로 하며 허리를 숙였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게도 긴장한 와중에 흡족한 인사 각도가 나온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로지 카펜샤입니다.”

 

 

 로지가 만면에 면접용 미소를 띠고 인사했다. 이제 공작의 허락이 떨어지면 몸을 바로 펴고 면접을 진행하면 된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예상 질문을 곱씹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원래라면 바로 일어나라는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답이 없었다. 앞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분명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아무 반응이 없다니.

 

 

 ‘무슨 일이지? 선배들이 분명 면접관들이 바로 고개 들라고 한다고 말해줬는데……. 내가 뭐 잘 못 했나? 어. 혹시 내가 인사를 속으로만 했나?’

 

 

 슬슬 구부린 허리가 아파왔다. 임의로 허리를 펴고 싶지만 공작과의 신분차를 생각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럴 수 없었다. 로지가 구두 속에 가려진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녀가 제가 너무 긴장해서 속으로만 인사를 한 것 같다고 여기며 다시 인사말을 내뱉으려던 순간이었다.

 

 

 

 “이제 고개 좀 들지.”

 

 

 상당히 거침이 없는 말투였다. 아무리 공작이라지만 면접을 보는 첫 만남에 나오기엔 무례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로지가 놀라 퍼뜩 고개만 위로 들었다. 그리곤 숨을 흡하고 들이쉬었다.

 

 

 남성의 허리가 그녀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어찌나 가까이에 서 있는지 셔츠 자락에 씨실과 날실 엮인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대로 굳어 여전히 허리는 굽히고 고개만 든 우스꽝스러운 자세에 그녀의 머리 위에서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 특기가 마법이라 들었는데 취미가 곡예인지는 미처 몰랐군.”

 

 “…네?”

 

 “그대로 계속 있을 건가? 나야 상관없지만, 고개를 그렇게 과하게 꺾고 있으면 근력을 기르기도 전에 부상을 입을 것 같은데.”

 

 

 연달아 무례한 평가를 이어가는 목소리는 오히려 여상했다. 마치 친한 친구에게 ‘난 오늘 아침에 빵을 먹었어.’를 말하는 투로 신랄하게 평을 한다.

 

 

 그 온도 차에 로지의 낯이 빨갛게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어떡해. 망했다. 당황스런 감정으로 인해 잽싸게 허리를 펴는 와중에도 발목을 삐끗해 살짝 중심을 잃을 뻔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뻔뻔하게 나가지 않으면 여기까지 내려오자마자 짐 들고 제도 행 기차를 타게 생겼다.

 

 

 왼쪽 발목이 시큰거렸다.

 

 

 로지는 부러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고개를 들었다.

 

 

 ‘이 분이 카지르 드 크라젠 공작님…….’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이며 잡지에 실리는 인물이지만 워낙 국경지대에서 전투를 지휘하다보니 정작 그의 초상화는 시중에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일하다시피 한 그의 어릴 적 초상화와 활자로 이루어진 소문만이 그녀가 접할 수 있는 크라젠 공작에 대한 정보였다.

 

 

 혹자는 그것만으로도 제도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할 정도이니 그가 엄청 매력적이고 잘생겼을 거라고 해지만 사실 제도에서 기사만 접하던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로지는 크라젠 공작을 존경하긴 했지만 그것이 외모에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신분 고하와 성별에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젊은 나이에 현장을 지휘하는 그 능력에 감동을 받았을 뿐이다. 그녀는 오히려 공작이 정계와 군권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그를 좀 더 바깥으로 부각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외모가 잘났다고 소문을 낸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외모까지 겸비하면 작은 업적도 커 보이는 법이니까.

 

 

 특히나 현재 황족에 황자가 없어 황녀가 차기 황제로 거론되고 있을수록.

 

 

 선선대 황제가 제국의 크기를 너무 많이 불린 탓에 사실 제국은 현재 소화불량 상태였다. 아직도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이 와중에 차기 황위계승자가 여성이다보니 황권이 약해질 틈을 타 독립을 꾀하는 지역들이 있었다.

 

 

 그러니 필요한 영웅적 서사라고 생각했다.

 

 

 

 로지가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이건…….’

 

 

 그녀는 마주보고 서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각 잡히고 젠틀한 분위기를 생각하며 왔건만 눈앞의 남자는 한량처럼 주머니에 양 손을 꽂고 있었다. 그녀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느슨하게 풀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큰 키 때문일 지도 몰랐다. 로지의 시선이 저절로 그의 넓은 어깨로 향했다. 소드 마스터라는 것을 증명하듯 예술적으로 잘 짜인 몸이었다. 대충 여며 풀어진 앞섶 사이로 일자로 쭉 뻗은 쇄골과 승모근이 보였다.

 

 

 로지는 어쩐지 얼굴이 화끈해져 급하게 시선을 좀 더 위로 올렸다,

 

 

 아직 환한 대낮인데도 빛을 모조리 흡수했는지 밤하늘 같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쳐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그의 야성미를 부각시켰다. 공작가의 집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것과 반대였다.

 

 

 그 밑으로 이어지는 깊은 눈매와 사막의 모래색으로 반짝이는 두 눈동자. 반듯하게 솟은 코, 선 굵은 턱선…….

 

 

 “감상은 끝났나.”

 

 

 “헙.”

 

 

 공작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로지는 번개 맞은 옥수수 알 마냥 파드득 떨었다. 홀렸던 정신이 돌아왔다.

 

 

 ‘…신종 정신계 공격인가.’

 

 

 정신계 공격 수준의 외모이긴 했다. 태어나서 남자라곤 고향의 코흘리개들과 비실, 부실한 마법사 동료들, 교수들만 봤던 로지에겐 특히나 기습 공격으로 혼을 쏙 빼놓기에 딱 이었다.

 

 

 카지르는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로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작은 몸이군.'

 

 

 그는 공작가로 날아왔던 그녀의 지원서를 떠올렸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간의 치열했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대한 연구자료와 공격계 마법들.

 

 그것을 같이 봤었던 기사단장 또한 혀를 내두르며 기사단에 꼭 필요한 인재가 분명하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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