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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이 너무해!
작가 : 패티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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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작성일 : 17-11-01     조회 : 251     추천 : 3     분량 : 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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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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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얇은 눈꺼풀 아래로 그의 모래색 눈동자가 숨었다가 나타난다. 그에 맞춰 풍성한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건조한 바람이 이는 그의 땅과 닮은 눈동자가 선명해졌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여전히 그녀는 제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가 들고 있던 서류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래. 물 속성에 특화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관련성과가 매우 우수하군. 새로운 마법 수식도 여러 개 개발해내고 말이야.”

 

 

 서류를 훑으며 하나하나 짚어가는 공작의 목소리가 넓은 방 안을 잔잔하게 맴돌았다. 연이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로지의 볼이 햄스터 마냥 양 쪽으로 씰룩였다.

 

 

 ‘안 돼. 지금은 면접 중이라고. 진정해라 입꼬리야.’

 

 

 연신 위로 솟으려는 입 근육을 남몰래 꾸욱 누르며 로지가 부러 카지르 너머에 있는 거대한 창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느새 해가 지는지 창문을 타고 주황빛 색채가 아름답게 쏟아졌다. 남부지방답게 붉게 타오르는 석양은 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기운이 물씬 풍겼다. 그 빛은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를 밝게 물들이곤 짧게 깎아 정돈한 공작저의 정원을 쓸더니 이내 공작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로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니 마음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내리는 것에 성공한 나머지 미남 효과에 반응해 그녀의 눈매가 바보같이 풀어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네. 뿐만 아니라 피오체 교수님 밑에서 연구를 함께 하며 국제적인 학술회의에 보좌관 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무대를 경험하며 아카데미 바깥에 얼마나 높은 세계가 있는지를 깨달았고 각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단은 단체 생활이 원칙인 만큼 사람을…….”

 

 

 “우리 기사단이 어떤 일을 주로 수행하는지는 알고 있나?”

 

 

 “네? 아, 네. 사자 기사단은 제국의 국경을 수호하는, 자랑스런 크라젠 공작 산하의 기사단으로 요괴 토벌은 물론이고, 각종 분쟁지역의 갈등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장황하게 자기 어필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온 공작의 말에 순간 당황한 로지가 잠깐 새된 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사람이 열심히 잘난 점을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단칼에 끊을 필요가 있는 건지. 그녀의 눈썹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 때 서류만 바라보던 공작이 짧게 혀를 찼다. 그가 들고 있던 서류를 뒤로 던지며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는 표정의 의미에 로지가 흠칫, 자세를 다시 바로 세웠다. 뭔가 잘 못 말한 게 있는지 속으로 열심히 셈하던 그녀에게 공작의 말이 내리꽂혔다.

 

 

 “지금껏 입단을 원했던 이들은 모두 입으로는 쉽게 나불거렸어.”

 

 

 ‘나…나불거려?’

 

 

 상류 계급의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상당히 저렴한 표현이었다. 촌구석 출신이지만 철이 들 무렵부터 제도에서 대접받으며 살아온 로지에겐 그다지 익숙치않은 단어이기도 했다. 그녀가 당황하는 동안에도 공작은 계속 말을 이었다.

 

 

 “시중에 흔하게 널린 로망스 소설이나 주워 읽고. 기사로만 접한 사건을 보고.”

 

 

 그가 책상에 기대고 있던 몸을 폈다. 아주 조금 자세를 바꿨을 뿐인데 그에게서 쉬이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가 흘렀다. 분명 오후의 햇살처럼 나긋하고 느슨했던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짐승의 날 선 긴장감으로 변모했다. 제도의 영애들이 초상화를 수집하며 삑삑뺙뺙 탄성 섞인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조각 같은 몸이 이 순간 너무나도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로지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등에 말린 지푸라기를 이고 뛰어드는 떨거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곱게만 자라 콜로세움의 개새끼만 보고 실제 요괴라 믿는 치들 말이야.

 

 

 공작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그 선을 타고 뒤로 넘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아직 제국의 국경은 불안정 해. 수없이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게릴라전이 끊이질 않아. 그걸 수습해야 하건만, 게릴라의 폭격을 맞고 다 무너진 폐허 밑에 깔려 신음하는 다리 잘린 어린아이를 보고 토악질이나 해대는 정신 빠진 놈들. 그런 놈들이 처음에는 환상에 젖어 뜨거운 동료애니 뭐니를 부르짖다 현실을 알고 뛰쳐나가는 거지. 물론 그런 놈들은 군법으로 다스리지만.”

 

 

 공작의 말엔 어떠한 흥분이나 분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이어지는 낮은 말투였지만 그 내용은 날카로웠다. 그녀를 사정없이 찌르는 이야기에 반발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고 나왔다. 로지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녀를 그저 그런 어중이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에 목구멍이 홧홧하게 달아올랐지만 막상 틀린 말이 없었다.

 

 

 그녀 또한 분쟁지역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저 아카데미와 실험실만을 오가며 신문으로만 접한 공작의 위명에 반해 여기까지 내려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로선 꽤 오래전부터 굳게 정했던 진로였다. 그를 위해 제도의 내로라하는 마법연구기관들의 제의도 물리치고, 황실의 권유도 사양한 채 이 남부까지 내려온 것이 아니던가. 게다가 로지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이들과는 달랐다. 아니, 달라야만 했다.

 

 

 철이 든 이후로 받아본 적이 없는 대접에 붉어진 낯을 식힐 새도 없이 로지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

 

 

 “실전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끈기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게다가 제 마법은 여러면에서 매우 유용합니다. 기사단에 입단하는 것을 꿈꾸며 제가 개발한 공격마법은 이미 그 살상력을 제마련(제국마법인연합회) 에서도 인정받았어요. 마법이 함께한다면 모든 전투는 매우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어서 나를 뽑아. 이제 기다리기 지쳤단 말이다. 로지는 얼른 기사단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치레를 받고 배정된 방으로 가서 눕고 싶었다. 온종일 기차를 타고, 쉴 새도 없이 바로 공작 저까지 온 터라 온 몸이 피곤했다.

 

 

 나 같은 천재를 안 뽑고 배기겠어? 이것이 딱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마음이었다.

 

 

 “물마법에 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법사이지. 그 능력은 놓치기 아까울 정도야.”

 

 

 “그러면……!”

 

 

 “하지만, 그 외 마법에 대해서는 아카데미 평균치의 운용력을 보이더군. 게다가 전략전술 성적도 중상위권에 체력은 중하. 무거운 군장을 차고 행군이나 할 수 있겠나?”

 

 

 공작이 그녀의 팔을 무감하게 훑었다. 제도 내에 있는 연구실과 아카데미에만 틀어박혀 생활하느라 햇볕 한 번 제대로 쬔 적 없는 새하얀 팔은 보기에도 몹시 연약했다.

 

 

 “로지 카펜샤 양. 기사단이 가는 곳은 전쟁터야.”

 

 

 공작이 할 말이 끝났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굽혔다. 아, 신발에 뭐가 묻었군. 구두 앞 코를 성의없이 툭툭 치던 그가 고개를 다시 들더니 멍하니 서 있는 로지를 향해 물었다.

 

 

 “안 나가나?”

 

 

 그의 한마디와 함께 로지의 귀에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자존심에서 난 소리였다.

 

 

 

 

 

 육중한 문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계속 대기하고 있던 건지 여전히 문 밖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서 있던 집사가 로지에게 다가갔다. 로지는 정신이 빠진 얼굴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집사 알렉스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라 걱정스러운 낯을 하다 이내 로지를 손님용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입니다. 기차를 이용한다 해도 제도에서 이곳은 굉장히 먼 거리죠. 아무쪼록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알렉스가 방문을 열어주며 인자하게 말했다. 로지는 여전히 넋이 나간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입단도 안 시켜줬으면서 묵을 방을 주면 다란 말이 말인가 아닌가 말이냐……. 로지의 사고회로가 말 같지도 않은 언어를 마구 뱉어냈다. 물론 속으로만. 그녀에겐 지금 주변의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푹신한 침대와 이불만이 너무나도 간절할 따름이었다.

 

 

 알렉스가 구비용품과 로지가 가져온 짐이 어디에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나가자 그녀는 옷도 벗지 않은 채로 곧장 눈앞에 보이는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질 좋은 털을 사용했는지 매우 폭신한 이불이 그녀의 뺨에 가볍게 달라붙었다. 온 몸에 진이 다 빠져 이마에 맺힌 땀을 대충 이불 위에 문지른 로지가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까인 거야? 정말? 감히 날? 이 로지 카펜샤를?”

 

 

 제국의 내로라하는 상단과 연구기관과 심지어 황실에서도 앞다투어 모셔가려는 이 로지 카펜샤를 퇴짜 놨다고?

 

 

 "이, 공작……!

 

 "

 

 ‘이 나쁜 새끼!.’

 

 

 검술의 경지에 오른 자라 혹시라도 목소리가 들릴까봐 속으로 욕을 한 로지가 분한 듯 씩씩거리며 다시 침대 위로 길게 늘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한 현실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당연히 될 줄 알았기에,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기에 그만큼 그녀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으아으아아아! 왜, 어째서! 나는 로지 카펜샤인데. 이 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불세출의 마법천재가 바로 나라고!”

 

 

 '후아후아. 진정하자. 로지. 이건 꿈이야.'

 

 

  눈을 감았다가 뜨면 넌 기차역 앞에 있는 거고, 다시 집사의 안내를 받아서 공작의 집무실로 가는 거야. 그러면 공작이 문을 열고 나와서

 

 

 짜잔! 아까 전은 서프라이즈 입니다. 의연하게 잘 대처하셨군요. 로지 카펜샤님. 당신의 인내심에 감탄했습니다. 당신 같은 천재 마법사를 내보낸다는 건 우리 기사단에 아주 중대한 손실이나 마찬가지죠…….

 

 

 “……는 개풀 뜯어 먹는 소리하네.”

 

 

 

 이제 정말 사자 기사단에는 입단할 수 없는 걸까? 하지만 그녀는 기사단원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입단할 거라면, 그녀가 익히 위명을 들어온 크라젠 공작가의 기사단원이길 원했다. 그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희미하게 남아버린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제는 뭐, 어린애 소꿉놀이 같던 그 약속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러면 어디 다른 곳을 지원해봐야 하나. 아, 자존심이 있지. 여기 지원한 걸 모두가 다 아는데 어떻게 다른 곳을 찾아가.’

 

 

 “방만 좋으면 다냐. 어차피 면접탈락이라 여기 머무르는 것도 눈치 보이는데 말이야. 도대체 며칠을 머물러야 좋은 거야? 이런 상황, 나만 민망한 거야?”

 

 

 원래 면접탈락하면 바로 짐 들고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인사 한 번 하고 나가야 되는 게 상식인 것 아닌가. 로지는 엎어져 있던 몸을 바로 누이며 평민은 모르는 귀족들만의 규범이 있는 건지 머리를 굴렸다.

 

 

 귀족이 되어본 적이 없어 나오는 답은 없었다.

 

 

 ‘그런데 방은 진짜 좋네. 크라젠 공작가는 역시 다르구나. 일개 면접자에게도 이런 방을 내어줄 정도라니.’

 

 

 마차를 타고 사유지만 30분은 달렸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몰랐다. 성에 입성하기 직전 보았던 드넓은 정원과 거대한 첨탑을 상기하자 어쩐지 너무나도 규모가 크게 느껴졌다. 로지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래, 잘 먹고 잘 노는 게 답이야. 기왕 온 거 맛있는 거나 많이 먹고 돌아가야지.”

 

 

 그리고 기회를 봐서 공작에게 제 능력을 좀 더 보여주면 그의 생각이 바뀔 지도 몰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능력 있는 사람에게 공정하게 자리를 주는 것으로 유명한 자이니까.

 

 

 “일단, 좀 자자.”

 

 

 로지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로지를 방으로 안내한 알렉스는 카지르의 집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푹신한 카펫이 깔려있다지만 무거운 구두굽이 박힌 신발을 신고도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조용한 자세는 그야말로 집사 중의 집사라 할 만 했다.

 

 

 집무실 앞에 도착한 그가 손잡이를 잡고 정중하게 문을 두드렸다.

 

 

 이내 저절로 열린 문 사이로 몸을 들인 그가 공작을 향해 짐짓 나무라는 어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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