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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이 너무해!
작가 : 패티라이트
작품등록일 : 20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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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작성일 : 17-11-03     조회 : 266     추천 : 2     분량 : 6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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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끈한 물에 한참을 앉아있었더니 어느새 깜박 졸았나보다. 로지가 화장대에 앉으며 발개진 두 볼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실험실에 처박혀 사는 여느 마법사들과 같이 햇볕을 받지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하얀 얼굴 위로 붉은 기가 핑그르르 맴돌았다.

 

 

 거울 속의 자신을 요모조모 뜯어보던 로지가 화장대에 올려진 기초화장품을 살펴보았다. 공작가에 구비된 용품답게 하나하나 고급스러운 케이스에 담겨져 있었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녀의 가지런한 눈썹 한 쪽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로지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침방 한켠에 마련된 드레스룸에서 가방 하나가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날아온다. 로지는 작은 손놀림만으로 가방을 제 무릎에 놓은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면접 때 보았던 공작의 얄미운 얼굴이 잠깐 떠올라 저도 모르게 허공에 주먹질을 할 뻔 했지만.

 

 

 ‘내가 다른 마법은 평균치라고 면박을 주었다 이거지? 아무리 그래도 천재들만 모인다는 곳에서 평균인 거라고! 평범한 마법사는 발끝도 따라오지 못 할 능력인데 이래서 비마법사들이란.’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마음속으로 욕하며-누가 들을까봐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는다.- 가방을 뒤적였다. 작지만 꽤 빵빵했던 가방에서 화장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토너, 수분크림, 오일에센스, 마스크팩, 화장솜, 면봉 등등.

 

 

 그 중 제도에서 한창 유행하는, 천연 액기스를 넣었다는 장미수를 화장솜에 적셔 두 볼에 문지르며 로지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화장품을 제도에서 가져오길 잘했어. 아무리 공작가라고 하지만, 역시 손님방에 최신 유행품까지 구비해놓을 수는 없는 거지.”

 

 

 최근 패션 회사 로젠의 수석 디자이너가 바뀌면서 마법과 공학을 접목시켜 성능 좋고 간편한 화장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평민들도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고가의 물품까지 같이 판매하는 로젠 사는, 미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두가 알만큼 화장품 업계의 떠오르는 신흥 강자였다. 로지는 자신의 연구를 후원해 줄 단체를 찾다가 우연한 기회로 로젠 사와 연이 닿았고, 그녀와 회사의 합작으로 마스크팩이 탄생하게 되었다.

 

 마스크팩이 처음 출시됐을 때, 사교계의 반응은 폭발적이어서,

 

  모두가 그 해괴하지만, 동시에 매우 간편하고 성능 좋은 젖은 종이에 열광할 정도였다.

 

 

 로지는 프로징 마법을 걸어 차갑게 만든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이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 때, 굳게 닫혀있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달칵, 허락이 떨어지자 바로 부드럽게 열리는 문 사이로 앳된 얼굴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로지 카펜샤님을 모시게 된 에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모신다고요? …누구를요?”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누가 보아도 ‘전 공작가 시녀입니다.’ 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생기 있게 구불거리는 다갈색 머리카락을 둥글게 말아 머리 망으로 감싸고 발목까지 오는 단정한 하늘색 원피스 위로 하얀 에이프런을 허리에 두른 여자는 상당히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두 눈이 머리색과 꼭 닮은 갈색으로 반짝였다.

 

 난데없는 시녀의 등장에 당황하여 로지의 혀가 꼬였다.

 

 “실례지만 제 시중을 들기로 한 것이 맞는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입단 시험에 떨어졌는데요. 차마 나오지 못한 뒷말을 속으로만 삼키며 로지가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물론 기사가 되면 준 귀족의 작위를 받는다. 특히 그녀가 지원한 곳은 제국에서 가장 너른 땅을 봉토로 삼은, 권위 있는 공작가의 직속 기사단인 만큼 받는 대우도 남다른 것이 당연했지만.

 

 ‘그것도 붙었을 때 이야기지.’

 

 로지가 입을 삐죽였다. 입단 시험에 떨어져 손님방에 묶기도 눈치 보이는 저에게 시녀를 붙여준 저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녀는 높으신 분의 생각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그녀가 희대의 천재 마법사라지만 아직 평민이다. 그런데,

 

 로지는 문가에 바로 서 있는 에밀을 쳐다보았다. 가지런하게 앞으로 모은 두 손이 고왔다. 신고 있는 신발도 깔끔하게 반짝거렸다.

 

 ‘아무리 봐도 시녀인 것 같은데, 공작가 시녀 정도면 못해도 준 귀족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신종 엿 좀 먹어 봐라인 건가요.’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가.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하는 금세기 최고의 마법사가 아닌가.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들은 생각도 하지 않는 부분에서 혼자 전의를 불태우던 로지가 곧 어깨에서 힘을 뺐다. 그녀를 놀리는 것인가 싶어서 잠깐 화가 나려다가도 고위귀족의 예의란 천재 마법사인 로지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미지의 영역이 있는 만큼 따지고 들기엔 애매했다.

 

 그녀가 당황스러워 한다는 것을 눈치를 챘는지 문 앞에 서 있던 에밀이 힐끔 눈치를 보았다.

 

 “저어…….”

 

 그제야 앞에 사람을 계속 세워두고 자기 생각에 빠져있었다는 걸 깨달은 로지가 얼른 에밀을 안으로 들였다. 어쨌든 시녀는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온 자인 만큼 일단은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뭐, 공작이 보낸 건데 나중에 이걸로 트집을 잡지는 않겠지.’

 

 그녀는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마법을 제외한 모든 것에서 금방 생각을 그만두는 것. 그것이 그녀의 수많은, 자칭, 장점 중 하나였다.

 

 가까이 다가온 에밀은 앳된 얼굴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 한 듯싶었다. 살짝 통통한 두 뺨과 콧잔등에 갈색 설탕마냥 뿌려진 주근깨가 그녀를 더욱 생기발랄하게 만들었다.

 

 어려 보여서 그런 걸까. 긴장으로 힘이 들어가 꼿꼿하게 펴진 허리와 어깨가 자못 귀여웠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전 로지 카펜샤예요. 과연 며칠이나 머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려요.”

 

 말끝에 그녀도 모르게 가시가 돋혀 버렸다. 제 발 저린 로지가 에밀의 안색을 살폈지만 다행히 그녀는 별 다른 걸 느끼지 못 한 것 같았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필요하신 게 있다면 뭐든 저를 부르시면 된답니다.”

 

 에밀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으음……. 알겠어.”

 

 그래. 이것도 에밀이 먼저 편하게 말하라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로지가 말을 놓으며 에밀이 몇 살인지 물어보았다. 자고로 어색한 첫 만남에선 나이 물어보는 것 만한 게 없었다.

 

 “이번 달에 17살이 됐습니다. 헤헷.”

 

 쑥스러운 지 나이를 말하며 볼을 붉히는 에밀은 로지가 생각했던 것처럼 소녀라는 단어에 걸맞는 나이였다. 어려서 좋겠구나, 라고 22살의 로지가 생각했다. 시녀라면 신분은 그녀보다 높을 테지만 일단 자신이 손님인데다 5살이나 어리다보니 심적으로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 때, 에밀이 양 손을 꽉 주먹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야무지게 잘 해낼 테니 믿어주세요!”

 

 “그러면 일단 먼저 식사를 부탁해도 될까? 사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 했거든.”

 

 지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기 일보 직전이야. 라고 장난스럽게 덧붙이며 로지가 자기 배를 한 번 쓸었다. 안 그래도 옷 입으면서 출출한데 식사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몰라 난감했던 차였다.

 

 “안으로 음식을 들일까요. 아니면 나가서 드시겠어요?”

 

 “나가서 먹어도 괜찮을까?”

 

 계속 언급되지만, 로지는 곧 짐 싸서 제도로 올라가야 할 몸이었다. 당당하게 입성했지만 단칼에 탈락하고 새 직장을 구해야만 하는…….

 

 ‘다시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생각하기를 그만 둔 로지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간단히 말해, 애매한 위치의 그녀가 다른 이가 볼 수도 있는 트인 장소에서 밥을 먹기에는 눈치가 보인단 뜻이었다.

 

 ‘혹시나 누군가가 나를 보고 수군거리면 어떡해!’ 라는 것이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에밀은 그녀의 복잡한 마음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체 하는 건지 연신 생글 거리는 낯으로 당연히 나가서 드셔도 되죠! 오늘은 날이 아주 따뜻한 걸요. 라는 대답만 해댈 뿐이었다.

 

 “바깥에 야외용 테이블을 두면 분위기가 아주 좋을 거예요. 공작가의 정원은 언제나 일류 정원사에 손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지만 특히 최근에 비가 많이 내려 꽃향기가 진하답니다.”

 

 에밀이 덧붙인 말에 로지는 결국 못 이긴 척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얼굴에 붙인 팩을 떼는 건 잊지 않으며.

 

 

 생각보다 한산한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짙은 남색 하늘 너머로 주홍빛 하늘이 저 멀리 하늘을 양분하듯이 붙어있었다. 머리 위에 펼쳐진 남색 하늘 한가득 새하얀 별이 뿌려진 모습이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전기가 보급되어 밤낮 구분 없이 온 동네가 밝게 빛나는 제도에서는 보기 힘든 하늘이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말을 잊고 있던 로지가 에밀이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눈앞에는 눈처럼 하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어두워진 하늘에 맞춰 켜진 전등이 노란 불빛을 내며 분위기를 돋웠다. 분홍색의 깃털 쿠션을 놓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테이블에 음식이 착착 차려지기 시작했다.

 

 로지는 에밀의 일사 분란한 손놀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어린 데도 어쩜……. 손끝이 야무진 게 확실히 공작가는 이런 것부터 차이가 나는 구나라고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넓었던 테이블이 좁아 보일 정도로 푸짐한 한상이 준비됐다.

 

 망고와 자몽을 얹은 샐러드에 신선한 토마토와 호박, 생모짜렐라를 켜켜이 담은 라따뚜이. 삶은 감자와 생크림을 섞어 튀기듯이 볶은 베이컨과 체다 치즈를 넣고 오븐에 노릇하게 구운 그라탕이 섬세하게 조각된 도자기에 푸짐하게 담겨있었다. 거기에 레몬그라스와 바질로 간을 하고 올리브 오일에 재워 구운 연어. 뽀얀 결 위로 생밀가루를 덧뿌린 폭신한 치아바타 바구니.

 

 눈 앞에 놓인 온갖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에 눈을 빛내며 로지가 손을 뻗었다.

 

 여러 종류의 고추 생산지인 남쪽 지방답게 페퍼론치노와 통후추를 이용해 매콤하게 맛을 낸 오리고기볶음을 손으로 찢은 치아바타 위에 한가득 얹어 한 입에 털어넣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으, 행복해!”

 

 두 볼이 빵빵한 것이 누가 보아도 복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접시를 싹싹 비워내자 순식간에 만족감이 차오른다.

 로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귓가를 쓸고 지나갔다. 같이 놓인 과실주는 청량함과 새콤함이 같이 감돌아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었다.

 

 기분이 좋아지자 옆에서 맛이 어떤지 알려달라고 무언의 눈빛을 보내는 에밀을 바라보았다.

 

 “나오길 잘한 것 같아. 날도 너무 좋고, 음식도……. 정말 최고야.”

 

 음식만으로도 일단 내려온 보람이 있는 걸. 그녀는 진심이었다.

 

 아카데미 내부에도 여러 식당이 있지만 학교 식당이 으레 그렇듯이 가격이 싼 만큼 맛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연구비는 항상 빵빵하게 지원받는 로지였지만 학생시절에는 실험시간 확보를 위해 최저 동선으로만 생활한 터라 아카데미 바깥에서 밥을 먹은 적은 손에 꼽혔다.

 

 결국, ‘맛있다.’라고 말할 정도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일거리도 다 팽개치고 주변의 권유도 뿌리치며 밑으로 내려와 성과 없이 올라가는 건가 걱정했는데 이 한 끼가 그런 마음을 잠재웠다.

 

 로지는 간만에 휴식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로 했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좀 쉬다가 올라가야겠어. 물론 그 동안 틈틈이 공작이랑 딜도 좀 하고.’

 

 내쫓을 때까지 붙어있겠다고 마음먹으며 그녀가 연어 살을 발랐다. 어느새 마지막 한 점이었다. 그 많던 양을 남김없이 긁어먹은 뒤 로지가 배를 만족스럽게 두드렸다. 자칫 천박해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본 에밀은 그녀의 그런 행동보다도 다른 것에 더 놀라고야 말았다.

 

 손님으로서 잘 대접해야한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양을 준비한 건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 작은 체구에 전부 들어갔다. 놀라운 광경에 에밀이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천재 마법사라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었구나.’

 

 로지가 오기 전부터 총괄집사이자 그녀의 할아버지인 알렉스에게 로지에 대한 설명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그 중 가장 여러 번 들은 것이 천재 마법사라는 수식어였지만 실제 첫 만남은 그녀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요상한 하얀 종이를 얼굴에 붙인 여자의 모습이라 살짝 실망을 했던 게 사실이었다.

 

 눈과 입 부분이 기괴하게 구멍이 뚫린 축축한 종이를 얼굴 전체에 붙이고 있던 자그마한 여인의 모습에 정말 마법사인 건가 의심도 했었는데.

 

 “아.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식사였어.”

 

 에밀은 그다지 나오지 않은 로지의 배와 입가의 미소와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응? 뭐가?”

 

 갑작스러운 사과에 로지가 어리둥절하며 반문했지만 에밀은 연신 허리를 굽힐 뿐이었다.

 

 ‘정말 마법과 같은, 아니 마법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었어.’

 

 그녀는 앞에 앉아있는 천재 마법사를 끝까지 존경하고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당사자 모르게 홀로 다짐을 굳히는 에밀의 속마음을 로지가 알았다면

 

 ‘이거 마법 아니라고! 진짜 마법을 보여주겠어!’ 라고 소리쳤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독심술은 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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