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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패스 in 무림
작가 : 곤붕
작품등록일 : 20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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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6     조회 : 777     추천 : 0     분량 : 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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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봉수는 가장 먼저 이곳의 언어부터 익혀 나갔다. 그는 언어교범의 필요성을 느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듣는 걸로만 익숙해지려면 최소한 일 년 이상은 걸리리라.

 언어교범?

 그런 걸 어느 누가 미쳤다고 그에게 만들어 주겠는가. 결국, 그는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교범은 책이다. 책을 만들려면 우선 종이가 있어야 했다.

 이 마구간에 종이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이것저것 살피다가 마땅한 것 한 가지를 찾아냈다. 그걸 찾아냄으로써 종이 대용품뿐만 아니라, 잉크 대용품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그가 찾아낸 건 바로 쥐였다. 몸이 덜 나았을 때부터 노리고 있던 녀석들이었다.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동봉수는 밤만 되면 쥐를 잡았다. 그는 쥐를 벗겨 고기는 내장을 제거해 햇볕에 잘 말려서 먹었다.

 가죽은 좀 더 바짝 말려서 종이처럼 사용했다. 쥐의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짜서 쥐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담아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그는 말총으로 붓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법칙도 하나 알아냈다. 쥐를 수십 마리 죽였지만, 경험치 바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쥐는 경험치 제로의 동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동물이 경험치가 없을 거라는 단정은 내리지 않았다. 쥐가 너무 약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이 법칙에 대한 판단을 일단은 보류했다.

 이제 종이, 잉크, 붓이 완비되었다.

 그는 마칠이 궁시렁대는 것과, 마구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대화를 잘 기억해놨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쥐가죽과 말총붓, 쥐피를 꺼내 그 발음과 추정되는 뜻을 한글로 옮겨적었다.

 한 달쯤 더 지나자 수십 장의 쥐가죽에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중국어 고어체 교범이 완성되었다.

 아마 현대의 누군가가 이 책을 봤다면 아주 그럴듯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깔끔한 글씨체와 정리정돈이 잘 된 책이었다.

 어느 누가 글씨는 마음의 창이라고 말했는가. 이는 거짓임이 분명하다. 동봉수의 글씨체를 보라. 완벽하다.

 그의 글씨는 세상 어느 누구의 것보다 반듯했다. 만약 글씨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면 동봉수는 완전체였다.

 아니, 어쩌면 글씨가 마음의 반영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의 마음은 언제 어느 때고 동요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동봉수는 교범이 만들어진 때부터 마칠에게 몸이 다 나았다는 티를 냈다. 교범을 만들면서 이제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벙어리인 척했다. 아직 발음이 어눌했고, 단어의 조합능력이 현지인들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이 연기는 말을 완벽하게 한다 해도 어쩌면 계속될 수도 있었다. 그편이 그의 본색을 숨기는 데에 더 적합하다면, 그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이다.

 “아우, 이 팔푼이 새끼. 기어이 벙어리가 되었구만.”

 마칠은 동봉수가 몸이 다 나았는데도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하자, 그를 마아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변삼도 멸칭이었지만, 마아삼은 더한 멸칭이었다.

 마아삼(馬啞三).

 벙어리라고 해서 붙여진 동봉수의 새로운 이름.

 그에게는 이제 이름이 네 개였다. 동봉수, 소삼, 마변삼, 마아삼. 동봉수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개는 단리세가의 모든 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부르는 동봉수의 ‘가명’이었다.

 아무도 그가 동봉수라는 사실을 몰랐다. 가면과 가명, 그리고 완벽한 벙어리 연기 뒤에 감춰진 그의 진짜 얼굴과 진짜 이름을 아직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동봉수는 드디어 마구간을 벗어나서 단리세가 안을 마음먹은 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제약은 많이 존재했다.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거는 세가 무사들과 같은 고공인데도 마고공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천시하는 고공들, 그리고 하인들.

 심지어 아침저녁으로 말을 산책시키기 위해서 봉양(鳳陽)의 성도를 거닐 때도 사람들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저 머저리 새끼, 이제는 말까지 못한다며?]

 [그럼 똥쟁이 벙어리네? 똥머저리 벙어리구나.]

 [똥머벙어리라고 불러줘야겠네! 이제! 하하하.]

 

 동봉수는 갖가지 모욕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수록 오히려 더 바보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욕을 먹으면 헤헤, 돌을 맞으면 아야, 무시를 받으면 당연한 듯 고개를 숙였다.

 똥쟁이에 벙어리, 머저리. 똥머벙어리, 마아삼등의 별명이 추가되면 될수록 역설적이게도 그의 연기가 완벽하다는 방증이었다.

 이 모든 악담과 폭언, 폭력은 한동안 그의 정체를 숨기는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곳, 단리세가, 더 나아가서 봉양의 누구도 모르리라.

 동봉수에게는 방패가 되어줬던 그 모든 것들이 저들에게는 칼로 변해서 되돌아갈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봉수는 욕을 통해 말을 배웠고, 두들겨 맞으면서 봉양의 지리를 파악했으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이곳의 문화를 익혔다.

 그렇게 그는 차츰 어둠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 들었다.

 그는 그림자였다. 길고 큰 그림자였지만 너무도 음습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의 탁월한 평범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림자는 그렇게 아무도 몰래 음지에서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몸을 숙인 지 몇 달이 더 흐른 어느 날, 그가 드디어 사냥을 개시했다.

 

 * * *

 

 마칠은 요즘 들어 살 맛이 났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해야 할까?

 높으신 어르신네들이 자주 쓰던 그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마아삼 녀석이 처음 다쳤을 때는 열도 받고 불만이었다. 누가 남의 일,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못한 인간의 일을 대신 떠맡고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렇게 열심히 마아삼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했던 고생을 이제야 보상받고 있었다.

 비록 실어증에 걸렸지만, 다시 일어난 마아삼은 그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리 병고공 일들을 알아서 척척 했다.

 벙어리가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뒤에 달던 말토시도 없어졌고 일도 아주 성실히 했다. 잔뜩 억울해하던 눈빛도 사라졌다.

 지금 마아삼의 눈을 보면 그저 투명했다. 너무도 맑고 투명해서 가끔은 그동안 괴롭힌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오늘도 마아삼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마칠이 해야 할 일 대부분을 끝내 놓았다.

 그 덕분에 마칠은 세가 뒤뜰에서 편안하게 한숨 더 잘 수 있었다.

 “으아함-.”

 평소보다 푹 잤더니, 온몸이 개운했고 아랫도리에 힘이 빡 들어가는 마칠이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잔다고 일일행사인 손운동도 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하물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마칠은 흉물스럽게 불룩 솟아있는 하물을 툭 치며 말했다.

 “자식이, 어디서 돈냄새는 맡아가지고. 그래그래, 좀만 참어라. 지금 바로 구멍 맛 보여줄 테니까.”

 그는 어제 품삯을 받았다. 매번 모든 품삯을 받는 대로 앵앵이 궁둥이와 가슴팍에 꽂았었다.

 그게 그의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무시당하고 사는 인생에서 그나마 살아있다는 걸 느낄 때가 여자를 안을 때와 그보다 못한 인간인 소삼을 괴롭힐 때뿐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품삯을 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걸 알고 마칠을 뜯어먹고 사는 앵앵이도 마찬가질 테지만.

 “주머니도 두둑한데 오늘은 앵앵이 말고 초선이 속살 맛 좀 볼까? 초선이 고게 아주 그냥 맛깔나게 익었던데.”

 오늘 그의 하물의 사냥감이 순간적으로 변경되었다.

 “그래, 사람이 어떻게 매번 밥만 먹고 사나. 가끔은 육고기도 먹고, 물고기도 먹고, 영계도 먹고 해야지. 흐흐흐.”

 마칠은 음탕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로 봉양객잔으로 출발했다. 그가 사냥감을 바꾼 이유는 오늘은 평소 품삯날보다 더욱 주머니가 두툼했기 때문이었다.

 마칠이 아침에 일어나서 병기 정돈을 하러 갔을 때, 이미 소삼이 일을 다 끝내놓았고 그 위에 가죽 주머니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돈이 들어있었는데, 누가 놔뒀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새끼. 이제서야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구먼.”

 힘이 없다고 매일 머리만 조아리고, 무릎 꿇고 빌고 애원하기만 해서야 어디 세상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힘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알아야겠지.

 마칠은 앞으로는 소삼을 조금, 아주 조금은 덜 괴롭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상납하는 금액이 줄어들면 더 심해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봉양객잔으로 향하는 마칠의 입에서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초선이는 머리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녀다. 그래서 아직 어리고 탱탱했다. 그가 품삯날마다 안는 앵앵은 사실 봉양객잔에서 제일 싼 유녀였다.

 앵앵이 좋아서 그녀를 안는 것이 아니라, 주머니가 가벼웠기에 어쩔 수 없이 앵앵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주머니가 무거워진 만큼 오늘은 좀 더 ‘고품질’의 여자를 안고 싶었다.

 지금 자기가 가진 돈이면 초선이의 하룻밤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으리라.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초선이의 탱글탱글한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에 절로 하물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행여나 길거리 사람들이 볼까 싶어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후 다시 봉양객잔으로 향했다. 흥분 때문인지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몇 배나 가벼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봉양객잔에 도착했다.

 “어서 옵쇼. 아이고 형님 오래간만이십니다.”

 봉양객잔의 점소이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았다. 단골손님이면 누구에게나 나리나 형님이라고 부르는 녀석이었다.

 녀석의 나리라는 말은 있어 보이는 손님이라는 뜻이었고 형님은 그냥저냥 만만한 손님이라는 뜻이었다.

 마칠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이 아니라면, 그는 어딜 가서도 형님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초선이 좀 불러다오.”

 “초선이오? 앵앵이 아니라?”

 “그래.”

 점소이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마칠은 그 눈빛이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챘다.

 “돈 있어. 자, 여기.”

 그는 가죽 주머니에 든 돈을 몽땅 점소이에게 던졌다. 그 안에는 이번 달 치 품삯이 전부 들어있었다. 물론 마아삼이 준 돈도 같이.

 점소이는 가죽 주머니를 받아 안을 보고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이거 훔친 거 아니오?”

 “이 자식이!”

 “아, 아니면 됐소. 뭘 그깟 걸로 화를 내시오? 그럼 이 층 젤 끝방에 가 계시오. 금방 초선이 대령합죠.”

 객잔은 원래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하지만 봉양객잔은 달랐다. 이곳은 숙식, 그 두 가지에 여자까지 파는 곳이다.

 봉양의 번화가 뒤쪽에 있는 홍등가와 연계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객잔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 덕에 다 죽어가던 이곳 객잔들이 모두 살아났다.

 관에서는 이런 영업행태에 대해 알면서도 모두 눈을 감아줬다. 왜냐하면, 이곳의 주 고객층 중에는 관의 관리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덩달아 뇌물도 두둑이 받고 있었다.

 돈과 여자. 그건 어느 세상에 가든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돈만 있다면 아무리 낮은 신분이라도 예쁜 여자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이었다.

 그게 주운 돈이든, 훔친 돈이든, 뺏은 돈이든, 삶은 돈이든, 번 돈이든. 그게 어떤 돈이든 상관없이…….

 돈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돈은 그냥 돈이었다.

 점소이는 금세 헤실헤실 거리며 마칠을 봉양객잔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칠이 돈을 훔쳤건 아니건 그는 장사만 하면 그만이었다.

 일을 치른 후 마칠이 잡혀가건 말건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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