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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패스 in 무림
작가 : 곤붕
작품등록일 : 20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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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화(進化) (2)
작성일 : 16-08-26     조회 : 904     추천 : 0     분량 : 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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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께, 이 근처에서 어떤 남자 한 명을 죽였는데, 그때 경험치 바가 꽤 많이 찼었다. 그제야 동봉수는 사람 간에도 경험치의 차이가 꽤 클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앞서 죽인 195명보다 마지막에 죽인 남자 하나가 가진 경험치가 더 컸다.

 그의 목표가 바뀌었다.

 그냥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더 강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그렇다면 더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생각했다.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보다 강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동봉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림인.

 무림인들을 죽인다면 손쉽게 경험치를 쌓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아직 무림인들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었다. 단리세가 내에서 수련하는 것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가 판단한 걸로는 단리세가에서 가장 약한 무사도 아직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에게는 좀 더 강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

 일반인과 무림인의 사이를 이어줄 그 중간의 사냥감.

 무엇인가?

 그저께 죽였던, 그런 남자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딱 적당했다.

 ‘뭐하던 남자였을까? 어딜 가야 그런 놈들을 더 만날 수 있을까?’

 동봉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자연스럽게, 산책로인 봉양의 저잣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가 지나가는 옆 골목 안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마변삼이. 왜 그냥 지나가? 오래간만에 형님을 봤으면 얼굴 대 얼굴을 맞대고 면담을 좀 해야지.”

 동봉수가 골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껄렁한 폼세로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특히 맨 앞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는 구레나룻이 덥수룩하게 하관을 뒤덮고 있어 더없이 흉악해 보였다.

 그는 도팔두(陶八頭)라는 녀석이었다.

 도팔두는 이곳 저잣거리의 왈짜패의 우두머리였다. 스무 명 정도의 왈짜들을 움직이는 그는, 저잣거리 잡상인들을 뜯어먹는 하류인생 중 하나였다.

 요즘 관의 포관(捕官)들이 온 골목에 쫙 깔려 있어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눈에 잘 띄는 골목에서 건들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먹잇감은 저자의 상인들만은 아니었다. 가끔은 소삼이나 마칠 같은 대갓집 하인이나 머슴들도 대상이 되었다.

 도팔두가 그들을 잘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혹시나 대갓집에서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배가 곯지 않을 때 얘기다.

 왈짜들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동봉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 하긴 최근 분위기로 봤을 때는 당연한 것일 테지. 저들은 돈이 생겨도 하루 이상을 가지 못한다. 생기는 족족 술과 여자를 사는 데에 써버린다. 그런 이들에게 요즘은 완전한 ‘불경기’ 그 자체였을 터.

 오늘은 위험부담을 안고 산을 내려와 마을을 습격한 격이라고 해야 할까.

 호랑이들은 지독한 가뭄에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사자들은 궁지에 몰리면 코끼리를 사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오늘 그들이 먹잇감으로 삼은 상대는.

 소삼이 아닌, 동봉수였다. 단지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

 동봉수는 입을 헤벌쭉 벌리며 멍청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표정을 유지한 채 도팔두에게로 다가갔다.

 도팔두와 왈짜들은 그와 여로를 데리고 골목 깊숙이 인적이 없는 곳으로 그를 끌고 갔다. 도팔두는 아마도 여로만 다치지 않게 한다면, 소삼 정도는 마음껏 손대도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동봉수는 왈짜들을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서기 전, 주변을 살폈다. 아직 아침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저 멀리 장사치들이 몇 보였지만, 이곳은 저자의 중심과는 거리가 좀 있는지라 아무도 이 골목 쪽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만약 여기서 ‘이것들’을 모두 없앤다면 뒤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에도 자살로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야 하는 것이 원칙상 마땅했다. 하지만 장소의 특성상 적절치 않았다. 골목 안에서 십여 명의 사내를 자살처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 칼부림을 한 걸로 처리하거나 시체를 인벤토리에 넣었다가 다른 곳에다가 버린다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을 뿐, 그다지 실익이 없었다.

 저들을 모두 죽인다 해도 경험치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었다. 저들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그가 입을 불이익은 고작 몇 대 맞고 몇 푼 뺏기는 것이 전부일 터였다.

 이익과 불이익, 그리고 위험부담 사이에서 저울이 왔다리 갔다리한다.

 동봉수는 결국 이들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그 생각이 다시 바뀔 수도 있었지만, 최소한 지금은 굳이 죽일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도팔두와 왈짜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순식간에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동봉수를 골목 끝, 완전히 구석진 곳까지 데리고 갔다. 이곳은 예전에도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장소였다. 하물며 요즘 같은 분위기에 사람이 올 리가 없었다.

 짝.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생긴 도팔두가 다짜고짜 동봉수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도팔두의 손바닥은 크고도 넓적해서 꼭 짐승의 발바닥 같았다.

 무림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손바닥에 맞고 버틸 사람은 몇 없었다. 살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나며 동봉수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길게 눕혔다.

 왈짜들이 돈을 빼앗기 전, 으레 하는 관행인 폭행이었다. 왈짜들에게는 돈을 뺏고 쓰는 일 못지않게 이런 폭력적인 일도 삶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바닥인생이지만, 더 바닥인생들을 뜯어먹고 괴롭히는 것이 거지 같은 삶의 한 줄기 빛이었다. 당하는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릴 테지만, 그들이 알 바는 아니었다.

 퍽, 퍼버벅.

 동봉수는 도팔두를 비롯한 왈짜들의 몰매를 말없이 감내했다. 허나, 엎드려 바닥을 마주 보고 있는 그의 눈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 도팔두가 그 눈을 봤다면, 오줌을 지렸거나 다시는 동봉수에게 돈을 뜯을 생각을 하지 못했으리라.

 그건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육식동물의 살기 넘치는 눈도 아니었다.

 그저 무(無), 아무 감정이 없는 눈이었다. 감정이 없는 눈이 왜 무섭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눈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감정이 있다. 특히, 고통의 감정에 매우 민감하다. 하지만, 동봉수는 감정, 특히나 고통이라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무런 동요가 없는 눈을 상상해보라. 과연 그 눈을 보고 감당할 자 누가 있겠는가.

 왈짜패들의 폭력은 끝이 나지 않을 듯 계속되었다. 그런 그들의 발길질이 멈춘 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지금 뭣들하고 있는 것이냐?”

 묵직한 음성이었다. 동봉수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음성이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검은 옷을 입은 삼십 대로 보이는 장한이 한 명 서 있었다. 단단한 체형을 가진 걸 보니, 얼핏 보기에는 또 다른 왈짜처럼 보였다.

 “자, 장호(張虎) 형님!”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그건 동봉수의 착각이었다.

 장호는 사실 봉양의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세 흑단(黑團) 중 한 곳인 흑사회(黑蛇會)의 일원이었다.

 왈짜들이 건달짓을 하고 살지만, 이들은 그 바닥에서도 하류인생이었다. 모든 왈짜들은 그들보다 높고 어두운 곳에서 좀 더 음침하게 움직이는 흑단들에게 세금을 내야 했다.

 흑단들은 삼재검법(三才劍法) 같은 기초적인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뒷골목 왈짜들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가끔은 왈짜들이 흑단의 조직원들이 저지른 일을 대신 뒤집어쓰고 관에 끌려가야 할 때도 있었다.

 비록 장호가 흑사회의 말단조직원 중 한 명에 불과했지만 왈짜패의 두목인 도팔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인물이었다.

 장호가 도팔두를 죽이더라도 봉양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도팔두의 부하들 또한 마찬가지.

 동봉수는 일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굳이 이들을 없앨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아래로 처진 여로의 고삐를 쥐고 사태를 주시했다.

 “아, 아, 그게 이 녀석이 개기길래 본보기 차원에서…….”

 장호는 말없이 동봉수를 한 번 보고는 여로를 쳐다봤다.

 “…….”

 그의 눈에 반짝이는 이채가 덧씌워졌다. 동봉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장호의 눈을 보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장호는 몸을 돌려 도팔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을 느낀 도팔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혀, 형님! 왜, 왜 이러……!”

 우두둑.

 장호가 갑자기 도팔두에게 달려들어서는 그의 팔을 잡아 그대로 뒤로 꺾어버렸다.

 “끄아악!”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건 네놈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도팔두의 팔이 기이하게 반대쪽으로 꺾인 걸로 봐서는 팔병신이 된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제는 평생 왼손잡이로 살아야 하리라. 그걸로 왈짜패의 두목 자리도 끝이었다. 아마 저 뒤로 물러서서 벌벌 떨고 있는 다른 부하 왈짜들 중 한 명이 새로운 두목이 될 것이다.

 물론 오늘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서 성립되는 일이었다.

 장호는 도팔두가 팔병신이 된 사실에는 일체의 관심도 없었다. 그는 괴로워서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도팔두의 머리를 한 번 지그시 밟아준 다음 다시 동봉수에게 다가왔다.

 “말이 참 좋구나. 종이 무엇이냐?”

 그가 여로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동봉수는 장호가 자신에게 묻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벙어리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대답하는 순간 이곳에 있는 모든 자들을 죽여야만 했다.

 그러자면 우선 상대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한다. 도팔두와 왈짜패들은 이미 파악이 끝나 있었기에 별문제 없이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바로 앞에서 그를 압박하고 있는 장호였다. 동봉수는 오늘 처음 그를 만났다.

 말할 것도 없이, 장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것이 동봉수를 망설이게 하였다.

 “이 말이 어느 종이냐고 물었다.”

 장호의 음성이 더욱 묵직해졌다.

 동봉수는 그의 음성 깊은 곳에 내밀하게 자리 잡은 살기를 읽어냈다.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동봉수는 그렇게 확신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앞의 사내는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대로 장호는 처음부터 동봉수를 노리고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여로를 노리고 있었다.

 흑사회의 회주인 방포염(邦布髥)은 좋은 말이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 위인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단리천우의 말인 여로를 탐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로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흑사회가 봉양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탐욕이란 게 참는다고 해서 쉽게 해소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장호를 시켜 여로를, 좀 더 정확히는 여로를 관리하는 마고공들을 관찰하게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말을 하지 못하는 소삼이라는 멍청이가 여로를 관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는 장호에게 여로를 훔쳐오라고 시켰다. 장호는 방포염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완벽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소삼과 도팔두, 그리고 그의 패거리를 이 자리에서 모두 죽이고 도팔두의 시체만 치워버리면 모든 혐의는 도팔두가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장호는 천천히 몸에서 살기를 끌어올렸다.

 동봉수에게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싸워야만 했다.

 동봉수는 장호의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살기를 느끼며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확신이 생겼다. 장호를 잡을 확신 말이다.

 사냥감 앞에서 진한 살기를 끌어올리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었다. 호랑이와 사자가 사냥이 성공하기 전까지 살기를 드러내 보이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결코, 없었다. 진정한 사냥꾼은 사냥감의 목을 물기 전까지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사냥을 하기 전에 살기를 일으켜서 사냥감이 도망간다면, 그는 사냥꾼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동봉수는 평범한 사냥감이 아니었다.

 장호와 방포염은 사냥대상을 잘못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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