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인데. 분명 귀신이었는데.
눈에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그런데 왜..
동화는 저도 모르게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세게 붙잡힌 손목 때문에 처음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던 그녀가 다음 순간 자신의 손목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을 때에야 정신을 차린 동화가 화들짝 놀라며 붙잡았던 손목을 놓아주었다.
"아, 죄송합.."
찌릿.
매서운 눈매로 그를 노려본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의 가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상한 걸 가지고 있네.'
"저기.. 그게.."
그녀는 동화의 목소리가 들려와 다시 시선을 그에게 가져갔다.
"분명.. 귀신이었는데.. 어떻게.."
아직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이는 그를 뚱한 얼굴로 바라보던 솔이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드는 이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를 기억해냈다.
"아."
그의 얼굴을 기억 해냄과 동시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흘린 솔.
어색한 얼굴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사, 사람 잘못 보셨어요."
고개를 한껏 돌리고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동화는 생각했다.
'이 사람..'
그리고 그것은 동화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시완이 하는 생각과 같았다.
'거짓말 못하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움은 동화의 몫이었다.
휘의 말대로 카메라에 찍히는 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사람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귀신이냐고 묻는 자신의 말에 긍정을 한 그녀의 사진도 아직 카메라에 남아있었다.
"..정말 사람 맞아요?"
동화의 물음에 곤란한 기색으로 주먹을 움켜쥔 솔은 이내 굳은 마음을 먹고는 동화를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 시선은 오래 가지 못했고, 이내 그녀는 등을 돌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난 평범한 사람이다 이 자식아!!!!"
그리고.
"....."
덕분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달려간 그녀를 향했다가 남아있는 동화를 향했다.
어쩐지 불손한 눈빛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마치 동화가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요구한 사람인 것처럼.
동화는 고개를 푹 숙이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진짜 이상한 여자네."
집 근처에 다다른 동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꼭 내가 안 평범한 사람같잖아!"
듣는 사람도 없는데 중얼중얼거리는 동화를 길거리의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했다.
집에 도착한 동화는 문을 열고 들어가 휘의 얼굴을 보자, 자신이 빈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멍청히 비어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
"내 떡볶이와 순대는 어디 있는 걸까."
동화의 빈손을 보자, 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빛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내가 먹고 싶다고 한 걸 무시한 걸까."
그 오만한 미소를 바라보던 동화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결국 동화에게서 떡볶이와 순대를 얻어낸 휘는 거실에 우아하게 앉아 떡볶이 국물에 푹 담갔던 순대를 입에 쏙 넣는 재미를 즐길 수 있었다.
"저기.."
이상할 정도로 멍하니 앉아있던 동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쪽이 그러는 것처럼 귀신도 막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응?"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얼굴인 휘에게 동화가 손을 뻗었다.
"이렇게 만져지잖아요."
"그렇지. 실체화를 했으니까."
"그러니까.. 귀신들은 다 그게 가능한 거예요?"
이게 무슨 육식동물 풀 뜯어먹는 소리일까.
눈썹을 치켜세운 휘가 떡볶이를 집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게 가능하면 귀신이겠어? 영체의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거나 뭐.. 그런 거겠지."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있겠냐?"
'그럼 도대체 뭐라는 거지..'
휘의 대답에 뚱한 얼굴을 하던 동화는 그가 어디 두고 보겠다는 표정을 짓자, 금세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왜. 뭐라도 봤어?"
다시 떡볶이와 순대를 먹기 시작한 휘가 무심하게 묻자, 동화는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분명히 카메라에 찍혔던 사람인데.. 눈에도 보였고, 잡을 수도 있었어요."
"그럼 귀신이 아닌가 보지."
"그럼요?"
"글쎄."
어쩐지 도움이 될 듯 말 듯한 대답만 들려주는 휘 때문에 속으로 화를 삭히던 동화는 띠롱 하고 알림이 뜨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일전에 홍보를 한 글에 대해 SNS를 통해서 온 메세지였다.
[정말.. 귀신을 잡아 주실 수 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뜬 동화가 벌떡 일어났다.
[네! 그럼요! 물론이죠!!]
***
늦은 시각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한 여자가 현관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떨었다.
'무서워..'
무섭다. 제 집인데도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겨우 문을 열고 들어선 안엔 전날과 같이 깨끗하게 청소된 집이 여자를 맞이했다.
여자는 더욱 공포에 질린 듯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현관에 서있었다.
***
"안녕하세요. 연락 주셨던 분 맞으시죠?"
동화는 약속장소인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전날 연락을 해왔던 사람이 누구인지 어쩐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수척해진 얼굴에 잠을 못 잔 듯 퀭한 눈. 어쩐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야기는 전날 메세지로 모두 전해 들었다.
그녀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기묘한 일을 겪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어.. 내가 어제 이걸 치우고 잤던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사소한 물건.
하지만 최근에는 아침에 출근할 때는 정신없이 어지른 상태로 놔두었던 집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처음 그 현상이 일어났을 당시엔 엄마가 집에 다녀갔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통화를 한 엄마도, 그 누구도 그녀의 집에 찾아간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포에 질려 경찰에 신고까지 해봤다고 했다.
하지만 집안에 누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해를 가한 것도 아니기에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했다.
부동산 아저씨에게도 말해봤지만 그런 문제는 지금껏 없었다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그후, 그녀는 누구인지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집안에 카메라를 설치했고, 퇴근 후 여전히 깨끗이 치워져 있는 집에 오싹함을 느끼며 녹화된 영상을 확인한 그녀는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왔었다고 했다.
동화의 등장에 몸을 일으킨 그녀는 초췌한 얼굴로 인사를 나눈 후, 꽤나 급했는지 즉시 그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뭔가에 시달리고 있기는 한가보군."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도중, 갑작스레 귓가를 스치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동화가 어째를 움츠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동화에게 휘가 다시 말했다.
"이런 곳에서 갑자기 실체화하면 곤란해. 조용히 지켜볼 테니까 신경 쓰지 마."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데 신경 쓰지 말란다고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곤란한 얼굴을 한 동화가 한숨을 내쉴 즈음, 높은 건물로 들어선 그녀와 함께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어쩐지 침묵이 불편해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여자의 안색이 너무나도 창백하여 무슨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도착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는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녀가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 방 앞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도착한 그녀는 손을 덜덜 떨며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려했다.
그녀가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동화는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문을 연 집안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부들부들 떨며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그녀를 보며 동화가 물었다.
"제가 먼저 들어갈 까요?"
그러자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동화는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혼자 사는 여자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누나들이 생각나 괜히 더 마음이 쓰였다.
안으로 들어선 동화는 일단 집을 한번 둘러보았다.
청소를 해주는 귀신이라니.. 자신이라면 좀 갖고 싶기도 한데.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만큼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라.
실없는 생각을 하며 카메라를 들던 동화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집에 들어왔으면 손부터 씻어.]
화들짝 놀란 동화가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동화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그녀를 살폈지만 그녀에게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듯 싶었다.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더 하얗게 질려서 도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기 있네."
"뭐? 어디-"
휘의 말에 무심코 말을 꺼냈던 동화가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여자와 눈이 마주쳐 얼른 입을 닫았다.
동화가 무언가 말하려 하다 멈추자 더욱 불안함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그녀 때문에 동화는 애써 그녀를 등지고 섰다.
"어디 있는데?"
고요한 방안에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죽인 동화가 보이지 않는 휘에게 물었다.
"저기- 소파 옆에."
휘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동화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찰칵.
그리고 어쩐지 불길한 마음을 안고 사진을 확인한 동화는 흠칫하더니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며 카메라를 홱 돌려 사진이 눈에 안 보이게 했다.
"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의 그런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녀를 보고, 방향을 돌린 카메라를 한번 본 동화는 애써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이건 안 보시는 게 좋아요."
동화의 대답에 더욱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한걸음 더 현관 쪽으로 물러났다.
"뭐해. 어서 던져."
휘의 재촉을 들으며 동화는 가방에서 일전에 휘에게 건네 받았던 죽통을 꺼냈다.
퐁- 하고 뚜껑을 열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건 뭐야! 뭘 하려는 거야?!]
목소리가 들려와 흠칫 놀란 동화가 다시 목소리를 낮춰 휘에게 물었다.
"나 왜 저 목소리 들리는 거예요..?"
"저게 들려? 흠.. 글쎄. 카메라가 내 힘을 흡수해서 그런가?"
휘의 대답에 동화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카메라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는 카메라라고 생각했다.
뚜껑을 열은 죽통을 던지려고 팔을 들어올리자,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잠깐, 잠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그냥 청소를 했을 뿐이란 말이야!!]
울컥. 귀신이 하는 말에 미간을 좁힌 동화가 멈칫하는 사이 귀신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난 그냥 깨끗한 걸 좋아하는 것 뿐이야! 게다가 저 여자는 잘 치우지도 않는다고! 처음엔 참았어! 하지만 오죽했으면 내가 나서서 청소를 했겠어?!]
죽통을 움켜쥔 동화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소를 해주면 얼마나 좋아! 이건 좋아할 일이라고!! 난 해를 끼치지 않는단 말이야!!]
"이미 해를 끼치고 있잖아요!!"
참다 못한 동화가 허공을 향해 빽 소리쳤다.
그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란 건 슬금슬금 현관으로 뒷걸음질 치던 집주인이었지만.
"여기 집주인은 지금 아저씨 때문에 무서워서 잠도 못 자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오래 머물면 악귀가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냥 기회 왔을 때 가요."
[잠깐!! 잠깐, 잠깐, 잠까-]
계속해서 무언가 변명을 하려는 귀신을 향해 동화는 조금 전 사진으로 본 모습을 떠올리고는 있는 힘껏 죽통을 집어 던졌다.
캉!-
동화가 던진 죽통은 벽을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일이 해결된 줄 알고 한숨을 내쉬며 죽통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동화를 휘가 다급히 붙잡았다.
"야, 잠깐."
"응?"
실체화를 하지도 않고 자신을 붙잡았다는 사실에 동화가 얼굴을 굳히며 앞으로 휘가 또 어떻게 자신을 놀래 킬지 걱정하는 사이, 다시 귀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아직 안 잡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