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통을 던졌는데도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당황한 동화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대로 던져야지."
타박하는 휘의 목소리.
[난 그냥 이런 집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보는 게 꿈이었을 뿐이야!!]
흥분한 듯한 귀신의 목소리.
요즘 시개들 살아가면 누구나 꿈꾼다는 내 집 장만.
설마 귀신이 되어서 까지 그런 걸 바랄 줄은 몰랐지만.
다시 죽통을 주워 든 동화가 휘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던지면 돼요?"
"글쎄."
"이 양반이.."
동화는 귀신이 보이는 게 아니라 휘가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일일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자신이 던진 죽통을 피할 만끔 이곳에 남고 싶은 의지가 가득한 귀신을.. 사진을 찍어서 위치를 하악한 들, 그 자리에 계속 있을까.
[그 사기꾼만 아니었어도 이 집은 내 집이 됐을 거야!! 그러니 나는 여기에 머물 자격이 있다고!!]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에 동화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래. 안타깝다. 죽어서도 내 집 장만이 꿈일 줄이야.
사기라니. 그런 놈들은 다 싸잡아서 후드러 패야 한다. 남이 힘들에 일군 것을 홀랑 빼앗으니까.
하지만-
"지금 아저씨 때문에 여기 진짜 집 주인이 잠도 못 자고 무서워한다니까!!!"
인상을 찌푸린 동화가 버럭 화를 내자, 슬금슬금 현관 쪽으로 뒷걸음질 치던 여자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집을 뛰쳐나갔다.
"너를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아, 진짜! 도와줘야 할 것 아니예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걸 하는데!!"
여자가 집을 나서자, 휘가 실체화 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동화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게.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눈동자를 피해 동화는 시선을 돌렸다.
말을 아껴야겠다. 괜한 말을 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겠다.
휘는 귀신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서 그를 똑바로 보는 듯이 어느 한곳을 응시했다.
"명을 다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하나, 미련이 많은 모양이라 오래 놔두면 위험해지겠어."
"그러니까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요!"
휘는 동화에게서 죽통을 넘겨받아 뚜껑을 연 입구를 귀신이 있는 듯한 방향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집도, 돈도, 지휘도 어차피 명계에는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야. 악귀가 된다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명계에서도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을 테니 기회 줄 때 가자."
휘의 은빛 머리칼이 은은히 빛나자 억울하다며 소리치던 귀신은 점차 잠잠해졌다.
이미 죽은 몸,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도 없게 된다는 말이 두려웠던 것이다.
살아서도 늘 돈 걱정, 집 걱정. 안락함을 모르고 살았는데 죽어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집 아가씨한테는 미안하게 됐구먼.]
얌전해진 아저씨 귀신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 한마디를 남기고선 빛이 되어 휘의 손에 든 죽통에 빨려 들어갔다.
***
"아.. 기 빨려.."
카페 테이블에 엎드린 동화가 혼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물론 강의를 듣고 와서 피곤한 것은 맞았지만 강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전에 SNS로 온 문자를 통해 귀신을 잡으러 갔던 일 때문이다.
분명 휘가 설명할 때는..
1단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귀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2단계. 죽통의 뚜껑을 열고 확인한 위치로 던진다.
이것이 전부였다. 분명 이렇게 간단하게 말했었다.
실제로 처음 길가에서 잡은 귀신은 이렇게 해서 간단히 잡히기도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목소리가 들려오질 않나, 던진 죽통을 피해 도망치질 않나.
이 카메라놈은 왜 목소리는 들리게 해서는!!
괜스레 카메라에 화풀이도 해보지만 이제와서 무얼 할 수 있으랴.
"과제는 했냐?"
커피를 시켜 놓고 안아 열심히 노트북을 두들기던 시완이 엎어져 있기만 하는 동화에게 말했다.
"어제 밤 샜어.."
귀신도 귀신이지만 문제는 과제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개만 해도 충분히 힘들 일 두가지를 한번에 하려니 몸이, 아니 정신이 남아 나질 않는다.
"멍멍이는 어디래?"
"오는 중."
시완의 대답에 동화는 다시 팔에 얼굴을 묻었다.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와서 화들짝 놀랄 때도 있는 데다가,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굳이 알게 한다.
예를 들면 일전의 그 귀신처럼. 죽어서까지 집에 집착하게 되는 사람마저 있다는 걸 굳이 일깨워 준다.
게다가 귀신을 잡는 일은 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휘는 귀신이 보이기까지 하니 그에게는 훨씬 쉬운 일이기도 했다. 그는 귀신이 무섭지도 않을 테니.
하지만..
'내가 왜? 너 있잖아.'
휘의 말을 떠올린 동화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잘생기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애과잉 야광귀 같으니.'
입밖으로는 꺼낼 수 없으니 동화는 속으로라도 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다크써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동화가 조금 안쓰럽기는 했는지, 귀신을 모으는 기간을 늘려주었다.
다음 보름달은 어떻게든 해보겠으니 주기적으로 한달에 귀신 3명은 찾아오라는 것이다.
현저히 줄어든 숫자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원래 10명이나 필요한 건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알고 보면 사실 다른 방법도 있는데 괜히 자신을 놀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여기 있었네."
오래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기다리던 멍멍이라 불리는, 은결이 카페에 도착했다.
보기 좋게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칼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
시완이 날카로운 인상을 잘생김이라면 은결이야말로 다정다감함을 얼굴에 써 놓고 다니는 상이었다.
부드러운 눈매가 크게 한몫 했다고 본다.
테이블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드는 동화를 보고 은결이 흠칫 놀랐다.
"너 여자가 쫓아다닌다며. 좋겠다."
"넌 얼굴이 왜 그래?"
인사말도 없이 대뜸 말을 꺼내 놓는 동화에게 은결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야말로 지금껏 시완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SNS에 올린 것도 이미 봤을 것인데 전혀 아무런 반응이 없다.
힐끔 시완을 바라봤지만, 시완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었다.
'과제 많아서 신경 쓸 틈이 없는 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쩐지 심술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팔을 베고 누운 동화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자리에 앉은 은결을 바라봤다.
"어떤 여자가 쫓아다니는데?"
"아."
동화의 질문에 은결은 볼을 붉게 물들이더니 괜스레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던 동화가 엎어져 있던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뭐야! 잘 된 거야?!"
동화의 말에 줄곧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던 시완도 고개를 들었다.
"아.. 그게.."
아니, 이상한 여자가 쫓아다닌다고 고민하던 것이 얼마전이건만.
물론 금세 만나려고 했던 은결과는 시간이 맞지 않고 과제가 쏟아져서 이제야 만나게 됐다지만.
"딱 말해. 예뻐?"
"그-"
진지하게 묻는 동화를 시완이 한심하게 바라보고는 손을 들어 막 말을 꺼내 놓으려는 은결을 저지했다.
"잠깐. 나 거의 다 끝났어. 아직 얘기 하지마."
"아, 뭐야! 나 궁금해!"
칭얼거리는 동화를 매섭게 노려봐 준 뒤, 시완은 더욱 빠른 속도로 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났는데?"
시완의 저지는 아랑곳 않고 동화가 다시 묻자, 은결은 여전히 볼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괜스레 턱을 긁적였다.
어쩐지 곤란해 보이기까지 했던 은결은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음.. 나는 기억 안 나는데.. 내가 도와준 적이 있었나봐. 그래서 날 따라다닌 거라고 했고."
"그래? 네가 뭘 도와줬는데?"
"음.. 글쎄?"
돌아온 은결의 대답에 동화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커피를 집어 들었다.
"아직도 기억 안나? 얘기를 해줬는데도?"
이해할 수 없다는 동화의 표정에, 은결은 다시 곤란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웃었다.
"오래된 일이면 기억 안 날 수도 있지. 뜬금없이 귀신 잡아준다는 놈도 있는데 뭘."
푸흡!!
가만히 노트북을 두들기던 시완의 말에 동화가 홀짝 마시던 커피를 뿜어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는 은결과 달리 찔리는 구석이 있는 동화는 힐끔거리며 시완의 눈치를 살폈다.
'젠장.. 역시 알면서 안 묻는 거였어.'
커피가 묻은 턱을 스윽 문지른 동화가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 그래서 너 쫓아다닌다는 여자는 누군데?"
애써 대화화제를 돌리려던 것이 무색하게 은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화에게 물었다.
"너 귀신 잡아?"
동화는 단숨에 자신을 바라보는 네 개의 눈동자들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 그게.."
곤란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런 건 아랑곳 하지 않았다.
시완은 노트북을 두들기던 손가락마저 멈춘 채 동화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침을 꿀꺽 삼킨 동화는 찰나의 순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마음은 편할 것이다.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털어놓아도 되는 걸까? 그건 휘에게 확인해 보아야 하는 문제였다.
함부로 떠들었다가 나중에 괜한 말을 한 죄로 명계인지 영계인지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어.. 그러니까.."
선뜻 말을 꺼내 놓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테이블에 올려 놓았던 동화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그야말로 가공할 스피드로 핸드폰을 집어 든 동화는 평소라면 눈쌀을 찌푸렸을 전화를 냉큼 받았다.
"여보세요?"
-비 온대.
"..예?"
하지만 역시 받지 말 걸 그랬나.. 하고 금세 후회했다.
-지금도 오고 있는 것 같다.
"....."
도대체 이 인간은, 아니.. 이 야광귀는 뭘 어쩌라는 건지..
언젠가 꼭 한마디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화를 삭이는 동화를 시완과 은결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제나 열불 나게 하는 쪽은 동화였고, 지금 동화가 짓고 있는 표정을 짓는 건 늘 시완이었는데.
어쩐지 생고한 기분이 드는 은결이었다.
-막걸리랑 파전 사와.
아니, 이 야광귀 지나치게 사람 입맛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아니-"
-안 오면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뚝.
동화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 양반이 진짜-
"누구야?"
휘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찼던 동화는 시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었는지 기억해내고 멍청한 얼굴로 시완의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요새 누가 우리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데 갑자기 파전이 먹고 싶다고.."
"누가?"
"..그냥 좀 아는 사람.."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휘가 갑작스레 자신의 집에 얹혀 살고 있었고, 파전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다만 사람이 아닐 뿐..
잠시 동화를 바라보던 시완이 다시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더니 이내 탁! 소리가 나게 노트북을 덮었다.
그 소리에 움찔한 동화를 관찰하듯 바라보는 은결.
노트불을 덮은 시완이 조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동화를 바라봤다.
이건 좋지 않았다. 시완은 차라리 인상을 찌푸리고 짜증을 낼 때가 더욱 안전하다.
"자, 그럼 이제 얘기해봐."
날벼락 같은 시완의 목소리가 귓가에 와 박히자, 동화가 다시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
"얼마전 SNS계정에 올라온 그 글은 뭐고, 지금 너희 집엔 누가 살고 있고, 그동안 수업만 끝나면 바로 사라졌던 이유."
동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잠자코 자신을 응시하는 시완과 은결의 눈빛이 지금처럼 불편했던 적이 없었다.
"사정이 있는데.."
당장은 그들이 원하는 답을 들려줄 수도 없었다.
"내,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 다음에 꼭 제대로 얘기할 테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동화를 시완은 의심의 눈초리로, 은결은 당황한 얼굴로 바라봤다.
가방을 챙겨 들고 벌떡 일어나는 동화를 은결이 붙잡았다.
"야, 잠깐, 지금 여기로 오고 있는데-"
"진짜 미안!"
붙잡으려는 은결 때문에 동화는 더더욱 당황하여 제대로 듣지도 않고 카페를 뛰쳐나갔다.
무언가를 숨기려니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한숨을 푹 내쉰 동화는 손에 쥔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막거리랑 파전..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다.."
아니, 따지고 보면 자신의 탓도 아니지 않는가?! 엄연히 따지자면 이건 전부 카메라 탓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받고 나서 그렇게 좋아한 카메라인데. 이제 와서 버릴 수도 없고.
"아."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걸음을 옮기던 동화는 맞은 편에서 들려오는 작은 탄성에 고개를 들었다.
"아."
그곳엔 일전에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 칭하며 도망쳐 동화가 주위로부터 평범하지 않은 시선을 받게 만든 장본인, 정원에서 보았던 귀신인 그녀가 서있었다.
여전히 시선을 사로잡는 녹빛 머리칼의 그녀. 과연 귀신인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녀의 옆엔 옅은 갈색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늘어트린 '예쁘다'라는 말보다는 '곱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녀보다 한 뼘은 작아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동화를 발견한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지만 이미 그녀와 눈이 마주친 후였다.
눈썹을 꿈틀거리던 동화는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가 앞길을 막아 섰다.
"이번엔 도망 못 가요. 제대로 얘기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