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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사진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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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비 오는 날(1)
작성일 : 17-11-16     조회 : 370     추천 : 4     분량 : 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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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사람인가?"

 

 고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퍼뜩 정신을 차린 솔이 곤란한 얼굴로 명확한 답을 꺼내 놓지 못하며 동화를 힐끔거렸다.

 

 처음 보았을 때 귀신이라고 속였는데 실체화 한 후에 또 마주쳐버렸답니다.

 하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속으로 몇 번이나 머리를 쥐어 뜯은 솔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먼저 가 계세요.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편안한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 딱딱한 말투였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그녀는 동화에게도 곱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길거리에 서서 할 이야기도 아닌 듯 하여 두 사람은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첫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공원.

 

 

 "후..."

 

 잠시간 둘 사이에 흐르던 침묵을 솔이 긴 한숨을 내쉬며 깨트렸다.

 

 "그래서. 도대체 궁금한 게 뭐야?"

 

 동화는 어쩐지 신경질 적인 그녀의 태도에 가만히 솔을 바라보았다.

 길게 뻗은 눈매. 부드러운 인상이라 하기보다는 조금 성깔 있어 보이는 얼굴.

 하지만 선이 여려서 어쩐지 시선이 자꾸 가는 그런 얼굴이다.

 

 

 "왜 귀신이라고 했어요?"

 

 동화는 마치 이미 그녀가 귀신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는 듯한 질문을 했다.

 솔은 힐끔 자신을 바라보는 동화를 바라보았다.

 

 "...사람이야."

 

 한껏 시선을 외면한 솔이 겨우 꺼내 놓은 말이었다.

 전에 만났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정말 거짓말을 못하는 것이 자신과 똑 닮았다.

 어째서 시완이 늘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채는 거냐고 묻는 동화에게 은결이 설명해준 그 행동들을 솔이 그대로 하고 있었다.

 

 

 "사람이면, 귀신이라는 댁 말에 제가 속았겠어요?"

 

 눈썹을 치켜세운 동화가 까칠하게 말하자, 솔이 이번엔 입을 다물었다.

 말이 없는 솔을 가만히 바라보던 동화를 카메라를 꺼내 들어 렌즈에 솔을 담았다.

 

 찰칵.

 

 짧은 소음이 들려오자, 솔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진을 확인한 동화는 역시나.. 하는 얼굴로 카메라를 솔에게 보여줬다.

 

 "역시 사진에 찍히잖아요. 사진에 찍힌다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사람이 아닌 거라고 했어요."

 "누가?"

 

 동화의 말에 미간을 구긴 솔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그런 쓸데없는 말을.

 

 

 "야광귀가요."

 "....."

 

 당황한 듯 입을 떡 벌린 솔이 속으로 야광귀를 욕했다.

 

 "도대체 뭐예요?"

 "..사람."

 "아니잖아요, 사람."

 

 동화의 눈빛이 어쩐지 실망감을 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솔은 괜스레 기분이 불편해졌다.

 

 "..사람이 아니면 안돼?"

 

 되돌아온 물음에 동화는 흠칫 놀랐다.

 사람이 아니라고 몰아세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쩐지 굉장히 잘못한 기분이 들었다.

 

 "아.. 죄송해요.."

 

 처음엔 분명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어쩐지 몰아세운 것 같아 고개를 떨어트렸다.

 

 풀이 죽은 동화를 보며 솔은 귀신이라고 속인 자신에게 이것저것 떠들어대던 학교 정원에서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희한한 사람. 보통은 귀신이라고 하면 도망칠 텐데. 아니, 보통 사람이라면 귀신이라고 묻지를 않겠군.'

 

 

 "맞아. 사람 아니야. 근데 그게 문제라도 돼?"

 

 무덤덤하게 돌아온 솔의 대답에 동화는 눈에 띄게 시무룩하던 얼굴을 다시 들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아니었다. 귀신도 아니고, 딱히 사람을 해치는 걸 목격한 것도 아니니.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는 동화의 눈빛에 다시 호기심이 일었다.

 

 "그럼.. 이번엔 다른 걸 물을 게요."

 

 조금 전 시무룩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들뜬 얼굴을 하는 동화.

 

 

 "이름이 뭐예요?"

 

 

 정말 독특한 사람이다. 사람이 아니라면 두려워하는 것이 먼저 아니던가?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동화는 무서워하기는 커녕 잔뜩 호기심에 물들어 들떠 보였다.

 오랜 세월 살아왔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또 처음이라 솔은 붉은 입술을 곱게 휘며 웃었다.

 

 "솔."

 

 솔. 들려준 이름을 되뇌던 동화는 곱게 미소 짓는 그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얀 피부 위로 흘러내린 옅은 녹빛 머리카락이 붉은 입술까지 자연스레 시선을 인도했다.

 그 미소는 마치 숲 속을 파고 든 한줄기 햇살 같았다.

 속이 비칠 것 같은 녹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동화는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아, 저, 는.. 오동화라고 합니다."

 

 어색하게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동화의 얼굴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지금껏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아니 그림보다도 예뻤다.

 

 

 쿠르릉.

 

 하늘에서 어렴풋이 불안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휘가 비가 온다고 했던가.

 

 늘 불길한 예감은 맞아 떨어지듯이 금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목에 건 동화는 얼른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폈다.

 

 

 쏴아아아.

 

 금세 빗소리만이 들려오는 공원 벤치.

 솔은 비를 맞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우산을 자신에게로 기울이는 동화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비 오니까 데려다 드릴 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동화가 여전히 앉아있는 솔을 향해 우산을 기울였다.

 그녀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우산을 기울인 채 스스로는 비에 쫄딱 젖을 기세여서 솔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던 길. 세찬 빗줄기에 우산 안까지 빗방울이 튀었다.

 그녀의 녹빛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빗방울 하나가 마치 나뭇잎에 고인 아침이슬 같았다.

 

 조용히 걸음을 내디디던 동화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근데 귀신 아니면 뭐예요?"

 

 다시 시작된 그 물음에 솔이 눈썹을 치켜 뜨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궁금하니까요."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이 없는 솔을 관찰하며 동화는 곰곰히 생각했다.

 

 "귀신은 아니랬으니까.. 저승사자? 아, 저승사자도 귀신인가요?"

 "글쎄."

 

 참 혼자서 잘도 떠든다고 생각하며 솔은 픽 웃어버렸다.

 

 "구미호?"

 "나 꼬리 없다."

 

 조금 귀찮은 것도 같았지만 조잘조잘 떠드는 것이 어쩐지 듣기 싫지는 않았다.

 싫없는 대화를 하며 걷는 것지 귀찮지 않게 느껴져 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음.. 그럼.."

 

 사람이 아닌 것들을 나열하는 동화의 목소리를 들으며 솔은 저 앞에 목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제 다왔-"

 "도깨비?"

 

 동화를 그만 돌려보내려던 솔이 입을 합 다물었다.

 그녀의 반응이 이전에 얘기했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름에 동화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대답대신 고개를 홱 돌리는 솔을 보며 동화는 물어보고 싶은 것을 한가득 머리속에 떠올렸다.

 

 "그럼-"

 

 

 [조심해.]

 

 

 도깨비라는 존재에 대해 제일 궁금했던 것 한가지를 솔에게 물으려 입을 뗀 동화는 갑자기 귓가에 날아든 목소리에 말을 멈췄다.

 

 

 [비가 오는 날은 조심해야해.]

 

 

 너무나 뚜렷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동화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비가 쏟아져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이렇게 뚜렷하게 목소리가 들릴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멈춰 서서 주변을 살피는 동화를 이상하게 여긴 솔이 슬쩍 곁눈질로 옆을 바라봤다.

 인도 끝자락에 서서 달리는 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작은 뒷모습.

 

 

 "저, 저기.. 혹시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동화는 솔이 사람이 아니기에 그녀에게도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솔은 금세 그 작은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 동화를 바라봤다.

 

 "왜?"

 "아니, 말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동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동화는 잘못 들었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비가 오는 날 조심하지 않으면-]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을 받을 거야.]

 

 

 이번엔 확실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빗길에도 쌩쌩 달리는 차들이 보였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한 기분에 동화는 저도 모르게 솔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저기에.. 뭐 있어요?"

 

 솔은 동화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차도를 바라보고 선 작은 뒷모습.

 솔은 사실대로 얘기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거짓말을 한들 어차피 들통날 테지만.

 

 

 "어. 있어."

 

 그 말에 동화가 목에 걸린 카메라로 손을 뻗었다.

 차도를 향해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드는 동화를 솔이 저지했다.

 손으로 카메라 렌즈를 가려버린 솔이 동화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 않는 걸 추천해."

 

 그녀의 표정이, 눈빛이 그곳에 있을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눌렀다.

 그리고는 호기심 사이로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치솟았다.

 

 

 [조심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그건 계속해서 간격을 두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쩐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저기에 뭐가 있는데요?"

 

 

 동화의 물음에 솔이 다시 작은 뒷모습에 시선을 던졌다.

 노란 우비와 노란 장화. 비 오는 날 어디에서나 볼 법한 그런 작은 실루엣이다.

 

 하지만 저 작은 뒷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꺼려진 솔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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