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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사진
작가 : 하랑
작품등록일 : 20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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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필레마포비아:키스 공포증(3)
작성일 : 17-12-04     조회 : 370     추천 : 2     분량 : 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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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행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동화를 보다 우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헤어지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는 거면.. 그냥 포기하는게 맞는 것 같아서.."

 

 

 연락이 없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스스로에게 확인사살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어리석은 짓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동화는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저 시선을 땅에 떨어트리며 한숨을 흘릴 뿐.

 

 

 '누가 누굴 가르치냐..'

 

 이유인 즉, 그도 그녀에게 조언해줄 만큼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도 아닐 뿐더러, 사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조언해주고 있자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로의 물음에 동화는 복잡한 얼굴을 했다.

 

 붙잡고 싶은 마음은 이해했다. 백 번 이해됐다.

 하지만 만일 남자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라면 사실 그냥 포기하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중에 우로에게 덜 상처가 될지도 모르기에.

 

 게다가 제3자가 끼어들어서 잘될 연애가 어디 있겠는가.

 마음 같으면 그냥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 우로는 그냥 놔두기엔 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면이 많았다.

 혼자 뭘 하라고 두기엔 불안한 타입이라고 할까.

 

 대답이 없는 동화를 보며 입술을 비죽거린 우로가 고개를 떨어트리며 말했다.

 

 

 "그래도.. 보고싶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리는 모습이 어쩐지 안타까워 보여 동화는 한숨을 내뱉었다.

 

 

 

 

 ***

 

 

 

 한걸음, 한걸음 더 다가가니 얼굴이 점점 뚜렷이 보였다.

 

 햇빛을 듬뿍 담은 듯한 머리칼. 뽀얀 피부와 탐스러운 입술.

 보는 사람을 홀려버릴 듯이 사랑스럽게 생긴 사람이었다.

 

 '아니-'

 

 솔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여우네.'

 

 그리고 그 옆에 함께 앉아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솔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오동화.'

 

 여우가 무언가 말하자, 동화가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붉히며 무언가 말하는 여우와 고개를 돌려 표정을 알 수 없는 동화.

 

 솔은 어쩐지 저도 모르게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어쩐지 너무나 기분이 불쾌해졌다. 저 벤치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는 걸 보고 동화가 한숨을 내쉰다.

 

 

 늘 청랑을 기다리며 이 정원에 머물렀다.

 이 불쾌함의 출처는 아마도 늘 앉던 자리를 빼앗긴 것에서 온 것이라 치부한 솔은 굳게 입을 다물고 대수롭지 않은 듯 구겼던 미간을 폈다.

 

 그럼에도 솔은 어쩐지 속에서부터 울화가 치미는 기분이라 멈춰 선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오늘은 어디서 시간 떼우지.'

 

 

 

 

 ***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

 모자와 마스크를 쓴 수상하기 짝이 없는 두남녀가 건물들 중 하나의 입구를 주시하며 그 근처를 서성였다.

 

 너무나도 눈에 띄는 머리색이라 동화의 말대로 우로는 머리를 묶어 모자 속으로 최대한 숨겼다.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거 맞아요?"

 "응. 곧 퇴근시간이야."

 

 남의 연애사에 끼어 미행까지 하다니..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꼭 무슨 작전하는 사람처럼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숨어서 움직이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나서 동화는 들뜨는 마음을 억지로 감추고 있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하나 둘 건물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바짝 긴장한 우로와 동화는 한껏 수상함을 풍기며 몸을 숨긴 채 입구를 주시했다.

 

 

 "어, 나왔다!"

 

 이내 한옥마을에서 보았던 남자가 지친 얼굴로 걸어 나오자, 우로가 호들갑스럽게 동화의 어깨를 두들겼다.

 모자의 챙 부분을 손끝으로 잡아 내리며 얼굴을 가렸던 동화가 그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어떡해.. 수혁씨 얼굴 수척해..."

 

 걱정을 한가득 머금은 얼굴로 아련한 눈빛을 하던 우로는 그의 뒷모습이 점차 멀어지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동화를 재촉했다.

 

 "간다, 간다."

 

 호들갑을 떠는 우로와 어쩐지 첩보원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들뜬 동화.

 수상한 두남녀가 이제 막 퇴근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걸음을 내디디는 한 남자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거리를 걷고, 신호등을 건너며 어딘가로 향하다가 갑자기 전화를 받고 멈춰 섰다.

 수혁을 따라 멈춰선 두사람은 괜스레 딴청을 피우며 그가 다시 걸음을 내디디기를 기다렸다.

 

 지나가던 이들이 자신들을 얼마나 이상하게 보는지도 모르는 두사람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는 수혁을 뒤쫓았다.

 통화를 끝낸 그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거지? 저 길은 집 가는 길이 아닌데.."

 "글쎄요.. 뭐, 친구라도 만나러 가는 거 아니겠어요?"

 

 무덤덤하게 대답했던 동화는 문득 스스로 굉장히 뛰어난 추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눈을 빛내며 수혁을 쫓았다. 어깨를 으쓱이는 동화를 한번,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걷는 그를 한번 바라본 우로가 행여나 그를 놓칠 새라 걸음을 서둘렀다.

 

 그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거리를 조금 걷다가, 한산해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섰다.

 조명이 어둡거나 음악이 시끄러운 가게가 아닌, 식사를 하거나 조용히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몇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그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두 사람은 이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힐끔 그가 앉은 자리를 확인한 동화가 우로를 최대한 가리며 남자의 등뒤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 조금 안심이 되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우로.

 자신의 뒤를 힐끔 바라보더니 메뉴판을 들고 나타난 알바생에게서 어색한 미소로 메뉴판을 건네 받았다.

 괜스레 메뉴판을 뒤적이며 두사람은 우로의 등 뒤에 있는 테이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야, 야. 일단 한잔 해."

 "아, 됐어. 피곤해."

 

 자꾸만 술을 권하는 친구와 시큰둥한 수혁.

 어쩐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우로는 걱정스런 마음에 눈썹을 늘어트렸다.

 

 처음엔 거절하던 그도, 이내 한잔 술을 받아 마셨다.

 한잔은 두 잔이 되고, 두 잔은 세 잔이 되고, 세 잔은 금세 한 병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 그냥 앉아있을 수도 없어서 간단한 안주와 술을 한 병 시킨 동화는 그 둘의 대화에 집중하며 마른 안주를 씹었다.

 

 

 "진짜 괜찮은 애야. 얼굴도 예쁘고 애교도 많고. 그냥 한번 만나봐."

 "됐어. 당분간은 누구 만날 생각 없다."

 "야, 세상에 반이 여자야. 여자는 많다? 지지리 궁상 그만 떨고 잊어."

 "....."

 

 시무룩한 얼굴로 술잔을 내려다보는 수혁은 대답이 없었다.

 

 "다른 남자 만나고 다니는 여자를 왜 못 잊냐?"

 

 수혁의 친구가 비꼬듯 하는 말에 동화가 미간을 구겼다.

 그리고 억울하고 분한 건 우로도 마찬가지인지 주먹을 꽉 움켜쥐는 것이 보였다.

 

 "...그런 애 아니야."

 

 그런데 후에 들려온 그의 말에 우로의 주먹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짧은 대답과 함께 술잔을 넘기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동화는 어쩌면 그가 아직 우로에게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화는 그의 대답이 들려온 후 눈썹을 늘어트리고는 술잔만 만지작거리는 우로를 보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연락은 해봤어요?"

 

 동화의 물음에 우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서워서.. 못해봤어."

 

 다시 우로의 등뒤로 시선을 돌린 동화는 그저 마른 안주만 씹었다.

 그러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동화는 수혁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을 부러 지나치며 힐끔 그를 살폈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인상을 찌푸리지도, 울상을 짓고 있지도 않았지만 무표정한 그 얼굴이 어쩐지 더 쓸쓸해 보였다.

 

 

 '가능성이 조금 있으려나?'

 

 

 잠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 동화는 어느새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우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홀짝홀짝 계속 술을 들이키는 우로를 보며 동화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왜 그렇게 마셔요?"

 

 벌써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우로는 취기가 도는지 풀린 눈으로 동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운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등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친구놈이 자꾸 여자를 소개 시켜줄려고 하잖아. 싫다는데.."

 "아.."

 "...확 잡아먹어버릴까 보다.."

 "....."

 

 나지막한 우로의 마지막 말에 동화는 숨을 훅 삼키며 그녀의 등뒤로 앉아서 열심히 세상에 얼마나 여자가 많은 지를 떠들고 있는 그 친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당장이라도 가서 잡아 먹힐 수도 있으니 입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은 동화였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또다시 잔을 비우는 우로를 보던 동화는 다시 힐끔 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무룩해 보였던 것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저.. 연락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내가?"

 

 되묻는 우로에게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

 

 손에 들었던 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은 그녀는 대답이 없이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한참 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하면... 받을까?"

 

 당연하다 말하려 입술을 뗐던 동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입을 닫았다.

 

 과연 정말 당연할까? 정말 받을까? 아까 본 그 모습은 정말 연락을 기다리는 모습이 맞을까?

 만일 그게 아니라 그냥 넋을 놓고 있던 것 뿐인데 혼자 오해한 것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두려워하는 그 마음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마냥 안 할 수도 없는 기분.

 안 받으면 어쩌나.. 그래서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을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하지만 안 하고는 못 견디겠는 그 마음.

 

 

 "그래도..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부딪혀 보고 후회하는게 조금 더 후련할 것 같아서요."

 

 눈썹을 늘어트리는 우로를 보며 동화는 생각했다.

 

 

 자신의 지나간 연애를 생각해보면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은 무엇을 하든 나중에 다 후회로 남을 것이다.

 먼저 연락을 하든.. 하지 않든.

 

 그 끝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끝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결국 후회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지금 가장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후련한 것이 좋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방향으로.

 

 

 "그냥요.. 지금 누님 마음 조금이라도 후련해질 행동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동화가 덧붙인 말에 우로가 핸드폰을 손에 꾹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 기세로 핸드폰을 노려보던 우로는 굳은 결심을 한 듯 핸드폰을 톡톡 두드렸다.

 물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등돌리고 앉은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욱 쉬운 방법이었지만 거기까지 용기내는 것은 무리였는지 핸드폰을 두드리는 우로였다.

 

 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우로의 손가락은 핸드폰 화면에 닿지 못하고 힘없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를 동화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왜 그래요?"

 

 

 고개를 숙였던 우로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그를 애뜻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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