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저거예요!"
술도 깰 겸 집으로 걸어가던 동화가 발견하여 가리킨 것은 인형 뽑기 기계였다.
오도도도 달려간 동화가 기계를 양손으로 붙잡고는 열심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유리로 된 기계 윗부분 덕에 그 안에 잔뜩 쌓여 있는 여러가지 인형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얼굴을 유리에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는 동화를 따라 우로도 기계 안을 들여다보았다.
토끼, 강아지, 고양이, 곰 등. 각종 동물 인형들이 쌓여 있었다.
"귀엽다!"
귀여운 동물 인형들을 보고는 금세 미소를 머금는 우로.
동화는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을 찾아낸 다음 기계의 동전 입구에 데구루루 굴렸다.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동전이 기계로 들어가자 불빛이 요란하게 반짝이며 동화가 조종하는 대로 기계 안에서 인형을 집어 줄 새의 발모양인 갈고리가 움직였다.
"좀 더 이쪽! 어어, 쟤, 쟤!"
"이거요? 이거요?"
조종하는 동화와 그 옆에서 신이 나 방방 뛰며 유리 너머로 움직이는 갈고리르 바라보는 우로.
귀여운 여우인형을 뽑고 싶었지만 인형 뽑기 기계라는 것이.. 쉽게 인형을 가져가도록 두는 것이 아닌지라 두사람은 한참이나 기계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국 수확은 없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동화는 결국 가게에서 작은 여우인형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그걸 우로에게 내밀며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좋은 생각?"
"네! 이거 봐요. 얘도 눈도 있고, 코, 입 다 있으니까.."
동화가 여우인형의 눈과 코, 입을 가리키고는 말을 이었다.
"이걸로 연습해보며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아치 엄청난 발견을 한 것인 양 눈을 반짝이며 묻는 동화.
"이걸 수혁씨라고 생각하라고?"
"그래도 되고요. 아님 뭐, 다른 누구라고 생각해도 되고요. 핵심은 얘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습해서 입맞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거죠!"
동화의 말을 들으며 우로는 가만히 손에 들린 여우인형을 바라보았다.
입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노란색 여우인형은 어쩐지 새침해 보였지만 나름대로 귀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찌를 것처럼 두려워졌다.
"자, 이 여우인형을 수혁씨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뽀뽀한번 해봐요."
잔뜩 긴장한 우로는 입술을 쭉 내밀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여우인형을 가까이 가져왔다.
하지만.
"파하, 못하겠어."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우로가 울먹거렸다.
여우인형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우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그녀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무서워.."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우로는 고개를 떨궜다.
스스로는 늘 주위 사람들에게 진실했음에도, 스스로는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대했음에도.
제가 진심을 다 했다고 상대방도 진심을 다하리라는 법은 안타깝지만 없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다 퍼주면 후에 받는 상처가 더 크다.
"내가 아무리 진심으로 대해도.. 소용이 없어.."
제 아무리 마음을 주어도 상대가 그것을 받기만 하고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제 마음을 모두 빼앗아 버리고 상처만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방어적으로 변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 마음을 다 준 우로는 너무도 쓰디쓴 대가와 함께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자신을 진정 사랑해주는 이를 알아볼 수 있는 입맞춤이, 너무나도 두려운 행위가 되어 버렸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워서.
***
"그래서. 그 여우는 뭘 어떻게 해줄 건데?"
휘의 물음에 동화는 고개를 떨궜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의대를 갈 걸 그랬어요."
"받아줬겠냐, 그렇게 공부를 안 하는데."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해봐."
시무룩한 동화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시완이 지적했다.
두려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우로를 보며 동화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무섭다고 하는 그녀에게, 차마 괜찮다고 할 수가 없었다.
방어적인 사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변한 것도 다 상처가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뭐,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인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녀를 돌려보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동화는 기다리고 있던 휘와 시완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고는 조언을 구했다.
"솔직히 남의 연애게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와주고 싶어요."
"뭘 어떻게 도와줄 건데?"
지적하는 휘의 말투에 동화는 다시 입술을 비죽 내밀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지금 조언을 구하려고.."
"나한테?"
황당하다는 헛웃음을 뱉으며 말하는 휘를 차마 쳐다보지는 못하고 동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휘가 황당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리 인간 문명을 많이 안다고는 해도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인간 연애사에 대한 조언이라니..
"나한테? 연애상담을?"
이 황당함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휘는 재차 물었다.
휘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동화는 조언을 구하려던 자신이 잘못 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해야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비웃음 이후에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시완은 의외라는 얼굴로 휘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지 않아요? 이렇게나 잘생겼으면 여자들이 가만 안 놔뒀을 거 아니예요. 아, 사람이 아니지. 귀신은 다른 가요?"
휘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만 까먹는 시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귀신이어도, 원래는 사람이었을 거 아니예요."
시완의 말에, 동화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애과잉인 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조금 전과는 그 눈빛이 달라지더니 이내 홀릴 듯한 미소를 살포시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한테 묻는게 당연해. 나 아님 누구한테 묻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휘를 보면 시완이 그 몰래 미소를 머금었다.
동화 역시 몰래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뭐, 인생 경험 짧지만 내가 한다미 하자면-"
"응 아니야. 한마디 하지 마."
"일단 들어, 이 자식아."
휘가 자기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이, 시완과 동화가 투닥거렸다.
동화의 저지에도 굴하지 않고 시완이 턱을 괴고 말을 했다.
"연습을 해보는 건 어때? 그냥 인형 같은 거로. 방송에서 정신 치료하는 거 보니까 자꾸 보게 하고 만지게 하는 연습을 시키면서 치료하던데."
시완의 말에 동화는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혹시 다른 아이디어가 나올까, 하고 잠시 기대했는데.
"안그래도 인형 쥐어 주고 오는 길이야."
"오? 네가 그걸 생각해 냈다고? 혼자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는 시완을 노려봐 준 동화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움이 되야 말이지.. 뭔가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기분이야. 어떡해야 사람한테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줄여 줄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어."
한숨 섞인 동화의 말에 시완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근데 그건 그 사,람이.. 아니, 그.. 분이. 여우라서 가지고 있는 공포증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나.."
"그게 무슨 말이야?"
우로를 뭐라고 지칭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말을 뱉은 시완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시큰둥한 얼굴을 하는 동화를 바라봤다.
"뭐, 좀 특출나게 불안해하니까 그런 공포증이 생겼겠지만은.. 그런 문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불안해하는 거 아냐?"
시완의 말에 동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보니 맞는 말이다.
누구나 다 두려워하고, 그러니 사람들이 방어적으로 변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어딘가에 털어놓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우로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이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확이하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는 거지."
누군가가 하는 말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된다.
믿을 수 없게 된다.
눈썹을 늘어트린 동화가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해주는 이와의 입맞춤.
여우구슬을 만들어주는 사랑 가득한 연인들의 애정행각.
그 행위가 우로에겐 잔인하기 짝이 없는 행위가 되어있었다.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동화가 티테이블에 머리를 올려 놓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붙잡으려고 하는 그 사람이랑 잘되든 못되든.. 이제부터는 덜 불안하게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러자 줄곧 스스로를 찬양하던 휘가 날카로운 눈매로 동화를 바라봤다.
"네가 뭔데?"
자기애 넘쳐나는 말들이 아닌 말이 들려와서 순간적으로 놀란 동화가 흠칫했다.
자화자찬은 이제 충분했는지 휘가 드디어 동화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완은 여전히 턱을 괴고 휘를 바라보다가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