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귀신을 잡아 준다는 글을 보고 이렇게 연락 드립니다. 저희 집에 아무래도 귀신이 있는 것 같아요.]
띠링-
[새벽만 되면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띠링-
[물론 저희 집에 어린애는 없구요.]
띠링-
[다른 가족들은 안 들린다는데 저만 소리가 들리거든요. 저 좀 도와주세요.]
***
"같이 가자-"
"싫어."
"아, 왜-"
동화의 '왜' 등장에 시완이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꼬리 내린 동화가 못내 아쉬운 듯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휘형한데 물어보던지."
"이미 거절당했지."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에 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풀이 죽은 모습을 보니 조금 불쌍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같이 가줄 마음은 없는 시완이었다.
"우로 누님은?"
"바쁘대.. 수혁씨 만나.."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시완을 힐끔 바라본 동화는 아무리 불쌍한 척을 해도 넘어오지 않을 것을 감지하고는 축 늘어트렸던 어깨를 바로 했다.
"아- 진짜 혼자 가기 싫다."
"안 가면 되잖아."
"되겠냐! 집에 들어앉은 귀신씨가 귀신 모아야 한다고 야단이야.."
그럴거면 같이나 가주던지..
동화는 차마 불만을 토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휘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불만은 늘 속으로만 해야 했다.
혼자 가야할 것을 생각하니 힘이 절로 빠지는 동화는 다시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것은 전날밤 핸드폰으로 날아든 메시지. 일전에 미친 척 귀신을 잡아준다고 올렸던 글 때문에 온 연락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 자꾸만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동화가 꺼리는 것이 '아이.' 아이귀신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아이귀신 하면 곧장 그슨새가 떠올라서 정말이지 혼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은결이한테 부탁하든가."
동화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은근히 결핍된 성격의 아이는 분명 자신이 곤란해한다면 그걸 흥미로워하며 관찰하기만 할 인물이다.
물론 그것보다도 문제는-
"...바쁘대."
여기에도 이미 거절당했다는 사실이다.
고개를 푹 숙이며 동화는 보란듯이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같이 가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인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이 헛되었나.
한없이 땅으로 꺼지던 동화는 문득 다른 한사람, 아니, 한 인물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야, 나 간다!"
"뭐? 어딜?"
"같이 가줄 사람 찾으러!!"
그리고는 시완을 내버려두고 동화는 걸음을 서둘렀다.
솔과의 친구 선언 이후로, 동화는 꽤나 그녀와 친근해졌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지나치게 자주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한몫 했지만.
그녀는 먼저 연락하는 법은 없었지만 동화가 문자를 보내면 금세 답장이 오고는 했다.
걸음을 옮기는 동화는 그녀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도깨비이기도 하고.. 어쩐지 그녀는 빠르게 발전하는 이 세상과 동떨어져 보였는데,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다는게 조금 우스웠다.
솔은 자주 정원에 앉아있었고, 이제는 실체화한 상태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하면, 동화가 카메라로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녀가 있는 것을 알아볼 테니까.
"솔아!"
정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솔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에게 도도도 달려간 동화가 벤치에 앉지도 않고 서서 말했다.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응?"
검지를 곧게 세운 동화가 묻자 솔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랑 어디 좀 가줘."
***
"이 집이야?"
"응. 그렇대."
상황을 설명한 동화에게 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화가 솔직하게 아이귀신일 수도 있어서 혼자 가기가 두렵다 했기 때문이다.
그슨새를 뒤쫓을 때, 솔도 함께 있었으니. 게다가 풀이 죽었던 동화를 옆에서 보기도 했고.
집 앞에 선 동화는 어깨에 멘 카메라를 꾹 움켜쥐며 크게 심호흡하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동화의 SNS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온 그는 오늘 아르바이트를 뺄 수가 없어서 동생이 대신 집에 들여보내 주기로 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살펴 달라며.
초인종이 울리고 곧이어 인기척이 다가오더니 문이 열렸다.
"아, 그 귀신 잡으신다고 오신거죠?"
문을 열고 의아한 얼굴을 하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그는 동화를 보더니 시큰둥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동화의 뒤로 솔을 발견하고는 눈을 홉뜨더니 금세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두사람은 동생의 안내대로 잠을 못 이룬다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집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솔은 그저 조용히 집안을 훑어보기만 했다.
문제의 그 방으로 들어선 동화는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전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형은 자꾸 잠을 못 자서요. 얼굴이 완전 시체예요."
표정이 시큰둥한 것 치고는 꽤나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카메라를 든 동화는 일단 방 이곳저곳을 샅샅이 렌즈에 담았다.
찰칵. 찰칵. 찰칵.
그동안 가만히 방안을 지켜보던 솔이 동화가 사진을 다 찍었을 즈음 다가와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여기 아무것도 없어."
"....."
진작 말해주지 그랬니.
동화의 표정은 요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솔은 방 뿐만이 아니라 집안 전체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본 사진에도 역시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이상하네.."
본인이 그렇게까지 잠을 못 잘 정도면 그냥 꿈 꾼 건 아닐텐데..
하지만 고민해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 집엔 아무것도 없어."
솔이 다시 한번 집을 둘러보며 말하자, 동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두사람을 관찰..하기 보다는 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동생에게 동화가 말하자, 동생은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한테는 그렇게 전할게요."
어쩐지 머쓱해진 동화였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두사람은 아무런 성과없이 터덜터덜 돌아가야 했다.
***
어두운 밤. 모두가 잠든 시각.
어슴푸레한 달빛만이 빛나고 다른 불빛은 모두 꺼졌을 그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발소리가 들린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설핏 잠들었을 즈음 들려오는 발소리.
정신없이 방을 뛰어다니는 소리에 눈을 뜨면, 어둠이 내려앉은 방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뛰는 무게 실린 소리보다는 가벼운 몸집의 어린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
그 소리는 잠시간 들려오다가, 한동안 조용했다가, 다시 잠들 즈음에 또 들려오기를 반복했다.
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 한달이 되어간다.
이쯤 되니 공포보다는 짜증이 치솟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강의를 끝마치고 나오던 동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 시완이 슬쩍 핸드폰 화면을 엿봤다.
[혹시 오늘 시간 되세요?]
"뭐야? 너 요새 누구 만나?"
"만나긴 누굴 만나. 귀신 잡아 달라는 사람이야."
눈을 동그랗게 떴던 시완은 그럼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한숨을 쉰 이유는 이 사람이 얼마전 솔과 함께 집까지 방문했던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분명 집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직도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시완과 동화가 건물 밖으로 나오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솔이 동화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시완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왜?"
"저 사람.. 은결이가 데려왔던-"
"오동화."
말을 잇던 시완의 목소리 위헤 솔의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늦었잖아."
"아, 미안. 시완아, 나 먼저 갈게. 나중에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어? 어, 어.' 하고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시완.
동화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지만 이내 재촉하는 솔의 목소리에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두사람은 일단 학교를 벗어나 걸었다.
오늘은 동화가 일전에 그 집에 함께 가준 것이 고마우니 밥을 사주겠다며 솔을 먼저 불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며 동화는 다시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솔아."
"응?"
덤덤한 표정의 그녀에게 동화가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밥 먹고, 나 이 사람한테 가봐야겠다. 아직도 잠을 못 자나봐. 난리야.. 제발 만나달라고."
전문가를 찾아갈 형편은 안되고.. 동화가 SNS에 올린 글이 그에게는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다.
가족들도 전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그에게 차라리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만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는 한번만 만나달라며 매달렸고, 거듭 거절할 수가 없었던 동화는 결국 알겠다고 한 것이다.
"같이 갈까?"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본 솔이 덤덤한 얼굴을 가장하고는 물었다.
"정말? 그래도 돼?"
그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며 동화의 표정이 밝아지자 솔은 동화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하면 어쩌나 내심 긴장했던 것이다.
솔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지만 핸드폰에 정신 팔린 동화는 알아채지 못했다.
'왜지..'
솔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다.
왜인지 몰라도 밥만 먹고 금세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같이 가주겠다 말한 것이다.
같이 있는 시간에 자꾸만 욕심이 났다.
두사람은 길을 걸으며 시시콜콜 대화를 주고받았다. 주로 동화가 묻고 솔이 대답하는 식이었지만.
좋아하는 음식이 있냐고 묻는 동화에게 솔은 쌀로 만든 것은 대부분 좋아한다고 답했다.
나란히 거리를 걷다가 슬슬 배가 고파질 무렵 메뉴를 정하고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그런 평범한 것이, 솔은 너무나 즐거웠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제발 만나달라 애걸복걸하던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들어섰다.
동화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잠을 못 잔 탓에 얼굴이 심히 상해 있는 사람이 하나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걸음을 옮기려는 동화를 솔이 붙잡았다.
동화가 보는 방향의 그를 바라보던 솔이 시선을 떼지 않으며 동화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솔의 행동에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 동화가 불안한 시선으로 수척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그를 다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