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트라님, 계십니까?”
“어, 안에 있어.”
동굴 밖에서 들리는 말을 퉁명스럽게 받아치는 나.
보나마나 아샤가 보낸 사람이 도착했을 것이다.
“지금 가면 되는 건가?”
“아, 네! 기사단원 제윤. 뮤트라님을 모시고 오라는 르베이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제윤이라는 은발의 머릿결에 기사 복을 입은 수인족의 여자가 동굴의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 복과는 어울리도록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거슬리지 않게 하였고 수인족 특유의 동물 귀는......말랑말랑해 보였다.
“모시고 갈 필요는 없고, 좌표나 불러.”
“좌, 좌표 말씀이십니까?”
“어, 텔레포트는 할 줄 알지?”
“아, 아뇨....”
“하........”
아샤 녀석. 텔레포트도 할 줄 모르는 애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자기 기사단 중 한 명을 보냈겠지만 여기서 왕궁까지 거리가 얼마나 먼데.........이건 너무 노가다 아닌가 싶다.
“저, 저는 말까지 있어서....먼저 가 계십시오.”
“말까지 데려 와. 한 번에 텔레포트 시키게.”
“아, 알겠습니다.”
제윤이 나가자 나는 이 동굴에 결계를 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집 안에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좀도둑이라도 들어오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말도 두 마리나 가지고 왔네.”
“아샤님이 보내주신 말입니다.”
“뭐, 상관없으니까 이쪽으로 와.”
“아, 알겠습니다.”
초심자인가?
어리바리한 모습이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
“텔레포트(Teleport)”
나는 말 두 마리와 제윤이라는 여자를 텔레포트로 칼리스페온 입구까지 텔레포트 시켰다.
하지만....
“우에엑!!”
......동물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었던가.
제윤이라는 기사 단원과 그 말은 아무 이상이 없지만 아샤가 내게 보낸 말만 텔레포트를 타자 토를 하고 있다.
“지 주인은 쏙 빼닮았네.”
“르베이나님 말씀이십니까?”
“어, 텔레포트만 타면 토를 하거든.”
“그 고귀하던 르베이나님이....!”
“고귀? 아샤가?”
“네, 기사단원들도 르베이나님의 고귀함은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샤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고귀하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내가 아는 아샤는 고귀함과는 수 없이 멀리 떨어져 있으며 연관성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아샤가 기사들에겐 고귀함이란 단어를 듣고 지낸다고?!
“아샤는 어디에 있지?”
“아마 지금쯤이면 검술 훈련을 하고 계실 겁니다. 따라오시죠.”
나는 제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막상 성문을 통해 궁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긴장감이 맴돌았다.
“제 3 기사단원 제윤 스토레인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수문장의 외침과 함께 커다란 성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 안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커다란 마을.
과연 4대 왕국 중 하나에 속할 만하다.
“꽤 규모가 큰데?”
“그렇죠? 칼리스페온은 영토권 제 2위에 들어가니까요. 일단 마구간에 말들을 맡기죠.”
성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구간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꽤 많은 사람이 운영을 하고 있는 마구간.
그 중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마중하러 나왔다.
“제윤, 어서 오게.”
“여기 제 말이랑 아샤님의 말이요.”
“예상보다 꽤 일찍 왔는데? 아샤님의 말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 보면 보나마나 엄청나게 밟았나보군.”
“이쪽 분께서 텔레포트를 사용하셔서 일찍 올 수 있었습니다.”
“그 거리를 텔레포트로?! 이거 꽤 엄청나군....”
“무려 르베이나님이 직속 호위무사로 선정했을 정도인 걸요.”
“그렇군. 역시 그분은 보는 눈이 있으시군.”
나는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샤의 직속 호위무사?
같이 모험한다는 얘기는 들어도 호위무사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는데?!
“이쪽으로 오시죠. 훈련장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답니다.”
“어? 어....”
몇 분 걸어가니 큼지막하게 훈련장이라고 적혀있는 간판이 보였다.
간판이 커다란 만큼 그 규모는.....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곳이 칼리스페온 왕국의 단 한 곳밖에 없는 훈련장입니다.”
“훈련장 맞아....?”
무슨 훈련장이 전체 한 바퀴만 뛰어도 3000M는 되는 것 같다.
거기에 휴식장, 음식점, 샤워장, 탈의실 전부 따로 있으니....
전부 합치면 얼마나 큰.....
“뮤트라, 벌써 왔어?”
“아샤, 네 직속 호위무사라니 그게 무슨....”
“그건 나중에 하고. 제윤,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르베이나님.”
“제윤, 미안하지만 뮤트라를 왕궁의 제 방으로 안내해주세요. 금방 들어가겠습니다.”
“영광입니다, 르베이나님.”
“언제 쯤 오는데?”
“금방 갈게, 뮤트라. 씻고 바로 갈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나는 그렇게 또 끌려가게 되었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샤가 미리 말을 해 두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아샤의 방에 들어간다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게 문제지.
“안으로 들어가셔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고마워, 제윤이라고 했나? 넌 안 들어가고?”
“네, 제 임무는 뮤트라님을 안으로 안내하는 것뿐입니다.”
“알겠어, 수고하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 단원인 것 같다.
저런 아이가 있다면 기사단 운영에 꽤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테지.
“그나저나....”
공주의 방답지 않게 꽤 소박하다.
방 하나에 침대, 책상, 옷장 등을 넣은 후 남는 공간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공주의 방 치고는 그렇게 넓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 같다.
“이 책들 전부 다 읽은 건가?”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
그중 한 책을 뽑아들어 안을 살펴보았다.
펜으로 엄청나게 그어져있고 중요한 부분은 체크까지 되어있는 마법서전.
......그 녀석이 8서클 마법을 마구잡이로 날린다고 해서 그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닐 것이다.
이렇게 공부해가며 자기 나름대로 악물고 연습한 결과 지금의 아샤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겠지.
“뮤트라, 뭐 읽어?”“노크는 하고 다녀라....”
“내 방인데 뭘.”
맞는 말이네.
자기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는 사람은 드물지.
“너....이걸 다 공부한 거야? 여기 있는 책들 전부?”
“응, 꽤 할만 했어.”
“......노력했나보네. 그것도 상당히.”
8서클을 다룰 수 있는 나이 22이라.....
나랑은 엄청 차이나네.
50년의 세월동안 서클을 배워서 8서클까지 다다른 나였는데.
“주위에서 그러더라고. 너는 머리 좋아서 좋겠다. 나도 그런 머리가지고 싶다. 노력 같은 건 필요 없겠다 등등.....”
“역시 왕족 주위의 인간들답네.”
“난 그런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소리쳐왔어. 나 또한 이런 머리를 지니기 위해 피 쏟아지는 노력을 했다고....”
“그랬더니?”
“당연히 안 믿지. 주위에서는 내가 한 노력을 모르고 결과만 알고 있으니. 난 그게 싫었어. 내 노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건 상관없어도 정당한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그저 남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기만 하는 사람들.....”“원래 인간이라는 게 그런 거란다.”
“뮤트라는 안 그러잖아.”
“난 인간이 아니니까.”
“그럼?”
“.............”
말 잘못했다.
아직 아샤에게 내가 천사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얘는 그저 내가 마왕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뭐....다른 마왕과는 다르지만.
“마, 마왕이라?”
“마왕도 서클은 전부 외워야 하잖아.”
“아, 하하....그러네.”
“그러고 보니 뮤트라는 나이가 어떻게 돼? 외모도 7년 전이랑 다른 게 없어. 머리도 나보다 더 좋은 것 같고. 내 8서클을 같은 서클로 무마시켰잖아.”
“그러고 보니 아까 제윤이라는 애 꽤 괜찮더라.”
“엑....그런 여자가 취향이었어?”
좋아, 말 돌리기 성공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가슴 큰 쪽이 좋았구나?”
“아니라고!!”
“걘 D정도 돼.”
“기사단원으로 쓰기 좋을 것 같다고!!”
“아, 그런 거였어?”
기사단장이 자기 단원의 정보를 이렇게 퍼트려도 되는 거야?!
내 정보는 어디서 퍼질지 무서워 죽겠네!!
“그나저나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꼭 말해야 돼?”
“응, 듣고 싶거든. 내 남편하려면 신상정보는 알아야하지 않겠어?”
“스물아홉. 부모님은 안 계셔. 그 외에 다른 가족은 없고.”
“꽤 많이 나이 들어 보이네.”
스물아홉이라는 얘기를 믿는 듯한 눈치다.
주신을 믿는 인간한테 ‘주신에게 덤볐다가 천계에서 인간계로 떨어졌다’라고는 말 못하지....
그보다 아샤가 이 사실을 알지 않았으면 하고.
“잠깐.”
“어? 왜 그래?”
“남편이라니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남편인데?”
“혹시나 해서 묻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전에 남편이라는 단어가 새로 바뀌었나?”
“음....그런 적은 없을 걸?”
“그럼 싫어.”
“공주의 남편이 되는 건데 그게 싫어?”
싫으냐고 물어보면 싫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솔직히 아샤가 외모도 수렴하고 남들이 좋아할만한 성격인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와 별개로 아샤와 결혼을 할 생각이 없으며 이는 몇 번이고 거절했던 대답이었다.
“공주의 남편이든 뭐든 난 앞으로 조용히 살아가려고 생각 중이야.”
“.......”
“아샤, 그러니까 네 고백에 답을 해줄 수는....”
“뭐야, 뮤트라....”
아샤는 자신의 고개를 푹 숙이며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떨리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아샤를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대체 뭐냐고....”
“아, 아샤?”
“왜 나한테 잘해줬어? 싫으면 싫다고 강하게 내쳤으면 됐었잖아. 왜.....왜 이제 와서.....”
“아샤, 그런 게 아니라!!”
“왜 이제 와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떠나려는 건데!!”
“.........”
아샤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싫은 건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다.
단지 내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는 동안 같이 있었던 존재였을 뿐.
그로 인해 그녀를 무의식중에 상처 입히게 되었고 현재 그녀는 내 앞에서 처절하게 울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뮤트라....왜 괜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왜 잊을 수 없게 만들었어.....”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지금 그런 뮤트라의 반응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고!! 마치....7년 전과 같잖아.”
아샤는 고개를 들고 울부짖듯이 나에게 따졌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아샤는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샤!!”
“따라오지 마!!”
아샤의 말이 저주라도 되는 듯 나는 자리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그녀를 친절하게 대하는 듯싶으면서 내심으로는 멀리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내 딸린 벨리이르와 겹쳐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죄도 없는 그녀를 마음속으론 내쳐버렸던 것일 지도 모른다. 단지 내 하찮은 감정 때문에.....
“제길, 어디까지 간 거야?!”
뒤늦은 걸 알고 나는 재빨리 아샤를 쫒아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궁내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아샤.
아까 가 보았던 훈련장에도 보이지 않는다.
“제윤!!”
“어, 뮤트라님?”
“아샤 봤어?”
“아니요, 방금까지 같이 계시던 거 아니었나요?”
“미안, 도중에 없어져버려서.”
“그럼 신고해야하는 게!!”
“아니야, 일단 내가 찾아볼게. 일 크게 벌리지 말아줘.”
“아,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제윤도 아샤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
아니, 누구라도 일단 아샤의 울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소식이 들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건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아샤가 갈만한 곳....
“제윤, 잠시만. 하나만 물을 게.”
“네? 무엇을....”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은 어디지?”
“가장 높은 곳이라면.....아마 왕실 도서관일 겁니다. 전대 선왕께서 높은 곳의 경치를 바라보며 책을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알았어, 고마워.”
나는 왕실 도서관을 찾아 뛰기 시작하였다.
아마 아샤는 그곳에 존재하리라 믿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