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베류나의 변화된 운명]
지금 내 눈앞에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베류나.
하.....인간의 모습일 때 웃는 건 사악해도 그냥 넘어갔는데 혈마(血魔)의 모습으로 웃으니까 같은 웃음이라도 정말 기분 나쁘다.
거기다 추가로 지금 이 상황.......
“정말 뭣 같네.”
“당신으론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냥 포기하시고 저와 같이 그분에게 가도록 하죠.”
“삐----- 내가 그럴 거 같냐, 이 삐---- 같은 삐---- 야.”
“그럴수록 더욱 끌리네요, 시베르토 씨.”
“님, 마조기질 있으세요?”
그럼 나는 정중히 저 녀석을 매도하지 않겠다.
내 입이 아파가며 저 녀석을 욕해도 그걸 희열로 받아들이다니......무서운 자식.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체인 라이트닝: 주변에 마치 체인이 이어지듯 번개가 이어져 다수공격을 한다.
“크윽.....!! 그걸 또 피하냐.”
“말씀 드렸잖아요, 당신은 절 이길 수 없다고요.”
“역시 최강의 신체라 이건가?”
“완전하진 않지만요.”
번개에서 흐르는 전류가 바닥에 내리치는데 걸리는 속력은 약 초당 6000km.
그걸 또 피하고 있다.
원래 혈마는 숙주의 피를 매개체로하기 때문에 숙주의 몸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게 쌓이고 쌓이면 숙주의 몸은 점점 강해지지만 피로 인한 악마와의 계약이기 때문에 영혼은 보다 빠르게 잠식당한다.
“베류나, 정신 차려. 여기서 더 나가게 되면 너는 네가 아니게 될 거야, 네 안에 있는 혈마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란 말이야!!”
“영혼이 잠식당하는 걸 말하시는 건가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알고도 지금의 일을 자초하는 겁니다.”
“대체 왜.....”
“그걸 당신이 알아서 어쩌겠다는 거죠? 빨리 제 대답에나 답하세요, 같이 갈 것인지, 여기서 죽을 것인지.”
“왜 하나 같이 내 주변 인물들은 그런 생각밖에 못하는 건데.....”
베류나가 일을 재촉하는 이유,
아마 자신의 생을 마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까 베일 그랑리우스한테 들은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아까 나한테 스테이지의 옥상에서 그랬지. 나만 이렇게 힘들다고....괴롭다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이건 내 추론에 불가하지만 아마 너는 절망스러운 삶에서 그 혈마에게 도움을 받았겠지. 달콤한 유혹으로 널 부추기며....”
“어찌되었든 그건 제 선택입니다. 당신이 참견할 그럴 문제가 아니라고요.”
“네 사정은 나도 잘 몰라. 네가 얼마나 커다란 절망감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그럼 그냥 닥치고 제 말에....!!”
“그렇기에 너를 구원하고 싶은 거야!!”
자신의 말을 끊고 소리친 내 말에 베류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겪고 있는 그 아픔은 누구에게도 풀어놓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겠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음악생활을 하던 너는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혈마의 말에 쉽게 넘어가고 지금까지 계약을 하고 있는 거겠지.”
“당신이 뭘 안다고 지금....!!”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아마 인간계에서 베류나와 같이 혈마를 만났다면.......똑같은 길을 걷었겠지.
그만큼 나도, 베류나도, 베리네도......절박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았어, 아무리 절망에 시달리더라도 죄악감을 느낄만한 짓은 하면 안 된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죠?”
“절망으로 시작된 죄는 또 다른 절망을 만들고 또 다시 죄를 만들기 때문이야. 네가 하고 있는 짓처럼.”
“내가.....또 다른 절망을.....”
“너는 부모가 죽은 고독한 상황에서 절망을 느껴 지금과 같은 일을 벌였지만 네가 죽인 사람들, 그들도 모두 가족이 존재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야. 넌 그 가족에게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전해준 거야. 절망에서 행하는 것은 또 다른 절망밖에 낳지 못한다고!!”
베류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그녀의 몸은 점점 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만행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지금부터 속죄하면 되는 거야. 그런다고 네가 저지른 만행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죄악감은 덜 수 있겠지. 너도 지금와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지금 겉모습은 혈마의 모습이지만 안에 있는 영혼은 베류나 자신의 것이다.
그녀가 아직 인간성이 남아있다면......
아니, 이미 남아 있는 걸 확인하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따뜻하고 맑은 사람의 눈물이.
“시베르토 씨.....”
“그래,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부터 죗값을 치러나가면 되는 거야.”
베류나는 조금씩 공중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가고일의 붉은 눈이 아닌 사람의 정상적인 눈동자로 돌아왔으며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런 원래의 외형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다 죽여 버리면 되겠네.”
“베류......아니, 혈마인가.”
베류나는 다시 가고일의 형태로 변했다.
나는 베류나와 거리를 두었지만 이미 내 왼쪽 팔은 잘려나간 이후였다.
“대단한데? 이 여자의 영혼은 꽤나 맛있었는데 벌써 설득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하다니.”
“혈마, 베류나를 완전히 점령해버린 건가.”
“그래, 혈마는 영혼을 계약하기 때문에 영혼에 상처가 많고 맛있을수록 잠식당하는 게 빨라서 말이야.”
“너라면 대답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사리엘 제나 베리네는 살아 있는 건가?”
“살아 있어. 아니, 산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이 맞는 건가?”
“무슨 소리지?”
“천계에서는 천사로, 악마로서는 혈마로, 인간이라고 물으면 그렇겠지만 생명체로 살아있기는 해.”
무슨 소리지.
분명 그녀는 내가 죽였다.
천사로서의 그녀도, 혈마로서의 그녀도 전부 내가.....이 손으로 죽였다.
“자세한건 나도 몰라. 그런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도 난 대답 못해준다고.”
“그래, 그럼 하나만 더 묻지. 너도 날 베리네한테 데려가려고 하는 건가?”
“그래, 그녀한테서 새로운 숙주도 받아야겠거든.”
“그럼 여기서 죽이는 수밖에.”
“내 속도를 따라오지도 못하고 왼팔까지 잃은 네가 나를 죽이겠다고?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인간이여.”
아직 이 녀석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단지 사리엘 제나 베리네를 아는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을 뿐.
“그 정도면 충분해. 너를 빨리 베류나한테서 때어내고 그녀를 해방시켜주겠어.”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롱소드를 꽉 부여잡았다.
어제 사용한 후의 부작용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걸 사용하면.....그 다음 일은 끔찍하지만 지금은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긍정이 아닌 파멸. 이 힘을 사용하는 대가는 나의 생명. 주신이 건넨 생명을 나는 거부한다.”
이 금지된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