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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그 딜러
작가 : 새롬
작품등록일 : 20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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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사고 당일
작성일 : 17-11-02     조회 : 467     추천 : 0     분량 : 3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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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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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여름. 대한민국의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유난히 더운 날씨를 자랑하는 경상 북부의 한 촌동네에서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사이에 기이한 일이 하나 일어났다.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논밭 위엔 거대한 농기계가 가로축의 끝에서 끝까지 오가기를 반복했고, 일련의 작업들 사이, 예를 들면 집초기가 달린 트랙터 하나가 한 구역을 모조리 쓸고 지나가면 인근 창고에서 날아온 드론 몇 체가 베일러를 끌고 날아와 트랙터에 갈아 끼우고선 다시 트랙터를 밭에다 굴리는 일이 한참 반복되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갈 이유조차 흔치 않은 지역에 웬 사람 하나가 비틀거리며 멀쩡한 길을 놔두고 밭을 가로질러 가는 중이었다. 남자의 행색은 지저분했다. 그의 상체보다 가슴 둘레가 한 뼘 정도 더 커보이는 체크셔츠는 단추 몇 개가 떨어져 제대로 잠기지도 않았고 남자의 흰 얼굴엔 지저분한 잡티가 군데군데 묻어나 붉은 집군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유별난 점이라 하면, 그의 눈이 유난히 새빨갰다. 남자는 전력 질주를 하는 것 처럼 숨을 가쁘게 쉬었다. 그가 밭을 가로지르던 도중 지나가던 트랙터와 몇 번 큰 사고가 날 뻔 했으나 기계가 오히려 사람보다 분별이 정확해서 남자가 앞을 지나갈 때면 시끄러운 경보음을 울리면서도 곧장 진로를 밀지 않고 기다렸다가 일을 이어갔다. 덕분에 남자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목적지로 예상한 듯한 건물에 들어섰다.

 

 

  그 곳은 농작지 안에 약 일 키로 간격으로 군데군데 놓여진 곡창 중의 하나였다. 회색 콘크리트를 매끈하게 발라놓은 네모난 건축물의 외벽엔 '41'이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었다. 남자는 건물 입구 멀찍이 서서 몸을 기울인 채로 숫자를 확인 하더니 농경지를 가로지를 때와는 또 다른,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로 건물을 향했다.

 

 

  건물 안의 공기는 남자의 예상보다 훨씬 쾌적했다. 곳곳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이 내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고 있었다. 남자의 목을 타고 흐르던 땀이 점차 말라갔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십 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금속 선반이 입구서부터 실내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주변엔 사다리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쓰기 위해 만든 구조물은 아니었다. 선반의 가장 아랫쪽엔 예비 트랙터 몇 대가 줄을 지어 서 있었고, 그 윗 칸엔 트랙터에 달릴 작업기들이, 가장 윗 줄엔 예전에는 사람이 했을 일들을 도맡고 있는 드론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참으로 좆 같네. 인쟈 쌔빠지게 구르고 나뒹구는 건 사람 몫이고, 시원한데서 편히 쉬는 일은 기계가 한다 이기가."

 

 

  그때 남자의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여자의 음성이었다.

 

 

  "거 누구 없소."

 

 

  투박한 말투와 심히 어울리지 않는 청량하고 단아한 목소리가 건물 벽을 타고서 남자의 귀에 닿았다. 남자는 마른 입술을 침으로 축이며 재빨리 선반 근처에 있는 트랙터의 그림자에 숨었다. 남자는 입고 있던 카고 바지의 주머니에서 리모컨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입구쪽에서부터 사락거리는 여자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여자가 말했다.

 

 

  "여기 계신거 다 안다니까요. 얼른 나오시오."

 

 

  남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랄들이여. 나가면 뒤지는거 빤히 아는구만.'

 

 

  한편 여자는 이리 생각했다.

 

 

  '거 참. 빨리 나오면 후딱 정리하고 갈텐데. 미지근하네.'

 

 

  남자는 잠깐이나마 자신이 옛날부터 간직했던 꿈에 대해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어쩌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몰리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말미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남자도 그걸 잘 알았다. 그는 트랙터에 달린 사이드미러를 통해 발소리가 나는 방향을 주시했다. 얼핏 보이는 여자의 모습은 남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부졌다. 덕분에 그는 조금이나마 품고 있던 삶의 희망을 버렸다. 남자는 두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가슴 언저리에 대고 몇 번 문질렀다.

 

 

  "우라질 것. 기껏 뒈질 거면 좀 예쁜 딸래미한테 뒈져보는 게 소원이었건만!"

 

 

  남자는 그렇게 소리치고 트랙터의 그림자에서 나와 곧바로 발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어들었다. 그를 쫒던 여자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남자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거 참, 안 예뻐서 미안하네요."

 

 

  여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가 들고 있던 총에서 매끄러운 사출음이 들렸다. 총에서 미끄러져 나온 한 쌍의 구체는 허공에서 빠르게 회전하더니 곧장 돌진해오는 남자를 가운데에 달린 와이어로 꽁꽁 묶어버렸다. 남자는 구체의 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내딛었던 걸음으로부터 십여미터가 떨어진 바닥에 쳐박혔다.

 

 

  "으아아아악!"

 

 

  남자를 감은 와이어는 딱딱 튀는 소리를 내며 잠깐씩 푸른 빛을 뿜었다. 그렇게 남자가 고통속에서 신음하기를 몇 번, 그가 입은 셔츠에서 쟂빛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랐다. 여자는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는 침착한 발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러게 그 위험한 것들은 왜 들고 도망가요?"

 

 

  "헷. 그걸 빤히 알면서 물어보는 이유는 뭐고. 어차피 놈들한테 내 목적 다 들었을 꺼 아이가."

 

 

  "그렇지요."

 

 

  남자는 묶인 와중에 자세를 고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퍼뜩 조지지 않고 뭐하누."

 

 

  여자는 허리를 숙여 남자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여자의 얼굴은 다부진 몸과 달리 선이 매우 고왔다. 미간의 굴곡을 잃지 않고도 오똑 솟은 코와, 깊이 패인 눈, 지금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분홍빛 입술이었다. 얼굴과 몸이 대체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필히 사람의 몸이 아닐 것이리라. 남자가 물었다.

 

 

  "넌 예전의 몸이 그립지도 않은갑네."

 

 

  여자가 대답했다.

 

 

  "배려 감사하네요. 남 걱정 해줄 여유까지 있으시고, 본인 걱정은 다 끝나셨나요?"

 

 

  남자는 여자의 얼굴보다 더 위에, 건물의 천장보다 더 위에 있을,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밖의 하늘을 상상하면서 대답했다. 솔직한 남자의 심정은 제대로 된 묫자리를 가지지 못할 망정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라도 죽고 싶었다.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이라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끝났지. 내 역할은."

 

 

  여자는 작별 인사를 말하며 총 손잡이에 파인 홈 하나를 꾹 눌렀다. 동시에 남자의 몸을 감은 와이어가 핑 하는 소리를 내더니 순식간에 남자의 복부를 파고들어 이윽고 척추를 지나 그의 몸을 두동강내었다.

 

 

  "그럼 좋은 길 가시죠."

 

 

  남자의 인생은 끝까지 그의 맘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았다. 여자가 창고에서 떠나자 선반의 가장 윗쪽에 있던 드론 세 체의 옆면에 있던 램프가 반짝이더니 이내 날아올랐다. 그것들은 남자의 유해를 집어 커다란 비닐에 담아 돌돌 말아선 어디론가 들고 날아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드론들은 새니타이저와 PB-1 용액을 바닥에 한참을 살포하고선 남자가 남아있던 흔적까지 깨끗하게 지우고 나서야 다시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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