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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그 딜러
작가 : 새롬
작품등록일 : 20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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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방치된 지능
작성일 : 17-11-17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10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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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설은 예상치 못한 연락에 당황하며 나갈 채비를 위해 일전에 윤형에게 받아두었던 주사를 찾는 중이었다. 어젯 밤은 윤형 없이 혼자 잠에 들었다. 잠에 들기 전까지 윤형에게 수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행여 무슨 일이 생겼을까 철형에게도 전화를 했다. 철형은,

 

 

  “일단 경찰 수사권은 우리 쪽으로 가지고 왔어요. 보안으로 묶어놨기 때문에 거기서 윤형 씨한테 알려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라는 대답만 들려줄 뿐이었다. 정작 중요한 윤형의 행방을 모르는 채였다. 그것이 불안했다. 평소 보기와 달리 고집이 센 그녀의 남자친구는 수상한 기색에 포기 않고 오히려 물고 늘어질 것 같았다. 그녀가 아침에 깼을 때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희설은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네 다섯 번 울리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희설 상사 맞지?”

 

 

  “네, 누구시죠?”

 

 

  희설은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군의 계급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군 소속 인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말투 자체는 민간인의 말투였다. 희설은 그 점이 다소 의심스러웠다.

 

 

  “자네가 근무했던 기특부에 새로 온 지휘관인데, 급한 일이 좀 있어서.”

 

 

  “기특대요….”

 

 

  부대의 이름을 읊는 희설의 심정은 복잡했다. 어찌 보면 분노였고, 어찌 보면 체념이었다. 두 감정이 한데 뒤섞여서 향한 곳은 미련이었다. 다만 이미 부대에서 전역한 자신을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어째 찾고 있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자네한테 듣고 싶은 게 있어. 잠깐 시간 괜찮겠나?”

 

 

  “보안 사항에 관련된 일인가요?”

 

 

  “응. 2026년 얘기야.”

 

 

  2026년, 희설이 테러에 휘말려 전역을 피할 수 없게 된 해였다. 결국 그녀에게 새로운 과제가 던져졌다. 윤형의 일은 아쉽지만 그의 일로, 희설은 다시금 해결되지 않았던 자신의 문제를 돌아볼 시간 앞에 섰다. 연락을 받은 시기가 다소 신경쓰였으나 그때의 미련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아. 생각보다 협조적이네. 좋아. 그럼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전화가 끊기고 몇 분 후에 희설의 스마트폰으로 암호화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희설은 번역코드를 탑재한 별도의 앱을 통해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엔 구로구에 있는 어느 빌딩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희설은 인터넷에서 메시지에 나온 주소를 확인했다. 익숙하게 들었던 기업이 소유한 빌딩이었다. 다만 의외였던 점은, 드론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업이 어째서 소프트웨어 거래시장이 있는 구로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가였다. 단순히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하기엔, 하드웨어 기업이 부담해야 할 세금이 과한 지역이었다. 희설은 과거 군인으로 있을 때의 직감으로 평범한 빌딩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희설이 약속장소에 도착한 것은 연락을 받은 아침으로부터 두 시간이 지난 오전 열 시 경이었다. 생각해보니 상대의 이름을 묻지 않았었다. 희설이 메시지로 전해받은 빌딩 앞에 우두커니 있으려니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자네가 희설 중사 맞지?”

 

 

  희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부른 남자는 정복 차림이었다. 목 깃엔 무궁화 세 개가 박혀 있었다. 단순한 행정직 군인은 아닌 듯 허리를 곧게 핀 자세였다. 나이는 젊어 보였다. 희설의 추측으로는 서른 후반 정도. 희설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래. 일단 불러놓고 세워두기도 뭐하니 들어가지. 참, 소개가 늦었네. 기특대 대대장 김 권호라고 하네.”

 

 

  “예비역 중사 희설입니다.”

 

 

  둘은 간단하게 소개를 끝냈다. 권호는 그녀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희설은 처음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민간 기업임에도 군인이 돌아다니는데 누구 하나 희한한 눈초리로 보는 이가 없었다. 그가 여기를 오가는 것이 익숙한 상황이라는 증거였다. 희설이 물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죠?”

 

 

  권호가 답했다.

 

 

  “뭐긴 알다시피 가정용 드론을 주로 만든 회사지.”

 

 

  “그런 것 치고는….”

 

 

  희설은 권호가 일부러 대답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둘은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렸다. 권호가 희설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역시 현역 때 엘리트는 눈썰미가 남다른데? 뭔가 수상한 걸 눈치 챘나봐?”

 

 

  “그 정도까진 아니고, 정복을 입은 군인이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수상쩍게 보지 않는 게 맘에 걸렸습니다.”

 

 

  권호가 헛기침을 했다.

 

 

  “자넨 기업이 군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됐던 시기가 언제라고 생각하나?”

 

 

  희설이 대답했다.

 

 

  “2차 세계대전 전후겠죠.”

 

 

  “그렇지. 기업 입장에선 말야. 전쟁으로 많은 제품을 갖다 쓰는게 단기적으론 이득이 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소비자층이 살아서 평화로운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걸 알아버렸지. 그 이후로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군과는 손을 떼려 했고.”

 

 

  권호가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두 사람을 태운 에스컬레이터가 2층에 도착했다. 둘은 일단 걸었다. 대령의 목소리가 그다지 작은 편이 아니었기에, 그도 복도에선 말을 아꼈다. 건물의 2층은 공용으로 쓰는 회의실이 여러 개 준비되어 있었다. 권호는 그 중 하나의 문을 열고 희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가 문의 자물쇠를 잠궜다. 희설은 본능적으로 그를 경계했다.

 

 

  “얘기를 마저 하자고.”

 

 

  희설이 대꾸했다.

 

 

  “방금 한 얘기가 저와 무슨 관련이 있는겁니까? 분명 2026년 얘기를 들려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권호가 서두르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희설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희설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눈썹의 양 끝은 평소보다 올라가 있었다. 권호는 희설의 경계심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래. 경계가 그만하니 중요한 얘기부터 먼저 꺼내야겠네.”

 

 

  권호는 회의실 문 옆에 있는 스위치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회의실의 흰색 벽에 화면이 영사됐다.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에서 발사된 화면이었다. 거기엔 희설의 얼굴이 있었다. 희설은 영문을 모르는 채로 화면에 나온 정보들을 재빨리 취합했다. 하지만 희설이 상황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권호가 말했다.

 

 

  “일단 요구 사항부터 얘기하지. 당분간 우리의 감시를 좀 받았으면 하네.”

 

 

  희설이 권호를 쏘아보았다. 권호는 양 손을 들어올리며 능청맞게 그 시선을 흘려보냈다. 희설이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왜죠? 전 그쪽이 도와달라고 해서 온 것 뿐인데요?”

 

 

  권호는 난처한 기색을 숨지기 않았다. 그는 대답 대신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벽에 영사된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거기엔 희설과 닮은 얼굴과 아는 사람의 얼굴, 두 사람의 몽타주가 동시에 보여지고 있었다. 희설은 옛날 인연의 얼굴을 보자 마자 그리운 감정이 휩싸였다. 권호가 거기에 설명을 얹었다.

 

 

  “누군지는 알지? 자네 동기였으니까.”

 

 

  “최 은하 중사….”

 

 

  “아, 얼마 전까지는 진급해서 상사였어. 유능한 군인이었지.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원.”

 

 

  희설이 되물었다.

 

 

  “얼마 전까지요?”

 

 

  “응. 군 내의 중요 기밀을 멋대로 들고 나갔어. 사흘 전부터 위치도 안 잡히고.”

 

 

  “그 기밀이란 건?”

 

 

  “보여 줬잖아.”

 

 

  권호는 손가락으로 희설과 닮은 얼굴을 가리켰다. 희설은 자신과 닮은 몽타주를 보고도 아직 상황에 이해가 미치지 않았다. 그녀는 권호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현역시절 자네를 기반으로 시험 제작중이던 의체야. 링크를 통해 실제 군인 대신 의체로 전장을 활보할 수 있게끔 개발중이었지.”

 

 

  희설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현역시절 군 기록에 남을 정도로 특출난 군인이긴 했으나, 자신의 기록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찝찝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제대로 듣게 된 대령의 사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2026년의 테러사건으로 기특대는 소속 대원의 절반을 잃었다. 희설도 그 중 하나였다. 군 상부는 지속적으로 인력을 충당함과 동시에 차후 같은 상황에서의 공백 발생을 최소하기 위해서 별개로 의체 개발을 위해 민간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그 기업으로 선정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사명은 아이고스 인더스트리. 하지만, 의체와는 관련이 없는 드론 개발 회사가 협력업체로 선정된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있었다. 권호는 최대한 간략하게 군과 기업의 연결고리를 설명한 후 본론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흘 전에 완성을 눈앞에 둔 예의 의체를 가지고 최 은하 상사가 종적을 감추었네.”

 

 

  “은하가요?”

 

 

  희설은 권호 대령이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방금 들었던 아이고스 사와의 협력 관계의 배경부터 은하가 의체를 가지고 도주했다는 얘기까지, 모두 일이 그렇게 된 동기가 빠져 있었다. 그녀가 느낀 바로는, 대령은 지금 협력을 요청하는 게 아닌, 자신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이미 상황의 주도권은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군이 쥐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적인 반항은 쓸모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자네도 의문점을 느끼고 있겠지.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한 동기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네.”

 

 

  “그럼 왜 저를 이용하시려는 겁니까?”

 

 

  “이용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겠군.”

 

 

  권호는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벽에는 녹화된 영상이 하나 로드 됐다. 은하가 카메라를 보고 찍은 영상인 듯 했다. 권호가 영상을 재생시켰다.

 

 

  “잘 들어요. 내가 이 실험체를 데리고 가는 건 다 인류를 위해서에요. 이번 작전을 위해 2년동안 여기에 숨어 지내면서 난 생각보다 많은 걸 알게 됐어요. 군이 정확히 뭘 꾸미고 있는지도요. 하지만 이 로봇들은 당신들이 생각한 대로 쓰이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데리고 사라지겠습니다. 다만 원형인 희설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다간 당신들은 충분한 대가를 각오해야 할 거에요. 아시겠어요? 내가 처음 했던 말을 잘 새겨들어요. 다 인류를 위해서에요.”

 

 

  영상은 은하의 말을 충실히 전달하고 나서 멈췄다. 희설은 영상을 보고 나서도 도무지 짚이는 바가 없었다. 권호도 그녀의 표정을 알았으나 관례상 질문을 던졌다.

 

 

  “저 말을 듣고 짚이는 게 있나?”

 

 

  “아뇨, 전혀요….”

 

 

  “그래.”

 

 

  권호는 희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는 최대한 보여주고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셈이었다. 다만 그가 예상했던 대로, 일을 저지른 은하 상사의 동기는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었다. 사전에 희설에게 전달된 생각이나 이념 따위는 없었다. 권호는 관자놀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가 희설에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는 말을 하면서도 단어를 선택하는데에 신중을 기했다. 은하의 뚜렷한 목적을 알기 전까진 유일한 연결고리인 희설의 반감을 사면 안된다는 생각이엇다.

 

 

  “사람이 사건을 저질렀을 때, 그 사상을 따르는 자가 있다면 혁명이나, 적게는 뭐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만,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거라면 단순히 사건 이상으론 되지 않을 거야.”

 

 

  “네….”

 

 

  권호는 희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알다시피 자네 동기는 우수한 군인이었어. 우린 그런 인재를 잃고 싶지 않아. 그녀가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고 나서 처분을 결정할 수 있게끔 우릴 도와줄 수 있겠나?”

 

 

  희설은 망설였다. 그가 협력을 요청해도, 사실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처음 말했던 대로의 일 밖에 없을 터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감시하에 놓이는 것. 그저 주어진 일에 열심인 대가가 성치 못한 몸과 타인의 감시하에 놓인 삶이라니 여지껏 해왔던 일에 후회가 일었다. 시야가 흐려졌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권호는 곤란하다는 듯 거기서 시선을 돌렸다. 대화가 멈춘 시간이 십 분 정도 흘렀다. 희설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렸다.

 

 

  허나 이번엔 몸이 문제였다. 약의 효과가 거의 떨어져갔다. 무릎을 망치로 때리는 듯 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권호는 이미 열람한 자료로 그녀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은하가 써왔던 앰플을 건냈다. 은하는 통증때문에 건네진 앰플을 보고도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쓰는 게 좋을텐데. 자네의 상태는 알고 있네. 고가의 약이라 평소 자주 쓰지 못한다는 것도. 어때? 협력해주면 작전상 보급이라는 명목 하에 약에 대한 지원은 해주겠네.”

 

 

  희설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그가 윤형에게 터놓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통증에 대한 부담은 상당히 무거웠다. 크게 하는 일 없이 단순히 감시 하에서 약을 지원받을 수 있다면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희설이 감시의 조건을 상세히 물었다.

 

 

  “어딘가로 끌고가는 건 아니야. 자네의 핸드폰을 감시 네트워크에 등록하고, 집에 도청기와 카메라를 몇 대 설치할거야. 그리고 외부에서 감시하는 인력을 몇 명 붙일거고.”

 

 

  “그 정도면 뭐, 머리를 스캔하는 일은 없죠?”

 

 

  희설은 테러 작전 중 생포했던 테러집단 구성원의 뇌를 스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행여 협력이라는 명목 하에 군이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녀의 물음에 권호는 처음으로 굳은 표정을 지으며 반론했다.

 

 

  “그건 있을 수 없어. 아무리 결과가 먼저인 조직이라도 내가 그걸 허락 안해.”

 

 

  “그럼 받아 들이겠습니다.”

 

 

  대령은 희설의 협력을 얻어낸 결과가 만족스러운 덕에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희설은 그가 사실 꽤 괜찮은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설은 대령의 배웅하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사는 집임에도 온기가 있었다. 외출했다던 윤형이 먼저 집에 와 있었다. 희설이 먼저 안부를 물었다.

 

 

  “먼저 와 있었네? 별 일 없었어?”

 

 

  윤형이 대답했다.

 

 

  “응. 좀 일찍 왔어. 아무래도 군 관련 일인가봐. 알려줄 수 있는 게 없다네.”

 

 

  윤형은 거짓말을 했다. 희설은 자신의 일에 몰두해 그의 기색을 정확히 살필 여력이 없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실은 윤형은 구로에서 희설을 보았다. 자신이 목적지로 했던 빌딩에 희설과 어느 군인 한 명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실을 윤형은 희설에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사실여부를 확인하려 든다면 사랑하는 사이에 취조를 하는 꼴이 될 것이라. 그렇게 나아가버린 관계가 어떤 끝맺음을 가져오는지 윤형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모든 일이 확실해지기 전까진 희설에게 오늘의 일을 숨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로서 같이 있던 군인의 말끔한 외모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희설이 물었다.

 

 

  “아버지도… 군대랑 관련 있으셨어?”

 

 

  “응. 나는 잘 몰랐는데. 예전에 아버지가 어렴풋이 군대에서 오래 있었다는 얘기만 하셨었거든. 어떤 직책으로 일하셨는지도 몰라.”

 

 

  “그렇구나.”

 

 

  희설은 조용히 윤형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윤형은 기지개를 펴며 희설의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애인을 보는 그의 눈빛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윤형이 장난스레 말했다.

 

 

  “근데 오늘 경찰서 갔다가 깜짝 놀란 게 있는데.”

 

 

  “뭔데?”

 

 

  윤형의 질문에 희설이 가슴을 졸였다. 찔리는 부분이 많아서였다.

 

 

  “요새 여경들 엄청 예쁘더라.”

 

 

  희설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녀는 주먹으로 윤형의 옆구리를 쎄게 쳤다. 윤형이 억 소리를 입에 머금었다. 걱정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늘 이런 장난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날려버리는 남자의 재주가 조금 경탄스럽기도 했다.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아, 아니 그게. 사실인데 어쩔 수 없잖아.”

 

 

  희설이 물었다.

 

 

  “나보다 예뻤어?”

 

 

  윤형이 희설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계속 보다보니깐 너만큼 예쁜 사람은 없더라.”

 

 

  “바보.”

 

 

  둘은 나름의 사정을 속에 숨긴 채 평소와 다름 없이 몸을 포개며 밤을 맞았다. 다음날 희설보다 먼저 일어난 윤형은 다시 경찰서에 갖다온다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행여 그녀가 깰까봐 아침은 만들지 못했다.

 

 

  윤형이 향한 곳은 구로였다. 일전에 형사가 가르쳐 준 장소, 거기에 분명 중대한 힌트가 있을 것 같았다. 희설에 집에서 디지털 단지까진 지하철로 열 정거장 거리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얼추 30여 분 정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원래는 좀 더 빠르게 무인 택시를 잡을 생각이었으나 오늘따라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윤형은 내키지 않음에도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지하철 입구부터 퀘퀘한 냄새가 올라왔다. 계단을 전부 내려가서 방향을 틀자 마자 신문지와 박스등을 덮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대중교통이 완전 무인화가 이루어진 이후 집이 없는 사람들은 당연하단 듯이 서울 시내의 모든 지하철 역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경찰의 단속도 강화되었으나 치안조차 로봇이 전담하게 되면서 사람만큼의 성실함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노숙자들은 사람인 경찰에겐 아무 저항도 못했으나 로봇에겐 이상하리만치 분노를 담아 보이는 족족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윤형이 보기엔 그들은 폭력적이고, 난폭하고, 원시의 짐승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윤형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평소 신고 다니던 흰색 운동화에 행여 때가 묻을까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데에도 신중을 기했다. 잠에서 깨어 몸을 벽에 기대 앉아있는 노숙인 몇 명은 그런 윤형의 발걸음을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았다.

 

 

  윤형은 십 여분을 걸어서 겨우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플랫폼엔 거지의 행색이 많지 않았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노숙자들 몇몇이 자리싸움으로 서로를 지하철이 진입하는 선로에 던져버리는 사건이 있고 나서 그들 스스로도 플랫폼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때 윤형의 눈에 낯선 광경이 들어왔다. 윤형이 방금 플랫폼으로 내려온 계단 반대편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형은 귀를 기울였다. 가래가 가득 낀 목소리로 추측하건데 노숙자들의 목소리였다.

 

 

  “워. 젊은 아가씨가 여긴 웬 일이래.”

 

 

  “이거 건드려도 우리 아무 문제도 없는 거 맞죠?”

 

 

  몇몇의 헛기침 소리도 들렸다. 윤형은 가슴 언저리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 노숙자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대답도 못하는 걸 보니 머리가 어디 이상한 모양인데.”

 

 

  “옷 좋은 거 보소. 때 하나 안 탔어. 나 이거 가지면 안돼요?”

 

 

  대략적인 상황을 알게 된 윤형은 저들을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윤형은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계단 뒤로 돌아갔다. 허나 노숙자들 가운에 있던 여자와 눈을 마주쳤을 때 그는 다리가 굳고 말았다. 거기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희설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희설을 닮은 것이겠으나 너무도 정교한 탓에 그저 본인으로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윤형은 말문이 턱 막혔다.

 

 

  허나 반대로 여태껏 아무 말이 없던 로봇은 윤형의 얼굴을 수 초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빠!”

 

 

  소녀의 갑작스런 용태의 변화에 노숙자들과, 윤형은 아무런 응대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희설을 닮은 소녀는 노숙자들 사이를 헤치고 나와 윤형의 손을 잡았다. 그 소녀의 얼굴은 희설과 매우 닮았으나 몇 가지 부분이 달랐다. 첫째로 키가 작았고, 둘째로 다리를 절지 않았으며 셋째로 희설은 자신을 오빠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노숙자들의 시선이 윤형에게로 향했고, 윤형은 위압감에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지하철의 역 진입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윤형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고, 여러 소음들이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소녀는 주저않고 계속 다가왔다. 윤형이 소리쳤다.

 

 

  “오… 오지마!”

 

 

  소녀는 그의 외침을 듣고 얼굴에 미소를 거두었다. 왠지 모르게 시무룩한 표정에 윤형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가 희설이 아니란 걸 알아도 똑같은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었다. 그때였다. 뒷걸음질 치던 윤형이 발을 헛디뎌 플랫폼 밑으로 떨어졌다. 윤형의 시야가 역 천장을 향했다. 그의 귀에 노숙자들이 허둥대며 뱉어대는 얼빠진 소리가 들렸다. 그들 누구도 윤형을 구하러 플랫폼에 뛰어들진 않으리라. 터널의 끝에서 한 쌍의 불빛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윤형은 눈을 감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미련이 남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데도, 자신이 여기서 허무하게 죽어도 되는 걸까. 희설에게 품고 있는 의심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죽고 마는 걸까.

 

 

  윤형은 주마등이 무엇인지 체감하는 도중에 노숙자들의 얼빠진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는 선로에서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몸이 움지이지 않았다. 열차는 바로 코앞까지 와 있었다. 윤형은 고개를 겨우 들어 선로의 구석을 보았다. 저 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 현 상황에선 헛된 바람이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윤형은 온 힘을 짜내 소리쳤다. 그 때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희설을 닮은 소녀였다. 소녀는 가볍게 선로에 뛰어내려 윤형을 들쳐 업고 다시 플랫폼으로 뛰어 올라왔다. 열차는 아무 일 없던 듯 조금씩 속도를 줄이며 정확한 위치에 정차했다. 윤형은 들쳐 업힌 채로 방금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열차를 보았다.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반대로 윤형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작은 소녀에게 업혀 있는 남자의 모습은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충분히 요상했다.

 

 

  윤형은 그제서야 부끄러움을 깨닫고 소녀에게 내려달라고 말했다.

 

 

  “야. 이제 됐으니까 좀 내려줘.”

 

 

  “정말 괜찮아요?”

 

 

  “괜찮다니까. 쪽팔려 죽겠다고.”

 

 

  이 광경을 아는 사람이 보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소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윤형을 바닥에 내던졌다. 내팽겨쳐지리라고는 생각치 못한 윤형은 엎드린 채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가슴을 바닥에 부딪힌 탓에 헛기침이 계속 나왔다. 소녀는 노숙자들을 쏘아보았다. 노숙자들은 죄책감에 얼른 자리를 피했다.

 

 

  윤형이 숨을 고르고 나서 자신을 구해준 소녀에게 물었다.

 

 

  “대체 넌 뭐하는 애냐. 일단 구해줘서 고맙긴 한데. 혹시 희설이랑 아는 사이야?”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얼굴이 그만큼 닮았을 리도 없었다. 희설은 평소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윤형은 그 쪽으로 넘겨 짚었다. 소녀가 말했다.

 

 

  “희설이 누구에요?”

 

 

  “음… 아니, 모르면 됐다.”

 

 

  윤형은 괜한 착각을 했나 싶었으나 소녀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희설이란 사람은 모르지만 오빠랑 오빠 아버지에 대한 건 알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윤형의 눈엔 집착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귀기가 서렸다. 소녀는 그 눈빛에 기죽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빠가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일을 조사하고 다닌다면서요? 그럼 저랑 같이 갈 데가 있는데.”

 

 

  윤형은 재빨리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섰다. 윤형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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