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이 말해준 스페인어의 의미를 들은 지율은 심장이 정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싫은 기분은 아니고 머리가 이상하게 조금 어지러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묘한 기분.
꼭 자신의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진 말, 세상에 자신이 전부라며 흔들림 없이 말해주는 시윤의 모습에 묘한 기분이였다.
"시윤...씨..."
"응?"
"아.. 갑자기 왜 알려준거야?"
"사랑한다고 해주니까, 내게는 한지율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내 존재?"
"응 그래, 너는 내 전부야"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가치? 내게는 그런걸 논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어? 전부라니까."
시윤은 정말로 자신의 전부가 지율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4년을 떨어져 지내며 떠나지 않았던 사람.
다시 봐도 역시 빛나 보이는 유일한 사람, 어디를 가더라도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보고 싶은 그런 그리운 사람.
"고마워…."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지마. 정말 소중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잖아? 나도 그럼 가치를 논하는 존재가 되는거야?"
"아니야... 시윤씨 말이 맞아 소중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어."
"그래 그게 맞아."
"내게도 당신이 전부일까?"
묻는 지율의 말에 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가 되게 내가 만들거야. 걱정하지마.”
"응..."
"서로가 전부가 되도록 우리 서로만 보이도록 내가 한지율만 보이듯이."
"서로가 전부가 되도록….”
"자 무거운 이야기는 이만 하고 이제 들어갈까?"
밝게 말하는 시윤의 목소리에 지율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
안으로 들어와서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자, 지율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상당한 양의 음식을 먹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지율의 멈추지 않은 손과 입을 시윤은 그저 멍하니 보고 있었다.
먹기보다는 자신을 보는 시윤에게 지율이 물었다.
“왜 그렇게 봐?”
"맛있어?..."
시윤이 신기하다는 듯이 보며 묻자 지율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응응! 시윤씨는 맛없어?"
"아...아니 그런건 아닌데..."
"근데 왜?"
"너... 그거 지금 몇 그릇 째인 줄 알아?"
시윤이 그릇을 가르키며 물어봤다.
지율은 자신의 옆에 쌓여있는 접시를 보며 말했다.
"세 그릇 째."
"너 그거...적은 양 아니야.... 제일 큰 사이즈 먹고 있잖아... 배 안 불러?"
"뭐 어때… 나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것도 없이 잠만 잤단 말이야. 게다가 저녁시간도 지나서 먹은거구… 많이 먹어서 싫어?"
지율이 묻자 시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많이 먹는 게 더 좋으니까 걱정하지마, 혹시나 배탈이 날 까봐 걱정이 되고 그래서 그랬어.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먹는데 마른 몸이야…?"
“신기해? 음 하긴 내가 좀 많이 먹기는 하는 것 같아. 찌지 않는 건 체질 덕분이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체질이네. 마르면 별로인데.”
“왜? 남자들은 마른 몸매인 여성이 더 좋지 않나?”
“사람 마다 틀리지만 보통은 마르면 어디 부러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여자랑 생각 하는게 조금 틀리네?”
“그런 것도 있고 또 사람이 선호하는 스타일에 따라 틀리지. 나는 좀 지율이가 쪘으면 좋겠지만.”
“흐음… 그럼 나 하나 더 먹어도 돼?”
“배가 괜찮으면… 그렇게 배고팠어?”
"응응! 시윤씨는 안 배고팠어?"
"배고프니까 여기서 제일 큰 사이즈로 시켜서 먹고 있지…? 그런데 너는 곧 네 그릇.”
"훗 이런데 와서는 원래 많이 먹는 거야! 아 근데 이건 느끼하다 해물 스파게티는 맛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알리오는 별로 안 맞나봐, 이번에는 로제로 먹어볼까? 베이컨 로제?"
벌써 메뉴를 고르고 있는 지율을 보며 시윤이 물었다.
"진짜 괜찮겠어?"
"응 나 진짜 하나 더 시켜도 돼?"
지율이 그를 바라보며 묻자, 결국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눈에 결국 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먹고 아프지만 않으면 더 시켜, 먹고 싶은 거 먹어.”
시윤이 시키라고 하자 지율은 다시 메뉴 판을 보며 즐거운 표정으로 고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시윤 역시 기뻤다.
‘먹는 것도 사랑스럽네.’
"시윤씨!"
"골랐어?"
"음... 너무 면만 먹으니까 속이 느끼해서 여기 아까 보니까 다른 메뉴도 있던데.”
"그래서 뭐 먹으려고..?"
"김치 볶음밥 먹고 싶어~!!"
“김치 볶음밥?”
“응! 면을 먹었으니, 쌀도 들어가야지 한국인은 밥심이야!”
지율의 말에 시윤이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너 말 하는거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 얼굴이 작은 애가 말하고 저만한 요리 다 먹고 또 시킨다고 즐거워하고…”
“민망해…”
“사랑스러워.”
"이제 시켜도 돼?"
“먹고 체하지만 않는다면 얼른 시켜.”
"알았어요 꼭꼭 씹어서 먹을게요."
지율은 메뉴가 결정되자 벨을 눌러 직원을 불렀다.
그릇을 치우고 김치 볶음밥을 추가로 시키자 직원이 잠시 신기한 듯 봤지만, 웃으며 주문을 받아갔다. 직원도 신기하게 보자 지율은 조금 민망했는지 시킨 것을 잠깐 후회했다.
“직원도 신기한가… 괜히 시켰나?”
지율이 울상인 표정을 짓자 시윤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아니 괜찮아, 많이 먹는게 좋다고 했잖아.”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시윤의 다정한 말에 기분이 다시 안정을 찾아갔다.
주문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김치 볶음밥이 나왔다.
나오자 마자 지율은 또 맛있게 먹기 시작했고 시윤은 맛있게 먹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어 먹어"
"알아"
"스파게티 3개에 김치볶음밥이라.. 너 진짜 괜찮을까..."
"괜찮아."
"그럼 다행이고"
"시윤씨는 더 안 먹어?"
"나는 괜찮아. 나도 일단은 제일 큰 사이즈로 먹었다고. "
"꼭 당신이 안 먹으니까 나만 몇 일 굶은 사람 같아."
"음, 내가 많이 먹어도 네 그릇 까지는 못 먹겠어.”
시윤의 말에 지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작은 입술에 밥이 들어가 오물오물 먹으니 꼭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시윤이 말했다.
“그렇게 오물오물 먹으니까 학생같아.”
“나 아직 학생 맞는데?”
시윤이 ‘피식’웃으며 말했다.
“아니 중, 고등학생 꼭 교복 입은 건 아닌데 그런 데이트 하는 것 같아.”
“그거 칭찬이지?”
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풋풋하다는 칭찬이지, 귀엽다는 칭찬도 되고.”
시윤의 말에 지율은 김치 볶음밥을 한번 보고 시윤을 보며 말했다.
“나 이거 시키길 잘한 것 같아.”
“왜?”
“이미 느끼한 말을 듣고 있는데 또 스파게티 시켰으면 남겼을거야.”
“정말?”
“응….”
“싫지는 않다며.”
“그렇긴 하지…? 음 조금 자제 해주는 것도 좋고.”
“정말?”
“정말.”
“밥만 보고 말하지 말고 내 눈 보고 말해봐, 싫은 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