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와의 마지막.
“5년 전 우리는 어떻게 헤어졌는지 말해볼까…?”
지율은 5년 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은 그 날 내게 만나서 이렇게 말했지…”
“…….”
“지겨우니까, 헤어지자고.”
“…..”
“답답하다고, 돌덩이 같다고. 스킨십을 겁을 내는, 내가 돌덩이 같다고.”
“……”
돌덩이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지율은 수 많은 감정이 오갔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1년을 만나온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 고작 돌덩이 같은 여자라는 소리.
과연 연우에게 자신의 존재는 뭐였을까 시윤을 만나기 전까지 시윤을 만나고 나서도 악몽에 시달리며 늘 그녀는 묻고 싶었다.
자신은 뭐였는지, 그렇게 수 많은 것을 참고 곁에 있었던 자신은 뭐였는지.
“나는 그때 정말 수 없이 생각했어, 오빠… 너에게 나는 뭐였을까. 그렇게 참아주었는데도 나는 뭐였을까?”
“너무 얌전하니까 그건 너한테 충격 요법을 주려고-.”
“아니지 한번 잘 떠올려 봐. 충격요법이 아니잖아. 난 네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사랑했다고 생각한 사람 이였어. 그래서 모든걸 참아 준거야. 넌 다 알면서도 그걸 이용했어.”
그저 곁에만 있어도 좋았던 그때의 기억, 다른 여자들을 만나면서도 헤어지자고 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진심을 다하는 여자는 자신이라고 혼자 최면을 걸면서 참아온 자신.
“내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 참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유일하게 한계를 둔 건 스킨십뿐이지. 그래서 돌덩이 같다고 한 거잖아. 그것만큼은 네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
맘대로 되지 않자, 그가 그녀에게 나온 행동은 더욱 더 그녀가 스킨십을 무섭게 하는 방법 이였다.
“맘대로 못 하게 하니까 너는 내게 어떻게 했지? 억지로 힘으로 어두운 곳에 몰아넣고 시도 하려고 했잖아.”
사소한 스킨십이라도 힘으로 억지로 시도한 스킨십은 그녀가 두려워하게 되기에는 충분했다.
“그 정도로 보통은 무서워하지 않아. 좀 유별나다고 생각은 안 해봤어?”
“힘으로 억지로 그렇게 어두운 구석에 몰려봐. 모든 것이 처음인 내게는 두려울 수도 있었어. 조금 더 천천히 다가 올 생각은 왜 하지 않았어? 그 여자들과 그렇게 똑같이 대해야 했어?”
억지로 잡혀 다가오는 그를 있는 힘껏 밀쳐내고 도망 갔던 그날의 자신, 그리고 사과의 말 조차 없던 그에게 오히려 먼저 사과를 했던 서러운 기억, 그 서러움 속에서도 그가 부르자 두려움보다는 좋아하는 마음이 앞섰던 그 때,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던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추스르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런 자신에게 돌아 온 것은 맘대로 하지 못하게 한 스킨십으로 인한 헤어짐의 통보.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감정이 점점 격해져 갔다.
“그런데 그날 내가 들은 건 방금 말한 내용 이였지. 그 서러움 마음을 누르고 1주년만을 생각하며 달려간 내가 들은 그 말.”
“……..”
“그래서 우린 헤어진 거야. 나는 그 이후로부터 남자를 보면 다 너 같아서 싫었어, 그래 그래서 사귀지 않고 그래서 당신을 보고 도망갔어. 그래서 네가 없는 시간에 이렇게 숨 쉬고 살아왔어. 왜 보려고 한 거야, 또 내게 무슨 상처를 주고 싶어서.”
상처만을 주는 연우가 보기 싫어서 도망 다녔다. 얼굴이 보이면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마주 보고 이야기 하는 것도 힘에 부쳐왔다.
“상처라니 좋을 때도 있었어. 아니야? 네 말대로 유일하게 나랑 가장 오래 사귀던 여자가 너이고 나도 관심이 있고 좋아했으니까 사귀었어.”
“결과는 아니였잖아.”
“너랑 사귀면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 넌 한계가 정해지면 그 어떤 것이라도 타협이 없었잖아. 그 한계를 깨려고 과격하게 나왔던 건 사실이지만.”
“그 타협이 안 되는 여자를 지금 와서 굳이 왜 통화를 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거야.”
지율은 정말로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 수 많은 생각이 들었다..
타협이 되지도 않는 자신이 싫다고 떠났고 이제는 자신이 끔찍하게 생각하는지도 알면서
굳이 통화를 하고 욕을 먹어가면서 까지 자신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하는 그 철판에 대해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재미를 다 봤는데, 얼굴도 마음도 너만한 여자가 없어, 그런데 넌 시간 지나고 나서 보니까 졸업반. 내가 복학을 하면 네가 없길래 오늘 온 거야.”
그런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시작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율이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충격 이였던 연우였다.
“모임에 오려고 하니 네가 연애한다는 소문이 들리긴 했지만, 설마 정말 연애 할 줄은… 조금 충격이야.”
“세상에 보니까 있더라, 다정하게 마음을 안아주는 사람이. 몸이 아니라 마음을 안아주는 사람이 있더라. 나도 처음에 똑 같은 줄 알았지. 그런데 포기를 모르고 마음을 안아주려고 하더라. 그런 사람이면 만나야지.”
“나는 아니다? 그래도 나름 나한테 빠져 있던 걸로 아는데.”
철판을 깔고서 계속 말하는 그에게 지율은 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헤어질 때 마지막 내 말이 뭔지 기억나?”
“….”
“꺼져 라고 했었는데, 다시 말해 줄까? 꺼져.”
꺼져 라는 말과 함께 지율은 온 힘을 다해 연우를 밀쳤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서 밀치자 순간적인 힘에 의해 연우가 밀려났다.
밀려난 틈 사이로 구석에서 빠져 나와 지율은 가게 문을 향하더니, 문 앞에 멈춰 서서 그를 한번 노려 본 뒤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지율이 자신의 시야에서 없어지자, 그제서야 연우는 구석에 등을 기댄 채, 5년 전의 일을 회상했다.
‘어쩌다가 헤어졌더라….’
그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
*********
항상 자신과 만날 때는 긴장했던 지율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빠, 오래 기다렸어? 늦게 끝나서 미안해, 이 늦은… 시간에 부르고 무슨 할 말 있어? 나 빨리 들어가봐야 해서… 어.. 오늘 날씨 정말 덥다.. 밤인데 더워.. 그렇지?”)
긴장하는 모습에서도 자신과의 1주년을 기대했던 그녀.
(“우리 곧 1주년이지?”)
늘 항상 본인의 기분보다 자신의 기분을 살피던 그녀의 모습.
(“오늘 따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왜 그래? 저번에 있던 일 때문에 그래?....”)
함께 한 시간 동안 자신에게 맞춰주던 그녀에게 그는 늘 알면서도 다정하지 못했다. 기분이 나면 내키는 대로 내키지 않으면 지율을 들여보내고서 자신은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버리기도 했다.
지율에게는 다가갈 수 있는 한계가 너무나 적었으니까, 자신이 원하는 대부분을 맞춰주는 여자였지만, 타협이 되지 않는 부분은 확실하게 불가능 한 부분이였다. 그 불가능한 부분을 충족시키고자 수없이 다른 여자를 만나러 다녔다.
간혹 만나던 다른 여자가 지율을 찾아가서 자신과 헤어지라고 엄포를 놓는 여자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율이 늘 그에게 모른 척 해왔기 때문에 연우 역시 굳이 사과하지도 그렇다고 그만두지도 않았다.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줄 알았지만 그러면서도 곁에 있는 그녀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것을 즐기기도 했다.
다가 갈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이미 그녀와의 만남은 지루했지만,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함에 더욱 빈번하게 여자들을 만나 그녀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럼에도 참을성이 많은 당시의 그의 그녀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같이 있을 때 조차 찾아온 여자에게도 그저 조금 곤란한 척, 아니면 입에 발린 거짓 사과 한마디면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곁에 있으면 됐다는 듯이, 그 여자한테 가지 않았으면 됐다는 듯이 익숙하다는 듯 옆에 있었다. 그런 모습만 보이자, 점점 질려왔다. 점점 질려온 연우가 지율에게 1주년을 앞두고 뱉은 말은 아주 간단한 네 글자였다.
(“헤어지자.”)
그의 아주 간단한 말에 그녀의 표정은 처음에 잘못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묻자, 너무나 쉽게 그는 다시 말해줬다.
(“헤어지자고 했어”)
그러자, 그녀가 이유를 물었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질리는 이유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질린다는 이유만 댄다면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곰곰히 생각한 그가 내린 최고의 핑계거리이자 본심.
(“지겨우니까, 너무 유별나서.”)
지겨운 만남.
(“네가 답답하고 지겨우니까.”)
조금만 다가가도 긴장하는 그녀, 그리고 뒤따라오는 답답함.
그러자 그녀는 그 타협되지 않는 부분이 문제였냐고 처음으로 그에게 따졌다.
(“다가가면 긴장하는 그 모습이, 부끄러워 하는 게 맘에 들었는데, 흥미가 없어지니 질려.”)
그리고 내 뱉은 더욱 더 잔인한 말.
(“너같이 돌덩이 같은 여자는 싫은데.”)
그의 말에 서서히 표정이 굳어가던 그녀는 이제 곧 울 것 같았다.
그런 표정을 보면서도 연우는 미안한 마음보다 어서 빨리 돌아서고 싶었다.
그래서 더 서슴없이 뱉었다.
빨리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생각대로 그녀는 헤어지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현명해. 너의 그런 부분도 좋았지.”)
그런 연우의 말에 지율이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말.
(“꺼져... 이 나쁜 새끼야.”)
처음 들었던 그녀 입에서 나온 욕.
생각보다 기분이 미묘했지만, 그래도 그가 뱉은 말이 더 심하다는 정도는 인지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 돌려주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잘 지내길 바래. 돌덩이. 다음에는 그렇게 사귀지 말고 또 차일걸?”)
어느 누가 그녀와 시작이나 할까 정말로 연우는 당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 모든 남자가 돌덩이 같은 여자와 늘 평생을 다가가면 긴장하는 그런 여자를 사귀기 바라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그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전부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다 기억이 났네.”
기억이 다 떠올랐지만, 그럼에도 느껴지지 않는 미안함.
“나도 참 몹쓸 놈은 맞네.”
스스로가 몹쓸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연우는 후회하지도 미안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지루함을 견뎌내기도 순수한 그 감정을 상대 하는 것도 많이 피곤했으니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저 피곤하고 버거워서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다시 좋아지면 만날 수도 있지 라는 자신만의 이기적인 생각도 함께.
“그런데, 포기를 하기가 나는 또 싫어서… 이제 다시 좋은데, 어쩌지.”
연우는 혼잣말을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걸어서 지율이 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가면 분명 그가 아는 그녀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혼자서 주변을 걷고 있을 터였다.
-툭
걸어가면서 사람과 부딪히자, 서로 부딪혔음에도 먼저 사과하는 말이 들려왔다.
“이런 죄송합니다. 미처 피하지 못했습니다.”
부딪힌 사람을 보니, 지율이 데려온 그녀의 애인 시윤이였다.
“술 자리에서는 사소한 걸로 싸움이 붙으니 눈을 좀 똑바로 뜨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시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이 좋지 않자, 시윤에게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연우의 가시 돋힌 말에 시윤은 오히려 웃으며 고개를 그저 끄덕이기만 했다.
그 모습에 더 기분이 나빠진 연우는 곧 장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연우가 사라지고 나자, 시윤은 하진에게 물었다.
“방금 나간 저 남자 누구야?”
시윤이 물어보자 하진이 시원스럽게 답해줬다.
“강연우, 연우 라고 해. 우리 학과의 플레이 보이지. 여러 여자들한테 고백도 많이 받는 모양이야. 유쾌한 녀석이라 주변에 사람도 많지만 워낙 성격이 있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
“흠…”
“왜?”
“첫인상이 참 별로야.”
부딪히며 들은 말의 탓도 있었지만, 정말 초면에 좋지 않은 느낌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먼저 가시를 세우는 적을 더 많이 만들기 좋은 사람.
‘직접 들었을 때도 별로였지만, 그보다 어디로 갔지… 왜 안보이지?’
연우와 마주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윤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지율이 보이지 않자 찾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지율이가 없어.”
“그러게 어디 갔지?”
시윤은 아무리 가게 안을 둘러보아도 지율이 보이지 않자 잠시 생각에 빠졌다.
대화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것도 자신이나 지아에게 조차도 말없이 사라졌다.
‘혹시…’
이미 강연우와 대화를 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없는 가능성이 아닌지라 만약 나눴다면 그녀는 지금 마음이 아주 좋지 않은 상태일 것이라고 시윤은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 누구보다 지나온 시간이 괴로웠을 사람.
자신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려고 했지만 말하면서도 보였던 괴로운 기억이라는 표정.
그 기억을 안겨준 당사자와 만났는데 전혀 괜찮을 리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는다, 그 원인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전보다는 덜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기만 하지 않는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도 상처는 쓰리고 아픈 법이다. 그게 마음의 상처라면 몸의 상처보다 치유하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시윤은 지율이 걱정되었다.
방금 전 나간 남자가 만약 지율과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된다면 얼마나 또 괴로워질까.
“나 잠시만 밖에 둘러보고 올게.”
시윤은 하진에게 잠시 밖을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서 가게 밖으로 나와 지율을 찾았다.
10분 정도 앞을 찾아봤을까. 바로 근처에 자신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감정이 격해진 목소리로.
자신의 귀에 익숙한 여자 목소리에 끝에 시선이 닿은 곳은 한 남녀가 언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찾던 여자와 방금 자신에게 삐딱하게 말하고 나가버린 남자가 언쟁을 하고 있었다.
시윤은 아주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다가서면 설수록 조금씩 시윤도 감정이 올라 오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더 잘 보이는 지율의 표정에 의해 시윤은 자신도 모르게 차가운 표정으로 남자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가 건드리자, 여자는 자신을 올려다 보았고 남자는 뒤를 돌아 그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