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은 시윤과 있다 보면 어느 새 과거의 일은 떠올리지 않게 되었던 것을 오늘 확실하게 느꼈다.
자신이 시윤에게 빠져들어 갈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그의 곁에 있으면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힘들었던 시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가능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이상하지?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된다? 당신과 떨어져 있으면 생각이 나는 힘든 일도 당신이 있으면 조금 괜찮아 지더니 즐거워 지면서 잊혀져.”
“내가 그런 존재면 다행이야.”
“항상, 시윤씨 표현만큼 따라가지 못해 미안해.”
“미안해 하지마, 충분히 따라오고 있어, 못 따라오면 어때, 내가 손 잡고 같이 갈 거야. 걱정하지마.”
“고마워, 우리 이제 들어가자. 너무 오래 나와 있었어 조금 더 있다가 시윤씨 친구분 뵈러 가야지.”
“그래, 춥지? 들어가자.”
두 사람이 들어와 보니 자리는 더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강연우는 한 테이블에서 자리를 잡고 다른 무리들과 어울리고 있었고, 지아 역시 한 쪽에 자리 잡아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지아야.”
“지율~ 왔어?”
“응,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지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지아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 이제 두 잔째 마신 거야. 과음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았어~”
“그런데 어디 갔다 왔어? 손이 차갑네?”
“잠깐 바람 좀 쐬고 왔어.”
“많이 마셨어?”
“아니, 오랜만에 모임에 와서 열기가 과하니까 시원한 바람 쐬고 싶어서 다녀 온 거야. 이제 가야지 늦었어. 11시가 다 되어 가.”
“벌써?”
“일정도 있고 가 봐야 해.”
“데이트 가는 거야? 부럽네~”
“집 가는 길이 데이트지 뭐, 하진 선배는? 인사하고 가야지.”
지율이 하진을 찾자 지아가 일어서서 크게 하진을 불렀다.
“하진 선배!!!, 지율이 돌아간다고 선배 찾아요!!~”
지아가 큰 소리로 그를 부르자 하진이 멀지 않은 곳에서 세 사람을 향해 왔다.
“벌써 가? 시윤이도 있는데 더 있다 가지 그래.”
“아니에요, 시윤씨는 운전해야 해서 어차피 마시지도 못하고 저도 더 마실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시간도 11시인데 가봐야죠.”
“이런 날은 오래 있어야 하는 건데… 아쉽네.”
“우리 지율이 잘 부탁 드려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지아가 인사를 건네자, 시윤도 웃으며 지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지아씨, 다음에 식사 한번 같이 하도록 해요.”
“나도 같이 해. 넷이 먹어 넷이.”
“너는 집부터 들어가던가, 연락이라도 드려.”
“알았어, 할게 그래도 명절에는 드리고 있었어.”
“꼭 자주 드리는 게 좋을 거야.”
“지율아, 빨리 이 녀석 데리고 가. 데이트를 가던지, 집을 가던지 데리고 가. 정말 잔소리는…”
하진의 말에, 세 사람은 즐겁게 웃었다.
지율은 나머지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가게를 나와 시윤의 차에 올라탔다.
“오늘 모임까지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아까도 옆에 있어줘서 고맙고.”
“나도 네 친구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하진이 녀석도 그 김에 찾아서 괜찮았고 또 그렇게 네 남자라고 못박을 수 있어서 좋았어.”
“후련하다. 정말 후련했어.”
“네가 후련하면 됐어, 그럼 이제, 가 볼까?”
“응!”
*********
"다 왔어 여기야"
"굉장히… 예쁜 카페다. 내 스타일이야."
카페의 전경이 참 아름다웠다.
수 많은 꽃들과 꽃나무가 심어져 있고, 정성스럽게 꾸민 만큼 아름다웠다.
등까지 켜져 있느니, 분위기가 더 살아있었다.
카페를 기준으로 도시와 다른 세계의 경계처럼 보였다.
카페를 구경하며 아이처럼 미소 짓는 지율을 보며 시윤은 만날 장소를 이 카페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 요정 숲 같지 않아? 식물도 많고 이렇게 등까지 켜져 있으니까."
"꼭 진짜 요정세계 온 것 같아, 카페가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온 듯 한데… SNS나…”
"맞아, 유명해 분위기도 좋고 커피도 맛있고 디저트도 맛있고 무엇보다… 사장이 훈훈하다나… 그래도 내가 더 나은 것 같지만."
"시윤씨… 너무 과해."
"흠, 그럼 사장이 많이 훈훈하기 때문에 인기도 많지. 어때?”
"뒷말 빼니까 조금 괜찮네, 이 카페 이름이… "
"Paradise. 낙원.”
"정말 이름과 어울리는 카페네, 누구나가 이곳을 오면 커피 마시면서 휴식했다고 느낄 거야.”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어."
두 사람이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시윤의 말대로 훈훈하고 키까지 큰 사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훤칠한 키의 남자가 두 사람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제 오다니, 너 때문에 내가 퇴근을 못해요. 전화로는 빨리 올 것 같다더니…”
남자의 불평에 시윤은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어차피 늦게 끝나는 날 이였잖아.”
“정말, 너는… 아, 처음 뵙겠습니다. 류진하 입니다. 아까 통화로 이야기 들었습니다.”
“한지율 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진하를 처음 본 지율의 느낌은 눈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였다.
정말 이런 사람이 사장이라면 카페 수익이 당연히 오를 거라는 생각도 함께.
“전화로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는데, 정말 애인을 데리고 올 줄이야.”
“네?”
“워낙 연애를 안 하는 녀석이라서요. 저희가 만나라고 해도 안 듣던 녀석이 이렇게 아름다우신 여성을 데려올 줄은 몰랐습니다. 여자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저희요?”
“하진이랑도 친구야, 셋이 잘 다녔었어. 안 그래도 나 하진이 보고 왔다.”
하진을 보고 왔다는 말에 진하가 의외라며 말했다.
“어디서? 연락만 명절 때나 보내던 놈이 어디 있는 거야?”
“저희…학교 선배에요… 하진 선배가..”
“네?...”
“나도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이야. 그렇게 마주 칠 줄은 몰랐어. 조만간 셋이 함께 봐야지.”
시윤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시윤이랑은 얼마나 만나셨어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중이에요, 만난 지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과 만나다니, 시윤이가 복이 많네요, 잡혀 살아야겠어?”
“당연하지.”
지율은 이 자리가 조금 어색했지만, 싫지 않았다.
시윤이 말하는 가장 친한 친구 중 두 사람 중에 두 사람 다 볼 수 있었던 날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를 보여주게 된 날, 어색하지만 의미 있는 자리였다.
"지율아."
시윤이 작은 목소리로 지율에게 말했다.
"응? 왜 시윤씨?"
"어색해 하지마, 괜찮아."
"어떻게 알았어?... 조금 어색하긴 한데 괜찮아, 시윤씨도 아까 모임에서 그랬잖아."
"그냥 한지율에 관한 건 눈치가 빠르게 느껴지네.”
"거짓말, 원래 눈치 빠르면서… 그래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 걱정하지마."
걱정하지 말라는 지율의 말에 시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오히려 지켜보던 진하가 자신도 모르게 더 흐뭇해졌다.
"지율아 나 잠시만…"
"응 시윤씨. 어디 가는데?"
"화장실."
“위치 알지?”
“알아, 다녀온다.”
시윤이 나가자, 진하와 지율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둘만 남게 되자, 침묵의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진하가 지율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지율씨"
"네?"
"저기 오늘 저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지금 하고 있지 않나요?"
"아니요, 따로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네? 무슨 일로…"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시윤이한테 제가 잘 말하겠습니다"
"시윤씨가 괜찮다고 하면 그럴게요, 하지만 시윤씨가 괜찮다고 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지율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하자 오히려 진하는 웃으며 말했다.
"아마 제 부탁은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