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돌아가는 중에 시윤은 아까 두 사람의 대화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두 사람만의 대화이기 때문에 쉽게 묻지는 못하고 그저 지율을 한 번씩 보기만 할 뿐 이였다.
“시윤씨 왜 자꾸 보기만 해? 할말 있어?”
지율이 묻자, 시윤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아까 무슨 대화가 했는지 궁금해서…”
“그럼 물어보면 되지 왜 그래?”
“두 사람이 따로 대화 한 거니까 궁금하기는 해도 묻기는 좀 그렇지…”
시윤의 말에 지율은 웃으면서 그의 말에 답했다.
“세상에… 그럼 그렇게 궁금한데 참고 있는 거야? 정말 시윤씨도 특이한 점 많아, 시윤씨 친구랑 이야기 한걸 궁금해 할 수도 있고, 비밀 이야기도 아닌데 물어보면 말해줄 수 있지. 비밀 이야기면 바로 시윤씨 근처에서 이야기 하겠어?”
“비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가 있으라고 했었으니까… 묻기 그런 말이지?”
“진하씨는 시윤씨가 걱정 되었나 봐, 시윤씨에 대한 말들이였어. 대화를 나눠보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아, 상담도 잘 하실 것 같아.”
“그런 이야기였어? 진하는 원래 상담을 잘 했었어. 목소리도 듣기 좋잖아.”
“그런 것 같아, 그리고…”
“또 있어?”
시윤이 궁금한 표정을 짓자 지율이 조금 장난스럽게 그에게 말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었어.”
“어떤?”
“시윤씨가 속상하게 해서 내가 지치면 꼬시러 온다고 하던데… 시윤씨랑 이상형이 비슷하다고…”
지율의 말에 시윤은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그 녀석은 왜 쓸데 없는 소리를 했나 몰라. 만나지 못하게 해야겠어 정말… 내 걱정을 했다고 하길래 고마워하려고 했더니 이런…”
“목소리 까지 좋은 훈훈한 남자의 유혹이라…”
“너…”
시윤의 표정이 좋지 않자, 지율이 시윤의 남은 한 손을 살며시 잡아주며 말했다.
“안 가, 시윤씨 말고는 이렇게 흔들리는 사람 없으니까 걱정 하지마.”
“흔들리지 마.”
“시윤씨도 어떤 예쁜 여자라도 나 말고 흔들리지 마.”
지율의 말에 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서야 미소를 다시 보여주었다.
차가 지율의 집 앞으로 도착해서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고 서로 잠시 바라보았다. 시윤은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렇게 같이 있어서 좋고 오랜만에 오랫동안 본 건 좋은데 또 헤어질 시간이 오니까 아쉽네.”
“…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고맙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
“나도 그래….”
시윤은 지율의 손을 매 만지면서 놓지를 않았다.
“이렇게 떨어지기 싫어서 빨리 시집 왔으면 좋겠어.”
“정말… 거의 항상 마지막은 시집오라고 하는 것 같아.”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알아. 하지만 시집가기에는 너무 일러.”
“나는 아닌데… 그래도 기다려 줄게. 올 거라고 생각하고.”
“시윤씨 하는 거 봐서.”
“으이구, 한지율… 이렇게 내 애만 태워.”
시윤이 말하자, 지율이 웃으며 그의 품으로 다가가 안아주었다.
“우리 이제 시작이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천천히…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고 생각해요.”
그의 품으로 들어온 그녀를 시윤은 꼭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충분히 빠르게 와줬다고 생각해. 그래서 고맙고 애가 타도 참을 수 있어.”
“다른 사람 보다 시윤씨가 가장 내 마음을 잘 흔들어, 쉽게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이렇게 쉽게 가게 만들고 깨닫기도 힘들 줄 알았는데, 깨닫게 하고 있어.”
“다시 말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안돼.”
“응… 이제 들어갈게요.”
“잘 자고, 푹 쉬어.”
“시윤씨도.”
지율은 시윤의 품에서 떨어져 손을 흔들고 들어갔다.
그녀가 들어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난 뒤 시윤도 돌아갔다.
*************
그 날 이후 시간은 빠르게 한 달이 지나갔다.
시윤은 변함없이 바쁘면서도 시간이 나면 지율에게 모든 시간을 투자했고 짧은 데이트를 하면서 둘의 사이 역시 변함 없이 좋았다.
시윤이 너무 바쁜 날에는 지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강연우와도 생각보다 많이 마주치지 않았다. 모임 이후부터 자주 학교에 드나들었으나,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지아가 막아주기도 했고 수업이 끝나면 가끔은 시윤이 데리러 오기도 했기 때문에 단 둘이 있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오늘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끝내고 약속 장소에서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교양도 끝났다. 곧 있으면 시험인데….’
“한지율.”
멀지 않은 거리에서 자신을 부르는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연우를 보며 지율은 눈조차 돌리지 않았다.
‘조금 이따가 다시 와야겠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을 보니 지율은 온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들리는 자신의 이름을 애써 무시하고 몸을 돌려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니 연우가 뛰어와 그녀를 잡아 세웠다.
“이거 놔.”
“대화를 할 수가 있어야지. 왜 그렇게 나를 피해 다녀.”
“몰라서 묻는 거야?”
“그 날부터 아주 한 달 동안 도망 잘 다니더라.”
“보기 싫으니까.”
“유지아까지 나서는 걸 보면, 알고 있다는 소리네?”
“알고 있지. 전부 이야기 해줬어. 그러니까 지아 눈에도 띄지마.”
“오빠 걱정해주는 거야? 예전처럼 오빠라고 해봐.”
“오빠? 내가 왜? 진짜 얼굴이 두껍네…”
“그런 표정을 지으면 돌 같잖아.”
‘돌’이라는 말에 지율은 더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당연하지 너한테는 내가 사람으로 상대 할 필요가 없으니까 당연히 돌 같이 말하는 거야. 돌이랑 더 대화하고 싶지 않지? 가.”
지율이 그를 지나쳐 가려고 하자 연우는 지율의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뭐 하는 짓이야.”
“대화를 하자고 했잖아.”
“우리는 할 대화가 없다고 했잖아. 놔.”
놓으라고 할수록 더 힘을 세게 주어서 놓지를 않았다.
지율은 점점 손목이 아려왔다.
“아프니까 놔, 왜 자꾸 이렇게 나타나는 거야. 보기 싫다잖아. 스토커야?”
“어, 오늘부터 네 스토커 해보려고. 대화 좀 하자니까 무시하는데 이렇게라도 끌고 가야지.”
연우가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자 어디선가 두 사람의 손목을 ‘탁’ 치며 끊는 사람이 나타났다.
“지아야…”
“아… 정말 유지아, 이렇게 방해를 해야 해?”
지아가 나타나자 지율은 안심이 되었다.
“싫다는 애를 자꾸 이렇게 끌고 가야겠어 오빠?”
“난 그저 얘랑 대화를 하겠다는 거야.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건 아니잖아.”
“이렇게 강제로 끌고 가는 것도 범죄야.”
“하, 어이가 없어.”
연우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지아 역시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나 다 들었어.”
“한지율이 말했다며.”
“그래, 그럼 그만해야지 않아? 그런 말로 애한테 상처 주고 지금도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애를 강제로 끌고 가야겠어? 그러니까 오빠가 얘한테 안 되는 거야.”
“그럼 그 모임에서 봤던 놈은 되고?”
“놈이라니 말 조심해. 남의 애인한테.”
“적어도 오빠보다 훨씬 신사적이고 지율이한테 잘하지.”
“……”
“그러니까 그냥 가. 오빠는 얘한테 아무것도 아니니까.”
지아의 말에 연우는 비웃으며 말했다.
“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아주 한지율 마음에 내가 크게 박혀 있을 텐데. 다시 시작 못할 것 같아? 난 쟤한테 평생 잊혀지지 않을 첫 사랑이야. 나라고 하면 얘가 어땠는지 본 네가 더 잘 알겠지.”
연우의 말에 지아는 손을 올려 연우의 뺨을 후려쳤다.
“너 이게…”
“봤기 때문에 때린 거야. 어떻게 그렇게 잘 했던 여자한테 그런 끔찍한 기억을 안겨주고서 이렇게 뻔뻔하게 말해? 지율아, 오늘은 그냥 돌아가. 다음에 같이 저녁 먹자…”
지아의 말을 들은 지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뛰어갔다.
“한지율 어디가!”
“쫓아가지마.”
“우리 일이야, 네 일이 아니고 여기까지만 끼어들어. 비켜.”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