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에 이야기를 한지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익숙한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여기가 시윤 오빠가 있는 곳 맞나요?”
“네 제가 전무님의 비서 입니다 누구시죠?”
“뭐야….”
여자의 목소리는 짜증스러움이 묻어난 채로 말했다.
“유혜지에요, 들여보내줘요. 오빠한테 말하면 바로 들여 보내 줄 텐데.”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대자, 한 비서는 재빨리 시윤에게 보고 했다.
보고 하자 시윤이 직접 문을 열고 나왔다.
시윤을 보자 아까까지도 소란스럽게 짜증을 내던 여자는 웃으며 그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오빠.”
“오랜만이야, 그런데 팔은 놓지 그래.”
시윤의 반응에 혜지는 인상을 찌뿌리며 말했다.
“뭐 어때 약혼할 사이인데.”
혜지의 입에서 약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 비서가 눈을 크게 뜨고 시윤을 쳐다보았다.
‘양다리…?’
시윤과 시선이 마주치자 시윤은 한 비서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는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누가 약혼할 사이야,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잖아. 어머니께 대충 이야기 들었어. 아예 한국으로 돌아 온 거야?”
“당연하지, 오자마자 어머님를 뵈러 갔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확인 하러 왔어.”
“뭐를 확인하러 왔는데?”
“들어가서 이야기해, 이봐요 비서 아저씨? 저 차 한잔 줘요.”
혜지의 말에 시윤은 팔짱을 풀고 이야기 했다.
“무례하게 이야기 할 거라면 돌아가, 한 비서는 이미 충분히 바쁜 사람이야. 너한테 차 심부름 해주려고 있는 사람이 아니야.”
“오빠~ 너무 차갑게 말하는 거 아니야? 나한테는 늘 다정했잖아.”
“동생이니까. 일 보세요.”
시윤은 혜지를 잡아 끌고 들어가버렸다.
들어가는 시윤의 얼굴에는 한 비서 조차 보지 못한 짜증스러운 표정이 묻어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업무량에도 지친 표정일 뿐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는 시윤 이였는데,
낯선 여자의 방문으로 보지 못한 표정을 지은 채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혜지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그에게 심문하듯 물어봤다.
“사실이야?”
“뭐가.”
“나 말고 따로 결혼 할 여자가 있다는 게.”
“너 말고 있는 여자가 아니라 원래 그 여자 밖에 없었어. 내가 결혼 하고 싶은 유일한 여자.”
“다른 여자한테 눈길도 안주던 오빠가? 유일하게 다정하게 대해준 여자는 나밖에 없었던 오빠가?”
“그래 그 여자랑만 결혼 하고 싶어서 눈길도 주지 않았고 너는 동생이니까, 먼 외국에서 같이 자랐고 지내온 동생이니까 잘해준 것뿐이야. 내가 아무도 없을 때야 위험한 순간에는 남자친구 대용처럼 있어줬지만 이제는 안돼. 내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할 테니까.”
“그 여자가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내가 반했는데.”
“나도 오빠 넘어오게 할 자신 있어, 어머님도 잘 모실 수 있고 그 누구보다 오빠에 대해 잘 알아.”
“그래 넌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하지만 그건 너의 오빠로서 아는 모습이 많을 뿐이야. 오빠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도 넌 알고 있어.”
“…….”
시윤은 머리를 짚으며 그녀의 행동을 나무라고 있었다.
“게다가 그 예의 없는 행동을 제일 싫어하지.”
“내가 지금 그런걸 신경 쓸 정신이 어디 있어! 4년 전부터 오빠 결혼에 대한 이야기 나한테 묻고 그랬어. 나는 그게 우리 둘의 미래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때도 너와 하겠다는 소리는 단 한번도 한 적 없어. 분명히 말하지만 너에게 오해 살만한 행동 하지 않았어. ”
“…..”
“너의 솔직한 성격 오빠는 좋아해, 하지만 너를 여자로 본 적이 없다는 걸 무엇보다 잘 알고 있잖아. 그때 통화로 생애 처음 첫 눈에 반한 여자가 있다고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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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디저트로 고구마 케이크 3개랑 아메리카노 3개! 한 비서님 것도 챙겨가야지.”
지율은 호텔 앞으로 택시 타고 도착하자마자 근처의 제과점에서 고구마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포장해서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언제 와도, 참 화려하단 말이야…. 엄마 사장실은 좀 검소한 느낌 이였는데…’
엘리베이터가 시윤이 있는 층에 도착해서 내리자, 바로 앞에 한 비서가 서있었다.
“한 비서님! 왜 여기까지 나와 계세요? 시윤씨 대신에 마중 나와 주신 거에요?”
지율이 활발하게 인사하며 묻자 한 비서는 지율에게 30분 전부터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들으며 지율은 찾아온 손님이 여자라는 말에 놀라고 굉장히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인 것 같다는 소리를 듣자 그냥 지인이겠지 싶었는데 약혼이라는 소리를 했다고 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약혼이요?”
“저는 처음에 양다리 하신 줄 알았는데, 전무님께서 워낙 표정이 좋지 않으셔서…”
“시윤씨가요?”
“그렇게 짜증스러운 표정을 비치신 것은 처음 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로군요.”
지율은 문을 바라보며 한 비서와 이야기를 나눴다.
간간히 큰소리도 들려오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도 들려왔는데 정확한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여자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성격이 장난 아닌 것 같은 건 알 것 같네요…”
지율의 말에 한 비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잠시 문 너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러려고 오빠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줄 알아? 오빠는 누구한테도 줄 수 없어!!!”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문 앞에 서있던 두 사람이 들을 정도였다.
소리를 들은 지율은 그대로 한 비서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 제가 손이 없어서 그런데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으세요?”
“네?”
“오늘 점심 선약이 저인데… 이렇게 한 비서님 것 까지 사왔는데 시간을 뺏기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아서요. 손이 없으니 열수가 없고…”
여자의 반응을 보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율은 자신이 직접 들어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시윤씨… 내가 구해주겠네.’
“한 비서님.”
“네 지율씨.”
“제가 시윤씨 구하고 정말로 약혼하게 되면 축복해 주실 거죠?”
지율이 묻자 한 비서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문 고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지율의 인사가 끝나자 마자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문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뭐에요! 지금 대화 중인데!”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혜지를 보자 지율은 바로 그 말을 무시하고 시윤에게 다가갔다.
“시윤씨 배고팠지 밖에서 기다렸는데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들어왔어.”
“지율아…”
“오해 안 해 걱정하지마.”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시윤만 바라보고 말을 하자 약이 오른 혜지는 시윤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지율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 여자가 그 결혼하고 싶은 여자야?”
"응,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야. 그 날의 통화에 첫눈에 반한 여자.”
혜지의 물음에 시윤은 지율의 허리를 감싸고 말했다.
시윤이 감싼 손이 지율의 허리에 있자 혜지는 손가락을 세우며 지율에게 말했다.
“오빠랑 결혼 할 여자는 나야. 오빠는 내 남자라고, 떨어져.”
혜지의 말에 지율은 오히려 더 시윤에게로 몸을 밀착시키고 머리를 기대면서 그녀를 보았다.
“떨어져.”
그리고 다시 남은 한 팔을 들어 시윤의 가슴팍에 올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요, 나이 몇 살이나 됐어요?"
"25살"
"25살씩이나 됐으면서 말을 그 따위로 밖에 못해요? 초면에 손가락 세우고 반말이라니… 매너가 없네…?"
"하..!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게 오빠를 중간에서 가로채가? "
"사이도 궁금하지 않고 딱 들어보니 내 남자는 관심도 없어 보이고 가로챈 적도 없는데… 내 남자가 애인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듣기로는 내 남자는 내가 첫 연애 상대라고 했는데… 뭘 가로 챘다는 거죠?”
"당신이 모르는 것 같은데 나랑 오빠는-."
"아-. 지금 둘 사이는 듣고 싶지 않고. 앞의 이야기는 한 비서님께 들었는데…. 누구 맘대로 약혼을 말해. 내가 있는데? 난 이미 결혼을 전제로 이 사람 만나고 있는데. 그 쪽은 내 남자랑 연애를 했어요?"
"뭐...뭐?"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모양인데, 임자 있는 사람 욕심내면 안 돼지."
순간 적으로 바뀐 지율의 분위기에 시윤도 그저 숨죽이고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 불러서 잡혀서 쫓겨나기 전에 당장 나가요. 내 남자 배고파서 점심도 먹여야 하고, 말한 그 약혼 내가 해야 해서, 그것도 정해야 하거든요.”
“너…!! 지금 말 다 했어?”
“반-말도 거기까지, 다음에는 저도 그렇게 하겠어요. 나가요. 시윤씨랑은 오래 된 사이라고 하니 저도 이쯤에서 그만 하도록 하죠. 더 하면 나도 성질이 못돼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는데.”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해 오빠. 이렇게 쉽게 다른 여자한테 가는 거 못 봐.”
지율의 말에 계속 밀려 자존심이 상한 혜지는 그대로 자신의 핸드백을 든 채 문을 거세게 닫고 나가버렸다. 혜지가 나가버린 뒤 지율은 시윤의 품에 안겨 몸을 떨며 말했다.
“애인 구하는 것도 쉬운 일 아니네… 화나서 사람한테 이렇게 말해 본 거 처음이야… 시윤씨 흉내 내봤는데, 심장이 엄청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