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고르고 안정을 찾으려는 지율의 어깨를 시윤은 감싸 안으며 물어봤다.
“생각보다 말 정말 잘하던데? 내 흉내를 내본 거라고?”
“응… 목소리 톤만 조금 따라 해봤어.”
“말은… 원래 이렇게 잘 했나?”
시윤의 감탄에 그녀가 뛰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웃으며 말했다.
“나 원래 솔직하고 할 말 다 해. 의외로 지는 편 아니야.”
자신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이는 지율을 보며 시윤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심장에 해롭다니까.”
숨 고르기를 한참 하던 지율은 그대로 쇼핑백을 들고 탁자에 가서 도시락을 꺼내 시윤이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했다.
지율이 준비를 마치고 시윤을 부르자 시윤은 준비된 도시락을 보며 연신 ‘와~’라는 감탄사만 뱉기 바빴다. 정성스럽게 가지런한 모양의 주먹밥과 노릇노릇 맛있게 만들어진 계란 말이 그리고 그의 후식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이는 청포도 과일과 디저트까지 보고 시윤은 지율의 정성에 감동했다.
“나 세상 태어나서 도시락으로 감동 받아보기 처음이야…”
시윤의 표현에 지율은 부끄러워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시윤은 계속 입이 마르도록 침이 닳도록 칭찬해주고 싶었다. 아니 칭찬을 해주는 게 맞다 생각했다.
하나하나 모두 신경 써서 만들어준 도시락에 감사하는 마음과 칭찬이 없는 것은 오히려 실례였다.
“이런 걸 칭찬 받기를 부끄러워하는 게 더 문제야. 당연히 감사를 받아야 하고 칭찬을 들어야 해.”
“시윤씨가… 별 난 거야…”
“아니, 양도 상당히 많은데? 2인분이 아니라 3인분이라고 해도 되겠어.”
“2인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이 좀 컸나 봐.”
“괜찮아, 한 비서님도 같이 먹자고 해야겠어.”
시윤은 자신으로 인해 주말에도 나와 점심 시간까지 놓친 그를 위한 배려로 같이 불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 비서 역시 지율이 준비한 도시락을 보자 ‘와~’라는 감탄사를 뱉기 바빴다.
“주먹밥이 간단 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모양도 예쁘네요.”
한 비서의 세심한 칭찬에 지율은 부끄러웠지만 두 남자가 칭찬하는 말이 기쁨으로 더 다가왔다.
“두 사람 다… 사람 부끄럽게… 맛있게 드세요.!”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두 사람은 주먹밥을 집어 입에 넣으면서도 ‘정말 맛있다~’라는 감탄을 빼놓지 않았다.
맛있게 먹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지율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만든 보람을 느끼며 뿌듯했다.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자 지율은 사온 디저트를 꺼내어 같이 먹기 시작했다.
“밥도 맛있게 먹고 이렇게 디저트까지 준비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늘 시윤씨를 도와주시잖아요. 이렇게라도 해드려야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지율의 마음씨에 시윤은 다시 한번 반했고 한 비서 역시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시윤이 자신에게 가끔 지율의 이야기를 하면 행복한 미소를 보이곤 했는지 확실하게 느꼈다.
“이 시간 이후로도 일이 남았어요?”
지율의 물음에 시윤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토요일이라 딱히 남은 일은 없어, 미리 처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은 것만 오늘 나와서 처리 한 것 뿐이야. 끝났어 주말인데 나도 한 비서도 쉬어야지.”
시윤의 말에 한 비서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 소식이니 무엇보다 기쁜 소식입니다.”
“곧 두 시니까 퇴근 하도록 하세요, 부인께 꼭 죄송하다고 전해드리고 아이들과도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한 비서님 결혼 하셨어요?”
지율이 놀라워하자 한 비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애만 둘 입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한 비서님 동안이시구나…”
“한 비서님이… 좀 많이 동안이지, 누가 저 외모가 35살 애 둘인 남자겠어.”
한 비서의 나이를 듣자, 지율은 다시 한번 놀랐다.
“애기들은… 아직 그럼 어리겠네요?”
“큰 애가 3살 작은 애가 곧 돌입니다.”
“시윤씨, 주말에 근무 시키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지율이 울상을 지으며 그에게 말하자 시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백화점 상품권을 준비했지, 주말까지 나와서 이렇게 일을 도와주는데 작은 보상이라도 해야 한 비서님이 덜 억울 하지… 그래도 연말 지나면 다시 주말에 가족과 함께 온전히 보낼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힘냅시다.”
시윤의 말에 한 비서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상사 덕에 주말에 일해도 구박 받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전무님.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디저트 사겠습니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한 비서는 사람 좋은 미소를 다시 한 번 짓더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윤과 지율도 먹은 도시락 뒷정리를 하고 옷을 챙겨 일어났다.
“그럼 이제 데이트 하러 갈까?”
“오랜만에 데이트네~ 오늘따라 굉장히 좋은 것 같아 데이트-!”
지율이 미소 짓자 시윤 역시 같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함께 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율의 수줍어하는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밝고 활발한 모습이 더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윤과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지율은 처음에는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후에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바뀌더니 근래에는 여전히 칭찬에 수줍어하지만 활발한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었다.
천천히 시윤의 영향으로 지율은 변하고 있었다.
시윤 역시 지율로 인해 변해가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표현하기 바빴던 그는 천천히 그녀를 위해 조심스러워졌으며 여전히 그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지만, 행동은 조심하고 천천히 다가가고, 지율과의 대화를 더 소중히 여기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다가가도 지율이 움츠려 들지 않도록 그녀에게 맞춰가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시윤과 지율은 어느 새 같이 미소를 짓는 표정 조차 닮아가고 있었다.
*****
두 사람이 서로를 감싸며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로 향하자, 돌아서서 간 줄 알았던 혜지가 두 사람 앞으로 나타나 길을 가로막아 섰다.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납득을 못하겠어.”
“혜지야…”
“오빠는 내 남자야!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어려서부터 오빠를 쫓아 학교를 다닌 줄 알아? 줄곧 어려서부터 함께였는데 왜 내가 아니야?”
지율은 방금 전 상황과 똑같이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당연히 기분이 나쁜 게 옳은 상황이지만, 단순히 나쁜 것만이 아니라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잘하는 표정관리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연우와 사귈 때 자신이 겪어온 상황보다 훨씬 나은 상황임에도 참지를 못할 만큼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올라 오고 있었다. 그 올라오는 감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지율 자신 조차도 당황스러우면서도 이상한 기분 이였다.
‘나 왜 이러지? 표정이 굳힌 채 사라지지가 않아… 전에는 더 심한 상황도 있었는데도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보이고 싶지 않은데…’
지율은 굳은 표정을 풀기 위해 눈의 힘을 가까스로 풀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바랬다.
여기까지만 하고 제발 사라지던가, 아니면 한번 만 더 건드려 주거나.
“뭐라고 말 좀 해봐, 오빠 겨우 3개월 조금 안된 시간이야. 그런데 저 여자가 그렇게 좋아!? 10년을 알아온 나보다!! 10년을 오빠를 좋아해온 나보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듣고 시윤과 지율 둘 다 표정이 멍해졌다.
지율은 물론 당사자인 시윤 조차도 혜지가 자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율 앞에 혜지가 다가왔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 철썩-.
순식간에 일어난 일 이였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주차장에서 울리는 소리도 무척이나 컸다. 맞은 지율은 여전히 고개가 돌아간 채 멍했고 시윤은 놀란 채로 혜지를 보며 말했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시윤이 화가 난 표정으로 말하자 혜지는 여전히 자신이 더 성을 내고 있었다.
“이 여자 때문에 오빠가 내게 그런 표정까지 짓고 있어. 내가 그런데 어떻게 참아. 내 남자여야 하는 오빠를 이렇게 눈뜨고 뺏기게 생겼는데.”
“내가 이런 표정을 보이게 한 건 너지.”
시윤은 고개를 돌려 지율을 보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지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윤만이 들리게 작은 소리로 그를 불렀다.
“시윤씨.”
시윤이 자신을 보자 그만이 들을 수 있게 작게 말했다.
“나 조금 못돼도 오늘은 그저 봐줘…”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지율의 의미심장한 말에 시윤은 의아했다.
‘나 이제 진짜 못 참겠어. 맞고 가만있지는 못 하겠다.’
지율은 머리를 정돈하고 일어나 혜지 앞으로가 똑같이 얼굴을 내리쳐버렸다.
똑같이 맞은 혜지가 자신을 노려보자 지율은 아주 차가운 눈빛과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생각지도 못한 아주 짧고 강한 ‘야.’라는 한 마디에 혜지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뭐?..."
"야."
다시 한번 아까보다 더 강한 톤의 목소리로 지율은 말해줬다.
"야 라고 했어 지금? 나이도 나보다 많지도 않아 보이는 게."
"그럼 넌? 처음 보는 사람보고 반말 딱딱 해대는 넌? 너랑 나랑 해봐야 한 살 차이야, 뭘 많이 난다고 그렇게 유세를 부려. 그렇게 늙었다고 자랑하고 싶어?”
지율이 이사실 에서 조차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자 시윤은 그저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뭐? 싸가지 없는 게."
"그건 네가 더 없는 부분이고 아까부터 너 뭘 믿고 여기서 자꾸 시윤씨보고 내 남자 라고 자꾸 말을 하는 건데? 그래? 너 10년이나 저 사람 좋아했다고?"
"그래 너 같은 거랑 비교도 안 될 기간 동안 서로 알아왔고 사랑했어.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들을
네가 어떻게 알겠어. 우리 둘 사이의 시간을 네가 어떻게 들어와."
"우리? 꼭 서로 연애 한 것처럼 말하네.서로 알아오기만 했지, 사랑은 너 혼자 짝사랑이고.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