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의 그날을 기다리며 눈물 나도록 참았지.”
하진의 말에 지율이 눈을 흘기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어서 들어가라고 자신들도 데이트 하다가 들어가겠다고 했다. 하진과 돌아가는 지아의 얼굴에 미소가 보이자 지율은 만족했다.
그렇게 지아네 커플과 헤어진 후, 시윤은 택시를 잡아 지율을 데려다 주고 있었다.
“오늘 지아 잘 된 것 같지?”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아까 너무했어, 그렇게 선배한테 말할 필요까지 있었어? 너무 몰아 붙인 것 같아.”
시윤이 하진에게 밀어 붙인 것에 대해 지율이 너무 몰아 붙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보이자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밀어 붙이지 않았다면 더 우물쭈물 했을 거야. 평소에 그러지 않는 녀석이지만 한번 우물쭈물 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나아가지를 못하거든.”
나아가지 못한다는 시윤의 말에 지율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런가…”
“학교에서는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선배의 입장과 남자의 입장은 틀리니까.”
“흐음….”
“남자도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떨리는 법이야.”
“그건 나도 알아, 남자도 사람인데 어떻게 안 떨리겠어. 그래서 너무 몰아 붙인 건 아닌가 생각 한 거야.”
“만약 하진이가 오늘 지아씨한테 말하지 않았다면 지아씨는 더 자신이 없어질 수도 있지.”
“글쎄?”
지율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시윤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반대로 지아씨가 다가 갈 수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시윤이 묻자, 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만약 지아는 오늘 하진 선배가 말 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다가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
“오오, 거기까지 두 사람이 이야기가 오갔다는 거야? 그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시윤의 말에 지율이 손가락으로 ‘쯧쯧’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시윤씨가 선배에 대해 잘 알 듯, 나는 지아에 대해 잘 알아. 그 이야기가 나왔고 지아가 마음 먹었다면 지아 역시 망설일 수는 있어도 했을 거야.”
지율이 확신에 차서 말하자 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건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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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지율의 집 앞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내려서 아파트 문 앞에서 서로를 마주 본 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데려다 줘서 고마워.”
“당연한 일이 잖아.”
“술까지 마셔서 피곤 할 텐데…?”
“그래도 네가 안전하게 들어가는걸 보는 게 덜 불안해.”
“내일도 출근인데 피곤하지 않겠어?”
“이 정도야, 괜찮아. 들어가 춥잖아. 우리 공주님.”
공주님이라는 소리에 지율은 오글거림이 밀려왔지만 전처럼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잘가요.”
“들어가면 전화 할게.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바로 달려온다고?”
“이제는 바로 맞추네, 바로 달려와야지.”
“알았어, 얼른 가요.”
지율이 시윤의 몸을 돌려 등을 떠미니, 시윤은 뒤를 계속 보면서 멀어져갔다.
시윤이 사라질 때 까지 지율은 손을 흔들며 그녀는 내일의 그가 걱정이 되었다.
지금 집에 도착해서 씻고 하면 자는 시간이 더 줄어들게 될 텐데.
회사도 여기가 더 가까운데.
‘잠 못 자면 더 피곤할 텐데…’
자지 못한 만큼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될 텐데, 커피를 많이 마시면 입맛도 사라질 텐데…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이 시작 되었다.
분명 시윤은 그녀가 걱정되어 전화하면 무조건 괜찮다고 할 사람이다.
세상에서 지율이 자신의 걱정을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제일 속상해 하니까.
그가 걱정되기 시작하니, 결국은 지율이 손을 내리고 큰 소리로 그를 향해 소리 쳤다.
“시윤씨!!!”
그녀가 크게 소리쳐 부르자, 시윤이 우뚝 멈췄다.
시윤이 멈춘 것이 보이자, 지율은 크게 숨 한번 들이 쉬고 용기를 내 큰 소리를 쳤다.
“거기!!! 엄청 잘 생긴 남자!!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10초 만에 달려오면 해줄게!!”
멀리서 지율이 10초안에 달려오면 뭔가 말해주겠다고 하자, 시윤은 그 말이 뭘까 생각하면서 혹시나 사랑해 라는 말을 해주려고 하나 싶은 마음에 씨익 웃으며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초를 세기도 전에 달려갔다.
“뭐야… 나 아직 시작 안 했는데…”
당황해 하는 그의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그가 말했다.
“그 말 듣자마자 뭔지 궁금해서.”
시윤의 말에 지율은 피식 웃으면서 그의 차가운 얼굴을 감싸고 말했다.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응?”
생각지도 못한 말에, 시윤은 잠시 멍했다.
“시윤씨?”
“…지금 뭐라고? 잘못 들은 것 같아.”
시윤이 당황해 하자, 지율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다시 한번 그녀가 말하자, 시윤은 그녀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고 말했다.
“장난치는 거지?”
장난치는 거냐는 그의 물음에 그녀가 말했다.
“그럴리가-.”
“너무 장난끼가 가득한 표정인데…”
“그거야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재미있잖아, 그런 표정 보기 힘든데.”
“정말로 자고 가라는 거야?”
“응, 시윤씨 술도 많이 먹고 지금 집 가면 얼마 못 자니까 자고 가요.”
“…음….”
“여기가 회사랑 더 가깝잖아.”
지율의 말에, 시윤이 ‘그렇긴 하지만…’ 하면서도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자, 그녀는 세게 밀고 나갔다.
“오늘 같은 기회 없을걸?”
“…..”
“이래도 대답이 없는걸 보니 나랑 함께 하기 싫은가 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시윤은 몇 일전의 낮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한 공간에서 낮잠을 청한 이유도 지율과 단 둘이 가까이 있으니 심장이 미칠 듯 두근거려서 자신이 위험해서 잠을 청했던 건데, 오늘은 아예 밤을 같이 보내면 정말로 자기가 인내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술까지 들어갔으니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속사정도 모른 채 그가 계속 고민하는 표정만 짓자 지율은 토라진 척 하며 몸을 돌렸다.
“뭐야… 난 생각해서 당신 부른건데…”
“….아니…”
“몰라, 싫으면 그냥 가요. 흥~ 내가 차도 타주고 과일도 깎아주려고 했는데.”
지율이 토라진 것을 보자 시윤은 더 안절부절 했다.
‘그래, 뭐…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 것 도 아니고 괜찮겠지…? 힘들면 불교 경전이나 찾아보자. 바람도 차니 동네 한 바퀴 돌고 와서 자도 되고 요즘 보기도 힘든데…’
“정말 안 들어 갈거야?”
지율이 슬쩍 돌아보며 묻자, 고민을 다 마친 시윤은 뒤에서 지율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 당겨 말했다.
“들어가야지, 네 말대로 흔히 있는 기회도 아닌데.”
시윤이 뒤에서 안으며 말하자 지율이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했다.
“이럴 거면 빨리 대답하지 그랬어.”
“내 자신과 조금 싸우느라.”
“왜?”
지율의 물음에 시윤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를 보고 있으면 너무 예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신과 좀 싸워줘야 해.”
“응?”
“그런 게 있어.”
시윤의 말에 지율이 눈을 흘기자 시윤은 그저 멋쩍게 웃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하하…”
“흐음…”
“…..”
시윤이 말 없이 웃기만 하자 지율은 싱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싱겁기는… 그럼 들어갑시다.”
“그래, 들어가자.”
싱겁다는 지율의 말에, 시윤의 속내는 전혀 싱겁지 않았으나 차마 그녀에게 자신의 속 그대로를 보일 수 가 없어 그저 고개만 끄덕인 채로 그녀의 집안으로 향했다.
향하면서도 시윤은 속으로 간절하게 자신의 이성에게 기도했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그녀가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기를…
자기 이성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신이 아닌 자신의 이성에게 빌었다.
지금 이 순간은 신에게 빌게 아니라 자신의 이성에게 빌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