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이 바짝 자신에게 다가와 내려다 보자 지율은 살짝 그의 가슴을 밀면서 말했다.
“왜 그래 정말… 씻기나 해.”
“묻잖아,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치 기다린 것 같은 느낌은 왜 일까?”
시윤의 얼굴이 다가오자, 더는 물러설 공간이 없는 지율이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아까 내가 약 올렸다고 그러는 거야?...”
“응? 무슨 소리일까?~”
능글맞게 말하는 그에게 그녀는 볼멘소리를 하며 말했다.
“치사하게 이렇게 나올 거야?”
“뭐가 치사하지? 이렇게 해달라고 아까 도발한 거 아니였어?”
시윤의 말에 지율은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시윤이 행동하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아니라고 해도 지금 그에게는 어떠한 이유도 통하지 않았다.
더욱 문제는 바란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마냥 싫은 것은 아니였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그가 다가오자 가슴이 설레었다.
미친 듯이 뛰는 게 아닌, 긴장감으로 설레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
묘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싫지 않은 이 느낌.
“얼굴이 빨게.”
시윤이 바로 귓가에 속삭이자, 묘하고 짜릿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나 봐.”
그의 목소리에 지율이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 보았다.
올려다 보자, 그의 눈빛에 그녀는 바로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은 그녀에게 그가 말했다.
“눈을 떠, 그리고 나 봐.”
나직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강하게 불꽃이 튀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눈빛에 지율은 침을 꿀꺽 삼켰다.
“…..”
시윤의 손이 지율의 얼굴을 감싼 채 얼굴은 더 그녀의 얼굴로 다가갔다.
“시..시윤씨…”
지율이 목소리를 떨며 말하자, 시윤은 ‘쉿’하며 계속 얼굴을 밀어붙였다.
다가오는 얼굴에 결국 더는 눈을 뜰 수가 없어 다시 눈을 감은 채 온 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그의 입술.
그렇지만 느껴지는 곳은 자신의 입이 아닌 다른 곳.
시윤은 지율의 입이 아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입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지율은 막상 이마에 닿자 안도감이 들면서도 조금 민망함도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상상해버린 두 사람의 열정적인 모습.
‘아… 뭘 상상했던 거야.’
민망함에 더 쑥쓰러워졌다.
시윤이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의 민망한 생각으로 지율의 볼은 여전히 빨갰다.
그런 모습을 본 시윤은 그녀가 사랑스러워 가볍게 입에도 살짝 입맞추고 물러났다.
그가 물러나서야 지율은 편하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긴장했어?”
시윤이 물었다.
“…조금 했어…”
지율이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시선을 피하는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그가 놀렸다.
“아닌 것 같은데? 많이 한 것 같은데?”
“…아니야…”
“흐음…~”
아니라는 지율의 말에 시윤은 짓궂게도 다시 한번 더 바짝 지율에게 들이대자, 그녀는 숨을 참고 다시 벽으로 밀착 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정말 긴장 하는 거 맞네~”
시윤이 놀리자, 지율은 약이 올랐는지 표정이 새침해졌다.
“미워…”
밉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따스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너무 나를 도발하니까 나도 해보고 싶었어.”
“…칫”
“먼저 했으니까 그래도 할말은 없지?”
시윤이 묻자, 지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먼저 놀렸으니까, 할 말은 없어…”
“이런 것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지, 나중에는 더 능숙하게 꼬셔봐.”
“…..”
“그때는 넘어가 줄 테니까.”
시윤의 말에 지율은 그의 등을 욕실로 떠밀면서 말했다.
“몰라, 빨리 들어가!”
그녀가 밀자,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다시 한번 자신의 품으로 당겨 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긴장 좀 해야 할거야. 지금은 내가 더 능숙 한 것 같으니까.”
“…..”
“그런데 나중에도 다른 이유로 긴장 해야 할 것 같아.”
“…..?”
지율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간단하게 답을 내어줬다.
“네가 능숙해져 버리면, 말은 넘어가 준다고 했는데.”
“…했는데?”
“사실은…”
“….”
“내가 버틸 자신이 없어.”
버틸 자신이 없다는 시윤의 낮고 나직한 목소리에 오히려 지율은 자신이 지금 넘어갈 것 같았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려 차라리 자기가 넘어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또 얼굴이 빨개.”
시윤이 자신의 얼굴이 빨갛다고 말하자, 지율은 힘줘서 욕실로 그를 밀어버렸다.
“아앗! 물 있어!! 미끄러진다…!”
“몰라… 씻고 나와.”
-탁!
그를 밀어 넣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지율은 침대로 달려가 얼굴을 묻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한지율… 저 목소리에 넘어가고 싶단 생각을 하다니…!’
방금 전까지 설레었던 가슴을 부여 잡고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 애꿎은 베개만 쿵쿵 내리 쳤다.
어느 정도 내리치니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벌떡 일어나 이번에는 베개를 품에 안은 채 욕실 문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그것도 눈이 세모꼴이 되어서.
“그 목소리는 솔직히 반칙 아니야?... 어떻게 사람이 목소리도 그렇게 낼 수가 있어?”
지율은 아까 처음 들어보는 시윤의 다른 목소리에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를 설레게 하는 낮고 나직한,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것으로 설명 되는 게 아니라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의 목소리였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닌 그저 목소리로만 넘어가고 싶었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얼마나 될까?
자신도 이런데 다른 여자는 어떨까?
비즈니스 하는 사람으로서 수 많은 목소리를 낼 사람인데, 몇 명이 그의 목소리에 넘어갔을까?
넘어간 자신도 넘어왔을 것 같은 이름 모를 여자들도 아마 다 똑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나자, 지율은 시윤이 조금 미웠다.
몇 명의 여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왔을까.
조금 질투가 난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여자들에게.
자신이 듣지 못한 목소리를 들은 여자들에게.
그게 설령 비즈니스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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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그가 씻고 나오자, 여전히 지율은 아까 세모꼴 눈초리 그대로 생각 중 이였다.
그는 수건으로 닦으며 지율에게 다가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해?”
“시윤씨 생각하느라.”
지율의 짧고 간결한 답에 시윤은 좋으면서도 의아했다.
왜 자신을 생각하는데 표정이 이렇게 심각할까.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니 좋긴 한데… 왜 표정이 이렇게 심각해?”
“당신 목소리 때문에 조금 화나서.”
“응?”
“다른 여자들도 당신 목소리를 듣고 설렜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시윤씨 목소리가 화가 나. 나도 그렇게 설렜는데 다른 여자는 어땠을까.”
지율의 말에 시윤은 웃고 말았다.
“웃음이 나와…?”
“귀여운 질투인데 웃음이 나지 않을 리가 없잖아.”
“흥, 다른 여자들도 꼬셔봤을지 어떻게 알아? 시윤씨는 없다고 하지만 그게 나한테만 하는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지율의 말에 시윤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다가와 그녀를 쓰러뜨려 위에서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에 내가 유일하게 꼬시고 싶은 여자 너 하나야. 못 믿겠으면 정말 열심히 꼬셔볼게. 다만 매 순간 긴장 좀 해야 될 거야. 난 후진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