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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마리아
작가 : 해우Manatee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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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작성일 : 17-11-19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2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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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권문가

 

 얼어붙은 흙 속에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던 풀씨들은 이제 완연한 봄날씨를 만끽하려 하늘로 그 푸른 팔을 뻗었다. 새싹들이 만개한 밭두렁을 따라서 뻗어난 길 위로 완전 군장을 한 경보병들이 줄지어 걸었고, 군인들의 행렬을 따라 검은색으로 무광 도색을 한 지휘차량이 흙먼지를 뿌리며 달렸다. 차 안에서 본 풍경은 이제 토프탈 권역으로 들어왔다는 걸 보여 주듯 보리 싹이 펼쳐진 광야를 자랑했으며, 리오 맥컨키 준장도 오랜만에 보는 봄 풍경을 감상하며 쿠션에 기대 낮잠을 청하려 했지만, 최근에 새로 생긴 그의 불면증은 그가 잠깐이나마 마음을 풀고 휴식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잠에 빠져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리오는 여전히 눈을 감을 때마다 스스로 때문에 고르돈 평야에서 펼쳐진 지옥도를 보았다.

 

 평원에서의 길었던 전투가 북부의 패배로 끝이 난지 며칠 후, 수도 바하의 군 징계위원회에는 전시에는 그 유래가 없을 군 장성의 청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리오 중장의 눈 앞에는 제각기의 생각에 골몰해 자리에 건성으로 앉아있는 군 간부들이 있었고, 그는 회의실 테이블 가운데에 놓여진 작은 의자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징계위는 리오 맥컨키 중장 지휘하에 벌어진 고르돈 야전애서의 일방적인 패주에 약 사천 삼백여 명 수준으로 집계되는 구국 장병들의 순국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한 바...."

 

 리오는 눈을 감았다. 그의 눈꺼풀 뒤에 새겨진 수많은 목숨을 위령했고 그들의 죽음을 기다린 탐욕에 눈이 먼 귀족들을 증오했다.

 

 “...일견에서는 사령부의 공군 지원의 부재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당직 기무대의 판단도 있으며, 이는 본 징계위도 일부 참작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리오가 감았던 눈을 뜨자 그의 눈 앞에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키올 에드망 공이 보인다. 귀족원의 원로이면서 군 장성을 연임하는 사실상 테움의 최고 권력자는 그의 오래된 악우였으며, 자유민 출신의 장교인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올려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키올은 다른 귀족들을 견제해줄 파트너로 그를 선택했고, 그저 한 공작의 장기말이었을 리오는 수천만 자유민들의 의 유지이자 우상이 되어버렸다.

 

 “…동부 전선의 균형에 위해를 주는 만큼, 사안의 중요성과 대외적인 책임을 근거로 리오 맥컨키 중장은 이 시간 이후로 리오 맥컨키 준장으로 두 계급 강등하며 새로운 임무를 받을 때까지 국직부대의 평임으로 대기한다.”

 

 “이의가 하나 있습니다.”

 

 키올 공작이 일어났고 모두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에게로 쏠렸지만, 리오는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휘둘리고 말겠지.’

 

 키올은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맥컨키 준장이 이번에 큰 실책을 했지만, 여기 있는 누구도 혼자 힘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준장의 능력을 폄하하기 힘들 겁니다. 저는 전시에 이런 인재가 정직 처분을 받고 낭비되는 게 아쉬워 제 관하의 여단을 맡겨, 동부전선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토프탈 산악전에서 리오 맥컨키 준장 스스로의 실책을 만회하게 하고 싶습니다.”

 

 부랑아 출생의 장교도 끌어안는 명망 있는 귀족의 자비에 모두들 찬사를 보냈고, 징계위가 끝나고 회의실에는 곧 키올과 리오 둘만이 남아 서로의 위치에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네.”

 

 지휘차량은 곧 행군하는 보병들의 선두를 앞지르고 홀로 달리기 시작했고, 낮잠을 자는데 실패한 리오 준장의 눈에는 이제 베르체의 허리와 이어진 토프탈산의 북쪽 면과 지금부터 그가 동조해야 할 토프탈의 기갑대대 진지가 보였다. 그들이 오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던 코던 중령은 차에서 내리는 리오를 향해 경례를 끝내자마자 토프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냈다.

 

 “준장님, 동쪽에서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중앙에서 인원보충이나 해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장군님 같은 전후의 명장을 보내주시니 아마 상부에서도 저희에게 관심이 많아졌나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휘하로 있는 보병 중대가 기갑병력이 산을 넘을 수 있게 시간을 번다고 자기들끼리 산을 넘어버렸습니다. 보통은 통보를 무시하고 그 대위의 후임에게 전권을 위임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분이 귀족원 출신 장교이다 보니 제가 함부로 징계를 내리기 애매해서 말입니다. 도박성이긴 하지만 그들을 믿고 무전이 닿는데 까지 한번 따라가 보려고 했습니다. 아, 물론 장군님께서 오셨으니 조금 손해가 있어도 그들도 다시 이쪽으로 산을 넘어 복귀할 겁니다.”

 

 리오는 키올이 그에게 했던 부탁을 생각했다. 그에게는 설득해야 할 대위가 하나 있었다. 녹색 보석을 가지고 있을 그 대위가 사지에 있다는 말에 리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위가 조나단 도르테 대위인가?”

 

 “네, 맞습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어리숙해서 어쩌나 했는데 이젠 지휘관 한 사람 몫은 넘게 합니다.”

 

 같은 시간 도르테 남부의 산기슭에 있는 조나단 도르테 대위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겨우 일주일 전, 밀리고 밀리던 토프탈의 살육전 끝에 그는 산을 넘기로 작정했고, 지리적 우위를 포기한 북부군은 곧 산 반대편의 수백명의 남부군이 득실대는 가운데 하루에도 열 명 안팎으로 죽어가는 전우들에게 간단한 수습도 못해주고 이를 갈며 진군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그의 중대원의 목숨을 걸고 강행한 도박은 갑자기 등장한 보병여단의 등장에 이제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미 서른다섯 명이 죽었지만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해가 지면 본대까지 복귀 한다."

 

 조나단은 이를 악물고는 그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하사관들을 바라보았다. 육박전을 너무 많이 겪어서 손가락이 멀쩡하게 다 있는 녀석이 없는 중대, 무능한 중대장, 이런 전투라도 계속 하라고 질 수도 이길 수도 없게 보급을 쥐어짜는 상부, 어쩌면 죽음이라도 선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가져온 참극. 물밀듯이 밀려오는 죄책감과 상황의 부조리함이 결국 그의 정신의 둑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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