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실망과 쌍둥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이솝우화였던가?
뭐, 아무튼....... 희망과 기대에 부풀에 찾은 나의 ‘일터’는, 처음부터 내 기대와는 조금 다른 첫인상이었다.
한국 특수 능력전 전담청, 본관 5층. 15반.
“........”
5층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반이다. 물론, 반의 위치 같은 걸로 그 비중이나 지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왠지 이 주변 복도만 유달리 음침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라고 믿고 싶다.
“여기 맞지?”
분명히 내가 알기론 전담청이 탄생한 것은 3년 전. 즉, 이 건물은 지어진지 길어봐야 3년 내외라는 소리다.
그런데 왜일까. 왜 녹색으로 투박하게 칠해진 이 철제 문은 지은 지 수십 년 쯤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내 기준으로 전담청 최고의 대원이라 믿고 있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철컥.
끼이이이이.......
역시 외견을 보고 예상했던 기분 나쁜 금속의 마찰음이 들린다.
“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젠장. 나도 모르게 얼어버렸다. 언제나 냉정침착을 유지하는 것이 내 신조였는데.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신입 티를 풀풀 풍기고 말았다.
끼이이이........
그런데,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이 더럽게 구린 녹색 문이 열리는 기분 나쁜 소리 뿐이다.
“.........”
그리고 문이 완전히 열리고, 이제부터 내가 지낼 15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구리고 구린 철제 문에서 예상했던 것 과는 달리, 내부는 그럭저럭 젊은 피의 비중이 많은 작은 사무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저 한 구석에는 귀여운 디자인의 가습기가 증기를 내뿜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책상들은 잘 정리정돈 되어있고 왠지 여사원들 책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창가에는 이름은 잘 모르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화분들 몇 개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밝은 톤의 인테리어, 겉모습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3년 밖에 된 건물의 사무실 같은 느낌이랄까?
“??”
그런데, 이렇게 예쁘게 꾸며놓은 사무실이건만, 중요한 것이 없다.
사람이 없다.
즉, 내게 있어서 선배가 될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책상은.......4대가 있다. 그 중 내 책상이 될 한 개를 제외하면 분명히 누군가 쓰고 있긴 한 것 같은데, 다들 어디 간거지?
“........으음........”
“!!?”
그때 어디선가, 낮게 울리는 신음.......비슷한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사무실의 책상은 4대가 아니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던 사무실의 구석, 그곳에도 책상이 한 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등받이가 꽤 널찍하고 상당히 안락해 보이는 의자........ 저걸 사장님 의자라고 했었지?
그 의자에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저.......실례........?”
앉아있지만 상당한 장신에 탄탄한 체격을 가진 남자.
왠지 낮이 익은 남자다.
조금은 어수선하게 기른 검은 머리칼이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 사이로, 오른 눈을 감싸고 있는 검은 안대가 있었다.
살짝 감고 있는 남은 왼눈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속눈썹은 남자의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예쁘고 길었다.
그 아래엔 예술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조각한 것 같은 코가 있다.
매혹적인 붉고 부드러운 입술은 힘이 살짝 빠진 듯, 약간 벌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담겨있는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모양의 얼굴.
그리고 그는 남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하얗고 정갈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뭐, 주절주절 말이 길긴 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아름답다.
마음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남자가 의자에 기대어, 아침햇살을 받으며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자고 있는 모습도, 오른 눈을 가린 안대도, 그리고 그 목의 옷깃 안에서부터 턱까지 올라와 있는 긴 흉터도 그 아름다움을 조금도 퇴색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 남자가 걸치고 있는 흰 와이셔츠, 그리고 의자에 걸쳐져 있는 푸른 색의 유니폼 코트는 내가 입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나는 떠올렸다. 나는 이 남자를 알고 있다는 걸.
뉴스에서 상당히 높은 빈도로 나오는 사람이며, 직접 만난 적도 있다.
고대하던 만남의 떨림 때문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잠든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2년 전의 그날, 나를 구해준 사람.
그때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던 나를 안심시켜주었던 목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김연.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나의 영웅.
그렇게 낮 뜨거운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그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어라? 잠깐? 나 언제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거지?
“.......으음.......”
“!!!”
미약한 웅얼거림, 그리고 그가 눈을 뜬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모든 생각이 정지하고, 그저 그 눈에 시선이 붙잡힌다.
안대로 가려지지 않은 그의 왼눈을 이제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조금 힘이 들어간, 날카로운 눈. 그 안의 눈동자는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었다.
열대의 바다, 혹은 아침햇살을 맞이하는 호수가 떠오르는 그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치고, 나는 마치 차가운 얼음이 나의 심장에 박힌 듯한 충격을 느낀다.
그러나 나의 충격은 그저 그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혹은 2년 만의 만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와 나의 사이에 놓인 어떤 것 때문이다.
“아.......”
차가운 검은 쇳덩어리가 나와 그의 사이에 있다.
K5 자동 권총 개량형, 대한민국 국군 장교들과 전담청 대원들이 사용하는 제식 무기.
언젠가 나를 구했던 그 물건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나를 향해 총을 겨눈 것이다.
“넌 뭐야?”
차가운 총구에 어울리는 차가운 목소리.
2년 전의 그날 들었던 것과 같은 목소리였으나, 거기에 묻어나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차갑고, 매섭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그 너머에서 나를 쏘아보는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더욱 나를 얼어붙게 한다.
2년 동안 노력해서 이루고 싶었던 만남이 내 예상과는 너무 달랐던 것이 이유였던 걸까?
그런데, 왜? 나는 왜 김연에게 총을 겨누어지고 있는 거지?
“아, 저, 저는!!”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당황하며 말을 꺼냈다.
도대체 왜 총이 겨누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남자에겐 내가 존대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때, 허겁지겁 인사를 하려하는 나의 말을, 부드럽게 울리는 낮은 목소리가 끊었다.
“.......아이린?”
“.......”
조금 전 잠결에 쏘아붙였던 그 목소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놀랄 만큼 따뜻했다.
“네?”
그런데, 뭐? 아이린? 그게 뭐야?
그리고 그 말을 뱉은 뒤 잠시 나를 바라보던 김연은 다시 왼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아.......젠장. 신입이냐?”
2년 전의, 그리고 조금 전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디론가 집어 치운 채 짜증을 내며 총구를 내린다.
“아,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에 15반에 배속된........”
“시끄러....... 알아. 소리지르지 마라. 머리 울려.”
“.......네?”
“그리고 그렇게 자기소개 안해도 돼. 날 바보 취급하는 게 아니라면.”
“네?”
“나는 이 반의 반장이고, 당연히 네가 이 반에 배속 될 것을 미리 전해 들었지. 그렇다면 당연히 관련 신상정보도 나에게 넘어왔겠지? 그러니까 내가 바보가 아니라면 상황파악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런데도 너는 굳이 자기소개를 함으로써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냐?”
방금 전 그 신입에게 총을 겨눈 남자가 할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내겐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동경해온 남자는, 이렇게 말을 길고 짜증나게 하는 사람이었나?
그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토록 경박하게 주절대는 사람이었나?
그 아름다운 얼굴을(물론 그 당시엔 얼굴을 보진 못했다만.) 저렇게 나태함과 짜증으로 일그러트리는 그런 사람이었나?
혹시 내 기억이 미화된 건가? 공포에 뇌가 마비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갭이 크다.
“........”
그렇게 충격을 먹고 가만히 쭈뼛거리고 있으니 그가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저 에메랄드 빛 눈을 실제로 마주하니 말 그대로 생각이 지워지는 기분이다.
그때, 그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이름 홍세연. 나이 17세. 유치원.......아니 한국 각성자 육성 아카데미 20기 졸업생. 맞지?”
“.......네.”
“근데, 1지망 반을 여기로 썼네? 왜? 뭐하러? 미침? 마조키스트? 삶의 자극을 즐기고 그러니?”
“.......”
짜증난다.
방금 전까지 이 남자를 보고 느꼈던 아름다움, 경외가 조금씩 옅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전담청에 배속 받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이 스쳐지나가며 내 멘탈도 같이 스쳐지나가는 기분이다.
지금이라면 수십년전에 사법고시가 없어졌을 때 많은 수험생들이 느꼈을 감정에 조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이유가 없어졌다고 할 정도는 절대로 아니지만, 내가 어른이었다면 허탈함에 술이라도 퍼먹고 싶었을 것 같아.
“뭐, 어찌되었건....... 일단 잘 왔긴 했어.” “......네?”
잘 왔긴 했어, 라는 인사말은 처음 들어보기에,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남자는 내 물음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김연이다. 알지?”
“.......네.”
알긴 알죠. 잘 알죠. 아니까 여기 온 건데요, 저도 모르게 ‘모르는 데요’라고 할 뻔했네요.
그리고 김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 젠장. 이 머저리들 다 어디 갔어?”
“........”
김연은 그렇게 투덜대며 다시 그 안락해보이는 의자에 등을 기댄다. 삐걱, 하는 의자의 비명 이후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뭘하고 있냐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김연의 책상 옆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을 뿐.
어쩔 수 없지. 난 여기 들어와서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으니. 지금의 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심지어 내 자리조차 모르는데다가 추억과 현실의 괴리에 멘탈이 깨진 신입일 뿐이다.
김연은 이제야 그것을 눈치 챈 것인지, 나를 힐끗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 명색이 신입이니....... 간단한 교육정도는 해 줘야겠지. 고마운 줄 알렴. 내가 직접 나서서 신입 교육하는 건 전담청 사상 처음이거든.”
당연한 일을, 그렇게 큰 선심 쓰듯이 말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요.
“물론, 전담청은 창설된 지 3년 밖에 안 됐고 오늘이 15반에 첫 인원 보충이 들어온 날이니 의미 없는 수식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됐는데.
그러나 그는, 이런 내 마음 속 불평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쓸데없이 편해 보이는 의자에 몸을 더욱 힘주어 기댄다. 끼익, 하고 의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그는 허공을 처다 보며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이 15반은 인원도 적고 하는 일도 단순하다 보니 일은 별로 없지. 아 그래도 만약 기회만 온다면 스포트라이트를 꽤 받을 수 있어, 직접 나서서 치고받는 일이니까.”
“.......네?”
“뉴스 안 보는구나? 꽤 자주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건 아니지?”
“........압니다.”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는 대화. 그의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 채, 그리고 그의 입은 오직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고 있다.
“어쨌든....... 잘하면 방송에 이름도 나올 수 있어. 추모 방송이지만. 큭큭........”
“......”
대화가 전혀 맞물리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허공에다 대화를 거는 느낌이다.
그는 낮게 울리며 간드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왠지 듣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내 동경을 와장창 깨부수고 있다.
그때, 문이, 그 금속의 뻑뻑한 문이 삐익,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직후, 발랄한 소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일어나!! 연!!”
“아.......제기랄.......소리 지르지마 지지배야........”
‘연’은, 진심으로 짜증을 내며 의자를 소리가 난 곳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어라? 신입이네!!! 왔구나!!!!”
그렇게 반갑게 외치는 것은, 한 여성 대원. 부드럽게 웨이브진 갈색 머리칼과 땡글땡글한 눈망울을 가진, 언뜻 봐도 ‘소녀’, 혹은 ‘발랄함’이라는 수식어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쾌활한 인상의 여성 대원이었다.
“반가워!! 난 최수연이야!!! 아카데미 출신 맞지? 나도 아카데미 출신이야!! 난 17기인데....... 네가 20기 맞지?!”
“아, 네! 맞아ㅇ...... 맞습니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호기심어린 질문에 방심해서 긴장이 풀려 편하게 대답할 뻔 했다.
“반갑다. 나는........”
그때, 최수연 선배의 뒤에서 김연보다도 낮은 목소리의, 덩치 큰 남자가 말을 걸어 왔다.
“이쪽은 김강윤이야!! 김강이라고 부르면.......”
“내 말 끊지 마라 최수연. 그리고 그렇게 부르지 마.”
“흥. 뭐, 아 맞다!!!”
들뜬 건지, 토라진 건지, 놀란 건지, 이 ‘나보다 작은’ 선배는 온갖 감정을 발산해가며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다가 뒤를 돌아, ‘김강윤 선배’의 등 뒤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그리고....... 민아! 너무 쑥쓰러워 하지 말고!”
“아, 으....... 언니....... 전.......”
“??”
뭐야.
어린애?
나 역시 키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아무튼 명백하게 나보다 작은 키의 소녀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폭신폭신해 보이는 머리칼은 잿빛, 그리고 눈동자는 은빛을 띈 소녀.
“아, 저는........ 아니 나는........ 15반의, 김지민.......”
그 말을 하자마자, 최수연 선배의 등 뒤로 숨어버리는 ‘김지민 선배’
.......솔직히 말하면, 같은 여자지만 정말 귀엽다.
그런데, 잠깐, 김지민? 한국인? 외모는 아닌 것 같은데? 부모님 중에 한분이 외국분이신가?
“.......아, 시끄러......”
아 맞다. 저 뒤에 또 한명 있었지.
김연.
제 2차 한국 전쟁의 영웅.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강자이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도 상위권에 위치한 실력 있는 각성자.
그리고 아마도 내 상관이 될 남자다.
그리고 내가 동경 ‘했었던’ 남자다.
15반의 신입 대원, 홍세연. 이것이 바로 나.
15반의 반장, 김연. 이것이 바로 저 남자다.
만남은 언제나 설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설레지도, 두렵지도 않았던 만남.
이것이 나와 김연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