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중화 인민 연방 민주주의 공화국의 임시 수도, 난징.
번화한 거리의 한 구석, 작은 상가 건물 지하실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뿌연 담배연기에 휩싸여 하나같이 유리잔에 담긴 술을 벌컥이며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흔히 볼 수 있는 주정뱅이 모임으로 보였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중국 땅 한가운데의 골목에 있는 건물이었지만 모인 이들이 전부 한국어, 그 중에서도 서북방언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어쩌실겁네까?”
그 중 비교적 젊은 남자의 푸념에 가까운 물음에, 그 자리에 모인 중년이상의 남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태도에 젊은 남자는 부아가 치미는 듯 언성을 높인다.
“이대로 공화국이 사라지는 꼴을 보고만.......!!”
“그럼 어쩌자는 거네? 좋은 수가 있니?”
“.......”
정말로 방안을 묻는다기보다는 ‘방안이 없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듯, 짜증을 내는 목소리였다.
“이미 진작에 사라졌.......”
“그럼 대장 동무는 있습네까?”
“뭐?”
“중국정부도 5년 전에 뒤통수 갈기지 않았슴메? 이제 기댈 데도 없고 돈도 없는데 이제 뭐합니까? 이대로 손 털고 깡패짓이나 계속 하는 겁네까?”
“그걸 왜 나한테 따지나?”
“접때 대장 동무가 주장해서 평양지부에 현금이랑 무기랑 빙두를 무더기로 보내지 않았습네까! 그러다 김연 놈에게 걸려서 배 채로 털린거 아뇨!!”
“너 이 새끼 건방지게!! 대장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옛날 같았으면 바로 총살이야!!”
“나라가 망했는데 대장은 무슨 대장!! 나라 망할 때 뭐했소?”
“안 망했어!! 괴뢰놈들이 인민들의 눈과 귀를 막은 손을 치우고 평양에 돌아가 깃발을 세우면 3000만 인민들이 두 팔 벌려......”
“지X하네!! 저번에 그러다 당신 친구가 평양 한가운데서 맞아 죽지 않았소!!”
취기가 오른 탓인지 사소하게 시작한 말다툼은 이제 주먹다짐으로 발전하려 하고 있었다.
그 때, 언뜻 봐도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노인 한명이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
“그만! 그만!”
“.......”
연장자 대우인건지,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언성을 높이던 자들이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는다. 고함친 노인은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다 늙어서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은 나중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다. 상황이 안좋지 않나. 지금 공화국 땅에 남은 동지는 이병호 동무의 지부뿐이고.......자금도 이제 거의......”
“.......”
노인의 말은 그들이 잊고 싶어하지만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어지간히도 듣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리며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몸을 숨기고 공화국의 청년들에게 미래를 맡기.......”
“의장 동무. 청년이 어딨습네까? 지금 다 자본가 놈들에게 붙어서......”
콰앙!
그 딴죽에 차분히 말하던 노인이 자기 앞의 잔을 테이블에 내리쳤다. 그리고 자기 앞의 ‘동지’들을 바라보며 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런 소리 하지마라! 지금은 추악한 속내를 숨기고 있지만 놈들이 본색을 드러내서 인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하면........!!”
그러나, 그런 그의 말에 끼어드는 소리가 있었다.
똑똑.
“!!!!”
지하실에 울려 퍼지는 가벼운 노크소리. 손님이 어지간히도 반갑지 않은 듯,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사색이 된다.
“누, 누구야!!”
누군가의 외침,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문 쪽을 겨누었다.
“.......”
“의, 의장동무! 서, 설마 들킨 건.......”
“누, 누구에게 들키겠나! 여긴 난징당의 본거지야! 전담청 놈들이 함부로 설칠 곳이 못돼!”
그러나 의장이 떨리는 목소리에 호언장담이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아무말 하지 않고 두려움과 긴장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누구하나 말을 꺼내지 않는 긴장이 감도는 지하실. 잠시 후, 지하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기분 나쁜 목소리와 함께.
“워어....... 진정해. 나는 적이 아냐.”
“........”
그러나, 그렇게 말하며 들어온 방문객의 기분 나쁜 모습과 기분 나쁜 목소리 탓인지 아무도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문객은,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웃음을 띄며 타이른다.
“여러분을 돕기 위해 왔어. 그리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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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가 여기 들어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이래도 되나?”
전담청 본관에는 모든 층에 휴게실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 5층 휴게실에는 지금 점심시간을 맞아 휴식 중인 대원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나누거나, 음료수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중 하나, 철연이 빨대를 잘근잘근 씹어대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뭐가?
전담청에 들어온 이후 줄곧 투덜대던 그였던지라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지만 그래도 일단 대꾸해보았다.
“세금으로 일하고 세금으로 먹고 사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이거야.”
철연은 아무래도 한가한 전담청 생활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한편, 콜라를 홀짝이던 진민은 철연의 말에 무심히 대꾸했다.
“일이 많은 것 보단 낫지.”
“왜?”
얼굴을 찌푸리며 멍청하게 묻는 이 녀석이 걱정된다. 정말 너무 멍청해서.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의 헛소리를 교정해 준다.
“우리 할 일이 많다면 그건 문제 아닐까?”
전담청이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가 바쁘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니까.
각성자 범죄자들이 넘쳐나거나, 아니면 전쟁 중이거나.
아카데미 시절에 배웠기도 했거니와 아카데미가 아니라도 이런 건 누구라도 알 거다.
하지만 철연은 그 ‘누구라도’에 자신은 들어가지 않는 다고 당당히 말해버렸다.
“엥? 일이 많아야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해야 출세를 하고 출세를 해야........”
포기. 정말 어떻게 전담청 입사 성적을 넘었는지 모를 정도로 이해력이 딸리는 녀석이다.
그러나 진민은 아직 자기 친구를 포기하지 않은 듯 했다.
“매일 같이 총질하면서 살고 싶다고?”
짧고, 정확한 일침이다. 이런 건 좀 배우고 싶네.
“아, 아니....... 그런 건....... 야 그리고 총질이 뭐냐. 범죄자도 아니고.......”
“아무튼 그래도 전담청에 왔으니 이렇게 여유롭게 지내는 거지. 공수여단으로 간 녀석은 요즘 작업한다더라.”
“진짜?”
진민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새삼 고급인력으로 분류된 이점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 신체능력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니까 작업 효율은 좋을 것 같긴 하다. 이래저래 낭비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한편 철연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중얼대고 있었다.
“뭐 그렇긴 하지만....... 에휴....... 청장님은 지금 우리보다 별로 나이도 많지 않을 때 영웅이 되셨는데. 우리는........”
“전쟁영웅이잖아. 전쟁이라도 나가고 싶어?”
전쟁은 겪어보지도 못한 녀석이 꼭 쓸데없이........ 물론 나도 전쟁에 나간 적은 없다.
그러나 ‘겪어’본 적은 있다.
“근데 너네 반 김연 반장님도 그렇잖아?”
“.......”
진민의 말 대로다. 청장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이라고 불리는 김연이니까.
하지만 내가 김연을 동경했던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와선 그 동경도.......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철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야 맞다! 김연 반장님 하면 또 조선 재건 동맹 사냥꾼아니시냐?! 부럽다.......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다니. 우리 반장님은 그냥 공무.......”
조선 재건 동맹. 3차 대전 이후 북한이 멸망하자, 권력이 너무도 그리웠던 구 북한의 권력자가 만든 테러단체였다.
말만 들으면 거창해보이지만 자금도, 제대로 된 전력조차 없었기에 나타나자마자 별거 없이 전담청에게 신나게 얻어맞는 신세였던 작자들이다.
결국 그 의장인지 뭔지는 해외도주하고 국내 조직은 사실상 전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연이는 언제나 김연김연김연이었지. 그래 기분이 어때? 그렇게 숭배하던 분 밑에서 일하니까? 막 설레고 그러냐? 잘생기기도 더럽게 잘 생겼으니까 뭐.......”
쓸데없이 히죽거리며 놀리는 진민. 근데 왜 철연이를 돌아보며 그런 소리하는 거야?
“......숭배까진 안했어.”
일단 옛날부터 김연을 존경한다는 뉘앙스 정도는 풍겼지만 숭배까진 아니다.
김연이 나를 구했다는 것은 이 녀석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지만 말야.
그런데, 철연이 녀석은 갑자기 왜 저러지? 혼자서 뭘 중얼거리고 있는데.
“.......얼굴이 뭐 그리 중요한가........”
“뭐라고?”
먼저 김연 이야기를 꺼낸 주제에 왠지 뚱한 얼굴로 궁시렁 대던 철연.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반색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아 그렇지! 너네 반장에 대해서 재밌는 걸 들었는데, 로리콘이라며? 그렇게 잘생겼는데 아쉽네. 그래도 다행이다.”
무슨 미친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이 녀석의 부족한 말솜씨 덕분에 제대로 된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문장 하나하나가 이어지지 않고 있는데?
“갑자기 뭔 헛소리야?”
옛날부터 철연이 뜬금없이 던지는 헛소리는 언제 들어도 신선하게 멍청했고, 나는 그 신선한 멍청함에 질린 듯 딴지를 건다.
“아니....... 난 그 사람이 혹시 네게 관심....... 아니 이건 아니고, 하하하...... 아니, 그게 말야, 그 김연 반장님 옆에 항상 붙어 다니는 그 작은 선배 말야.”
“지민 선배?”
“아무리 봐도 우리보다 어려보이지? 그리고 뭔가 보호본능을 부른다던가, 가련하다.......던가 그런 인상을......”
위험한 상상을 하는 철연, 그리고 진민 역시 이 대화에 끼어든다.
“아 그거 우리 반에서도 들었어. 김연 반장이 데려왔다던데.”
그래, 언뜻 봐도 어리고 귀엽게 생긴 소녀가 언제나 죽을 상을 하고 다니는 덩치 큰 남자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그럭저럭 눈에 띌 수밖에 없겠지만.......
“다른 반에 무슨 이미지로 박혀있는 거지? 우리 반장은......”
한숨을 쉬는 나. 그리고 철연은 그 앞에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눈을 빛내며 말을 잇고 있었다.
“나도 우리 반장한테 들은 거거든. 아 맞다. 이건 다른 이야긴데, 우리 반장님은 김연 반장 되게 싫어하더라? 대화하면 쳐 죽이고 싶다던데 진짜로 그런 사람이야?”
철연의 말이 끝나자마자였다.
내 머리 위에서 낮고 중후하면서도, 경박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한번 이야기 해볼래? 쳐 죽이고 싶나 아닌가? 근데 쳐 죽이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나 있으려나?”
요 근래 가장 많이 들었던 목소리다.
“기........기기기기기김연 반장님?!”
“!!!”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 있던 것은 오른 눈을 안대로 가리고, 하나 남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아름다운 얼굴이 있었다.
김연이다.
나, 철연, 진민은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 차렷자세를 한다.
젠장, 놀랐잖아.
물론 철연만큼은 아니지만.
방금 전 김연을 보고 로리콘이니 쳐 죽이고 싶다니 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철연이니까.
“그래. 로리콘에 성격파탄자라........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 그런데 새파란 어린 것들에게 듣는 것은 또 처음이라 꽤 새롭네. 이 빌어먹을 새X야.”
세상에, 언제부터 들은 거지? 그보다, 이 인간 어디 있던 거지?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새파랗게 질린 채 소리치는 철연. 김연은 그런 철연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 보며 주절거렸다.
“그래, 본인 없는데서 뒷담정돈 할 수 있지. 이해해. 나도 청장욕은 많이 하고 다니니까.”
갑자기 부드러워진 목소리. 그럼에도 그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철연은 지금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었다.
“하하, 놀라지마. 내가 현장 습격이라도 한 것 같잖아. 난 계속 옆에 있었는 걸. 니들이 못본 거지.”
“?!”
그렇게 말하며 김연이 장갑을 낀 손으로 가르킨 테이블에는 음료수 캔과 빵 봉지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
확실히 조금 전까지 누군가 있긴 한 모양이었지만 어째서 이제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걸까.
그나저나, 저 사람은 뭘 먹을 때도 저 장갑을 안 벗는 건가?
“......”
철연은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뿐인가? 그것 참 빈약한 어휘력이네.”
“........”
사람이 웃으며 으르렁거릴 수 있다는 걸 지금 처음알았다.
그때, 저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여, 박철연. 여기서 쉬고 있었냐?”
“바, 반장님!!”
얼어붙어 있던 철연이 반색하며 돌아본 곳에는 제복 차림의 남자가 손을 흔들며 오고 있었다.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아, 저, 그, 그게.......”
아는 사람이다. 그렇다곤 해도 그냥 이름과 얼굴만 아는 정도지만.
2반 반장 송유준. 철연의 직속 상관인 사람이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이고 직속 상관도 아니지만 일단 윗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인사정도는 해야겠지?
“그래. 수고한다. 응?”
철연에게 다가오던 송유준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아하? 자네가 그 유명한 수석 소녀 맞지? 홍세연?”
“아, 네, 네! 맞습니다.”
갑자기 나를 알아보는 듯 말하는 송유준 반장.
“아하하....... 역시 소문대로네. 음!”
“??”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송유준. 왠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기 시작했다.
“하하. 역시, 듣던 대로네!”
“네?”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 게다가 저 시선이 더럽게 찝찝하다.
그리고 더욱 찝찝하게도, 그는 내게 바짝 다가오며 능글맞게 웃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아카데미 수석졸업에다가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하니까. 아하핫!!”
“.......감사합니다.”
그러니 좀 떨어져 줬으면 하는데, 부담스러우니까.
그때,
“유준아? 오랜만이네? 요즘 얼굴보기 힘들다? 나 무시하니?”
김연이 끼어들었다.
“!!”
내게 달라붙으며 말을 쏟아내던 송유근 반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김연을 돌아보았다.
“아, 까, 깜짝이야!! 이, 있었냐? 아, 아니, 있었어?”
“??”
뭐지? 눈이 많이 안 좋은가? 김연은 바로 옆에 1M도 안되는 거리에 계속 서있었는데?
“아, 아하하...... 오랜만이야 김연. 정말로.......”
송유준 반장은 방금 전까지의 능글맞은 태도는 어디가고, 조금 전의 철연처럼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음....... 바빠? 2반 따위가 바쁠 리가 없는데? 너네 마지막으로 작전 나간게 언제더라?”
“아, 아니. 난........”
“뭐, 그건 됐고. 네가 방금 찝쩍댄 내 부하 있잖아?”
“.......”
“그 녀석 미성년자야. 그러다 큰일 난다?”
“아, 알아!!”
알고도 그런건가?
그나저나, 김연은 지금 날 도와주는 건가?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겠지?
“알면 됐어. 괜히 이상한 짓해서 문제 일으키지 말길 바래. 안그래도 사방팔방에서 욕먹는데 추문이라도 벌어져 봐. 나 다시 백수되긴 싫다.”
파랗게 질린 송유준과 대조적으로 김연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으, 응!! 알아! 알지. 아하하하.......”
“그래. 그리고 부하 간수 잘하고. 방금 전까지 내 뒷담 까다 걸렸거든.”
“!!”
대화의 주제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철연은 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미, 미안! 잘 가르쳐 놓을게!!”
“으흠...... 정말? 엄한 거 가르치지는 마. 저번 합동 훈련 때 겪은 일을 네 부하도 겪을 수도 있으니까.”
눈을 가늘게 뜨고 히죽거리며 비아냥거리는 김연. 그 태도는 명백히 송유준을 조롱하는 것 같아보였지만 별로 동정심은 들지 않거니와........ 솔직히 말하면, 동경이 조금 깨진 지금도 저 미소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아, 아하하...... 그럼! 난, 이, 이만!! 야! 박철연!!”
얼버무리며 박철연을 부르는 송유준 반장. 그리고 철연은 이제 아예 울 것 같은 얼굴로 간신히 대답했다.
“아, 네, 넵!!!”
“따라와!!”
“아, 넵!!”
결국 철연은 자기 상관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조금 불쌍하네.
그리고 송유근 반장은 철연과 함께 멀어지면서 그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야 임마. 내가 김연이랑 엮이지 말라고.......”
“.......”
우리들은 한동안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철연과 송유근 반장이 퇴장하고, 계속 히죽거리고 있던 김연은 문득 뭐가 생각났다는 듯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아, 난 슬슬 정리해야겠네.”
그렇게 한마디 뱉고 김연은 자신의 테이블에 있던 쓰레기를 정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쓰레기를 든 채로 우리에게 말했다.
“난 먼저 들어간다. 적당히 쉬다 와.”
“아, 네!!”
나도 모르게 대답에 힘이 들어갔네.
“.......”
그렇게 김연도 사라지고, 남겨진 나와 진민은 그저 멍하니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진민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섭네.”
“뭐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는 것 아냐.”
“그건.......그렇지. 어떻게 우리가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젠장. 나, 김연 반장님에 대해서 크게 잘못 말한 거 없지? 그렇지?”
새삼스레 불안 한 듯 묻는 진민. 그러고 보니 나도 없었지?
“없을.......걸?”
“다행이다.”
그래, 다행이지, 김연 욕은 대부분 철연이 혼자 신나게 떠들고 나랑 진민은 별 문제 없는 말만.......
가만?
아까 진민이 뭐라고 한 것 같은데? 김연 뒷담에 들어가기 전에 김연 관련해서 한마디 하지 않았나?
‘그리고 세연이는 언제나 김연김연김연이었지........그렇게 숭배하던.......’
아, 이 미친 새X.
꽈악.
“악!! 야! 왜 그래!!”
내게 발을 밟힌 진민이 항의하지만 어찌되었건 좋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