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어딘가. 빛이라고는 흐린 하늘의 달빛 밖에 없는 밤이다.
어둠과 정적에 잠겨있는 숲을 깨우는 것은 어딘가에서 울리는 새의 울음소리, 그리고 드문드문 들려오는 잡담이었다.
3개의 인영이 길조차 나지 않은 숲속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어둠에 녹아든 슬림한 디자인의 전투복과 방탄복을 입고 머리엔 방탄 헬멧을 착용한 병사들이었다.
“.......이건 야근수당도 안 나오는데.”
“성과가 나오면 성과금은........”
“눈곱만큼 나오지.”
다름 아닌 김연, 최수연, 김강윤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대한민국 육군의 제식소총의 소음기 장착버전이 들려있었다.
“홍한테 너무 쌀쌀맞네. 어린 마음에 공 세우는 일에 의욕적인 것도 이상한 건 아닌데. 그렇게 말로 찍어누를 필요 있었어?”
두 번째 위치에서 걷던 최수연이 선두의 김연에게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바이저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김연은 그 말에 툴툴대듯 답했다.
“공? 무슨 공? 누가 누가 더 많이 죽였나, 뭐 이런 거? 레골라X랑 김X냐? 저놈들은 오크 군단이고? 전담청이 미쳐 돌아가도 나까지 같이 가고 싶진 않거든?”
“물론 나도 저 애들이 남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어리잖아. 잘 타이를 수도 있지.”
“타이른다고 어린애가 철이 들 거면 소년원은 필요 없겠지.”
“윽박질러도 철이 들진 않는데.”
“닥쳐.”
“근데 민이는 옛날에 작전 참가 했었잖아. 새삼스럽게.......”
“그래. 그리고 난 그 녀석이 적 한명 사살하고 3일 동안 울고불고하는 걸 달래야 했지. 그때도 난 안 데려가려고 했어. 이건혁 병X이 전원 출동 어쩌고 지X해서 데려간 거고, 후방에 남겼는데도 그 꼴이 났지.”
“하긴 그랬지. 빌어먹을 재건동맹.”
“한명을 죽였으니 한 열 명쯤 더 죽여도 상관없는 게 아니지. 하여튼 미친 나라야. 왜 미성년자를 전담청에 보내는 건지.”
“역시 상냥하다니까. 이래서 내가 연을 좋아하지. 아, 그래도 오해는 하지마. 그렇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라는 의미니까.”
“그렇고 그런 의미든 인간적으로건 필요 없으니 상관에 대한 버르장머리를 먼저 갖춰줄래?”
“왜? 난 나름 연을 훌륭한 반장으로.......”
그때, 앞에서 걷던 김연이 한 손을 들며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최수연의 말을 잘랐다.
“정지.”
“여기야?”
“정보과와 국정원이 보낸 정보로는 대충 여기쯤이래.”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전 중이니까요.”
“으흠.......”
그러나 강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김연은 미심쩍은 듯한 소리를 내고는 왼팔을 들어 자신의 팔뚝을 보았다.
그 왼팔에 달려있는 것은 부착형 PDA였다. 그가 PDA의 터치패널을 조작하자 잠시 후, 그의 왼팔로부터 옅고 푸르스름한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
그 영상은 이 일대의 지형을 나타나는 지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그들의 위치도.
“받은 정보대로라면 이제 곧 입구인데.......대한민국 정보기관들의 유능함을 생각하면 믿음이 안 간단 말이지.”
낮게 울리는 듣기 좋은 목소리였으나, 왠지 모를 건들거림이 느껴지는 묘한 말투였다.
“말이 너무 많으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기습작전인데 말이죠.”
그의 바로 뒤에 있던 강윤이 굵은 목소리로 그를 타이르듯 말했다.
“뭔가 기분 나쁜 일 있어? 오늘 따라 시끄럽네.”
“추가수당 안 나오는 야간 근무인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그리고 방금 전엔 네가 말 건거다.”
그리고 김연은 다시 수신호를 보내고는 자세를 낮춘채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따라 최수연과 김강윤 역시 자세를 낮추고 전진. 그렇게 신중히 숲을 헤치며 나아가는 세 사람이었다.
앞에서 팀을 이끌고 가면서도 김연은 다시 왼팔을 들어 부착형 PDA를 조작했다.
“이제 슬슬 바이저로 화면 전환해야지.”
“가까워진거야?”
“응. 밤에 켜놓은 화면 정도는 보일거리는 된 것 같네.”
김연이 버튼 몇 개를 누르자, PDA의 화면이 꺼지고 대신 지금까지 보던 화면이 그의 눈을 뒤덮고 있는 바이저 마스크 내부에 떠올랐다.
“눈 앞에 바로 화면이 뜨니까 더럽게 눈부시네. 이거 만든 놈은 자기가 써보고 만든 건가?”
“군용이 그렇지 뭐.”
“우린 군인도 아닌데 말야.”
“반장님, 조금 조용.......”
“아 알았다고.”
그리고 잠시 멈추어 선 김연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렌즈에 떠오른 지도 정보를 살핀다.
“찾았다.”
김연이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그 앞에 벼랑이 나타났다.
“........”
김연이 서있는 벼랑아래에는 평지가 펼쳐져 있고 그 맞은 편에는 또 다른 벼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 덩굴 식물 무더기가 부자연스럽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바보인가? 풀떼기가 저렇게 한 곳에 티나게 몰려있는데? 문을 숨기겠다는 수작인가?”
그렇게 말한 김연은 자신의 어깨에 달린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공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 놓았다.
딸깍.
바닥에 놓이자마자 금속 공에서 튀어나온 것은 6개의 다리. 이윽고 금속공은 마치 거미와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거미? 우와. 우리가 언제부터 체포작전에 이런 비싼 장비 받아가며 일했지?”
놀람 반 비꼼 반으로 말하는 최수연이었다. 김연은 자신의 PDA를 조작하느라 그녀에겐 시선을 돌리지 않고 나지막하게 받아쳤다.
“역사적인 순간이잖냐. 통일의 완수라던가 뭐라던가.”
“오바아냐? 저놈들 잡는 게 통일의 완수라고?”
“그러게. 이미 진작에 망한 놈들 잔당청소일 뿐인데 뭘 그리 유난인지. 하여간 정치꾼 놈들. 마지막에만 화려하게 장식하면 뭐든 좋다고 생각한다니까. 미리미리 이렇게 지원해줬으면 저딴 놈들 상대로 3년이나 끌 이유도 없었을 텐데.”
“근데 이거 건혁 청장이 승인한 거잖아?”
“그 놈도 3년 동안 청장노릇하다보니 정치꾼이 다 된거지 뭐.”
비아냥대는 목소리로 주절거리는 김연에게 강윤이 듣다못해 한마디 했다.
“전쟁 이후에 국방예산은 예전 같을 수 없었으니까요.”
“이 나라도 어지간히 막장이 되었네. 얼마나 가려나? 대한민국은.”
김연은 그렇게 말하며 PDA를 통해 드론을 원격조작하기 시작했다.
“음....... 연? 어느 나라든 요즘은 다 비슷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G5’밑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물론 그렇다고 김연과 수연이 잡담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드론이 6개의 거미다리를 움직여 벼랑을 내려간다. 그렇게 상당히 빠른 속도로 넝쿨이 늘어진 곳으로 접근, 그 앞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스캔 영상이 김연의 바이저마스크로 전송되어 김연의 눈앞에 펼쳐졌다.
“역시, 저 머저리들이 지금까지 숨어있었던 건 너무 무능해서일지도 모르겠군. 그 대벌레라고 있잖아. 비쩍마르고 약한데 나뭇가지랑 똑같이 생겨서 살아남는 벌레.”
“그건 똑똑한 거 아닌가?”
“그런가?”
“반장님. 조금.......”
“아 알았다고. 일단은....... 기다려. 다른 두 개의 입구로 보낸 드론이........ 아, 마침 딱 맞게 도착했네.”
자신의 PDA에 두 개의 위치정보가 전송되었음을 확인한 김연은 자신의 두 부하를 돌아보았다.
“입구 두 개 확인 했어. 너희 둘에게 각각 하나씩 위치 보내줄테니 전송 받은 위치로가. 그리고.......”
김연은 말하면서 PDA를 조작, 좌표 두 개를 최수연과 김강윤에게 각각 하나씩 전송했다.
“거기서 쥐새끼 하나 못나오게 해. 혹시 지키고 있는 놈이 있으면 처리하고.”
“오케!”
“알겠습니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두 사람은 김연의 곁에서 소리조차 없이 빠르게 이탈 한다. 부하들이 떠나고 김연은 홀로 남아 가만히 입구 쪽을 노려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들로부터 무전이 날아들었다.
“도착했어!”
“임무중이다. 최수연. 통신할 때는....... 하아, 아무튼 이쪽도 위치를 잡았습니다.”
두 부하들의 보고, 김연은 어둠 속을 쏘아본다.
“.......”
칠흑 같은 어둠. 그러나 김연은 마치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재밌는 것이라도 본 듯이, 웃음짓는다.
“그래, 상황은?”
“여기도 별로 다른 건 없어. 밖에서 지키는 놈은 없구....... 어설프게 숨겨놓은 문 하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아. 대기해. 나오는 놈 있으면 쏴버리든 붙잡든 맘대로 해라.”
간단하고 대충대충인 지시를 내린 김연은 그대로 벼랑에서 뛰어내려 착지했다. 5미터에 가까운 높이였지만 그는 마치 계단 두 칸 높이를 뛰어내린 것처럼 다리조차 구부리지 않고 가볍게 땅에 내려왔다.
“.......”
그리고 넝쿨쪽으로 다가간 김연은 잠시 그 쪽을 바라보더니, 오른 발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더니 대뜸 앞차기로 넝쿨 뒤의 벽을 걷어찬다.
콰앙!!!
문이 박살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때, 김연의 귀에 부착한 통신기에서 최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밀아니었어?”
“은신처 찾았잖아. 그리고 한명만 잡으면 되는 거야. 이미 숨을 필요는 없지.”
“하아.......”
김연은 강윤의 한숨을 무시하며, 흙먼지 속에 드러난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