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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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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과 어린이 4
작성일 : 17-11-07     조회 : 29     추천 : 2     분량 : 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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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내전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것도 나의 상관과 선배들의 손에 의해서.

  물론 나는 아무것도, 심지어 구경조차 못했지만 그래도 꼴에 15반이라고 여기저기서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 복도를 걷고 있는 내 옆에서 조잘대는 박철연 녀석도 그 중 하나였다.

  “야, 야, 홍세연. 너네 반장님이 혼자 다 쓸어버리셨다며? 진짜면 대박........”

  “나도 모른다니까. 직접 물어봐.”

  분명히 어리다는 이유로 강제퇴근 당했다는 걸 말했을 텐데 이 눈새는 쉬지도 않고 눈을 빛내며 내게 달라붙고 있었다.

  “아, 아하하하. 아니 난 그 분 좀 무서워서.”

  그렇게 얼빠진 웃음을 지으면서도 철연은 계속해서 정신사납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김연 뒷담을 하다가 걸린 것이 어지간히도 무서웠나보다.

  “말했잖아. 난 빠졌다고.”

  “쩝....... 어쩔 수 없지 어린 건 어린 거니까.”

  너도 나랑 두 살 밖에 차이 안나잖아.

  “그나저나 김연반장님 의외네.”

  “뭐가?”

  철연은 여전히 주위를 불안한 듯 돌아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니, 겉으로 봐서는 그런 ‘배려’와는 거리가 멀 것 같잖아.”

  “.......”

  배려. 그래 알고는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이건 확실히 어린 나와 지민선배를 전투에 데려가지 않은 김연이 옳다고 생각할 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나도 명색이 전담청 대원인데, 전투에 떼어놓고 간 것이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항상 활약하고 싶어하는 철연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나 역시 전담청 입대에 대한 묘한 로망같은 것이 있었나보다.

  솔직히 분하다.

  “혹시 김연 반장님이 널 아끼시나?”

  “전혀. 지민선배도 같이 두고 갔거든?”

  “아니, 그래도 봐봐. 그런 배려 안할 것 같은 사람이 의외로 온건하고 상냥한 결정을 내렸잖아?”

  “.......”

  상냥한 건 아니지. 가기 전에 얼마나 쪼아댔는데.

  “혹시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하시나?”

  나름대로 목소리를 낮춘 철연이었지만 원체 목소리가 큰지라 그다지 작게 들리진 않았다.

  실제로 주위의 누군가가 들었고 말야.

  “내가 저번에 말한 것 같은데 2반의 박철연 대원. 뒤질래?”

  “!!!!!!!!!”

  뒤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사색이 되어 앞으로 튀어나간 철연. 넘어질 뻔 한 것을 겨우겨우 모면하고 황급히 뒤를 본 철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식은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기, 김연 반장님!! 죄, 죄송합니다!! 그, 그게 아니라!!!”

  당연히 거기에 있는 것은 김연이었다. 언제나처럼 제복의 코트를 대충 걸치고 장갑을 낀 손을 일부러 주머니에 우겨넣은 채 서있는 김연.

  그나저나 왜 이렇게 사람 뒤에서 나타나는 걸 좋아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나름 공손히 인사한 것이었지만 김연이 보기엔 영 아니었나보다.

  “아침부터 인상이 더럽네. 설마 이틀 전 일 가지고 아직 삐져있는 건 아니겠지?”

  내 눈매가 더럽다는 건 잘 알지만 당신이 인상 운운할 입장이신가? 자기 눈매는 신경써서 본적이 없나?

  물론 이것은 속으로만 하는 생각이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응. 그래. 네가 삐져봐야 어쩌겠니. 한국의 조직문화 참 더럽지? 억울하면 출세해라. 나보다 더”

  “.......”

  짜증나. 언젠가 당신이 그 성격 때문에 출세길이 막혔으면 좋겠다. 내가 그 위로 올라가게.

  물론 이것도 속으로만 삼키는 생각이다.

  “출세욕이 자극된 얼굴이네. 미안하지만 네가 나보다 위로 올라갈 가능성은 한 이만큼밖에 안된단다.”

  어느새 장갑 낀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새끼손가락 마디하나를 가르키는 김연이 너무나 짜증난다.

  “아, 그리고 박철연 대원?”

  “네, 네!!!”

  애써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답하려 하는 철연이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는데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 같나?

  “이건 조만간 송유준이 만나서 전해 줄게.”

  “.......네.”

  명복을 빈다 철연아. 왜 하필이면 이 치졸한 인간의 뒷담을 해서 말야.

  그렇게 측은한 눈으로 철연을 바라보고 있더니 김연이 나를 불렀다.

  “야, 어린이. 마침 잘 만났다.”

  “네?”

  “따라와. 훈련장에 미리 가서 같이 준비 좀 하자고. 혼자가기 좀 그랬는데 마침 잘 됬어.”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사격 훈련이 있었지?

  “다른 선배들은요?”

  음, 이건 좀 안 좋게 들렸으려나? ‘왜 날 데려가냐.’ 뭐 대충 이런 느낌으로 들리진 않았을까 걱정되네. 아무리 그래도 상관인데.

  “지민이는 쉬는 날이고. 최말단은 청장실, 그리고 김강윤은 장비 파손 보고 및 장비 수령하러 갔다.”

  “아, 네. 알겠습니다.”

  반에 5명밖에 없으니 몇 명이 바쁜 것만으로도 이렇게 되는구나. 근데 왜 수연선배가 청장실에 간 거지?

  한편 내 대답을 들은 김연은, 얼굴에 공포가 더해진 것 같은 철연을 한번 훌겨 보더니, 내게 손가락을 까닥거리고는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관을 나서니 봄의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 쬐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김연은 전담청 부지 한 구석에 있는 사격훈련장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기왕 통일 완수의 주역이니 뭐니 떠들어 줄 거라면 고생한 우리에게 포상휴가라도 줘야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 생각하냐. 어린아.”

  “어린이 아니고 그건 한국전쟁의 영웅이 하고 다닐 법한 말은 아닌데요. 그래도 반장님은 밖에선 전담청 아이돌 비슷한 존재인데요.”

  “전쟁영웅이란 건 그냥 사람을 많이 죽이면 되는 거란다. 그렇게 타의 모범이 어쩌고 하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긴 이 나라는 연예인에게도 성부성자성신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니 이해는 한다만.”

  꼬였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있는 말에 얼굴을 찌푸린다. 김연과 대화하다보면 이런 게 짜증난다. 분명 하는 말은 틀리지 않았는데 문제는 이 인간, 그걸 두 번 세 번 꼬아대는 것이 버릇인 것이다.

  가끔씩 언론을 통해서 들었던 그의 ‘어록’들을 시니컬해서 멋있다며 꺅꺅 대는 동기들도 있었고 한때는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긴 했지만 일상에서 항상 듣다보면 역시 좀 그렇다.

  “하긴, 너에게 이런 말해서 뭘 하겠냐. 네가 한건 없으니 내 애환도 공감이 안 될테지. 어린이야.”

  그래. 말하는 게 이 모양이니 내가 배려를 배려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당연하지.

  “.......뺀 건 반장님이잖아요.”

  “불만?”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한때 ‘오빠’와 같은 훌륭한 각성자, 군인을 꿈꾸었던 나였다. 그리고 한때는 이런 인간을 동경해서 전담청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던 나였다.

  물론 김연이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고 오히려 올바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그런 것쯤은 각오하고 왔다고. 내 각오를 멋대로 어린이의 치기로 판단해서 멋대로 어린이 취급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아닙니다.”

  하지만 직위가 깡패지 뭐.

  “어린이라 표정을 못 숨기는 군.”

  “.......”

  진짜로 짜증난다. 애초에 당신, 나보다 8살 밖에 안 많잖아. 본인도 한창 젊은 나이면서 뭘.......

  한편 불편하게끔 장갑 낀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고 걷던 김연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반장님?”

  “잠깐.”

  김연이 향한 곳은 바로 길목 한 켠에 놓여져 있는 자판기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지폐 몇장을 꺼내더니 자판기에 돈을 넣었다.

  덜컹, 덜컹.

  “야. 받아.”

  “아.”

  그리고 자판기에서 음료 두 개를 뽑아 하나를 내게 던졌다.

  탄산인데 던져도 되나?

  “감사합니다.”

  “그래. 삐진 건 좀 풀어라.”

  “.......안 삐졌습니다.”

  “어린이란 건 참 성가시다니까. 본인 위해서 한 일도 꼭 꼬아서 꼰대의 잔소리로 받아들이거든. 게다가 표정관리는 전혀 못해서 괜히 주변사람이 눈치 보게 만들기도 하고 말야. 어쩌겠어. 어린이를 반으로 받은 내 책임인걸.”

  “......”

  콜라는 감사하지만, 진짜로 한 대만 후려치고 싶다.

  “취식보행하다 걸리면 청장에게 잔소리 들으니 여기서 먹고 제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해. 참나. 부하가 상관을 조롱해도 별 말없는 집단인데 이상한 데서 빡빡하단 말이지.”

  “아. 네....... 잘 마시겠습니다.”

  “예의 바른 어린이군.”

  어린이 어린이 진짜 짜증나네. 나보다 죽을 날 가까워서 참 좋으시겠다.

  아무튼 콜라에겐 죄가 없으니, 나는 말없이 콜라캔을 따고 한 모금을 마신다. 아직 4월인 주제에 묘하게 더워지고 있었으니 시원한 콜라에겐 감사할 수 밖에 없지. 그렇게 목이 따가운 것을 참으며, 혹은 즐기며 콜라를 마시다 김연을 보았다.

  “.......반장님?”

  그런데, 김연은 뭐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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