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공장.
한때 대기업이었던 A화학의 공장이 있던 곳이다.
한때는 세계적인 기업들에게 원자재를 공급하는 그럭저럭 건실한 회사였지만 불황의 여파로 문을 닫은 채 평소엔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풀만 자라던 곳이었다.
그러던 그곳이 현재, 경찰병력과 특수능력전 전담청 대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공장 주변에 집결한 장갑차량으로부터 각종 장비를 지급받은 전담청의 대원들.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현재 대기 상태로 반장들의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의 전담청의 다소 루즈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전담청 대원들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평소의 훈련시간에 지겹도록 만져본 장비들의 무게가 오늘은 새삼스럽다.
갑작스러운 실전이다. 언젠가 올 일이란 건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전투’ 혹은 ‘교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손에 익은 기관단총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
오빠도 언젠가 이런 걸 겪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럴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각성자였던 그는 어린 나이 때부터 각성자로서 군에 몸담아 왔으니까,
그리고, 그는 전쟁을 겪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한번도, 자신의 임무, 자신의 삶에 대해 내게 이야기 해준 적이 없었다.
물론, 나이 터울이 상당한 어린 동생에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이해는 한다.
그러나 이젠 오빠가 어떤 임무에 참가 했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물어볼 수 없겠지.
“.......”
오빠를 떠올리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이 길에 들어선 이유였다. 그리고 난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그와 같은 길을 걷는다.
마음을 다잡아 보자. 나는 전담청 대원이다. 내가 그토록 좋은 대우를 받아 온건 바로.......
“아니, 아니지. 이런 생각 하면.......”
일부러 입을 열어 생각의 흐름을 끊어본다. 그래,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
오빠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 바 대가를 받았으니 일을 한다, 와 같은 생각은 용병이 할법한 사고방식이다. 오빠라면 그렇지 않았을 터다.
언제나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 자신의 임무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없는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안다, 이건 나이차이 많이 나는 오빠, 그를 존경하는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추억보정이다.
그것에서 벗어날 기회는 이제 없다. 영원히, 그는 내 마음속에서 그런 이상적인 사람으로 남겠지.
“.......”
수연 선배도 오늘 만큼은 입을 다물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무장과 방탄복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지민 선배는 긴장한 얼굴로 공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윤 선배는 언제나와 같이 굳은 얼굴로 그들 옆의 방탄 차량 내부에 앉아있었다.
그때, 수연선배가 나에게 말을 건다.
“홍? 너무 긴장마. 저 정도 규모를 상대하는 건 2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있었어. 그리고 보통 전담청 피해는 많아봐야 평균.......”
그때, 선배의 위로의 말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계를 믿지마. 그건 말 그대로 평균이니까. 오늘 열 명이 죽고 다음 작전에 0명이 죽으면 평균으로는 5명이 되는 거니까.”
“!!”
듣기 좋은, 감미로운 목소리, 동시에 경박하고 건들대는 말투.
김연이다.
강윤 선배가 일어서며 그에게 물었다.
“오셨습니까”
“일단 상황. 조선 재건 동맹이 인질을 잡았다. 이젠 식상하지?”
“뭐?”
수연선배가 눈을 크게 치켜뜬다.
“잠깐만요? 재건 동맹은 전멸한 것이 아니었나요???”
나는 분명히 그렇게 알고 있다. 내가 빠진 그 날 김연과 15반 선배들에 의해서 전멸했다며? 그럼 그 직후의 대대적인 언론보도와 자화자찬, 그리고 표창수여식은 뭐였는데?
그리고 김연은 언제나처럼 지긋지긋하다는 듯 얼굴을 구긴 채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영토에 있던 것들은 분명 전멸했어. 국정원이나 12반이 장님이 아니었다는 전제하에 말이지.”
“........반.......장님....... 그럼........ 외부에서?”
그렇게 묻는 지민선배의 눈동자가 떨린다.
“아마 그럴 걸?”
“네? 아니, ‘아마 그럴 걸’이라고요?”
아, 조금쯤은 속내를 감추는 법을 배워야 할 텐데. 뭐, 적당히 연륜이 붙으면 가능해지려나?
아니나 다를까, 당황을 못 이겨 나도 모르게 어조가 강해진 내 말을 김연은 놓치지 않고 꼬집어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는 생각보다 성격이 보살인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 20살도 안 지난 신입이 저렇게 대들어도 이제 그러려니 싶은 걸 보면........”
그리고, 김연이 헛소리를 길게 늘어놓을 때 15반에서 이를 막는 사람은 대개 정해져있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
“나도 모른다고. 어디서 기어들어온 건지 모르지만 저건 분명히 놈들이야. 최수연아. 아무튼, 상황은 이래.”
수연 선배에게 짜증을 낸 김연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이제야 상황을 제대로 전파하기 시작한다.
“서울과 인천 각지........ 뭐 정확한 위치는 너희도 들었겠지만, 아무튼 그 일대에서 동시 다발 적으로 은행들이 습격당했지. 물론 각성자가 포함된 괴한들에게.”
“........”
그럴 것이다. 전담청이 하는 일이라는 건 대개 이런 일이니까. 각성자가 범죄나 테러를 저지르면 때려 잡는 일, 그것이 전담청의 평시 업무였다.
“그리고, 이 놈들 중 몇 명은 이쪽으로 도망치던 도중에 잡혔는데....... 그 중에 꽤 거물이 있더라고.”
그렇게 말한 김연은, 자신의 왼팔에 부착된 PDA를 조작, 15반 전원에게 이미지 파일 하나를 전송했다.
“.......이 사람은......”
꽤 익숙한 얼굴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조선 재건 동맹의 행동대장 비슷한 자였는데.
그리고 내 중얼거림을 덮어버리듯이 김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이놈에 대해서 파헤치는 건 검찰이든 경찰이든 아무튼 그쪽에 맡기고,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되는 건 저기 처박힌 놈들이지.”
“처박혔다구요?”
“응.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간략하게 서두를 던지자면.......”
아직 서두도 아니었다는 거구나.
“저놈들은 15개 팀으로 나뉘어서 각지의 은행을 털고 나서.......겸사겸사 인질도 몇 명 잡고 이곳으로 곧장 모여들었지. 우왕좌왕하다가 쫒겨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망설임 없이 이쪽을 향했다고 하더라. 처음부터 이곳을 집결지로 삼은 것 같아.”
“........”
“그것 참 이상하지? 게릴라전이든 강도질이든 굳이 합류할 이유가 없을 텐데. 실제로 놈들은 알아서 한 번에 일망타진 당하기 좋은 위치에 모여주었고.”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김연의 말에, 나 역시 불안감이 들었다. 새내기에 불과한 내가 함부로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와서 김연의 눈치를 보는 것도 어색하기에 일단 말을 꺼내 보았다.
“그럼, 저들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일단 나도, 다른 반장 놈들도 대충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어.”
“그럼 혹시 유인 작전이거나....... 인질이 있으니 함부로 진입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농성을 택한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말에 수연선배가 끼어들었다.
“그것 참 애매한 말이네.”
“애매해도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말한 김연은 차량으로 향하더니, 자신의 장비를 집어들었다.
기관단총과 권총, 그리고 나이프 한 자루. 내 것과 동일한 무장에,
역시 나와 같은 방탄헬멧과 마스크, 고글을 뒤집어쓴다.
“인질이 있고, 테러리스트가 있고, 우리는 여기에 있지. 만약 함정이 있어도....... 그것조차 감당해야하는 게 우리 일이거든.”
“........”
솔직히 말하지. 방금 전엔 조금 15반의 반장 같아 보였어요 반장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스크에 덮여 울리는 김연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자, 밥값 하러 가자. 세금 도둑들아.”
15반의 목표인 2층짜리 사무동 건물의 뒤편.
“숙여 멍청이들아!!!!”
김연의 외침이 울려퍼지고,
콰아앙!!!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무언가가 폭발했다.
“꺄악!!!!!!!”
제기랄. 꼴사납게 비명이나 질러버렸다.
그리고 나의 빌어 처먹을 반장은 절대로 그런 것을 놓치지 않았다.
“하하하....... 수석졸업 천재신입께서도 그런 비명을 지르는 구나? 크윽!!!!”
콰앙!
저 주둥이는 죽지 않는 구나. 유탄이 입을 좀 막았으면 좋았을 텐데.
“좀........ 조용히 해주세요!!!”
짜증이 솟구쳐 나도 모르게 성질을 부린다.
사무동의 앞문은, 그대로 물류창고의 앞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물류창고 역시 적이 점거하고 있었기에 뒤에서 총알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돌파보다는 뒷문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는 김연의 판단에 근거하여 우리들 15반은 건물 뒤의 주차장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이미 문 닫은지 오래된 공장이라 주차장에 일반 차량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갑차량 두 대를 세워놓고 엄폐물로 쓰는 중이다.
“으음........ 솔직히 불안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튼튼하네. 하긴 저놈들이 쏘고 있는 건 짧게 잡아도 5,60년 전의 대전차 병기.......”
김연은 이 와중에도 평소와 별 다를 것 없는 가벼운 목소리로 느긋하게 적 화력의 분석을 하고 있었다.
“적.......화력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쏟아지는 탄환 속에 세워놓은 장갑차량 뒤에서 대응사격을 하던 강윤선배가 다시 엄폐하며 외쳤다. 항상 침착해 보이는 사람도 눈앞에 탄이 지나가면 역시 급해지는 구나.
“인질만 없으면 뚫어볼 수도 있습니다만.......”
강윤 선배가 분한 듯이 중얼거렸다.
“인질이 없으면 우리가 올 것도 없었지. 건물 채로 날려버리고 생존자만 건져내면 되는 걸.”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는 김연.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뒤편 저 멀리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콰쾅!!!
“뭐 총탄이 아닌 이상 로켓이야 지민이가 막아준 덕분에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는데 말야...”
수연선배에게 부루퉁하게 내뱉은 김연의 말에, 나는 지민 선배를 돌아보았다.
내가 알 수 있는 제한적인 정보 중엔 반의 대원들의 능력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지민 선배의 각성능력은 기류의 조작. 완전히 막진 못하더라도 날아오는 대전차탄의 궤도를 틀어버릴 정도는 되는 출력이었다.
“우.......으.......”
머리 위로 손을 살짝 들고 능력의 발동 좌표를 조정하던 지민선배는 이 긴박한 와중에도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튼, 공중에서 강습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이상 결국 문으로 들어가야하는데......”
“왜 없죠? 이렇게 정면 돌파는 좀 무린 것 같은데요!! 다른 방법은.......”
사람이 급하면 자신의 위치고 뭐고 잊는가 보다. 나는 신입 찌끄레기라는 내 위치를 잊은 채 김연에게 다급히 물었다.
“인질이 있는데 헬리콥터가 있으면 뭐하냐! 미니건이라도 갈길까? 그리고 저거 꼴랑 2층짜린데 헬기가져다 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세한 비아냥은 나중에 해주셔도 되는데 정말로요.
“인질이 있으니 나 혼자서 들어가 봐야 의미가 없군. 좋아.”
총탄과 로켓런쳐가 날아오는 2층의 창문을 바라보던 김연은 강윤선배를 돌아보며 말했다.
“강윤아 염동력으로 창문 쪽에 있는 놈들을 공격할 수 있냐? 벽은 부수지 말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강윤선배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 했다. 그리고 잠시 허공에서 손을 휘적이다가, 오른손을 짧게 휘둘렀다.
쾅!!
“컨트롤이 듣지 않는 군요. 웃!”
터엉!!
방금 전까지 강윤선배가 머리를 내밀던 곳에 격추당한 관측 드론의 잔해가 떨어졌다.
“아니. 뭔가가 방해한 거다. 각성 능력....... 혹은 마법이지.”
창문 대신 염동력을 맞은 벽에는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화답하듯 다시 격렬하게 쏟아지는 총탄.
“으앗!!! 그냥 벽을 무너트려서 엄폐를 없애는 건 어때??”
수연선배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 건물은 방치된 지 상당히 오래 지나서 꽤 낡아있거든. ‘테러범을 잡기위해 인질도 있던 건물을 날려보았습니다~☆’같은 짓을 하면 이번엔 시말서로 안 끝나. 그러니까 드론이 정찰기 노릇이나 하고 있는 거고.”
알았으니까 굳이 도중에 말투 바꾸지 말아주세요.
☆가 들어갈 법한 대사와 말투는 삼가줬으면 좋겠다. 진짜로. 그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지나치게 가볍고 발랄하면 솔직히 괴리감이 너무 심각하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김연이 중얼거린다.
“능력은.......외현계....... 전이, 공간조작? 교란마법? 지금의 범위로는 아마도 B랭크....... 방금 전 염동력은....... 분명....... 발동 후.......”
평소답지 않게 신중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사격소리로 어지러운 이 곳 에서도, 왜일까 너무나 선명히 들리는 것 같다.
“........”
아 맞다. 통신기로 대화중이었지.
“하던 대로 가야지 뭐.”
“전 오늘 처음 실전인데요?”
정말이다. 하던 대로, 라고 말해도 하던 적이 없다.
“너한텐 큰 건 안 바래, 그냥 나만 쫒아오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자, 애들아? 가자.”
“오케이!!”
김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연선배가 허리의 탄띠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한가운데 있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피이이이! 하는,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크윽!!”
“아 미안! 금방 옮길게!”
마치 노래방에서 마이크와 스피커를 가까이 대면 날법한 소리를 증폭 시킨 것 같은 소리가 갑자기 귀에서 사라졌다.
아, 그랬지. 이게 수연선배의 능력이었지.
소리, 정확히는 진동의 진행방향 조작과 증폭.
“좋아, 간다! 야! 따라와!”
“세연........ 이라니까요!”
이제 슬슬 내 이름 좀 외워줬으면 좋겠는데요.
내 말에 대답도 없이 뛰쳐나가는 김연, 그리고 선배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을 따라 뛰쳐나간다.